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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로부터 첨단기술 배운다

컴퓨터 메모리는 박테리아 기능 모방

이제 엔지니어들도 동식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생물의 뛰어난 능력을 흉내만 내도 멋진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들은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의 기나 긴 세월동안 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탁월한 특성과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하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자연이 만든 슈퍼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중에는 인간이 따라 갈수 없는 독특하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것들이 많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생물의 이런 뛰어난 기능을 모방하거나 또는 이들로부터 힌트를 얻어 첨단적인 기술개발에 응용하고 있는데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한다.

돌고래의 지혜

인간이 만든 선박은 빨라야 시속 50km가 고작인데 돌고래는 바닷물의 저항을 받아 가면서도 시속 70km의 고속으로 수영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21세기의 수영복을 구상하면서 돌고래에게 한수 배우고 있다. 이들의 연구과제는 '마이너스저항', 예컨대 돌고래와 같은 모양과 같은 무게의 물체를 만들어 흐르는 물속에 고정시킨 뒤 측정하면 물리적으로 가능한 속도를 내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돌고래는 이런 이론적인 속도보다 더 빨리 헤엄치고 있다. 돌고래는 자신의 몸의 구조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는 것.

과학자들은 그 비결이 돌고래의 피부에서 나오는 미끈미끈한 분비물이 물의 저항을 눌러버려 일종의 '마이너스저항'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고래의 피부를 인공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분비물의 수수께끼를 해명하여 돌고래 피부와 같은 수영복을 만들 수 없을까. 이런 미래의 수영복이 나올 때 수영은 혁명적인 신기록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기계공학교수 모 샤힌푸어는 고래와 돌고래에게서 힌트를 얻어 샌디아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과 함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잠수함용의 폴리머제 수영용 근육을 설계하고 있다. 이들은 폴리아크릴산과 폴리비닐산을 조합하여 만든 '지능' 폴리머겔(polymer gel)에 전기를 주면 근육처럼 팽창하고 오그라들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이 연구에 착수했다.

샤힌푸어교수의 연구는 비단 군사용만 아니라 비군사적인 분야에도 많은 응용의 길을 열어 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런 폴리머를 가는 섬유속에 다져 넣은 것을 유도장치를 포함한 여러 전자기기로 채운 인공머리에 부착, 자동으로 수영하는 '로봇 물고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설계로 만든 이색적인 인공 물고기로 수족관을 채운다면 색다른 구경거리가 될 뿐 아니라 물밑에서 선체를 청소하는데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런 폴리머는 천연의 근육만큼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고 또 더 빠른 속도로 신축할 수 있기 때문에 의학 분야에서 인공심장의 근육구실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자미의 부동액

북대서양이나 북태평양의 얼음처럼 찬 바닷물에서 살고 있는 가자미들은 물의 온도가 -2℃로 떨어질 때도 체액(몸속의 액체)을 얼지 않게 하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미국 버지니어공대와 버지니어주립대학의 토마스 카세치, 토마스 토스, 마리아 스주만스키 등 3명의 과학자들은 유전공학기법을 이용해서 이와 비슷한 부동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부동제는 앞으로 감귤류와 토마토를 서리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 이런 농산물이 수송하는 도중에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싼 화학물질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미와 그밖의 찬물 고기들은 몸속의 피와 세포속의 수분이 마땅히 얼어야 할 환경에 놓여 있으면서도 생존하는 이유는 가자미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구성성분인 펩타이드(peptide)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가자미가 만든 이 단백질이 얼음결정에 붙어서 결정이 더 못 자라게 막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단백질을 이용하자면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카세치 박사팀은 가자미의 단백질을 모델로 해서 PCX28L이라는 이름을 붙인 큰 단백질을 만들었다. 그들은 가자미 단백질의 유전자를 대장균 속에 넣고, 대장균을 단백질생산공장으로 이용해서 소량의 PCX28L을 거둬들이게 되었다. 만일 생물공학기업이 이런 단백질을 충분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의료분야에서 사용하는 효소와 같은 천연화학물을 수송할 때 그것을 보호하는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걸음 나아가 이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고속도로나 항공기 그리고 농작물에 뿌려 주어 얼음이 형성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카세치박사는 이런 유전자를 식물속에 주입해서 겨우내 작물들이 스스로 부동제를 만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얼음처럼 찬 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가자미 몸 속의 피와 세포속의 수분이 얼지 않는 이유는?


박테리아 메모리

최근 바닷가 소택지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의 단백질을 컴퓨터 메모리(기억장치)로 개발했다. 미국 시라큐스대학 분자전자연구소 과학자들은 최근 짠물 소택지에 살고 있는 '할로박테테룸 할로비움(Halobacterium halobium)'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의 BP라는 단백질에 레이저 광선을 쬐어주면 스위치처럼 켜졌다가 꺼지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밝혀 냈다. 켜졌을 때는 1 그리고 꺼질 때는 0을 나타내어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1985년 이 대학 분자전자연구소의 로버트 버지교수는 BP분자가 빛의 가장 적은 단위인 광자 두개에 대해서 이성화(異性化, 어떤 화합물의 원자나 원자단의 배열을 바꾸어서 이성체 관계에 있는 다른 화합물로 바꾸는 것)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버지교수는 레이저를 한꺼번에 두 방향에서 발사하여 마침내 이런 능력을 메모리 속에서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 두개의 빛이 BP의 용기 내부의 한 점에서 일치하게 되면 분자는 두개의 상태간을 갔다왔다하면서 1과 0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백질은 종래의 평면인 금속이나 실리콘재료와는 달리 입체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능력도 1만배나 많아진다. 또 5㎤의 부피 속에 약 1조개나 되는 이런 단백질분자를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메모리라면 1백80억비트, 즉 성경책 4천권분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시라큐스대학 과학자들은 앞으로 단백질을 더욱 다듬으면 이보다 25배, 즉 성경 10만권분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복껍질은 백묵과 같은 탄화칼슘으로 되어 있으나 1백40kg의 우람한 체중을 가진 사람이 짓밟아도 끄떡없다.

전복과하늘소

미국 워싱턴대학 재료공학교수 일한 아스케이는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결과 이 껍질이 오늘날의 첨단재료인 세라믹복합재료와 거의 완전하게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복조개를 분자배열의 모델로 한 첨단재료를 사용, 현재 사용중인 인공세라믹보다 2배나 강력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탱크용 철갑재료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21세기 초 지구의 낮은 궤도로 진입한 뒤 서울-뉴욕간을 2시간에 비행할 수 있는 '오리엔트 특급'의 원형인 우주항공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음속의 14배인 시속 1만6천km의 빠른 속도로 비행하자면 기체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야 한다. 미공군과학연구소의 과학자 프레드 헤드버그는 버드나무 하늘소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하늘소의 표피는 매우 강력하지만 가볍다. 자연은 또 이 표피에 호흡과 절연기능 그리고 온갖 감지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공재료를 이용하면 내부의 열을 제거할 수 있고 기체가 훼손되면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더욱이 하늘소의 표피는 손상을 제어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종래의 복합재료는 전체를 같은 두께의 탄소섬유로 강화했으나 자연이 준 하늘소 표피의 복합재는 서로 꼬인 섬유로 된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섬유자체가 복합재인 경우가 많다. 또 이 섬유들은 모양이 동그란 것에서 타원형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복잡한 구조는 앞으로 극초음속비행기 재료를 만드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가 나는 모습을 참고해 항공기의 소재를 만들기도 한다.


감각을가진소재

사람은 아프거나 덥거나 춥다고 느낄 때 이런 것을 알려 주는 감각을 갖고 있듯이 재료나 기계나 장치에게도 이런 기능을 인공적으로 갖춰 준다면 지나친 피로가 빚어내는 대형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비행기사고의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동체의 피로도가 한계를 넘으면 별안간 찢겨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비행기날개나 동체로 쓰이는 고성능 복합재료 속에 광섬유를 고루 깔아 '유리신경'을 만들어 주면 복합재료의 모양이 일그러질 때 광섬유도 함께 휘어지기 때문에 광섬유를 통해 조종실로 보내지는 빛의 신호도 바뀌면서 계기판의 경고등이 깜빡이게 된다.

광섬유는 비행기뿐 아니라 다른 구조물에서도 센서구실을 맡고 있다. 특히 밤낮 무거운 짐을 지탱하는 교량의 경우 피로도가 지나치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미국 버지니어공대의 연구팀은 오랜 교량에다 광섬유로 된 '신경망'을 깔고 다리의 피로도를 감시하고 있다.

면역조직을 가진 재료

과학자들은 생물의 근육이나 면역조직과 닮은 기능을 가진 부품으로 재료를 보강하여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 피해를 막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피해제어전략을 이용하면 교각이 무너지기 전에 다리의 부식을 탐지해 이에 대처할 수 있고 구조물을 안정시킬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재료과학자 캐를라인 드라이는 강화용 강철의 부식이나 또는 이것을 둘러싼 콘크리트의 균열을 스스로 감지하여 화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물질을 함유한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드라이는 부식을 막는 화학물질인 칼슘질산염으로 채운 뒤 폴리머 알코올인 폴리올로 봉을 한 폴리피닐렌 섬유를 콘크리트에 섞었다. 이 섬유 이웃의 짠물과 같은 부식물이 강철을 부식하기 시작하면 폴리올 코팅이 녹아 내리면서 섬유속에 갇혔던 칼슘질산염이 강철막대기로 방출되어 스스로 부식을 막을 수 있다. 드라이는 또 메틸 메타크리레이트와 같은 끈적끈적한 충전재로 채운 섬유를 콘크리트에 섞어 주었다. 콘크리트에 금이 가면 섬유가 갈라지면서 내용물이 흘러내려 균열된 곳을 채워주어 결국 스스로 땜질을 하게 된다.

이런 방법은 비교적 반응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버지니어주립대학 지능재료연구센터의 크레이그 로저스소장을 비롯한 연구팀은 보다 화끈하게 반응하여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고성능복합재의 슬래브 실린더 또는 빔(beam)에 압전세라믹스로 만든 작동기를 달았다.

사람은 전기충격을 느끼면 이두근이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압전세라막스는 압력이나 또는 소리와 같은 진동을 재빨리 전류로 옮기거나 또는 전류를 압력이나 진동으로 옮길 수 있어 센서와 작동기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소재의 결정을 비행기벽 패널 속에 넣고 비행기가 난류속을 비행할 때 전류를 넣어주면 패널 속의 압전물질을 진동시켜 난류에서 생기는 소음을 없앨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멀지 않은 장래에 자동차 교량 잠수함 위성 그리고 우주플랫폼에서 진동을 억제하는데 사용될 전망이다. 독서실의 벽지속에 압전물질을 넣으면 냉장고나 에어컨에서 나오는 잡음을 없앨 수 있다.

새와 물고기들은 아래위와 좌우로 요동하는 바람과 파도를 쉽게 가르면서 날거나 헤엄쳐 나간다. 과학자들은 압전재료(壓電材料)로 비행기와 배를 만들어서 이런 동물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세라믹재료는 전류의 세기에 따라 오그라들기도 하고 팽창하기도 한다.

미국 캔저스대학의 항공우주과학자 론 배텟은 최근 길이 22cm의 모형보트를 만들고 시속 1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추진용의 꼬리를 달았다. 이 꼬리부분에 전류에 민감한 암전재료를 붙여서 실험해 본 결과, 파도의 압력에 따라 실제로 물고기의 꼬리모양으로 구부리거나 비틀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얼굴인 컴퓨터가 뇌의 계산기능을 모방하여 태어난 것처럼 바이오 미메틱스(생체모방)는 생명이나 생물의 본질적인 기능연구를 통해 21세기형 신기술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현원복 과학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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