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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거짓말 할 수 있다

「국과수 사건」으로 '과학'의미 되새겨

인류를 중세의 어둠에서 깨운 계몽주의는 과학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그 기반으로 했다. 영국의 계몽사상가 F.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라는 고전적인 금언은 인간이 이성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객관적인 진실을 깨달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강렬한 믿음을 힘있게 주장한 바에 다름 아니다. 이후 인간의 합리적 이성은 자연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달을 낳아 광신적인 맹목과 편견 무지를 대체한 자리에 '과학'이 참과 거짓을 가리는 새 권위로 우뚝서게 됐다.

그러나 과학은 무오류인가? 과학사의 전개과정은 오히려 인류를 전진하게 한 과학적 진실은 대개 앞선 사람들의 오류나 허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잡는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의 가장 큰 가능성은 바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전국민적인 의혹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허위감정 의혹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한계가 무엇이며 과학이 맹신이 될 때 어떤 파국이 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예라 할 수 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바로는 문제가 된 국과수 문서감정실의 경우 요원 4명이 작년 한해 4천여건의 문서를 감정했다고 한다. 한사람이 하루평균 감정대상물 3건의 진위를 가려내야 했다는 얘기다.

문서감정의 경우 최신과학기법의 도입이 어려운 특성이 있어 아직도 1차적으로는 전문가인 감정인들의 육안관찰에 의존하며 이것으로 판정이 나지 않을 때 고정밀비교확대투영기나 적외선현미경 등을 이용하게 된다. 또 한 사람에 의한 오판을 막기위해 전원 공동심의와 만장일치판정으로 감정결과를 확정한다.

그렇다해도 1백% 신뢰도를 보장할 수는 없다. 이번에 수뢰혐의로 구속된 김형영실장만 해도 작년 10월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의 1심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필적감정의 경우 감정목적물과 대조자료간의 유사비율이 70% 이상이면 동일필적으로 판정하고 45%이면 상이필적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이러한 난점 때문에 재판부는 감정자료가 유일한 증거가 아닐 경우 여타의 증거와 정황을 종합해 범의(犯意)를 밝혀내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감정자료가 유일한 증거일 경우, 자유심증(自由心證)주의, 즉 재판관의 심증에 따라 증거의 가치가 판단되는 원칙이 있음에도 우리 재판부는 국가감정기관의 과학적 권위에 기대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수사의 첨병인 국과수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100%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과 '다른 증거가 없으면 국과수의 과학적인 능력을 믿는다'는 현실판단 사이에서 간과되고 있었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증거들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이라 불리는 김기설씨 유서대필 공방의 경우 재판부는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근거로 피고인 강기훈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유서 이외의 뚜렷한 물적 증거를 갖지 못했던 검찰은 범행일시와 장소도 채워넣지 못한 심증(心證)공소장을 내면서 오로지 국과수의 감정결과만으로 강씨의 유죄를 구형했고, 재판부 역시 고민끝에 국과수의 과학성에 판단의 책임을 미뤘다.

그러나 알려진 바와같이 감정의 과학성이 100% 무오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면 1심 선고공판 당시 세간에 논란이 일었던 대로 '과학적이지도 않은 과학적 증거를 빙자해 여론재판을 이끌었다'는 비난이 결코 한쪽입장의 억지가 아님을 수긍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경우 '과학'이란 말이 편파(偏頗)를 비호하는 연막 구실을 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감정과정의 비과학성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불충분하더라도 그 과학성을 맹목적으로 믿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 되묻게 된다. 기실 '사람은 못 믿어도 기계는 믿는다'는 일상의 맹목성에서부터 자신의 혹은 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불충분한 진실이 과학으로 포장되고 있는가.

국과수에 과학적 공신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기 보다는 복수감정체계를 만들거나 전문요원을 양성하고 기관의 자율성을 제고시키는 일일 것이다. 과학을 과학일 수 있게 하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국과수 사건은 과학에의 첫걸음은 맹목적 신뢰가 아닌 의심과 개선의 노력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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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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