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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영원히 팽창할 것인가

「빅뱅이론」이 「정상우주론」을 누르고 정설로 굳어지기까지

'빅뱅우주론'이 탄생해 많은 모순점을 극복하고 우주 생성의 표준모델로 자리잡기까지, 그중에서도 정상우주론의 도전을 물리치는 과정을 요약해 소개한다.

우주에 시작이 있는가, 아니면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는가.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 질문을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형이상학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20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부터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다룰 수 있는 이론과 실험기술을 가지게 됐다.

우주론은 빅뱅이론과 정상우주론으로 대별된다. 빅뱅이론은 우주가 초기의 뜨겁고 밀도 넢은 상태에서 진화했다는 이론이며, 정상우주론은 우주가 항상 존재했다고 하며 물질이 연속적으로 창조돼 현재의 물질분포를 이루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빅뱅이론은 우주배경복사 현상을 예측하고 관측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빅뱅의 잔해로 여겨지는 이 복사는 1964~65년에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이 라디오 안테나의 마이크로파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됨으로 해서 우주의 기원에 관한 가설은 실험적 검증을 통해서 승패를 가리게 되었다.

몇년 사이에 우주론자의 대다수는 빅뱅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펜지아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측정된 우주배경복사의 자그마한 요동(코비의 발견, 과학동아 92년 6월호 참고)은 빅뱅이론을 확고하게 뒷받침했다.

이렇게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을 전후한 시기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과학의 진보에 관한 두가지 사상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코비위성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온도지도. 온도의 미세한 차이를 색으로 표현했다.


허블의 발견

빅뱅이론은 1930년대 허블(미국 천문학자)이 은하의 후퇴이론을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허블의 발견은 우주가 어떤 시점에 아주 작은 공간에 밀집해 있다가 팽창했으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프리드만(러시아 물리학자)과 르메트리(벨기에 목사)는 각각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을 이용하여 팽창우주의 진화를 기술하려 했다. 우주론의 전개과정에는 핵물리학의 기계장비가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20세기 초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 연구가 우주론의 이론적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빅뱅 이후 우주 공간의 복사온도가 얼마인가하는 문제는 우주진화론이 정량적으로 발전해야만 해결될 수 있었다. 그 작업을 시작한 사람은 방사성 붕괴현상의 설명으로 유명해 진 러시아 출신 물리학자 가모프였다. 가모프는 조지 워싱턴 대학 재임시절에 핵반응 특히 소립자가 융합되는 메커니즘의 천체물리학적 우주론적 양상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우주적 차원에서 접근하였다.

지금까지도 유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별에 관한 핵물리학 이론은 코넬 대학의 베테(독일 태생 물리학자)가 1938년에 세운 이론이다. 베테는 별의 내부에서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가정함으로써 별이 빛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베테는 별 내부에서는 두가지 핵융합 반응이 있다고 했는데, 그 하나는 양성자가 헬륨핵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탄소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호일은 1950년대에 헬륨핵 3개가 탄소로 전환된다고 하였고, 이 과정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파울러가 고에너지 입자가속기를 사용하여 실험적으로 확증했다. 1957년에 이르면 파울러 호일 버비지 부부는 수소와 헬륨으로부터 대부분의 원소가 융합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헬륨이 우주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헬륨의 존재를 설명해야

이미 오래전에 가모프는 헬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설을 세웠다. 가모프의 이론에 따르면 수소보다 큰 원자핵은 중성자를 포획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이론은 알퍼와 허만에 의해 확인됐고, 곧이어 그들은 우주가 식어감에 따라 복사는 흑체의 스펙트럼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우주의 팽창으로 복사가 줄어들고 온도가 낮아지는 과정을 계산해 낼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우주의 물질밀도를 사용하여 오늘날의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5K라고 추산했다.

천문학자들은 그러한 예측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우주배경복사를 검출해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예측이 기초하고 있는 우주론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빅뱅이론에는 두가지 결정이 있었다. 첫째는 빅뱅이론이 헬륨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원소의 형성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문제는 호일과 파울러 등의 정상우주론의 개념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의 빅뱅이론은 헬륨보다 큰 원소는 1세대 별이 형성되고 난 후에 생겨났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둘째는 빅뱅이론이 암시하고 있는 우주의 나이에 관한 것이다. 허블의 팽창법칙에 따른 은하의 후퇴 속도나 은하의 거리를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는 대략 20억년 정도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지표면의 암석만해도 그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판명되었다(이 모순은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자세히 설명).

정상우주론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1946년의 어느날 영국 케임브리지의 호일과 본디, 골드는 '밤의 죽음'이라는 공포영화를 보면서 시작과 끝이 동일한 순환적인 우주를 생각해냈다. 이들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이 없으며 은하의 후퇴가 물질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가 팽창하는 만큼 물질도 연속적으로 생겨나서, 우주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물질의 창조는 '질량-에너지 보존법칙'에 위배된다. 그러나 빅뱅이론 역시 질량보존법칙을 위배하여 우주가 시작할 때-아직 과학적 연구가 도달하지 않는 곳-한꺼번에 물질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니 않는가.(나중에 호일은 중력에너지가 물질을 만든다고 하여 '질량-에너지 보존법칙'을 충족시키려 했지만 그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았다.)
 

정상우주론의 주창자인 영국의 프레드 호일


포퍼와 플랑크

정상우주론의 주창자들은 관측가능한 현상-물질의 연속적 생성-을 가정하고 있는 정상우주론이 빅뱅이론보다 훨씬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기들의 예측은 가까운 미래에 검증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몇 안되는 관측결과를 가지고 자신들의 모델을 견고하게 하는 과정에서 본디와 골드등의 정상우주론자들은 포퍼의 논의를 좇았다. 포퍼는 과학을 검증가능한 현상을 예측하는 가설을 창조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 포퍼의 원리에 따르면 과학이론의 판단기준은 '진실'이 아니라 '검증가능성'이다. 예로 포퍼는 마르크스 주의와 정신분석학은 모든 사실들을 다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기 때문에 '비과학'이라고 규정했다.

1950~60년대 초에는 다양한 천문관측을 통해 우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게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케임브리지의 라일은 전파신호를 검출한 결과 과거에는 전파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 우주의 나이와 지구의 나이를 둘러싼 논쟁은 빅뱅이론에 유리하게 전개했다. 1952년에 윌슨산 천문대의 바데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이 은하의 거리를 두배로 확대한 결과 우주의 나이는 이전에 비해 두배로 커졌다. 곧이어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으로 고정된 채 우주의 나이는 적어도 1백억년 이상으로 커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많은 수의 과학자들-특히 영국의 과학자들-은 간단한 정상우주론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가지 관측증거들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포퍼의 방법론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새로운 과학적 진실은 반대자들을 설득함으로써가 아니라 반대자들이 죽은 다음 새로운 세대가 성장함으로써 비로소 승리한다"는 플랑크의 냉소적인 견해를 받아들였다.

현재 과학사학자들의 '플랑크 원리'라고 부르는 이 생각은 '포퍼의 원리'와는 반대로, 인간의 논리적 사고가 과학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이 정상우주론과 빅뱅이론을 저울질할 때, 과학사학자들은 플랑크의 과학론과 포퍼의 과학론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1959년경에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물질의 연속적 창조'를 거부했지만 빅뱅이론의 지지율도 1/3에 불과했음이 한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은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으로 급변했다. 펜지아스와 윌슨은 우주공간의 온도(이 온도에 해당하는 플랑크 흑체복사곡선)를 측정하여 우주배경복사를 검출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배경복사 곡선은 3K보다 약간 낮은 온도의 플랑크 곡선과 일치하며 0.18cm(마이크로파영역)에서 피크가 보인다.

이미 1926년에 에딩턴은 우주 공간의 온도를 간접적으로 추론하여 3.2K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검증할만한 방법이 없었다. 대략 15년 후에 캐나다에 있는 도미니온 천체물리관측소의 앤드류 맥켈라는 CN 분자를 이용한 우주의 유효온도 측정법을 제시하고 3.2K라는 측정결과를 제시했다.

1946년 로버트 딕 그룹은 마이크로파 전파측정기로 20K보다 낮은 온도의 대기복사를 검출했다. 후에 딕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당시 우리는 그것이 '빅뱅'복사라고는 생각치 못했고 단지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 방출된 것이라 생각했다."

와인버그는 그가 쓴 '최초의 3분간'에서 1965년 이전에 우주배경복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없었던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그 하나는 빅뱅이론이 헬륨의 생성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도를 상실했던 것이며, 둘째는 이론가들과 실험가들의 상호교통이 단절됐던 것이다.

당시 이론가들은 기종의 실험장치로 우주배경복사를 검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험가들은 중요한 발견을 하고서도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딕과 피블스는 이론과 실험 모두에서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최초로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펜지아스(아래)와 윌슨


빅뱅이 승리하기까지

펜지아스와 윌슨의 작업은 전파천문학에서 시작됐다. 그들의 작업에 필요한 고감도 설비를 장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이크로파 잡음을 없애야 했는데 몇번의 실패를 거친후, 1965년에 펜지아스는 이 문제를 피블스가 해결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피블스는 딕과 함께 프린스턴에서 연구중이었다. 딕은 우주가 빅뱅과 함께 시작했다는 가정을 거부하고,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수축의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분해될 것이라고 추론했다. 딕의 우주론은 초기에 방출된 고온의 복사가 식어감에 따라 플랑크 곡선을 만족하게 된다는 내용을 암시했다. 그는 현재의 복사온도가 45K일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 때 딕은 1946년에 자기가 측정한 결과-20K보다 낮은 복사온도-를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블스는 딕의 이론을 검토하면서 10K라는 온도를 계산했다.

이미 오래 전에 알퍼와 허만이 예언한 것으로 밝혀진 우주배경복사는 다시 딕과 피블스가 예측하고 펜지아스와 윌슨이 검출해 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펜지아스와 윌슨은 그 발견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딕과 피블스에 의한 이론적 설명이 단순한 '검출'을 진정한 '발견'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당시의 과학자 세계가 가모프 알퍼 허만의 작업을 완전히 간과했기 때문에 '발견'은 십수년이 지나서야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발견이 출판되자(Astrophysical Journal 1965.7.1자) 호일조차도 "정상우주론-엄밀히 말해서 초기의 정상우주론-은 이제 폐기되었다"고 하여 빅뱅이론이 우세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곧이어 새로운 발견은 플랑크 곡선의 아주 작은 부분, 즉 마이크로파 영역에서만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면 다른 진동수 영역에서도 배경복사가 플랑크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1970년대 말에는 거의 모든 정상우주론자들이 두손을 들었다.

1965년 이후 정상우주론의 급격한 쇠퇴과정에는 '플랑크 원리'가 아닌 '포퍼의 원리'가 적용됨을 알 수 있다. 헬륨의 존재와 퀘이사의 거리에 대한 논쟁뿐 아니라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이 정상우주론은 더 이상 탐구될 가치가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1990년에 호일은 다시 한번 정상우주론을 부활시키려 '미니 빅뱅이론'을 주장했다. 그것은 빅뱅이론이 해결하지 못한 몇가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 하나는 우주배경복사가 너무 균일하다는 것이다. 온도(혹은 밀도)에 약간의 요동이 있어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별, 은하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4월에 캘리포니아대학의 조지 스무트는 코비 위성이 보내온 자료를 분석하여 빅뱅이론의 이러한 결함을 메꾸어 주리라 예상되는 증거를 밝혔다. 그 증거는 우주의 초기단계에 물질밀도와 에너지밀도의 요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요동은 물질의 자체 중력이 어떻게 현재의 별 은하 등 거대한 구조를 형성시켰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우주는 정말 빅뱅에서 시작되었는가? 우주는 영원히 팽창할 것인가, 아니면 블랙홀로 수축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주배경복사 발견에 즈음에 진지하게 규명돼야 한다. 여기에서 우주론은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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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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