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수를 늘여가면 미디로 합주할 수 있는 악기수는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다.
요즘 들어 컴퓨터음악이란 말이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컴퓨터'라는 낱말이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컴퓨터가 인간 본 연의 창작활동마저 빼앗기나 하는 것처럼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젠 자연스럽게 컴퓨터음악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음악인은 물론 음악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컴퓨터음악의 효용과 무한한 가능성은 가슴저미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음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칫 잘못 생각하면 컴퓨터가 음악을 창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고 컴퓨터음악이란 말자체가 잘못 생성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음악창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의 탄생과 발전 자체가 인간에게 편리함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음악에서 컴퓨터가 맡는 역할도 단지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편리한 이용도구일 뿐이다.
넓은 의미에서 컴퓨터음악이라면, 음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작곡 편곡 연주 녹음)에서 어느 한부분이라도 컴퓨터가 지대한 역할을 했을때 이를 컴퓨터음악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의 컴퓨터음악이라면 1983년에 제정된 미디(MIDI,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라는 신호체계를 컴퓨터가 제어하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한 연주자는 한 악기만을 연주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뛰어넘어 한 연주자가 필요한 모든 악기의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차원의 음악세계를 말한다.
즉 컴퓨터음악이라면 우리가 소리로 듣게 될 연주부분의 작업에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것으로 압축해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악기들간 디지털 중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미디라는 말을 직역하면 '악기들간의 디지털 중계체제'정도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디지털의 시대'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의 모든 기기들이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더 많은 장점과 편리함 때문에 디지털화 되어가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
이 디지털기기의 최고봉이라면 역시 컴퓨터가 될 것이고, 컴퓨터의 능력을 감안할 때 컴퓨터로 하여금 MIDI신호를 제어하게 함은 가장 최상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미디라는 신호체계를 약속할 때 컴퓨터의 이용여부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인데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에 이야기한 '컴퓨터음악'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은 개념인지도 모른다. 만일 요즘 어린 학생들이 취미 오락용으로 즐기는 애드립카드같은 것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따라서 현재의 컴퓨터음악으로 불리는 것은 어찌 보면 '미디음악' 혹은 '미디를 이용한 컴퓨터 음악'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컴퓨터가 이러한 미디악기들에 이용된 것은, 그후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여타의 응용프로그램들처럼 미디신호를 제어하는 미디프로그램을 개발해내었기 때문이다.
실지로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기 힘든 많은 미디기기들이 있는 데, 컴퓨터음악이라고 한다면 이들을 제외시키는 부당함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컴퓨터음악은 이 모든 미디기기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그럼 실제로 미디신호를 이용한 컴퓨터음악이 어떻게 연주에 이용 되며, 현재 어떤 부분에서 응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여러 악기를 한꺼번에 다뤄
앞에서 컴퓨터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가치를 한 연주자가 여러가지의 악기를 다루게 된 점에 두었다.
미디신호의 약속은 세계의 모든 미디악기가 공통적인 신호체계 즉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내게 한다는 약속이다. 이는 우리가 여지껏 알고 있는 개념대로 모든 악기들이 꼭 그 악기에 붙어있는 연주방법(건반을 두드리거나 불거나 현을 퉁기거나)이 아닌, 미디악기라면 모두 장착하고 있는 미디단자를 통해 들어오는 미디신호로, 즉 외부의 미디기기를 사용해서도 소리를 낼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두대의 신서사이저가 미디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을 경우 한대의 신서사이저를 피아노 음색으로 조절하고 또 하나의 신서사이저를 트럼펫으로 맞추어 두었을 때 한대의 연주로 피아노와 트럼펫이 동시에 연주된다. 물론 3대 4대가 연결되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연주정보가 사람이 실시간(real time)에 연주한 건반연주거나 다른 형태(관악기 기타 드럼 등)의 악기를 이용한 연주라도 그것이 미디악기라면 모두 똑같은 결과가 된다. 다시 말하면 미디악기가 연주될 때 지금 연주된 연주정보(음정 길이 강약 등)는 미디신호로 바뀌어 그 악기의 미디아웃(MIDI out)단자에 연결된 미디케이블을 통해 나오게 되고, 이는 다시 다른 미디악기의 미디인(MIDI in)단자로 들어가서 새로운 악기를 똑같이 연주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컴퓨터와 음악의 만남을 예고할 수 있다. 즉 처음 연주하는 방법이 사람의 실시간 연주이든 그 연주를 미리 데이터로 기록해 놓은 것이든 미디신호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똑같다. 후자의 데이터 기록이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말하면 연주자가 테이프녹음기에 녹음을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아날로그 방식의 테이프녹음과 지금 말하고 있는 미디신호의 녹음은 그 편리함과 기능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이 연주데이터의 기록에 착안하여 컴퓨터로 하여금 미디신호를 받아들이고 기록, 편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컴퓨터음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디가 제정되자 각 악기 회사들은 잇따라 이러한 미디음악전용 컴퓨터, 일명 시퀀서(sequence)를 개발해 냈다. 그후 개인용 컴퓨터의 대량보급과 저가격화, 더욱 결정적인 요인으로 다양하고 훌륭한 미디프로그램들의 개발 등으로 인해 시퀀스는 컴퓨터에 밀리게 된다. 큰 화면과 처리속도 편리함 대용량이라는 장점으로 컴퓨터음악이라는 말이 등장하자 컴퓨터는 시퀀스와 자리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시퀸서가 단지 공연장이나 녹음실로의 이동 등 기동성문제를 해결해 주는 플레이전용(마치 턴테이블이나 CD플레이어처럼)기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랩톱컴퓨터와 같은 컴퓨터의 소형화에 비추어 볼 때, 단지 소형화 경량화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미디의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 악기의 연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한가지의 악기를 연주해 똑같은 연주를 다른 악기의 음색으로 동시에 나오게 하는 것이 미디의 전부라면 컴퓨터음악이라는 말이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편집이 자유로워
미디라는 신호체계의 가장 중요 하고도 감히 새로운 차원의 음악 세계를 마련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는 점은 바로 미디채널(MIDI channel)에 악기마다 고유의 채널번호가 있고 수신측인 시청자입장에서도 그 고유의 채널을 맞추지 않으면 그 방송국의 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디에서는 기본적으로 16개의 채널을 제정하였다. 곧 하나의 미디케이블을 통해서 미디신호는 흐르지만 그 신호자체가 채널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므로 마치 16가닥의 다른 통로를 사용하는 것과 같아진다. 그래서 모든 미디악기들이 이리한 송수신채널을 지정할 수 있는 조작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송신측의 연주가 채널 1로 보내진다면 수신측의 미디악기도 오직 채널 1로 할당된 음색이 똑같이 연주되는 것이다.
한명의 연주자가 단지 채널만 바꿔가면서 다른 악기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 또한 한가지 악기만 연주한다는 점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응용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채널로 어떤 악기의 연주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해 놓고 컴퓨터로 그 연주를 다시 플레이시킨다면, 다른 채널로 아까의 연주자가 다른 악기로 다른 연주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합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에 기본적인 16채널로 그 수만큼의 다른 악기연주를 기록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 16채널의 한계도 이미 포트(port)라는 수단으로 1포트=16채널로 포트수를 늘여감으로써 쓸 수 있는 악기의 수에는 제한이 없어졌다.
미디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처럼 모든 음악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다중녹음기(multi track recorder)의 역할이고,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과 능력을 가진 녹음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악기 소리를 내주는 신서사이저나 음원모듈들은 갈수록 고품위의 음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이러한 미디시스템 사용으로 연주자의 섭외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있는 연주자나 작곡자, 혹은 편곡자 한명이 혼자서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막힌 일이 가능해 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작업을 거친 수많은 음악을 무수히 듣고 있다. 요즘의 인기있는 대중가수들의 음악이 그렇고, 심지어 전적으로 이러한 작업으로 반주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한 후,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가수들도 많다. 특히나 시간을 생명으로 하는 광고음악이나 시그널음악엔 정확한 시간이나 빠르기 등 각종 편집이 자유로운 컴퓨터음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미디프로그램들이 영상기기를 지원하고 있으므로 화면의 진행에 정확히 맞추어 음악을 만들어 가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아직은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을 그자리에서 컴퓨터에 연결된 컴팩트디스크(CD) 제작기기로 CD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현실임을 보면, 이젠 그야말로 음반이나 CD 등이 가수나 특정음악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어쿠스틱악기와 조화 돼야
결국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컴퓨터음악이란 이름을 가졌거나, 다른 이름을 가졌거나 다를 바 없다. 곧 목표를 향한 하나의 수단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컴퓨터음악이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서도 일반 어쿠스틱 악기들과 이러한 컴퓨터음악의 조합이 기장 바람직하고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즉 부족한 사운드나 효과 등에 필요한 만큼 적절히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해 모든 악기들로 미리 연주를 해봄으로써 작품해석이나 녹음전의 모니터용으로 쓴다고 해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컴퓨터음악은 분명히 더욱 발전해 나가겠지만 아무리 발전한다해도 이를 연주해야 하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그 연주할 내용 또한 사람이 창작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언제나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편리한 도구요 동반자로서 보조를 맞출 것임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