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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경과학학회 초대회장 박찬웅

"신경과학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 존재 문제에 대한 생물학적 해명"

현대과학의 마지막 과제 뇌연구. 최근 국내에서도 이 분야 연구자들이 신경과학학회를 만들어 앞으로의 활동이 주목된다.

현대과학이 남겨놓은 최후의 미개척지는 어디일까. 혹자는 '이제 과학자에게 남겨진 과제는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것과 인간 뇌 기능을 이해하는 것' 뿐이라고 단언한다. 이 언명에 무게를 더하듯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뇌연구의 기간으로 선포했고 서방선 진 7개국의 정상들도 이미 뇌연구를 '인간첨단과학프로그램'으로 정해 이 분야 연구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60년대 말 MIT의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인간의 뇌를 꼭 닮은 컴퓨터의 개발을 꿈꿔온 이래 '마음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어떻게 남는걸까, 말은 어떻게 배울까' 등 지능을 갖춘 인류가 끊임없이 제기해온 뇌기능에 관한 질문은 새로운 차원에서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마침내 이러한 흐름은 70년대 이후 컴퓨터공학 분자생물학 의공학 등 각 관련학문의 발달에 힘입어 신경과학(neuro science)이란 독립된 분과로 새로이 정립됐다. 국내에서도 최근(5월 18일)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이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1백24명이 한국신경과학학회를 만들어 '신경과학의 최근 연구동향'이란 주제로 기념 심포지엄을 가졌다. 신경과학이란 어떤 학문이며 그 연구의 의의는 무엇인지 초대회장인 서울대 의대 박찬웅 교수로부터 들어보았다.


한국신경과학학회 초대회장 박찬웅
 

인문 사회과학분야학자까지 포괄

- 한국신경과학학회의 창립이전에도 대한 신경과학학회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양자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대한 신경과학학회는 주로 병원의 신경과를 담당하는 임상의들이 주축이 된 학회입니다. 한국신경과학학회도 물론 신경과 임상의사들을 포함하고 있고 병리학적인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임상적인 필요성을 넘어서 포괄적으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집단이지요. 따라서 회원들도 의학계의 해부 생리 약리 병리 분야들을 두루 포괄하며 심리학 언어학 등 신경과학과 밀접한 인문사회분야의 학자들도 참가하게 됩니다. 화학 물리학 등 신경과학에 기초를 제공하는 자연과학분야의 학자들이 포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 신경과학이 발달해온 경위는 어떻습니까.

"신경과학이란 용어가 생긴 것은 이미 지난 50년대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독립된 학문분야로 정립된 것은 70년대로 미국에서 신경과학학회가 생긴 69년을 기점으로 볼 수 있어요. 당시에는 이미 앞서 몇십년동안 해부학이나 생리학 등 각 분야에서 신경과학연구의 성과가 어느 정도 축적돼 있었죠.

예를 들어보자면 70, 80년 전에는 뇌속에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쥐에게 학습을 시킨 뒤 그 쥐의 뇌를 학습하지 않은 다른 쥐에게 이식해 그 물질의 존재를 확인해보려 했어요 이런 종류의 실험적인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각 분야마다의 성과는 축적됐지만 전문화 세분화라는 연구의 기본적인 속성 때문에 자기 것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지요 그러다보니 서로간의 정보교환이 절실하게 요청됐고 그것이 학회 창립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보면 UNESCO가 지원하는 국제뇌연구조직(IBRO)외에 공식적인 국제신경과학학회는 아직 없고 현재 미국신경과학학회가 최대규모로 세계각국에 2만여명 회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 신경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설명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하면 신경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밝혀내고 신경활동이 어떻게 해서 이뤄지는가를 규명하는 것입니다. 신경에는 중추신경인 뇌와 척수, 그리고 이 중앙으로부터 각 장기에 연결되는 말초신경이 있는데 특히 뇌에 대한 연구가 중심이죠.

사실 그간 말초신경계의 세포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은 많이 해명이 됐습니다. 그러나 뇌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아니라 무려 ${10}^{12}$개의 신경세포가 모여있는 기관이죠. 이 거대한 세포집합은 단순히 하나하나 세포가 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아주 복합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뇌에 대해서는 복잡한 일을 한다는 것 이상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게 거의 없습니다. 인체내의 다른 장기에 대해서는 상당부분이 밝혀져 있음에도 뇌기능은 아직 그렇지 못해요. 솔직히 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까지 밝혀낸 것보다 밝히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 뿐입니다. 결국 신경과학이란 이 신경세포체의 집합인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최근까지의 주된 연구경향은 무엇입니까.

"지난 50년간의 신경과학연구는 거의 뇌속의 신경전달물질(neuro transmitter)과 그 작용부위인 수용체(receptor)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상당히 많은 신경질병의 기전이 밝혀진 것도 사실이죠. 예를 들어 가만히 있을 때 손을 떤다든지 몸이 굳어지는 증세를 나타내는 파킨슨씨병의 경우 그 원인이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부족하거나 콜린성 물질이 활성화 될 때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 치료법으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방식을 채택해 크게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신경과학이 먼저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사회구조 자체가 노령화 되다보니 아무래도 노인성 치매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신경과학의 최근 이슈가 되고 있죠."

- 지금 언급한 대로 흔히 신경과학의 성과라면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해명해 이를 치료요법에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신경과학이 발달한다면 의학적으로 기대되는 바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신경정신계 질환의 경우 100% 경험적 치료에 그쳐왔습니다. 즉 도대체 어떤 신경정신계 질환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적용해본 결과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하면 다른 환자에게도 적용해보는 방식이었던 거죠. 예를 들어 우울증에 이런저런 치료약물을 쓰는 일이 이젠 보편화됐지만 그것 역시 원인치료라기보다는 우울증에 빠진 환자에게는 이런 약을 쓰면 효과가 있더라는 경험적인 소견에서 내려지는 처방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경과학의 경우 이런 신경정신계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고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겁니다. 또 정신적인 이유로 신체적인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막연히 스트레스성 위궤양,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이라고 불리는 병변들의 메커니즘을 해명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진행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뇌의 기능이 해명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제 임상에의 적용은 뇌에 대해서 더 많은 부분이 설명되고 난 뒤에라야 가능하겠죠."

- 앞으로 학회가 할 일로 계획된 것은 무엇인지요?

"학회라는 곳이 공동의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목표이기보다는 서로간의 정보교환이 더 큰 의미를 갖는 집단이기 때문메 우리 학회의 목표도 전혀 달라보이는 영역에서 각각 신경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보가 서로 공유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예로 똑같이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뇌안의 각각의 부위가 어떻게 전기기판의 회로처럼 얽혀 있는지 그 관계규명에 관심을 두는 전기생리학자와 신경전달물질의 분자구조에 관심을 가지는 분자생물학자의 경우에는 같은 신경과학자라해도 상대방영역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습니다. 서로의 연구성과가 공유된다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겠지만 이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둔다고 해서 당장 어떤 얘기가 나오지는 않아요. 따라서 서로의 관심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신경과학의 발달은 사실 컴퓨터 분야에서 인공지능 등 인간 뇌를 그대로 흉내내려고 한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추진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경과학발달이 타 학문이나 사회전반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개 관심이 응용에 모아지는데 사실 신경과학을 크게 보자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인가에 잇닿아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며 기억하고 느끼고 분석하는 고차원적인 활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런 일들을 생물학적으로 해명한다면 그것은 인간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될 것이고 결국 철학과도 맞닥뜨리는 문제가 되겠죠. 뇌 연구를 통해 인간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신경과학이고 이것은 결국 현대과학의 마지막 목표가 될 거라고 봅니다."


한국신경과학학회에는 의학 자연과학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계의 관계전문가들도 참여한다. 사진은 창립총회를 끝낸 후의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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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용해 기자
  •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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