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색채과학의 르네상스시대 열린다

환자치료에서 상품디자인까지

인간의 생리와 심리에 미치는 색채의 효과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또 동식물과 색의 관계는?

평소 겉모습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무슨 중요한 일을 목전에 두고는 의상에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특히 회사원인 경우 넥타이가 그 시간투자의 주요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애인을 만날 때는 붉은 색 넥타이, 회사에서 브리핑이 있는 경우에는 푸른 색 넥타이 등등. 심지어 아예 3백65일 한가지 색만 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다 '라든가, '이 색은 징크스가 있어서…'하는 등의 얘기를 듣게 된다. 넥타이 색깔에 대한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심리가 작용한 탓이리라. 물론 이러한 것들은 심리적인 주술에 가깝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색깔의 마력에 쉽사리 이끌려 버리고 만다.
 

색의 대비를 보여주는 색상환
 

이슬람교도는 초록색을 신성시

고대(古代)로 눈을 돌리면 이러한 색채미신은 더욱 뿌리 깊고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요새 사람들처럼 심미적인 충동이 아니라 대개는 신성하고 초(超)자연적인 어떤 불문율에 의해 색채를 선택하고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부적이나 호신부(護身符), 부장품(副葬品) 등에는 당시 마술사들의 처방에 의해 색깔이 칠해졌다. 마법과 신비주의가 지배한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인의 경우, 브라만교의 교도들은 노란색을 신성한 색으로 여겼고 힌두교의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은 인간의 몸속에 흰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으로 가득 차 있는 히타(hita)라는 핏줄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슬람교도들은 초록색을 으뜸으로 치며 신성시 했다. 신약 구약성서에도 이와 비슷한 신성한 색채에 대한 얘기가 많이 눈에 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성행한 색채치료다. 의술을 기록해 놓은 현존하는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변비가 심할 때는 붉은 비누나 흰 비누를 먹으면 낫는다" 적혀있기도 하고 붉은 물감에 염소 기름과 꿀을 섞은 것을 진정제로 처방하기도 했다. 11세기 경 영국 에드워드 2세의 시의(侍醫)는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해 환자에게 빨간 약과 빨간 음식만을 먹도록 하고 의복도 모두 빨간색으로 입혔다고 한다. 이러한 예들은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옛 문헌에서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다.

현대에도 이러한 색채의 신통력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붉은 부적과 증상에 따른 갖가지 색깔의 특효약이 점쟁이 무당들과 아울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이 안 좋거나 스스로 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말이 비록 그럴싸한 속임수라도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시광선 연구 가장 뒤떨어져

색채의 원천은 빛이다. 눈부신 공작의 날개, 빨갛게 익은 사과, 푸른 하늘 등은 마치 그 자체가 색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인간의 눈에는 색깔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빛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드레스가 붉게 보이는 것은 그 염료가 빛의 스펙트럼 속의 붉은색만 반사하고 다른 파장은 모두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프리즘을 이용, 빛에 여러색이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그 후로 아인슈타인 보어 플랑크와 같은 과학자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갖춘 묘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색채미신은 인류문화나 생활에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진동수가 너무 많거나 적은 소리를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도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 있다. 사람마다 파장에 대한 감각이 다르지만 대개 인간의 눈에 보이는 파장은 4백~7백㎛의 좁은 범위에 한정돼 있다. 이것이 가시광선인데 녹색의 파장은 약 5백㎛이고 적색은 약 7백㎛다.

파장이 아주 짧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감마선이나 그보다 긴 X선 자외선 그리고 파장이 아주 긴 전자파나 적외선 등이 인간생체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자세히 밝혀져 있다. 이에 따라 이것이 의술에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 예를 들면 전자파는 류머티즘 관절염, 적외선은 세균박멸, X선이나 감마선은 암치료 등 - 가시광선은 지금껏 인간생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 눈에 보이면서도 이 방면에 대한 가시적인 과학적 진전이 없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시광선이 인간생리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많은 연구들이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됐을 뿐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색채에 대한 어떤 미신적인 정열이 학자들을 이에 몰두하게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견에 사로잡힌 학자들에 의해 배척되기도 했던 것이다.

색광이 인간의 생리에 영향 미쳐

1878년 '빛과 색의 원리'라는 책을 발간해 명성을 얻은 과학자이자 내과의사인 에드윈배비트는 색채가 질병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중풍 류머티즘 등에는 빨간빛, 변비에는 노란빛, 신경통에는 파란빛을 환자의 환부에 비췄다. 그의 처방은 그때까지 비전돼온 여러 색광요법을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였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색광요법에 대한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나는 며칠 동안 변비로 고생했는데 호박색의 병속에 담긴 물을 잠시 석유등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자기 전에 그 물을 반온스 가량 복용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아침 시원하게 대변을 두 번씩이나 보았고 그후 1주일 동안은 다시 변비가 생기지 않았다."

"배비트의 연구는 금세기 들어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C.G.샌더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각종 질환에 대한 색채처방을 체계화했는데 그 치료범위는 심장 호흡기 소화기 피부질환 그리고 암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었다.

빛의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격이며 1903년 노벨상을 받은 덴마크의 닐즈 핀젠은 어릴때부터 색채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천연두를 치료할 때 곰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빨간 빛을 쓰는 치료법의 효과를 믿고 있었던 그는 2천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적색광선을 사용함으로써 놀라운 치료효과를 얻어냈다고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색광이 인간의 생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많은 과학자들은 색광과 같은 가시광선의 치료효과에 대해 아직까지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적외선 자외선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들이 열을 발생시키고 생체조직을 투과해 피부를 태우고 박테리아나 악성 종양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그 효과를 인정하고 있으나 빨간빛 노란빛 파란빛과 같은 가시광선은 그처럼 명확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비록 가시광선의 생리적 효과를 뚜렷이 밝힐 만한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광범위한 관련연구의 진전으로 그 확실한 효과가 밝혀질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믿고 있다. 예를 들면 루드비히같은 학자는 스펙트럼 상의 다양한 빛들이 체내의 호르몬에 제각기 독특한 영향을 미치며 광(光)생물학을 좀더 깊이 연구함으로써 언젠가는 내분비계의 질환에 대한 해결책이 발견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시광선의 생리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인체뿐만 아니라 각종 생물에 대해서도 이뤄져 왔다.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색광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한 사람은 프랑스의 테시에란 학자인데 그는 색광의 종류에 따라 식물의 성장에 있어 현저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이후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색광이 식물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대부분 색유리로 된 온실에서 실험됐는데 공통된 결과로는 빨간빛이 식물의 성장을 가장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산화탄소의 동화량을 측정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로 빨간빛과 같은 파장이 긴 가시광선이 광합성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적외선이나 자외선은 식물의 성장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 외에 동물이나 곤충의 가시광선에 대한 생리적 반응을 밝히는 연구도 많이 실시돼 왔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학질모기가 파란색 빨간색에 가장 많이 내려앉고 노란색이나 주황색 등에 가장 적게 내려앉는다는 실험결과로 미국 군인의 복장색깔이 바뀐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색채정신병학 연구의 권위자인 물리학자 페릭스 도이치는 빛의 작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빛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말은 빛에너지가 육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눈을 통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말은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가 행한 일련의 실험 - 각기 다른 색이 내부에 칠해진 방에서 피험자의 맥박과 혈압 등을 체크, 서로 다른 수치를 도출함 - 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심코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색채의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의미깊은 말인 것이다. 그는 색채의 인체에 대한 영향을 정신생리학적으로도 파악해야 함을 일깨웠다.
 

비눗방울 속에 무지개색이 영롱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빛의 산란작용의 결과다.
 

7백만개의 추상체에서 색을 느껴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제럴드의 연구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는 넓은 스크린에 빨간빛 파란빛 등을 비추면서 피험자의 혈압, 호흡수, 맥박수, 근육의 이완도, 눈의 깜박임 수, 뇌파 그리고 땀샘을 통한 자율신경계의 반응측정 등을 했다. 이 결과 피험자가 빨간빛에 마음이 동요되고 파란빛에는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빛이 파란빛에서 빨간쪽을 향해 갈수록, 즉 파장이 점점 길어질수록 대뇌에 자극을 미치는 심리물리학적인 활성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 밖에 최근까지 발표된 색채에 대한 정신생리학적 연구들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색채의 생리적 효과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시각이 눈이 아니라 뇌에서 생긴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뇌에 심한 부상을 입으면 장님이 되는 예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눈은 빛을 모아 망막에 상을 맺게 하는데 이 순간부터 시각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즉 망막의 시세포(視細胞)가 빛의 에너지를 전기신호로 바꿔 뇌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1959년 데이비드 H. 휴벨과 토스텐 N. 위젤, 두 사람은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고양이의 뇌에 전극을 삽입, 뇌의 신경세포에 생기는 반응에 대한 역사적인 실험을 했다. 그들은 고양이의 눈을 빛으로 자극하면서 뇌와 접속돼 있는 오실로스코프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이 실험에서 그들은 빛이 최종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뇌세포를 자극해 시각이 형성되는 등 생리적인 지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빛이 눈을 통과해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 빛의 단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모한다는 중요한 시각메커니즘을 밝혀 주었다.

이 과정에서 빛 파장의 차이에 따라 색을 분별하는 감각이 생겨난다. 망막의 가운데에 있는 중심와(中心窩)에는 색을 느끼는 7백만개의 추상체가 모여 있다. 빛을 받아 흥분하면 망막의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해 전류가 흐르게 되는데, 아주 가느다란 전극을 망막에 접속, 색광(色光)에 의해 발생하는 전류를 오실로스코프로 관찰하면 빨강 보라 노랑 등 각각의 색광에 특별히 민감한 부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에서 색광에 민감한 추상체가 강하게 흥분됨으로써 색채감각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어떤 색에 대해서 색각을 일으킬 수 없는 경우에는 색맹이 되고 그 정도가 약한 것은 색약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색채감각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설을 세워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으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색이라면 오늘날에 거의 밝혀져 있다. 투명한 매질을 통과할 때의 색의 굴절률을 측정할 수도 있고, 어떤 표면의 색이라도 반사되는 파장에 기초해 분광측정계로 정확히 잴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과 뇌에서 생기는 색각은 그렇게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도출된 것들이 색각에는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신체의 여러 부분을 색으로 나타내고 있다. 광(光)생물학이 언젠가는 가시광선의 생리적 효과를 밝혀줄 것이다.
 

색의 항상성과 기억색

색각은 눈과 대뇌피질의 생리, 아울러 사람의 주관적인 심리 따위의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등 상당히 복합적인 과정이다. 예컨대 광파의 경우 그 파장과 진폭을 토대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으나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색을 정확하게 기술하려면 색상 명도 채도라는 애매한 용어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사람이 지각하는 색상은 파장을 바꿔도 변하고 색의 선명도나 강도에 따라서도 변한다.

이에 따라 사람이 분간할 수 있는 색의 수를 계산하면 약7백50만 종류나 된다고 한다. 무지개색도 식별능력에 따라 나누면 약 1백30종이나 된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은 색각의 심리적 측면이다. 예컨대 푸른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컬러사진을 황색스크린에 비추면 드레스가 회색으로 보인다. 이유는 청색과 황색이 보색관계로 서로 색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빛의 혼합과 보색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런데 그 소녀의 사진을 처음에 흰 스크린에 비추면 다음에 황색스크린에 비춰도 역시 드레스의 색은 청색으로 보인다. 이것은 눈에 익은 것은 조건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색의 항상성(恒常性)과 관련돼 있다. 이른바 기억색(記憶色)인 것이다.

푸른 칠을 한 자동차는 노란색 가로등 밑에서도 새빨간 저녁놀 밑에서도 언제나 푸르게 보인다. 그러나 그 차의 색깔이 눈에 익지 않은 사람에게는 진짜 색을 식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색의 항상성도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불고기를 푸른 빛 아래서 보면 아무리 그걸 먹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그 순간 입맛이 싹 가실 것이다. 마치 고기가 썩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억색은 어떤 경우에는 작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작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MIT의 제롬 Y. 렛빈은 1987년 착시(錯視)실험 결과를 밝힌 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관찰자는 외계로부터 주어지는 감각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한 결과를 알 뿐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사람의 시각은 뇌에서 생긴다. 따라서 시각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에 대한 비밀이 밝혀져야 색채에 대한 인간의 생리적 심리적 반응에 대한 의문이 풀릴 것이다.


생활 속에서의 색채효과

색채는 환경정보로서 우리의 생리 심리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색채에 둘러싸여 생활하면서도 대부분 이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 같다. 기껏해야 옷이나 자동차 등의 색깔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색채를 조금만 변화시켜도 유쾌한 생활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예가 많다.

이러한 것을 색채조절(color conditioning)이라고 하는데 192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됐다. 환경색 전체를 어떤 취향이나 미신보다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결정하려는 이 시도는 파버 비렌, L. 체스킨 같은 색채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주도됐고 듀폰사(社)같은 도료메이커가 앞장서서 추진했다. 오늘 날에는 옥외 실내 도시 환경분야 등에 이 색채 조절이 도입되고 있다.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신호등의 색표시는 색채조절의 한 예로 제 2차 세계대전중 미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색채조절은 색채과학 심리학 광학 미학 등에서의 색채에 대한 생리적 심리적 반응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색채조절에 대한 관심과 적용이 미흡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기업체에서는 이러한 색채조절을 도입함으로써 생산성이 높아지는 등 의외의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다음의 예는 색채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을 열거한 것이다.

빨간빛 등 따뜻한 색에서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파란색 등 차가운 색에서는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따라서 로비 응접실 휴게실 등에서는 분홍빛 등 따뜻한 색을 쓰고 작업장은 옅은 파란색이나 녹색을 칠하는 것이 좋다. 또한 레스토랑같은 음식점에서 따뜻한 색을 쓰면 손님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따뜻한 계통의 색은 물체가 더 크게 무겁게 길게 느껴지고, 차가운 계통의 색은 물체가 더 작게 가볍게 짧게 느껴지므로 수시로 옮겨야 하는 물건은 밝고 서늘한 색을 쓰는 것이 좋다. 복숭아색 등 따뜻하고 밝은 색이 식욕을 돋구는 색이다. 따라서 식당은 이러한 계통의 색을 칠하는 것이 좋다.

노란색은 빛이 약한 곳에서 가장 밝게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지하실이나 조명이 없는 복도나 계단 주위에 이 색을 칠하면 밝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서재나 도서관같이 책에 신경이 집중되는 곳은 산만해지지 않도록 고동색같은 짙은 색을 쓰는 것이 좋다.

낮은 천장에 차가운 색을 칠하면 색채의 원근심리 효과에 의해 높아 보인다.

전차나 자동차의 바깥 부분에 따뜻한 색을 쓰면 눈에 잘 띌 뿐만 아니라 차가 크고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므로 안전을 기하는데 좋다. 반면 초록색이나 파란색 등 차가운 계통의 색은 반대로 눈에 잘 띄지 않고 멀리 떨어져 보이므로 효과를 감소시킨다.

색깔에 따라 크기가 달라 보이는 이유는 눈이 거리감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 예로 빨간색은 정상안(正常眼)인 경우 망막 뒤에 초점을 맺는다. 그러므로 빨간색을 똑똑히 보기 위해서 눈의 수정체가 두꺼워지면서 그 색을 앞으로 끌어 당긴다. 이와 반대로 파란색일 경우에는 망막 앞에 초점을 맺어 수정체를 납작하게 만든다. 따라서 색이 후퇴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줄인다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색채조절을 도입하면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산업용으로 쓰이는 색은 부드럽고 약간 회색빛을 띤 색이 좋다. 공격적이지 않고 덜 산만하며 먼지와 얼룩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회색빛 기계류는 중요부분과 작동부분을 담황색으로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색채를 전략적으로 사용, 일의 순서와 경중(輕重)을 구별한다면 근로효과를 보다 높일 수 있게 된다. 미국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색채를 올바로 조절함으로써 근로자 1인당 1년에 1백39달러의 경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3만8천명의 고용원이 있는 뉴욕운송회사에서 안전색채를 적용한 결과, 사고율이 42.3%나 감소한 예가 있다. 한해 평균 20만건 정도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우리나라도 보다 효과적인 안전색채의 적용이 요망된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98%를 차지하고 있는 17만여개의 중소기업들은 필자가 알기로 색채조절에 대한 인식이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색채조절로 인한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은 산업복지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긍정적인 투자임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

1991년 국내에서 발표된 '국교 교사의 의복색상이 아동들의 학습효과에 미치는 영향'(조엄 교수외, 대한인간공학회)이란 논문을 보면 수업집중을 위해 효과적인 교사의 의복색은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어느 색이 질문을 유발하는데 효과적인 가에 대한 조사도 눈길을 끈다. 이렇듯 색채조절은 인간공학적인 측면에서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색채의 효과는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있지만 여러 실험적인 결과로 신체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대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전 자율계를 자극하며 이에 따른 연쇄반응이 몸 전체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경험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1984년에 M. V. 조클은 자신의 논문에서 색채에서 야기되는 긴장 스트레스가 부신호르몬의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발표된 많은 관련연구들이 색채의 생리적 영향이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학은 색채에 의한 치료효험을 선뜻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색채를 맥박과 체온에 버금가는 진찰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예를 들어 졸도하면 얼굴색이 잿빛이 되고 당뇨병은 피부색이 청동색이 되며 만성관절염은 노란 색소가 몸의 이곳저곳에 침착된다. 그런데 언젠가 의사들이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색채환경도 처방에 고려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옛날처럼 미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생리학적인 판단에 따라 처방이 이뤄질 것이다.

일반기업들이 더 관심을 가져

색채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보다 일반기업에서 더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연구의 질로 따지자면 많은 차이가 있지만 기업체에서는 나름대로 자사의 상품에 대한 인지도 선호도를 위해 색채 선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작업환경에서 색채조절에 별 관심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고객들이 이제 상품의 디자인 등 겉모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색을 보고 판단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형태를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현상이나 인종에 따른 색채의 선호도는 기업 상품판매 전략에 이미 적극 도입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컬러TV가 나온 이후부터 인류의 색채에 대한 기호가 훨씬 다양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색채전략도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희뿌연 하늘과 먼지를 뒤집어 쓴 가로수를 제외하고 현대 도시인들은 온통 인공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환경을 덜 삭막하고 보다 쾌적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한 기호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공학적 측면에서 색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우리 생활에 아직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색채미신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보다 발전적인 '색깔논쟁'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우

🎓️ 진로 추천

  • 심리학
  • 미술·디자인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