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의 미래청사진을 그려낸 역사적인 유엔환경개발회의(UNCID)가 막을 내렸다. 각국의 이기적 다툼 속에 정작 지구환경보전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은 지금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정부보다 앞서 알려온 민간환경운동단체들의 '리우결산'은 무엇일까. 현지에서 세계각국의 NGO활동을 접하고온 UNCED한국위원회의 스케치를 싣는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을 끼고 계속되는 드넓은 플라멩고 공원위에는 유엔 환경재발회의(UNCED)가 열리는 10여일간 초록과 흰색의 텐트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바로 이 곳이 세계 각국에서온 2천5백여개 민간환경단체들(NGO)의 근거지. 세계의 정상들이 모이는 UNCED와 같은 시각에 이들 민간환경단체가 연 '글로벌포럼'에서는 3백65차례의 각종회의 세미나 문화행사 예술공연이 개최됐고 하루 3만(주로 리우의 시민들)명의 손님들이 몰려 들었다.
'빈곤과 기아 문제부터 해결 하라'
전세계 민간환경운동의 '전사'들이 모이는 '92지구포럼'(global forum)은 6월 3일 오후 3시 30분 플라멩고 공원 해변가에서의 화려한 개막식으로 시작됐다. 개막식의 꽃이었던 가이아(GAIA)호는 '대지의 여신'이란 뜻의 이름답게 해질녘의 바닷가, 더구나 수십명의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는 모습과 어우러지고 전세계 어린이들이 보냈다는 각국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상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곧바로 해변과 무대 맨앞에서는 "가이아호는 노르웨이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높이 치켜든 환경단체의 시위가 시작됐다. 지구를 살리자는 캠페인 효과를 위해 5백만불의 환경자금을 배한척 띄우는데 쓰지말고 직접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항의시위였다. 이같은 관점, 즉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고려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빈곤과 기아의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은 NGO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되는 갈등의 주제가 됐다. 특히 정상회담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어 회의 결과가 진정으로 지구환경에 도움이 될지 의문시된다는 것이 초기의 NGO들의 생각이었다.
사실 UNCED든 글로벌포럼이든 주요쟁점은 '지구환경문제'이전에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이해대립이었다. 이미 초안이 합의된 상태에서 진행된 기후변화협약, 생물종다양성협약에 대해서도 선진국과 개도국은 다같이 불만이어서 선진국들은 자체국민총생산(GNP)의 0.7%선으로 대외공적원조액이 올라간 것에 서명을 꺼리는가 하면, 개도국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환경규제에 의해 선진국이 후진국에 대해 연간 5백 4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해 주는 대신 5천억달러의 무역을 통한 이익금을 빼내갈 것이라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비교적 좌파적인 시각의 단체들은 비판적 시각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국가, 특히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이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포기하면서 지구환경보호에 동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생물다양성협약'에 대한 서명과정에서 드러나자 세계적 환경운동단체의 하나인 '자연을 위한 세계기금'은 "구멍뚫린 토론은 그만하고 행동하라!"는 구호를 쓴 대형 애드벌룬을 회의장 길목에 띄워놓았다.
7일, 9일, 10일 계속된 시위에서도 NGO들의 입장은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모아졌다. 7일 6천여명의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미국 민간단체들 주최의 '세계 행진의 날'행사에서 부시에게 서명할 것을 주장했고 이에 앞서 미국의 환경보호주의자 1백여명은 리우시내에서 부시행정부의 생물다양성협약 서명거부방침에 항의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6천여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시가 미국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내를 돌면서 미정부에 대해 협약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단 부시대통령의 정상회담 참가와 서명이 확정되자 지구보호를 위한 서명의 내용에 정확한 기술이전과 재정지원이 뒤따르지 않는 것을 지적, 10일 브라질 주도의 시위에서는 다시 '부시 고 홈'으로 구호가 바뀌기도 했다.
현장 경험 풍부히 반영한 구체적 토론
이런 큰 줄기의 의견일치와 함께 시간이 지나면서 NGO들의 토론은 진지함을 더해 갔다. 예를 들어 '산업에서 오염을 줄이는 방법'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제3세계의 입장' '가솔린 대신 알코올을 썼을 때 환경오염 ' 등등 자연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에서부터 정치경제적인 내용까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주제들이 각각의 장에서 토론되고 있었다. NGO들이 글로별 포럼을 열어 이처럼 진지한 회의를 하는 목적은 우선 각국의 환경단체들이 연대를 강화하고 자료와 정보를 교환하며 NGO나름의 지구환경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데 있었다. 특히 NGO전략회의는 국제적 협약에 대한 민간단체들의 전략협정을 맺는 자리로 정상회담을 통해 나오는 리우선언이나 '아젠다 21'과는 또다른 내용의 원칙과 실행방침을 만들어내 정부의 결론에 대항한다는 입장에서 진행됐다.
UNCED 한국위원회는 교수진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대만 일본 등 18번 텐트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안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진주 남강 지키기모임에서 온 실무자들은 강을 살리는 모임에 들어가 일본의 니과라강 살리기모임과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교류하는가 하면 울진의 핵발전소 대책위 대표로 참여한 주광진 위원장은 반핵운동단체모임에 참여해 운동사례를 설명했다. 이밖에도 민족예술총연합회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단은 대형걸개그림을 걸고 사물놀이를 정기적으로 공연했으며 환경단체 실무자들과 교수 변호사들은 본회의에 참여해 전체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가장 활기차게 논의가 진행된 그룹중에 하나는 여성모임. 1백여명을 넘는 인원이 연일 커다란 텐트를 꽉꽉 채우고 있었는데 UNCED 자체가 1990년 스톡홀름회의 때부터 기획됐다면 특히 여성문제그룹의 경우 UNCED에 여성문제를 넣기위해 UNCED 퍼포스(purpose)란 조직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준비해왔다고 한다. UNCED를 계기로 제1세계, 제3세계 여성의 연대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주였는데 제3세계 여성들은 자국의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미국 유럽 등지의 1세계 여성들이 발표하는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세계 NGO들중 돋보이는 그룹들은 대개 오랜 환경운동의 역사속에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을 지니고 있는 그룹들이었다.
일본의 경우 30번 텐트를 아예 전세내서 일본인들의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걸프만의 생태계오염을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전시하는가 하면 2차대전시 일본의 원폭피해와 환경오염피해를 홍보하고 또 20여년동안 꾸준히 환경을 노래한 가수의 콘서트도 있었다. 일본 소비자연맹의 우유팩 재생시범, 폐기름으로 비누만들기 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인기였다. 일본의 한 단체는 3천군데에 환경모니터링을 조직해 질소산화물과 산성비등을 측정, 환경오염을 감시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어린이의 가방이나 주부의 장바구니에 간단한 장치를 달아 환경오염을 파악하는 모니터링만도 1만 2천여개 정도나 된다고 했다. 이번 행사에 일본인들은 민, 관 합쳐 3천여명정도가 방문하여 가히 일본의 환경운동이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듯 보였지만 일본정부가 재정지원에 인색한 태도를 보여 오히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민간단체들의 활동도 다른 나라와 공동보조를 맞추기 보다는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한 개별적인 활동이었다는 평가다.
이번 회의에는 특히 '그린피스' '제3세계 네트워크' '지구의 친구들' '자연보호 세계기금' 등 4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대해 환경보호 필요성을 고려하도록 건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이들 단체들은 세계무역이 환경보호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면서 UNCED가 이와 관련한 행동계획을 세우지 못한데 대해 비난했다.
또 이번 행사에서는 애초에 핵문제가 제외되었던 것과는 상반되게 '방사능 오염문제'가 크게 폭로됐다. 노르웨이의 환경단체인 '벨로와 그룹'은 6월 6일 옛 소련이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했던 시베리아 마야크공장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폐기물 때문에 수십만명의 시베리아 주민들이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48년 이래 마야크 공장의 방사능 폐기물인 세슘 137 또는 스트론튬 90 등으로 인해 적어도 50만명이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말하면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했던 피해를 1백배 확대하면 마야크 공장의 비극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발과 보존」환경운동가들도 갈등
한편 국제적인 NGO모임이 드러낸 어두운 면도 적지 않았다. 이번 글로벌포럼은 실제로 환경운동에 있어서 민간단체역할이 중요함을 인정받아 정부간 회의에서 1천2백만달러의 자금을 공식기탁받아 진행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행사에서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된 것은 현실적으로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부분이 전세버스대여나 기업에 대한 장소대여로 자금이 채워지는가 하면 결국 약 2백만달러 정도가 모자라 행사장 대여업체가 수도물과 전기 등을 끊겠다는 위협을 할 정도 였다.
또 비록 환경과 조화된 '생활방식의 변화'를 기본적으로 주장하고 있었지만 코카콜라깡통과 쓰레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재생용지가 거론되고 알루미늄깡통 찌그러뜨리는 기계가 전시되는 현실이어서 민간환경단체들 또한 아직 '개발과 보존'사이에서 갈등하며 인류의 갈 길을 찾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번 UNCED가 지구환경문제 해결에 새장을 열었다는 성급한 평가도 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 보다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리우선언 자체가 하나의 원칙일 뿐이고, '아젠다21'조차 기술이전과 재정마련 등의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누구도 책임있는 답변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NGO들은 이번 글로벌 포럼을 통해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가 계속되는한 환경파괴와 자원낭비는 계속될 것이라 경고하고 정부간 협약에서 제외된 내용을 따로이 협약화하여 발표했다. 결국 지구의 운명은 정부 혹은 국가정상들간의 협상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키려는 민중들의 소박하면서도 피나는 노력에 달려있음을 내보이려 노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