이스라엘에는 이즈르엘 평야 같은 비옥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농경지는 물론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네게브사막 유대광야 시나이사막이다.
국토면적이 약 2만7백㎢로 우리나라 경상도보다 약간 작은 이스라엘.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 나라로 여름은 건조하고 무덥다. 반면 겨울은 비교적 온난하고 비가 종종 내린다. 강수량은 북쪽지방이 8백㎜이상이나 남쪽 네게브사막은 1백㎜로 그 차이가 크다. 북쪽의 높은 산인 헐몬에서는 만년설이 생기기도 하지만 눈은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예루살렘에는 1년에 한번 정도 눈이 온다. 지열이 높기 때문인지 폭설이 와도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애초 비옥했던 네게브사막
이스라엘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한 독립국가다.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고, 다른쪽은 옛부터 사이가 좋지 않는 아랍국가들, 즉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리학적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 문명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숱한 외세의 침입을 당하는 등 세계 역사에서 주요 무대로 많이 등장했다.
이스라엘 북쪽지방에는 갈릴리 호수와 골란 고원이 있다. 이 지역에 연평균 강수량이 5백㎜ 이상인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다. 남동부에는 반 사막지대인 유대 광야가 위치하며 남쪽에는 국토면적의 55%를 차지하는 네게브 지방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이즈르엘 평야 같은 비옥한 곳도 있지만 국토의 대부분은 농경지로는 물론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많다. 대표적인 네게브사막 유대광야 시나이사막이다. 이 중 네게브는 면적이 1만2백20㎢로 고온이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땅이다. 따라서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말라버린 와디(하상)가 종횡으로 패인 곳이 많고, 복잡한 습곡도 꽤 많다.
광대한 네게브지역에 있는사막은 40℃ 이상의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기도 한다. 이 지역은 동쪽으로는 요르단 계곡, 서쪽으로는 시나이 사막과 맞닿아 있다. 남쪽으로는 아카바만을 향해 좁고 길게 뻗어 있다.
1948년 독립한 후 황량한 네게브 지역 곳곳에 키부츠가 등장했다.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발적 협동농장이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키부츠 자치단체에서 공급해 준다. 그러나 모든 수익은 키부츠 소유로 돌아간다.
네게브 지역에 정착한 키부츠는 먼저 메마른 땅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하수를 개발하고 바닷물을 담수화시키는 등 관개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네게브 지역은 원래 비옥한 땅이었다. 단지 강수량이 적어 식물이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땅에 물이 충분히 공급되자 푸르른 평원이 빨리 형성됐고 각종 농산물이 잘 자라 매년 풍년이 들었다. 네게브 지역을 차로 달리다 보면 마치 사막의 산기루처럼 우뚝 서 있는 녹색의 키부츠를 발견하곤 한다. 이스라엘 국민의 끈질긴 정신력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 유태교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聖地)인 이스라엘에는 종교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 많다. 예루살렘은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으로 항시 들끓고 있다.
유태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상 인물인 다윗 왕은 B.C.1000년경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그가 왕궁과 성전을 세우자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 살았다. 다윗 왕과 그의 아들 솔로몬이 통치할 때가 고대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였다. 그 후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유태 왕국으로 분리됐고 앗시리아와 바빌론에게 각각 멸망당했다.
특수지형이 많은 유대광야
숱한 고초 끝에 다시 예루살렘 등지에 모인 유태인은 BC 70년 로마제국에게 또 다시 멸망당한 후 거의 2천년간 나라없는 유랑생활을 겪었다. 그러다가 옛 영토를 찾자는 시오니즘 운동과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등 열강들의 도움으로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다시 지구촌에 등장했다.
필자는 지난 87년부터 이스라엘을 모두 네차례 방문해 거의 전역을 취재차 돌아다녔다. 이스라엘은 국토가 작지만 지형이 다양하며 볼 만한 곳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필자가 방문한 곳중 인상적이었던 유대광야와 사해(死海)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현 이스라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해발 8백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고색창연한 도시다. 이곳에서 사해로 향하는 도로를 한 시간 정도 가다 보면 유대 광야와 만나게 된다. 유대 광야 역시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이곳에는 여리고(Jercho) 등의 오아시스 도시도 여러 곳 있다.
성서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유대 광야는 기독교의 주요 성지(聖地)다.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를 받은 예수가 성령의 인도로 40일간 단식한 곳이 바로 유대 광야다. 이곳에서 예수는 악마의 유혹과 굶주림 등 큰 시련을 극복했다.
유대 광야라고 해서 황량하고 거친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드문드문 풀이 난 목초지도 있고 양떼와 목자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와디는 유대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수지형이다. 옛날 지각의 융기부를 따라 흐르던 강이 물이 말라서 생겨난 기복이 큰 지형이다. 와디 지역에 가면 구릉들이 물결치듯 이어져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와디 켈트'라는 곳에는 절벽 중간에 위태롭게 지어진 게오르그 수도원이 있다. 그리스 정교회 소속 수도원이다. 곁에는 큰 오아시스가 있다. 이곳에서 산속으로 약 10㎞ 더 들어가면 황량하고 거친 유대광야를 일부나마 적셔주는 수원지가 나온다. 거대한 바윗 틈 사이에서 맑은물이 솟아나온다. 계곡에서는 청량한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린다.
여리고는 유대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 속에 세워진 도시다. 약 9천년 전에 형성된 여리고는 현재까지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졌는데, 이탈리아 로마보다도 3배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한 여리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해면보다무려 3백50m나 아래에 있다. 척박한 유대 광야에서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이 도시에는 푸르른 종려나무들이 상당히 많다.
여리고는 풍부한 수량과 온화한 기후로 맛있는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오렌지의 맛은 일품이다. 엘리사의 샘에서는 분당 4천ℓ나 되는 물이 땅밑에서 솟아 오른다.
여리고에는 신비스런 유적지가 많다. 성서에 나오는 자캐오가 올라 갔다는 돌무화과 나무도 있고, 오래된 유적인 히샴 궁전터도 있다. 9천년 전부터 인간의 거주지였던 텔 에스 술탄도 있다.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곳에서 유적발굴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땅밑에 깔린 유적들을 조심스럽게 발굴, 탄소 동위원소법으로 조사하기도 한다.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는 사해(死海, Dead Sea)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다. 해면보다 무려 3백95m나 낮은 사해는 염분함유율이 35%나 되는 매우 짠 바다다. 따라서 생물이 살지 못하므로 사해라고 이름지어졌다.
자원의 보고로 변모하는 사해(死海)
사해는 남북으로 길이 80㎞, 폭 16㎞, 전체 넓이가 9백50㎢나 되는 거대한 호수 형태의 바다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드러누워 신문이나 책을 보는 기이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고염도로 인한 부력으로 생겨난 현상이다. 수영실력이 '맥주병'같다는 사람들도 사해에서는 물개처럼 떠다닐 수 있다.
사해의 염분도는 보통 바다보다 7배도 넘는다. 따라서 이 물을 마시거나 이 물이 눈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 물 자체도 비눗물같이 미끈거린다.
사해의 물속에는 식염 외에 칼륨 마그네슘 유황 브롬 등 숱한 광물질이 녹아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품을 만드는 주요 원료들이다. 농약 플라스틱 페인트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브롬화인은 전세계 소비량의 25%가 사해에서 생산된다.
사해 근처의 공장들은 바닷물 속의 유용한 광물질을 추출, 제품화하고 있다. 화장품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주요 상품으로 품질이 우수하다. 과거 사해는 쓸모 없는 바다라고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이처럼 자원의 보고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해로 흘러드는 바닷물은 매일 평균 5만t이나 된다. 이처럼 엄청난 물이 유입되고도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데, 사해는 연중 일정한 수위(水位)를 유지한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해 부근의 온도가 높아 물이 유입량만큼 증발하기 때문이다.
사해에서의 신기한 자연현상은 물 위로 돌출된 수많은 소금결정물이다. 담수가 유입되는 요단강쪽에서는 염도가 떨어지는 대신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은 소금 덩어리가 많이 나타난다.
사해는 자연과 종교의 신비가 함께 숨쉬고 있어 인류의 호기심을 끊임 없이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