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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비는 호수나 강을 산성으로 만들고 경작지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금속이나 돌을 부식시켜 문화재를 파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집트 나일강변에 3천5백년동안이나 서 있었던 비석 한 개가 뉴욕으로 옮겨진 것은 1860년 경이었다. 이 비석은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별명이 붙은 커다란 오벨리스크석이었는데, 기원전 1500년경 카이로 건너편 나일강변에 세워졌던 것이다. 이 비석이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옮겨질 때만 해도 비문은 아주 양호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날 비석 동쪽면의 상형문자는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바람을 맞는 서쪽 부분의 글자는 완전히 없어지고 평평한 면이 되어 버렸다. 뉴욕의 대기오염은 겨우 1백30년 동안에 나일강변에서의 3천5백년 동안보다 훨씬 더 많이 이 비석을 풍화시켜 버린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을 망가뜨린 주범은 바로 뉴욕의 산성강우와 산성의 건조 침강물들이었다. 우리는 흔히 산성비를 산성을 띤 빗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넓은 의미에서는 눈과 빗물 뿐만 아니라, 산성 산화물과 산성 가스, 산성을 띤 입자와 같은 건조한 상태의 침강물까지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산성비는 호수나 강을 산성으로 만들고 산림과 경작지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금속이나 돌을 부식시켜 건축물이나 문화재를 파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산성비에 가장 취약한 석질은 대리석이나 돌로마이트인데, 석회석 함량이 많은 시멘트도 산성비로 상당히 약해질 수 있다.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이나 조각품들은 산성비에 의한 피해가 가장 크다. 건조한 상태로 침강된 황은 습기가 존재하면 탄산칼슘(대리석)과 반응하여 황산칼슘이 되는데, 황산칼슘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씻겨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대리석의 풍화는 화학적 부식작용과 함께 여러가지 물리적인 풍화작용이 가세하여 크게 가속화된다. 산성비는 석재외에도 여러가지 금속들을 부식시킬 뿐만 아니라 페인트를 퇴색시키거나 건물들을 시커먼 색깔로 만들어 버린다.

산성비에 의한 문화재 피해는 전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유럽의 경우 그 피해는 아주 심각하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다가 18세기 말에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진 대리석 조각품들은 고스란히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데 반해, 로마에 남아 있는 같은 시기의 야외 조각품들은 심하게 부식되어 버렸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로마의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상은 금속이 부식되어 크게 망가져 버렸고, 베니스의 아름다운 왕궁과 기념비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에는 석고회로 색을 입힌 프레스코벽화가 많은데, 산성비를 맞아 석고회가 석고로 변하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부착성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도 대기오염의 영향으로 크게 파괴되어 조속히 보수를 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이 우려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5백년이나 된 성당의 조각들과 장식품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암스테르담의 왕궁들도 외벽이 '돌의 암'이라고 불리우는 시커먼 외피로 덮여 버렸다. 유럽의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유리도 부식되어 해마나 두께가 얇아지고 표면이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서 내려앉을 위험에 처해 있다. 웅장한 건축물로 유명한 인도의 타지마할은 인근에 있는 발전소와 정유공장에서 내뿜는 아황산가스 때문에 건축물의 색이 변하고 대리석이 파괴되었다. 1876년 7월 미국의 독립 1백주년 기념으로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뉴욕의 명물 '자유의 여신상'도 4천만달러(한화 약 3백억원)나 들여서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펴야만 했다.

대기오염에 의한 문화재 손상은 비단 야외에 노출된 것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교회 등에 있는 실내 전시물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에어콘이나 환기장치를 통해 실내로 들어온 아황산가스의 건조입자가 그림이나 책 조각 고대 의상 등을 손상시키고 있는데, 특히 1750년 이후에 만들어진 종이는 화학공정을 통해 제조되었기 때문에 종이 속의 금속 불순물들과 아황산가스가 반응하여 부식의 피해가 더 크다.
중국에서는 산성비를 '공중귀(空中鬼)'라고 부른다는데, 굴뚝과 자동차에서 뿜어낸 오염물질들이 어느새 산성비로 변하여 도시의 곳곳을 파괴하고 실내에까지 숨어 들어와서 귀중한 물건들을 망가뜨린다니, 환경오염을 잘 모르는 순진한 옛날 귀신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혀를 내두르지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