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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인간, 삶의 순환고리

최초의 식생도시「계룡시」건설 앞두고 살펴본다

1996년에 모습을 드러낼 계룡시는 그 90%가 녹지지역으로 채워지게 된다. 과연 식생도시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인류 번영은 곧 자연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룩해 온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인류 번영도 이제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영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지금 현대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지구촌의 3대 온대지역(동북아시아 중부유럽 동북아메리카)은 언제까지나 번영을 누리게 될까"라는 인류문화사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해답을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생태학적으로 그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 "고대문명 4대 발상지(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의 넓은 지역이 본래부터 지금과 같은 생물학적 사막의 상태이며, 질병 빈곤 전쟁 등의 고통스런 열악한 생활 환경이었는가" 라고 역설적으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인류 생활 환경(문화와 문명)이란 지구 자연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자연의 범주는 바로 수많은 가닥의 생태계 순환고리로 구성돼 있다. 그런 생태계의 기초에는 수만가지의 식물사회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귀납적으로 식물사회는 인류문화와 문명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문명 발상지의 사막화는 인간활동에 의한 식물사회의 집약적 파괴의 결과로 해석되며, 결국 문명·문화의 싹이 되는 자연림과 그 지역에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극상림마저 파괴함으로써 잠재력을 잃고 만다. 사필귀정이다.

이러한 문명의 쇠퇴는 처음 인간의 생활장소(도시 마을 등)에서 할렘-슬럼화라는 징후로 나타난다. 넓은 대지에 남겨 놓은 인디언의 풍요로운 자연을 마음껏 개발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었던 번영의 미국이지만, 대도시 어느 한 모퉁이에 분명 할렘-슬럼가와 같은 도시의 공동(空洞)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류문명과 생태계의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빈의 숲씨는 울창한 자연림으로 빈시민들에게 훌륭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도시공동화의 원인

많은 전문가들은 도시공동화의 원인을 산업구조의 변화와 중산층의 교외지역 이주라고 하면서, 마치 산업구조가 변화하지 않고 부유층이나 중산층이 교외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이 할렘-슬럼가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처럼 강조하지만, 그러한 설명은 도시 공동화의 형성과정만을 진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할렘-슬럼가는 본래 할렘-슬럼가가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그곳은 본디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던 최고의 삶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뉴욕의 할렘-슬럼가는 미국 동부지역의 하나이며 '인간이란 동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기후와 풍토를 갖추고 있는 인간 번영의 최고의 삶터다. 유럽인들의 북미 대륙 개척은 바로 이 지역에서 시작했으며, 그들의 개척·개발은 곧 그 지역 속에서도 노른자위 땅에 대한 투자였다. 초기의 개척과 개발은 그 시대로서도 최신식 건물의 건축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헌 것이 된 건물들은 재개발이 된다. 그러나 재개발된 새 건물은 또 헌 건물이 됨으로써 마침내 부유층은 보다 쾌적한 삶의 장소인 소위 교외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번영의 삶터는 중산층으로, 그리고 빈민층의 삶터로, 마침내 도시 속의 황무지로 변하는 1백여년의 짧은 시간 속에 여기저기 할렘-슬럼가가 형성된다. 마약 강도 인신매매 등의 지린내 나는 도시속의 '죽음의 핵, 사(死)의 중심'으로 문명 쇠퇴의 진원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삶터를 옮겨 가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문명쇠퇴의 진원인 '사의 중심'(dead point 혹은 dead center)이란 본래 동일한 식물종(species)에 의한 과밀 생육지의 중심 부분에 나타나는 식물사회의 공동현상을 말한다. 굳이 식물사회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생태계의 보편적 현상이다.

이 현상은 숲에서도 드물게 관찰되기는 하나, 보통 한 식물 개체의 다발(그루터기) 속에서 주로 관찰된다. 열대 해안 망그로브림(Mangrove forests, 紅樹林)에서 보통 한 종류(예 : Rhizophora mucronata, Rh. apiculata, Sonneratia ovata 등)가 넓은 면적에 걸쳐 해안선과 평행한 대상(belt)분포를 보이는데, 그 속에는 반드시 한두개 '사(死)의 중심'이 관찰된다.

그러나 '다양한 종'들에 의해 여러가지 식물사회로 구성되어 있는 한반도 자연 숲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다발을 이루는 초본류(풀) 식물에서는 흔히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약간 건조한 참나무숲(일반적으로 2차림)이나 소나무숲의 임상(林床)에서 흔히 관찰되는 그늘사초(Carex lanceolata)나 산거울(Carex humilis)이란 사초 식물 그루터기(협의의 facies 혹은 patch)를 들 수 있다.

사(死)의 중심, 즉 공동현상의 주된 요인은 지하 뿌리의 공간 배분에 따른 수분과 영양원소(미네랄원소) 쟁탈전, 즉 죽음과 죽임의 경쟁에서 야기된다. '살아 숨쉬는 식물'이란 생명체에 있어서는 수분과 영양원소의 분배와 같은 죽느냐 사느냐의 절대절명의 전쟁이다. 왜냐하면 이미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식물 개체가 그러한 경쟁에 밀리게 될 때 동물처럼 이동이 불가능하며, 경쟁에 패배한 개체는 그 자리에서 말라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식물종끼리라도 공생 공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공간 간격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웃을 죽임으로써 집단의 존속과 계통의 번영을 보장받게 되는 호구지책의 결과가 바로 이 '사의 중심'으로 나타난다(사진과 그림 참조).


(그림1) 사의 중심 형성 과정


도시개발의 본질

우리는 식물 사회의 공동현상으로부터 도시개발문제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뉴욕의 개발에는 중요한 자연 생태 진리가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할렘-슬럼가는 곧 주위 자연환경의 희생(온대림의 벌채)에 의한 개발의 결과다. 한 종류의 인간(Homo sapiens)이란 동물사회의 과밀에서 초래된 반인류적 부메랑 현상이다. 즉 '뉴욕의 할렘-슬럼가'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개발·개척을 이룩해오지 못한 결과로부터 발생한 인간 사회의 도시 공동화현상, 즉 '인간 사회의 사의 중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1978년 국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는 "일본의 환경정책은 진실된 의미로 환경의 질이 고려돼 있지 않다"라고 수준 낮은 일본의 환경 행정을 꼬집은 일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쾌적한 도시환경 가꾸기보다는 도시의 효율성 기능성 경제성이 크게 강조된 인간 중심적인 개발을반복하고 있으며, 철근 시멘트 유리와 같은 죽은 무생물적 요소에 의한 소위 '현대적(modern) 도시개발'만을 강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사정도 위의 '사의 중심을 낳게 하는 무생물적 도시개발'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도시 개발에 충분한 녹색공간을 이용한다면 그런 문제점을 일고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충분한 간격의 절대 녹지면적(넓은 면적의 '자연 공원'으로서 자연 생태에 가까운 숲의 씨)이 도시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동물 사회의 경쟁을 완충하면서 공생·공존의 핵이 되며, 재개발의 악순환이 없는 건전한 도시 생태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류문화는 주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우리들이 요즘 자주 이야기하는 인간 부재의 도시 환경, 대중 속의 고독 등은 생물학적 사막의 메마른 도시 환경으로부터 기인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도시개발은 생활 환경의 질적 향상을 구현해야 한다. 이러한 도시 개발은 곧 도시 생태계의 질적 향상과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한, 항상 새로이 태어나는 도시로서, 그 지역의 문화적(cultural) 생태적(ecological) 지속적(sustainable) 개발(CES-Development) 정책으로 성취될 수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녹색의 도시, 누구나 살고싶어 하는 도시, 전원문화의 도시, 그런 풍요로운 조용한 아침의 삶터가 준비되고 있으니 사뭇 기대가 크다. 1996년에 그 모습을 드러낼 충청남도 계룡시가 바로 그것이다. 서기 2001년의 도시 계획 구상에 도시 면적의 89.9%(약 48㎥)가 녹지지역으로 채워지게 된다니 우리나라 도시 개발에 새로운 장을 여는 셈이다. 또한 도시 개발의 근간이 되며, 그 지역의 자연역사를 기록해 주는 '자연생태지'가 최초로 편찬됨으로써 우리나라의 21세기 지방 분권화 시대에 걸맞는 도시 개발의 귀중한 기본지침서로서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식물사회란

지구상을 덮고 있는 녹색의 피부를 식생(vegetation) 혹은 식피(植被)라 일컬으며, 이 식생은 수많은 식물들의 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식물군락(식물종의 집단, a set of species)이라고 함은 어떤 식물사회학적 단위로 정량, 정성화하여 명명된 식물사회의 총칭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쓰는 삼림군락 숲가군락(林綠군락) 길가잡초군락(路傍군락) 습원식물군락 하천식물군락 염생(鹽生)식물군락 사구(砂丘)식물군락 암벽식물군락 쓰레기(塵芥)잡초군락 등은 여러가지 식물군락들을 대별해 부르는 일반 용어다.

이러한 식물군락들은 서로 연속적 상관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침내는 제각기 독특한 종조성을 가지며 그 기능과 구조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 여러가지 식물사회로 구별할 수 있다. 이는 식물군락이라는 식물 사회의 구성원인 식물 종(Species)들이 제각기 생육·분포에 있어서 고유의 생태적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대가 삼림군락에서 관찰되지 않으며, 농로(農路)주변의 밟히는 답압지에는 흔히 질경이가 관찰되며, 산지 암각지에 소나무가 자연적으로 생육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갈대가 자라는 습지, 인간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 길가(路傍), 쉽게 건조하기 쉬운 암각지 등의 생육지에는 각각 그 생육지의 생태적 환경에 잘 적응한 여러 종류의 식물종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식물사회를 형성한다. 때로는 열악한 환경조건에 따라 단일종에 의해 우점된 단순한 식물사회도 발달하게 된다.

그러한 식물 사회에는 매우 엄격한 경쟁과 공존의 법칙이 존재할뿐만 아니라 그 법칙이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동물과 같은 개체(individual)의 이동성이 식물에는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한 종류(species)의 식물 개체가 발아한 그 장소에서 하나의 생활환(life cycle)을 완성하기까지 이동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웃하는 다른 종들과의 경쟁과 공존은 필연적이면서도 훨씬 엄격한 것이 식물사회의 특징이다.
 

(그림2) 숲씨의 보존^인간은 '자연환경'이란 생명나무의 과실(果實)로부터 과육(果肉)을 이용해 자연환경의 잠재적 유전자 창고인 숲의 씨앗을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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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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