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의 86억은 거품일까](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1104653749550b735d433cd.jpg)
지난해 11월, 국내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FA) 선수의 몸값이 폭등했다. ‘기록적인’, ‘사상최고’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4년 동안 80억 원이 넘는 계약을 맺은 최정(SK), 윤성환(삼성), 장원준(두산)이 큰 주목을 받았다.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거품 계약이 아니냐’라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가만히 앉아서 하루를 보내도 500만 원을 번다는 세 사람, 정말 거품일까?
프로구단이 돈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는 승리다. 그래서 FA 3인방의 적정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각각이 ‘얼마나 승리에 도움이 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여기에 딱 맞는 통계가 있다. 바로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Win Above Replacement. WAR)’다.
1승에 지불하는 비용은 1억9000만 원
WAR은 타자와 투수를 따로 구한다. 타자의 WAR은 타격, 수비, 주루에 대한 통계 지표를 포지션에 따라 보정을 해서 구한다. 투수의 경우 수비와 무관한 평균 자책점을 사용해 구한다. 대체 선수란 리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 포지션별 평균적인 선수를 뜻한다.
예를 들어 WAR 값이 3.5인 3루수가 있다면, 이 선수는 비주전 3루수에 비해서 팀에 3.5승을 챙겨주는 것이다. WAR의 가장 큰 장점은 투수와 타자 구분없이 ‘승리’로 선수의 가치를 환산하기 때문에 둘을 직접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써는 투수와 타자의 가치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지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WAR에 따라 FA 선수의 적당한 값을 매긴다. 현재는 1승 당(WAR 값으로는 1) 약 500만 달러(6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내 프로야구의 1승 비용도 계산해 볼 수 있다. 먼저 2014년 선수들의 연봉 순위와 WAR 순위를 내림차순으로 정렬한다. 그 뒤 두 값을 일대일로 짝지으면 WAR 값 1에 해당되는 연봉 값이 약 1억9000만 원이 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1승을 하기 위해서는 1억9000만 원을 투자해야 한다.
FA 적정가 = 과거 활약 보상 + 미래 기대치
메이저리그는 이 방식으로 FA 선수의 적정가를 유추한다. 추신수 선수를 보자. 추신수는 지난 2013년 연간 1850만 달러에 6년 계약을 했다. 추신수의 FA계약 직전 두 시즌의 WAR 평균값은 3.8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승에 지불하는 비용(500만 달러)과 3.8을 곱하면 1900만 달러다. 추신수의 계약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한국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한국 FA는 과거 활약에 대한 보상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국내는 FA자격을 얻기 전까지 처음 계약한 팀에서 9년을 뛰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은 자신의 실력에 비해 낮은 (실제 WAR 수치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6년이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연봉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를 위해 연봉조정제도까지 있다. 이런 제도가 부족한 한국 선수들은 FA 때 기존의 활약을 보상받는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이 선수가 계약 기간 동안 얼마나 높은 WAR을 기록할 수 있는가를 예측하는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나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라도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노화 곡선’을 활용한다.
노화 곡선이란 나이에 따른 상위권 선수들의 WAR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의 29세 타자 평균 WAR은 3.93이고, 30세는 3.8이다. 1년 사이에 기량이 4% 정도 떨어진 것이다. 이 자료를 이용해 FA 3인방의 향후 WAR을 계산할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최정은 28세, 장원준은 30세, 윤성환은 34세이다.
![최정이 거품?](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1/155019384454c87743e2ba6.jpg)
윤성환과 장원준은 거품이다?
적정가를 찾기 위한 멀고 먼 여정이 이제 거의 끝에 다다랐다. 가장 비싼 계약을 맺은 최정부터 살펴보자. 최정은 SK와 4년간 총액 86억에 계약했다. 최정의 과거 보상가치는 55억7000만 원이다. 향후 4년간 최정의 기대 WAR은 16.46으로 31억2800만 원의 활약이 기대된다. 따라서 최정의 적정 계약금액은 87억 원으로 실제 계약금과 비슷하다. 문제는 나머지 두 명의 투수다. 4년간 총액 80억 원에 삼성과 계약한 윤성환의 FA 적정가는 53억7700만 원이다. 또 4년 85억 원에 롯데에서 두산으로 둥지를 옮긴 장원준의 FA 적정가는 54억 400만 원이다. 두 선수 모두 적정가보다 30억 원 가량 비싼 계약을 맺었다.
그렇다고 윤성환과 장원준을 거품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투수의 WAR이 일반적으로 타자보다 낮기 때문에 WAR로만 투수와 타자의 가치를 무턱대고 비교하긴 어렵다. 1승에 필요한 비용인 1억9000만 원은 올해 FA 시장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다. 사상 초유의 계약이 쏟아진 올해 FA 시장에서는 1승 비용이 훨씬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 윤성환 선수나 장원준 선수가 이 기사를 보고 있다면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호사가들의 이런 입담 또한 야구를 보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세 선수가 올 해 거품이란 말이 싹가시게 멋진 활약을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