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서부의 브리타니지방과 영국 남부의 웨섹스지방 사람들은 거석을 세우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헨지(henge) 란 무엇이가. 고대인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이다.
고대인들이 나뭇기둥이나 돌기둥을 세워서 둥그런 구조물을 만들어놓은 것을 헨지라고 한다. 그런 구조물을 만든 목적은 고대인들이 모여서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회의장소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신전(神殿)이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부터 약 4천년 전 프랑스 서부의 브리타니지방과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방 사람들은 큰 돌을 세워 기념물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 돌(立石)을 세우는 이유는 처음에는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거나, 사로잡힌 포로의 수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돌을 여러 줄로 질서있게 세운 것들이 브리타니의 카르냑마을에 수백개나 서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건축가가 처음 발견해
그러다가 선돌들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선돌과 선돌위로 연결하는 돌을 올려놓는 구조물을 만들어 우람차고 신비스러운 고대건축이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약 4백년 전에 이니고 존스라는 영국인이 말을 타고 웨섹스지방의 솔즈베리땅을 여행하던 중 넓은 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돌들을 발견하였다. 존스의 직업은 건축가였다. 그 돌들은 수십t이 넘는 것들인데다가 돌과 돌을 잇는 이맛돌이 위에 놓여있는 것을 본 존스는 그 돌들이 우연히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인공구조물임을 직감하였다.
존스는 놀라서 몸을 떨었다. 누가 이렇게 큰 돌을 세웠으며 어떻게 세웠을까 하고 몹시 궁금하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대답은 귀신이나 악령이 인간을 벌하기 위하여 세운 돌이라는 것이었다.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존스는 그 돌들을 측량하고 크기를 기록하였다. 그는 그 내용을 왕립학회에 발표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선사시대인들이 세워놓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로 밝혀진 스톤헨지(Stone henge)이다.
도끼의 모양을 보고…
왜 그런 건축물을 세웠을까. 넓은 솔즈베리평원의 아주 오래된 석조물은 호기심에 가득찬 건축학자 역사가 고고학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나름대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밝혀진 것은 이 석조물이 직경 1백10m나 되는 원형 토담(둑)안에 있다는 것, 토담 안쪽으로 평면이 원형을 그리는 수백개의 기둥구멍이 있다는 것, 그보다 작은 원을 그리는 돌기둥이 서 있다는 것, 원형 돌기둥 안쪽으로 평면 ㄷ자모양의 구조물은 동북쪽으로 열려있는데 열려진 동북쪽 멀리 큰 돌(Heelstone)하나가 서 있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 그것만 가지고는 누가 언제 왜 이런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을 세웠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의문은 추측을 낳고 추측은 상상하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그러다가 어떤 이가 선돌들중 하나에서 작은 그림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림은 도끼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도끼의 모양은 청동기시대의 지중해 사람들의 것들과 똑같은 것이었다.
"야 이거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건물 아닌가. 그래서 자기네들이 쓰던 도끼의 모양을 돌에다 새겨놓은 것일지도 몰라."
이 추측은 적중하였다. 최근 과학의 발달로 옛날 사람들이 쓰던 물건중에서 나무나 숯을 검사하여 얼마 전에 생명이 끊어진 물건인지 알아내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결정법'이라는 긴 이름의 화학이론인데 이 방법으로 스톤헨지에서 발견된 숯(탄소)을 검사해 보니까 지금부터 최소한 4천년 전 즉 청동기시대로 밝혀졌다.
솔즈베리마을에서 돌을 운반해 와
아직 철기(鐵器)의 사용법조차 개발되지 않았던 때 사람들이 청동제 도구를 사용하여 대형건물을 세운 것이다.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암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스톤헨지에 사용된 돌들을 분석하여 여기에 사용된 청석(靑石, bluestone)은 건물이 세워진 솔즈베리마을에서 수백km나 떨어진 웨일즈지방의 프레셀리산에서 가져온 것도 밝혀냈다.
그렇다면 수십t이나 되는 무거운 돌들을 그것도 수십개를 어떻게 그 먼 곳으로부터 운반해 왔을까. 이것도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무슨 중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끌고 밀어서 운반했음이 틀림없는 일이다.
왜 이런 건물을 세웠을까. 스톤헨지의 목적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을 뿐이었다. 신(神)들의 회의장이라느니, 고대인들의 가축우리라느니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다.
제럴드 호킨스라는 천문학자가 이 건물들의 기둥배치와 방향을 자세히 검토한 후에 동북쪽에 서있는 큰 돌(Heelstone)을 스톤헨지의 중심점에 서서 바라보면 여름 하지(夏至), 즉 6월 21일 새벽에 떠오르는 해가 그 힐스톤 위로 떠오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즈음에는 그 각도가 정확하지 않지만 스톤헨지가 만들어지던 때인 4천년 전에는 그 각도가 정확하였다는 것도 계산해내었다.
호킨스의 관찰은 그때까지 신비에 싸였던 스톤헨지의 건축목적을 시원하게 해명한 셈이다. 그렇다. 스톤헨지는 고대인들의 달력이었다. 하지가 언제인줄 알게 되면 동지(冬至)가 언제인줄 알게 되고 1년은 365일만에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으랴.
고대인의 컴퓨터
고대인들이라고 무조건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것은 현대인들의 잘못된 판단이다. 고대인들의 정신세계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의 세계였다. 호킨스의 설명에 의하면 스톤헨지의 여러 기둥의 위치와 별자리는 모두 깊은 관계가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 스톤헨지에 와서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척척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요즈음 개념으로 본다면 스톤헨지는 고대인들의 컴퓨터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날짜와 계절이 그 구조물속에 입력되어 있는 셈이다.
통나무와 뗏목을 이용해 운반
그렇다면 스톤헨지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동력의 사용법도 모르고 도르래의 사용법조차 모르던 시절에 그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고 세우고 높이 올려놓았다. 수백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올 때 땅위에서는 통나무를 이용하였고, 물이 있는 강에서는 뗏목을 만들어 실어 날랐다. 큰돌을 세울 때는 길다란 장대를 지렛대로 사용하였고, 돌을 선돌 위에 올릴 때는 통나무와 널빤지를 쌓아 올리면서 한층한층 위로 올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이 동원되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공사도중에 부상당했을 것이다. 공사기간도 아주 오래 걸렸을 것이다. 몇개월 또는 몇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많은 희생과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건물을 꼭 완성해야 할 중대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톤헨지의 여름축제
천문(天文)을 이해하는 것은 계절을 아는 것이며 계절을 알아야 농업이나 목축같은 경제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법이다. 더 나은 경제생활을 지향하는 것은 세상 어떤 것보다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 힘든 공사를 완성한 것이다.
오래 전에 어느 하지날 새벽에 나는 스톤헨지 앞에 서 있었다. 하얀가운을 뒤집어쓴 사람이 웅성거렸다.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오르게 무서웠다. 나는 조용히 서서 그들을 지켜 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의 수가 자꾸 늘어났다. 열명, 스무명으로 늘어났다. 날이 밝았다. 수백개의 흰 가운이 스톤헨지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아서 유령들의 축제인 것 같았다.
그들이 바로 스톤헨지학회 회원들이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스톤헨지는 세계인의 사랑속에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지금도 말없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