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분야에서 선진국들의 「말뚝작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자기들만 배타적으로 신종 유용단배질을 활용하기 위해 cDNA에 대한 특허를 광범위하게 신청해 놓고 있는 것.
최근 전세계 생명과학계 뿐만 아니라 생물산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발생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크레그 벤터(Craig Venter)박사 연구팀이 인체의 뇌세포에서 합성되는 단백질들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cDNA들의 염기서열들을 부분적으로 밝힌 후 작년 6월과 금년 2월 두차례에 걸쳐 총2천7백23개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cDNA의 부분 염기서열이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원론적인 논란과 이 특허가 생명산업계와 학계에 미칠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인정해도 되느냐의 정책적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cDNA의 염기서열에 대학 인률적인 특허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일본은 염기서열 전체와 그 산물인 단백질의 유용성이 증명되는 경우에만 특허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국의 의학연구소(MRC)는 당초의 계획을 바꿔 현재 확보하고 있는 cDNA들 중에서 일단 1천여개에 대해서만 특허를 신청하기로 했다.
치열한 특허전쟁
이로써 현재 인체게놈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으로 수행되고 있는 유전자 연구의 열기가 더해가고 있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진국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이 연구사업은 언론에 선진국들의 '유전자전쟁 '으로 비쳐질 정도로 치열한 경쟁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마치 15세기에 신대륙을 발견하고 강대국들이 서로 먼저 점거하려고 했던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에는 누가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강대국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경쟁을 미리 예견하고 1988년에 '인체게놈연구사업의 유엔'이라고 불리는 HUGO(Human Genome Organization)가 결성돼 국제간의 협력과 갈등의 조정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번 cDNA 특허신청 파동에서 나타난 HUGO의 기능과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워낙 돈과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자국보호주의(선진국 패권주의)가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게놈연구사업을 이끌어 왔던 노벨상 수상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이 cDNA 특허신청을 추진한 버나딘 힐리(Bernadine Healy)원장과의 의견대립으로 금년 4월 사임했다. 게놈연구사업의 실질적이며 상징적인 존재였던 왓슨의 사임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NIH의 cDNA 특허에 대한 입장은 매우 강경하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첨예한 경쟁속에서 cDNA 탐험을 추진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cDNA로 암 에이즈(AIDS) 유전질환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유전자의 존재를 밝힘으로써 대상질환의 조기진단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유전자치료법과 첨단의약제 개발에 cDNA를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cDNA의 발현산물인 단백질들이 의료산업뿐 아니라 식품산업 화학공업 환경산업 에너지산업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밝혀진 단백질의 가짓수는, 비슷한 기능을 가진 것들을 한가지로 묶는다고 해도, 인체 및 지구상의 생물이 합성하는 단백질 가짓수의 1%에도 못미치는 극소수다. 따라서 신대륙 발견 후 영토를 찾아나섰던 것처럼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던 새로운 단백질을 찾자는 것이다.
새로운 단백질을 창출하려면…
신기능 단백질을 구하는 일에는 대체로 세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는 1백50만종이 넘는 다양한 생물체로 부터 새로운 단백질을 추출해내는 일이다. 이는 지난 1백50여년 동안 수행해오던 것이지만, 미량의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선행돼야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추출하기 쉽도록 다량 존재하는 단백질들은 거의 다 밝혀진 셈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존의 단백질을 변형해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거나 성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를 단백질공학이라고 하는데, 지난 10여년 동안 많은 기대 속에 연구가 수행돼 왔다. 그 결과 안정성과 세척력이 높아진 세제효소가 개발됐고, 소염제 방부제로 사용되는 라이소자임(Iysozyme)의 열안정성을 높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하는 성능을 설계할 수 있는 이론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야 겨우 한가지 유용성을 얻게 되므로 효율적인 방법이 못된다.
셋째로 최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 새로운 유전자를 찾는 일이다. 기존의 단백질을 변형하는 것보다, 거의 대부분의 단백질이 밝혀지지 않은 현실에서 새로운 유용단백질의 유전자를 찾는 것이 더 손쉽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특허를 받으면 독자적 상권을 획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유전자 조작기법의 발달로 인해서 새로운 단백질을 추출하는 것보다 새로운 유전자를 찾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생물체의 모든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게놈 DNA에는 수천 수만가지의 단백질을 합성하는 정보(염기서열)가 들어 있다. DNA의 염기순서에 따라서 단백질의 아미노산 순서가 결정되는데, DNA와 1 대(對) 1 대응방식을 취하는 염기들로 구성된 전령RNA(messenger RNA, mRNA)가 먼저 합성되고, 이 전령RNA로부터 단백질이 합성된다. 세포핵이 없는 원핵세포 생물의 경우에는 유전자로부터 합성된 전령RNA가 그대로 단백질 합성의 주형으로 사용되지만, 세포핵이 있는 진핵세포 생물의 경우에는 RHA의 일부분이 잘려나간 후에 단백질 합성의 주형으로 쓰인다.
따라서 새로운 단백질의 유전자를 찾는 일은 단백질 합성의 주형RNA를 찾는 일을 뜻한다. RNA는 DNA와 달리 생체내에서 수명이 짧고 생체 외에서도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형 RNA의 염기순서에 1대 1로 대응하는 염기순서를 갖는 DNA를 합성해 보존한다. 이를 전령RNA의 염기순서에 상보적(相補的)인 염기순서를 갖는 DNA라는 뜻으로 상보(complementary) DNA 또는 cDNA라고 한다.
고등생물의 단백질 유전자를 게놈에 있는채로 미생물에 넣으면, 잘려나가야 할 부분이 남아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단백질을 제대로 합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백질 합성의 주형RNA로부터 합성한 cDNA를 미생물에 적절하게 넣으면 그 단백질을 대량 합성할 수 있다. 따라서 생물체가 합성하는 모든 전령RNA를 분리해서 전부 cDNA로 전환시킨 후 각각의 cDNA를 분석하고, 미생물로 하여금 단백질을 합성하게 한 다음 그 단백질의 기능과 특성을 연구할 수 있다.
인슐린 성장호르몬 등 잘 알려진 유용단백질의 cDNA를 찾아내서 그 단백질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지금까지 유전공학의 핵심이었으나, 이미 유용성이 밝혀진 단백질에 대한 연구는 국제적 경쟁이 매우 심할 뿐만 아니라 특허문제도 골치 아프다. 그래서 최근에는 완전히 새로운 cDNA를 얻어서 그로부터 합성되는 단백질의 유용성을 추구하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모험기업들의 참여로
최근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각국들이 경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대규모 인체게놈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에서도 요즘은 cDNA를 찾는 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5년 이 사업이 처음 제안됐을 때만 해도 당시의 자동화된 염기서열결정법을 이용, 인체의 30억염기의 순서를 차례차례 밝혀나가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그러나 인체게놈의 약 5%에 해당하는 단백질합성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은 현재의 비싸고 힘든 방법으로도 밝힐 가치가 있지만 그 나머지, 기능을 알수 없는 염기서열은 관련기술들이 값싸고 쉽게 개선된 후에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및 선진국에서는 cDNA 및 게놈의 염기서열들을 전문적으로 결정하는 회사들이 설립돼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시애틀의 억만장자 프레드릭 부르키(Frederick Bourke)는 창립자본금 5천만달러로 유전정보회사를 설립, 2, 3년 내에 1억달러 이상의 유전정보시장을 점유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차는 유전자 염기서열을 토대로 한 진단시약 및 유전자치료제의 개발로 수백억달러 이상의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수년내에 연평균 2억개 염기의 순서를 밝힐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국 NIH의 2천7백여개 cDNA와 영국 MRC의 1천여개 cDNA에 대한 특허신청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부분적 염기서열만 가지고 이로부터 합성되는 단백질들을 그 기능과 성질도 밝히지 않은채 특허에 포함시켰다. 이들이 발견한 cDNA들의 대부분이 기존에 알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것들이고, 단순히 염기서열 분석만으로 그 3분의 1 정도는 단백질의 기능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연구전략의 탁월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최근 유럽(EC)에서도 30만 염기쌍으로 이뤄진 효모염색체 3번의 염기서열 전부를 11개국 31개 연구팀(1백47명)의 공동연구로 밝혀냈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대부분의 단백질 합성유전자가 새로운 것들이었다.
cDNA에 대한 특허여부는 몇년 후에나 결정되겠지만 이들 유전자 염기서열들로부터 그 발현산물인 단백질까지 특허가 인정된다면,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국들의 설 땅은 없어지고 만다.
현재의 선진국 연구수행 속도와 관련기술 개선속도로 볼 때, 인체의 10만가지 단백질 유전자 뿐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단백질 유전자들은 21세기에 들어서기도 전에 미국 일본 EC 등 선진국들에 의해 선점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대만과 같은 생명과학 선도후발국들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서둘고 있다.
「유전자전쟁」에서 낙오하면…
이제는 cDNA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서 각각의 cDNA로부터 합성되는 단백질에 관한 기능 및 구조연구가 뒤따를 터인데, 당연히 염기서열의 분석을 통해서 유용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단백질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신대륙을 우선 점거하고, 그중에서 입지조건이 좋은 곳을 골라 먼저 개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발견해 특허를 걸어놓은 cDNA로부터 합성되는 단백질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헛일이다. 입지조건이 좋아도 다른 사람 소유의 땅이면 소용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땅부터 잡아놓아야 하듯, 우선 cDNA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짙게 깔린 요즈음 굳이 cDNA에 특허를 걸지 않더라도 중요한 cDNA들은 공표하지 않고 막바로 제품화할 것이다. 따라서 cDNA 특허여부에 관계없이 '유전자전쟁'은 계속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현재 생물학과 생명산업의 주류가 급격히 변모해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진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cDNA를 찾아서 분석하는 단위기술들은 국내에서도 지난 10년간 축적돼 왔다. 현재로선 기술적으로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의 규모와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우리는 한 연구자가 1년에 5천염기쯤의 순서를 밝힐 수 있는 수준인데, 선진국에서는 자동화기기 1백대를 사용해 1년에 2억염기의 술서를 밝히려고 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그만큼 투자를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부르키는 자신의 투자액의 수백수천배의 시장이 있다고 장담한다. 우리도 세계에서 두번째 세번째가 아니라 최초인 상품을 개발하려면 이미 상품화된 것을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이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G7 진입의 첩경이 아닐지?
지금 우리가 cDNA 연구사업 내지 게놈연구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연구사업의 내용중 주목할 것은 관련기술의 혁신이다. 이미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벌써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어, 1995년 이전에 1백배의 개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들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21세기에 들어서기도 전에 우리는 G7 진입은 커녕, G7을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영영 뒤지고 말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그때는 선진국들이 남기고 지나간 찌끄러기들이라도 모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