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IH와 일부 과학자들이 아직 기능도 밝혀지지 않은 인간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신청하자 세계 각국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인간 유전자를 둘러싼 특허논쟁이 뜨겁다. 사람 유전자의 염기배열을 알아내려는 게놈 연구가 한창인 가운데, 이미 밝혀진 일부유전자를 특허신청하려는 미국측에 세계의 과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NIH(미국 국립보건연구소)와 미국 일부 과학자들이 인간 유전자 염기배열을 특허신청한 것에 대해 최근 영국 의학심의회에서도 똑같은 형태의 특허를 신청해 싸움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태.
"기능도 분명치 않은 염기배열 정보는 특허의 대상이 아니다" 국제적인 협력연구의 분위기를 해치는 비신사적 행위"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지만 미국은 이미 모든 인간 유전자의 해석을 전담하는 모험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부터 금년에 걸쳐서 NIH의 크리이그 벤터 박사그룹이 기능 불명의 인간유전자 단편의 염기배열을 특허신청한데서부터 출발한다. 지난 6월에는 뮌헨에 있는 유럽 특허청에도 특허를 신청했다.
인간유전자의 염기배열을 특허신청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직까지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를 발견해 특허신청을 해놓으면, 나중에 기능이 밝혀졌을 때 이들이 만드는 단백질을 독점하겠다는 것이 특허신청측의 의중. 항암제인 인터페론이나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도 사람의 몸속에서 생성되는 것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인간 유전자는 약 30억개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에서 기능을 가진 유전자는 5만에서 10만개. 염기배열과 기능 모두가 밝혀진 것은 약2천개다. 현재 인간유전자의 염기배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파악하려는 연구가 HUGO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미래의 게놈독점 야망'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HUGO(국제인간게놈해석기구) 미국유전자협회 영국의학심의회 국제학술연합회 등이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노벨상을 탔던 왓슨 박사는 항의의 표시로 금년 봄 미국인간게놈해석계획의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배열만으로 특허는 불가능하다" "국제협력을 방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러나 돈을 사용해 얻은 연구성과는 가능한한 특허화 해야 하며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우위성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이 확고해 인간유전자에 대한 지적소유권화를 계속해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미국 특허상표국에 급하게 심의를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NIH는 거절됐을 경우를 대비해 재심요청 방침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당사자인 벤터 박사는 7월 중순에 NIH를 그만두고 모험기업으로부터 7천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게노믹 리서치'라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는 NIH로부터 30명의 연구원이 이미 이적해왔고 DNA 자동해석기를 20대나 확보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NIH보다 약 10배 규모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셈.
벤터 박사는 "3년내지 5년내에 인간 유전자의 대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게노믹 리서치 연구소와 동시에 설립된 휴먼게놈사이언스사가 연구소에서 얻어지는 성과를 특허화하고 이를 가지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영국 의학심의회에서는 지난 6월 약1천4백개의 유전자 단편 배열을 미국과 영국에 특허신청했다. 의학심의회측의 게놈 담당자는 "우리측의 특허출원은 어디까지나 방어적인 대항수단에 불과하다"고 밝히며 "미국이 취소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의약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프롬리 대통령 과학담당고문은 최근 "현단계에서 미국의 특허국이 특허를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NIH의 입장은 쉽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HUGO의 월터 보드마 회장은 "유전자 이용이 가능한 단계에서나 특허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염기배열만 밝혀진 상태에서 특허는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