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천문학자들은 모이면 한숨부터 쉰다. 천문학계의 유일한 연구기관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가 한국 표준연구소에 흡수통합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말 발표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능 재정립 및 운영효율화 방안'에 따르면 천문우주과학연구소는 적정규모(critical mass)미달로 평가돼 표준연구소로 흡수되도록 결정됐다.
연구기관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조직만 성격이 다른 연구소의 부 또는 실에 흡수된다는 것은 인사권이나 재정권을 전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몇년 후에 고사(枯死)의 운영을 맞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얘기다. 현재 천문우주과학연구소는 전자통신연구소의 부설연구소로 등록돼 있지만 실질적 운영을 거의 독자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번의 흡수통합은 천문학연구자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임에 분명하다.
"이번 흡수통합의 이유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우리 연구소가 효율성이 낮다는 것입니다. 즉 투자에 따른 결과물(out put)이 다른 연구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적정 규모 미달'을 이외에 다르게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로 천문학은 다른 연구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지요. 그렇다고 설립된지 겨우 5년밖에 안되는데 연구의 효율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그것도 가장 기초학문인 천문학에 말입니다." 태양물리연구실 박영득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번에 흡수통합되는 연구기관은 세개지만 두곳(과학기술정책연구소 기초과학지원센터)은 실질적인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를 평가하고 지원해주는 보조기관이므로 연구기관으로서 날벼락을 맞은 것은 천문분야 하나라는 것이다.
정부의 합동평가단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물론 전국의 천문 우주 관련학과 교수들은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흡수통합안을 철회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번 결정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천문학 연구의 싹을 짓밟는 행위다"고 밝히면서 "정부의 기초과학육성은 말 뿐임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흔히들 천문학을 '과학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근대과학의 출발점이 지구 태양의 역학관계를 올바로 설정한 지동설에서 출발했다는 좁은 의미도 있지만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나 우리은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이 천문학에 던져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지구밖 세계를 동경하면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와 이에대한 끝없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방한했을 때 부모 손을 잡고 강연을 듣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미래의 천문학자'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의 우주론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나라 천문학 역사는 일찍이 신라시대의 첨성대, 고려시대의 서운관, 조선시대의 관상감으로 이어지면서, 천체관측을 통해 책력을 편찬하고 하늘의 변화를 예측해 농경 항해 등 일상생활에 널리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맥은 일제시대때 중단됐다가 1974년 국립천문대가 설립되면서 복원됐다. 1986년에는 천문학연구의 활성화와 우수연구인력의 확보를 목적으로 국립천문대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로 확대 개편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천문우주과학연구소는 40여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대덕전파천문대의 14km전파망원경을 중심으로 각대학께서 하기 어려운 대형연구과제를 소화해내고 있다. 또한 현재 건설중인 1.8m 광학망원경이 건설되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됐던 국내 천문학연구가 상당수준 발전할 것이라고 관련자들은 예참하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 대학에서 천문학과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1958년 서울대에, 1968년 연세대에 천문기상학과가 설치됐으나 비인기 학과라는 라벨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고도 일할 곳이 없어 전공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직종을 택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일부 졸업생들은 천문학과를 '별볼일 없는 과'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들어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천문우주 연구가 과학계의 주춧돌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천문우주 관련학과는 점차 인기학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 최근 2, 3년 사이에 경희대 우주과학과,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충북대 천문우주과학과, 경북대 천문기상학과 등이 신설되면서 천문학연구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바로 정부의 흡수통합안이다. 물론 천문학이 다른 기초과학이나 첨단과학과는 달리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빠듯한 예산에 한가하게 별이나 관측하는 것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연구개발되고 응용되는 분야에 한푼이라도 더 보태야 하는 실정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천문학연구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던 정부가 5년만에 방향을 트는 일은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