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발달사는 이식과 관련되는 수술기법이 발달해온 역사이며 거부반응에 대한 의학적 이해와 극복의 역사인 동시에 이식에 대한 사회적 반응의 변천사다.
병들거나 손상 받은 장기 대신 건강한 장기로 대치하는 것은 외과의사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오랜 꿈이었다. 특히 사람의 신체를 일종의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이 자리를 잡은 뒤로 그러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
장기이식수술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시대 초기부터 기록에 남아 있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서사시 '일리어드'에서 괴물 키메라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머리는 사자요, 몸은 염소이고, 꼬리는 뱀의 모습을 한 이 신화적인 괴물은 다른 종(種)들 사이의 혼혈일 수도 있고 다른종의 신체 일부를 이식받은 동물로도 여길 수 있다. 이 키메라라는 말은 오늘날 두 개체의 특성을 함께 가진 사람을 나타낼 때 쓰이고 있다. 예컨대 골수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가 몸속에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골수를 제공해 준 사람의 혈구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다.
B. C. 300년 무렵의 중국 기록에는 장기이식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느날 루와 차오라는 두 사내가 피엔 치아오라는 의사를 찾아 왔다. 그는 마취제가 든 술을 사내에게 마시게 하여 사흘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장기들을 적출하여 서로 바꿔 끼운 뒤 사내들에게 묘약을 주었다. 두 사내는 말끔히 나아 집으로 돌아갔다."
코스마스와 다미안에 관한 기독교 전설에는 이들 의료 순교자들이 행한 수많은 기적 가운데 한가지로 장기이식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둘다 아라비아에서 태어나 시리아에서 의학을 배웠는데 287년 순교할 때까지 수많은 기적적 치료를 행하였다. '검은 다리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은 그들이 죽은 뒤인 348년에 일어났다고 전해져 온다. 암으로 다리가 온통 썩어문드러진 어느 교구의 한 늙은이가 코스마스와 다미안을 모신 바실리카식 성당에 누워 잠이 들었을 때 이들 성자가 그에게 다가와 병든 다리를 톱으로 베어냈다. 그리고나서 성자들은 바로 그날 성 베드로 묘지에 묻힌 어느 무어 사람의 성한 다리를 바꿔끼웠다. 늙은이는 깨어나서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았고 새로 갈아끼운 건강한 다리로 걸을 수 있었다.
중세 시대의 이식술이 코스마스와 다미안의 기적처럼 항상 성공적으로 끝났던 것은 아니었다. 콜룸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바로 그 해인 1492년, 젊은이의 싱싱한 피를 수혈하여 교황 이노센트 8세의 생명을 구하려고한 시도의 결과 애꿎은 소년들이 심한 실혈로 죽음에 이른 것이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닭 벼슬에 발톱이식
이식되는 장기를 받는 사람의 혈관계에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도의 정밀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애는 1905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알렉시스 카렐이 새로운 봉합술을 개발함으로써 거의 극복됐다. 그에 따라 이식에 대한 열광이 뒤따랐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즉 이식된 장기는 이식을 받은 개체에 의해서 '거부'되었던 것이다. 신체의 면역력, 곧 방어기전은 다른 개체의 세포와 장기를 공격하여 파괴한다.
피부와 같은 조직은 혈액공급이나 거부라는 어려움 없이 환자 몸의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자가이식할 수 있다. 이미 고대 인도시절부터 베인 코를 복원하기 위해 자기 피부이식이 행해졌다. 당시 인도에서는 도둑에 대해 코를 자르는 형벌이 흔했다. 잘려나간 코를 복원하는 한가지 방법은 환자의 이마에서 피부 조각을 스페이드 모양으로 잘라내서 옮겨 심는 것이었다. 오늘날 쓰이고 있는 수술의 기본 원리도 이것과 마찬가지다.
고대 인도의 수술법은 '성형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의 탈리아코치와 그의 제자 코르테지에 의해 개선됐다. 그들은 위팔의 피부를 조금씩 코 부위에 옮겨심었다. 또 어떤 경우이든 피부가 새 자리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원래 부위로부터 혈액공급을 받도록 했다.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 존 헌터(1728~93년)는 그의 선구적인 연구 때문에 실험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의 외과적 실험 가운데는 장기이식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당시 사용했던 재료는 런던의 헌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헌터가 행한 유명한 자가이식수술 중에는 닭의 발톱을 같은 닭의 벼슬에 이식한 것도 있다. 발톱은 성공적으로 이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리 쪽으로 자라나기까지 하였다. 헌터는 고대 이집트와 아메리카 그리고 16세기에 앙 브로와즈 파레가 하였던 치아 이식도 실시했다. 그러나 헌터의 수술은 대단히 엉성해서 이식된 치아로 혈관이 자라나지 않았고 감염에 대한 방비책도 없었다. 그리고 헌터는 환자 자신의 몸속에서 장기조직의 위치를 옮기는 자가이식과 다른 개체의 것을 옮기는 경우인 동종이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다른 종이 장기조직을 옮길 때는 이종(異種)이식이라 한다). 그는 이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수술의 성공 여부는 서로 만나게 되는 생명물질들이 얼마나 잘 결합할 수 있는가 하는 특성에 달려 있다."
헌터 이후 여러가지 결합조직 이식수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됐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각막이식 수술이다. 19세기 초반에 행해진 각막의 이종이식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835년 비거는 두 마리의 영양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각막의 동종이식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1880년이 될 때까지도 같은 종(種)의 각막을 사용해야만 수술에 성공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뒤 수술기법의 발전, 각막 보관 방법의 개선, 각막 제공 체계의 확립 등으로 20세기 중엽이 되면서 각막 이식수술은 치료 효과를 인정받게 된다.
거부반응의 원인 발견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외과 분야의 비약적 발전 즉 마취법의 발견과 개선, 방부와 멸균 원리의 발견 등은 이식수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지만 실제 장기이식의 성공은 20세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혈관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신장 간 폐 췌장 소장 등의 이식수술은 혈관문합 기법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졌다.
1902년 헝가리 출신의 외과의사 에메리히 울만은 실험동물에서 처음으로 장기이식을 시행했다. 곧이어 알렉시스 카렐도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봉합술(혈관 문합술)을 이용하여 신장 심장 비장 등을 실험동물에 자가이식하거나 동종이식했다. 그러나 동종이식을 한 경우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학적 반응이 일어나 동종이식편(片)이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한 반응, 즉 생체의 면역반응은 런던의 피터 메다워 등에 의해 1940년대에 집중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는 같은 동물로부터 다른 이식편을 받았던 실험동물에서 이식편의 수명이 더 짧다는 현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장기를 제공하는 동물로부터 백혈구를 받았던 실험동물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1951년 메다워 팀은 코티존을 투여함으로써 이식장기의 강력한 무기, 즉 면역억제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메다워는 이러한 업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맥팔레인 버닛과 함께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 뒤 1959년에 R.Y. 칼네와 J.E. 머레이는 아지티오프린이라는 더 효과적인 면역억제제를 개발했다. 또한 항원에 대항하는 항체는 백혈구의 한 종류인 림프구에서 만들어지며 그러한 과정은 항림프구 글로블린에 의해 억제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78년 칼네와 그 동료들은 더욱 강력한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의 효과를 임상적으로 입증한 논문을 발표했다. 원래 진균성 질환의 치료제로 개발된 이 약제는 이식장기에 대한 거부 반응에 효력이 뚜렷하다는 것이 확인되어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와 임상 경험을 통해 혈액형이 다양하듯이 장기에는 여러가지의 조직 형(型)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장기를 줄 개체와 받을 개체의 조직형을 조사하여 장기 이식의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조직형이 비슷할수록 거부반응은 미약하여 이식수술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조직형이 똑같아 가장 이상적인 장기 제공자가 된다. 실제로 사람에서 신장이식이 성공했던 것도 이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서였다. 1954년 보스턴의 해리슨과 머레이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에서 신장이식수술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이들 이식외과팀은 시체의 신장을 신장환자에 이식하는 데도 성공함으로써 그러한 신장이식 수술을 대규모로 시행할 수 있는 문을 열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대략 20만 건의 신장이식수술이 행해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평생동안 혈액 투석(透析)을 받아야 할 수많은 만성 신장 질환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이식수술의 성패는 얼마나 적합한 장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형제와 부모자식 사이의 신장이식의 성공률은 대략 90%에 이르고 있다. 그러한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의 85%는 10년이 넘게 살 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회적 활동까지 무리없이 수행할 정도다.
생명존엄 논란 몰고온 심장이식
사람에서 간 이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외과의사는 1963년 미국 덴버의 토머스 스타즐이다. 그가 1981년에 당시까지의 성공사례들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간암이나 만성 간염을 앓고 있는 어른 환자와 선천성 담관협착증이나 대사이상 어린이 환자에서 권장할만한 치료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4천명 가량의 환자가 간이식수술을 받았으며 요즈음에는 연간 6백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효과적인 면역억제제가 개발된 덕택으로 1년 이상 생존하는 간 이식 환자의 비율은 70~80% 정도로 신장돼 있다.
당뇨병은 주로 췌장의 랑겔한스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특히 심한 신장 손상을 가져 오는 연소성(年少性)당뇨병을 가진 젊은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치료법의 한 가지로 췌장 이식수술이 쓰이고 있는데 신장 이식이 함께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췌장 이식수술은 1966년 리처드 릴레이가 처음으로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1천5백 사례 정도가 보고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60%정도 환자는 이식을 받은 뒤 1년이 넘도록 인슐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유산된 태아의 랑겔한스섬 세포를 배양하여 환자의 간이나 비장에 이식시키는 것이 있다. 이식된 곳에서 이들 세포가 인슐린 분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데 이제 겨우 동물실험 단계에 와있는 실정이다.
1905년 카철과 구드리는 처음으로 심장이식수술을 시도했다. 그들은 개의 심장을 다른 개에 이식하여 심장 내에서 응고 현상이 일어날 때까지 2시간 동안 제법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1933년 만 등은 마찬가지로 개의 심장을 다른 개에 이식하여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그들의 개는 8일 동안 생존했으며, 또한 그들은 동종이식의 경우 거부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는 개가를 거뒀다.
임상적으로 인간에게 처음으로 심장 이식을 행한 것은 1964년 1월의 일로 미시시피의 심장외과의사 제임스 하디가 집도했다. 당시 적절한 사람 심장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침팬지 심장이 68세 된 환자에게 이식됐다. 침팬지의 작은 심장으로는 정맥을 통해 되돌아오는 이 환자의 혈류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노인은 1시간만에 사망했다. 바로 그 해 탁월한 연구자들인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리처드 로워와 노먼 섬웨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가 신화 속의 괴물(키메라)이 부활한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심장외과의사들은 멈추어 서야만 할 것이다."
그 뒤 1967년 12월 3일 남아프리카의 심장외과의사 크리스티안 버나드는 54세난 환자에게 사상 최초로 뇌사(腦死)한 젊은 사람의 심장을 이식했다. 이 환자는 수술 뒤 18일 동안 생존하다가 그람음성균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당시 버나드의 심장이식은 수술 자체와 뇌사에 관련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한달 뒤에 섬웨이가, 그리고 1968년 5월에는 휴스턴의 덴튼 쿨리가 또한 사람의 심장 이식수술에 개가를 울렸다. 철저한 조직적합성 검사와 강력한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의 사용으로 초기의 1년 생존율 20%에서 최근에는 10년 생존율 70%라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심장 이식수술은 심부전 등 심장병 환자의 일상적인 치료법으로 부각되었으며 폐 이식과 함께 시행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심장 이식수술은 1977년의 연간 1천례에서 1987년의 7천례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만도 1백개 가량의 병원에서 매년 2천명 이상의 심장병 환자가 이식수술을 받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환자가 건강한 심장을 이식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심장 이식수술로 생명을 건지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상당수의 환자가 실제로 그러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제공될 심장의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능이 뛰어난 인공심장 개발에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난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심장 기능 전체를 대신할 인공심장 개발보다는, 이식심장이 구해질 때까지 임시적으로 좌심실의 기능을 보완할 점프를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특히 어린이에서 골수 이식수술이 행해지고 있다. 종양세포에 대한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을 사용한 뒤에 건강한 골수조직을 환자의 혈중으로 주입한다. 골수는 환자 자신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환자에서 뽑아낸 골수를 얼린 다음 단클론항체로 종양세포를 제거하여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는 일종의 자가이식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로 환자 형제의 골수조직을 이식하는데 최근에는 1년 생존율이 70%를 넘는 등 성과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
나머지 다른 장기의 이식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는 실정이다. 소장의 경우 1950년대 후반부터 동물실험이 시도되었지만 아직도 거부반응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하고 있다. 뇌 이식의 경우는 많은 연구자들이 유산된 태아의 뇌세포를 배양하여 뇌질환을 일으키는 특정 물질의 결핍 증상을 치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파킨슨 병 또는 알츠하이머 병과 관계되는 뇌세포들을 배양하여 이식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뇌는 인간의 자기정체성과 깊이 관계되므로 이 분야는 윤리적인 문제를 특히 많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