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봉해 인기를 모았던 영화 ‘맨인블랙’에는 ‘오리온’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온다. 이 고양이는 목에 ‘오리온 벨트’를 걸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 은하계가 들어있는 작은 방울이 달려있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오리온자리에는 예로부터 특별한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오리온자리에 얽힌 과거와 현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승 신 오시리스의 화신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리온자리를 ‘사후’(Sahu)라고 불렀다. 사후는 저승 세계의 가장 위대한 신 ‘오시리스’(Osiris)의 화신이다. 고대 이집트 유적인 덴데라(Denderah)사원에는 별로 만든 배를 타고 하늘을 여행하는 오시리스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있다. 사후가 오리온 별자리 전체를 뜻하는지 아니면 오리온의 허리띠에 해당하는 별 세 개를 뜻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에는 오리온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피라미드 묘실의 벽에는 피라미드의 의식을 설명한 ‘피라미드 텍스트’(제5~6왕조, 기원전 2450~2250년경)가 새겨 있다. 여기에는 ‘매장된 파라오들이 별로 가거나 별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죽은 파라오의 영혼이 오리온자리로 여행해 오시리스와 결합한다고 믿었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왕의 방에는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좁은 두 개의 갱도가 북쪽과 남쪽으로 나 있다. 학자들은 이 통로를 파라오의 영혼이 별나라로 갈 수 있게 만든 통로로 추측하고 있다. 경사각이 31도인 북쪽 갱도는 기원전 3000~2500년 사이에 북극성이었던 용자리 알파별을 향하고 있고, 경사각이 44.5도인 남쪽 갱도는 당시 오리온자리 허리띠의 세 별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한편 피라미드와 오리온자리의 연관성은 피라미드가 건설된 위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집트 출신의 건설공학자 로버트 보발은 기자 고원에 있는 세 개의 대피라미드(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에 주목했다. 세 개의 피라미드를 건설한다면 같은 크기의 피라미드가 직선이나 정삼각형의 모습을 이루도록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멘카우레 피라미드는 쿠푸와 카프레 피라미드가 만드는 직선에서 약간 올라간 곳에 훨씬 작은 크기로 건설돼 있다.
보발은 이 세 피라미드를 오리온 허리띠의 별 세 개와 연결했다. 신기하게도 이 세 피라미드의 위치와 오리온 벨트의 제타성(알니텍), 엡실론성(아닐람), 델타성(민타카)의 위치가 일치한다. 게다가 멘카우레 피라미드에 해당하는 델타성이 가장 어두운 것까지 닮았다.
보발은 주위의 다른 피라미드와 오리온자리 전체를 비교했다. 그는 기자 고원 북쪽 아부 루와시에 있는 네브카 피라미드가 오리온의 왼발에 해당하는 베타성 리겔과 일치하며, 남쪽 자위야트 알 아리얀에 있는 제데프라 피라미드는 오리온의 오른쪽 어깨에 해당하는 알파성, 베텔기우스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5000년 전 제 4왕조의 이집트인들이 오리온자리를 땅 위에 표현하기 위해 피라미드의 위치를 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각 피라미드의 위치를 지도상에 정확히 옮겨보면 두 피라미드의 방향은 일치하나 거리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특히 리겔에 해당하는 네브카 피라미드는 거의 두 배나 떨어져 있다. 보발은 별의 고유운동 때문에 별자리 위치가 이동했으며,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알맞은 지형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피라미드의 거리 차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있다. 제 18왕조의 고관이었던 센무트(기원전 1450년경)의 무덤에 있는 그림에는 오리온자리가 일곱 개의 별로 이뤄져 있지 않고 오리온 허리띠에 해당하는 별 세 개로만 묘사돼 있다. 과거의 오리온자리는 현재의 오리온자리 전체가 아니라 오리온 중심부에 있는 세 별만을 의미했기 때문에 다른 두 피라미드는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실제로 피라미드의 위치를 정할 때 하늘의 별을 참고했는지 아닌지는 현재 알 수 없다. 이런 주장이 나온 뒤 이집트에 있는 모든 피라미드를 별자리 위치와 비교하는 연구가 잇따랐지만, 다른 피라미드에 대해서는 큰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 피라미드군이 오리온의 세 별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대한 변광성 베텔기우스
오리온자리에는 베텔기우스와 리겔이라는 밝은 일등성 별 두 개가 오리온의 허리띠 세 별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일등성을 둘이나 포함하고 있는 별자리는 오리온자리와 남십자자리뿐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온자리만 볼 수 있다.
오리온자리 왼쪽 위에 진한 주황색을 띤 별이 알파별 베텔기우스다. 베텔기우스는 ‘거인의 어깨’라는 뜻이다. 밝기 0.7등급의 이 별은 하늘에서 11번째로 밝다. 베텔기우스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크기가 변하는 거대한 변광성이다. 적색거성 단계에 있는 이 별은 수축했을 때 크기가 태양 지름의 550배고, 팽창하면 920배까지 커진다. 그래서 베텔기우스는 크기를 직접 잴 수 있는 별 후보 1순위로 여겨졌다.
1920년 12월 13일 과학자들이 미국 윌슨산천문대의 100인치 망원경으로 최초로 측정한 베텔기우스의 각지름은 0.044"였다. (보통 별의 겉보기 크기는 천구를 360°로 나눈 각도인 각지름으로 나타낸다. 달의 각지름은 0.5°다) 실제로 베텔기우스의 크기는 0.034"에서 0.054"까지 변한다.
그럼 태양을 보듯 베텔기우스의 동그란 맨얼굴을 망원경으로 볼 수는 없을까. 보통 별은 아무리 큰 망원경으로 봐도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의 형태를 보기 위해서는 분해능(망원경, 현미경, 눈 등으로 구별할 수 있는 두 점 사이의 최소 거리 또는 각도. 크기가 작을수록 세밀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 좋은 망원경을 사용해야 한다.
1940년대 지상에서 가장 큰 망원경이었던 미국 팔로마산 천문대 200인치 망원경은 이론적 분해능이 0.02"였다. 베텔기우스는 동그란 형태를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별 중 하나였지만, 현실적으로 지상에 있는 망원경은 대기의 상태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론적 분해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동그란 베텔기우스의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은 1975년이 돼서야 나왔다. 미국 키트피크 천문대의 158인치 마얄 반사망원경은 이미지 증폭기와 최신 이미지 프로세싱 시스템을 활용해 베텔기우스의 맨 얼굴을 담아냈다.
이달의 천문현상
2월 초저녁 서쪽 하늘에서 빛나는 수성
2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쳐 수성이 서쪽하늘에서 빛난다. 보통 수성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수성은 태양이 진 직후나 뜨기 직전 하늘에서 잠깐 볼 수 있다.
그나마 수성을 잘 볼 수 있는 때는 수성이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지는 최대이각 지점에 있을 때다. 수성은 1년에 6번 정도 최대이각 지점에 머무는데 새벽 동쪽하늘에서 3번, 저녁 서쪽하늘에서 3번이다. 올해 저녁 서쪽하늘에서 수성을 볼 수 있는 기회는 2월, 6월, 9월에 있다.
2월 8일 수성은 동방최대이각을 맞이한다. 즉 수성이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다. 이 날을 전후해 약 10일 동안 수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해가 진 뒤 서쪽하늘이 탁 트인 곳으로 나가 수성을 찾아보자.
이 무렵 해가 진 뒤 수성의 고도는 18도, 밝기는 0등급에 달한다. 밝기와 고도만 따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해가 진 직후는 아직 하늘이 밝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해가 지고 약 30분 뒤가 수성을 찾기에 가장 좋은 때다.
수성은 해가 진 지점에서 약간 남쪽에 있다. 손을 쭉 뻗어 지평선에서 한 뼘 정도 하늘 위로 올라간 곳을 주의 깊게 살펴 보자.
먼저 눈에 띄는 천체는 금성이다. 금성은 수성보다 밝고 고도도 더 높아 찾기가 훨씬 쉽다. 금성을 길잡이로 삼아 수성을 찾는 방법도 좋다. 둘 사이의 거리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5도에서 10도 사이로 매우 가깝다. 금성에서 지평선 방향으로 서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면 희미하게 빛나는 수성을 볼 수 있다.
금성과 수성의 위치를 날마다 표시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두 행성의 공전면을 머릿속에 떠 올려 보는 건 어떨까.
분해능
망원경, 현미경,눈 등으로 구별할 수 있는두 점 사이의 최소 거리 또는 각도. 크기가 작을수록 세밀하게 볼 수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