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포식 피식관계였다가 구원(舊怨)을 청산하고 공생관계로 돌아선 생물들이 자연계에는 허다하다.
공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곧 개미와 진딧물의 관계를 연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진딧물은 열심히 수액(樹液)을 빨지만 거기서 얻은 당분은 진딧물에게 그리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당분은 농축된 후 항문을 통해 배출된다. 이것을 '감로'라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 그 맛이 달다. 또한 공기중으로 감로에 함유된 수분이 증발되면 당의 결정이 형성된다. 성서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만나'라는 식품도 감로가 건조된 것을 일컫는다. 모세가 인솔한 난민들이 만나 덕분에 기아를 면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개미는 진딧물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진딧물로부터 감로를 제공받는다. 진딧물은 매우 많은 천적을 갖고 있으나 개미와 같은 든든한 보호자를 옆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면 밤나무나 상수리나무 줄기에 몸길이 5㎜ 정도인 검은 진딧물이 모여든다. 이 진딧물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무리마다 몇마리의 큰 개미를 끼고 있는데 이들은 줄곧 진딧물을 보호하고 있다. 가늘고 작은 나뭇가지로 진딧물 한마리를 건드려 보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다. 진딧물군(群) 전체가 일제히 뒷발을 들어 나뭇가지를 차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도 작은 천적이라면 진딧물무리의 흥분한 행동에 압도돼 공격을 단념하고 말 것이다. 공격받은 진딧물이 경보페로몬을 분비하기 때문에 무리 전체가 이러한 통일된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행동은 동시에 진딧물의 보호자인 개미에게 위기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SOS를 감지한 큰 개미는 황급히 달려가 진딧물을 건드린 작은 가지에 사납게 공격을 가한다. 이 단계까지는 진딧물 무리를 동요시키지 않는다. 즉 진딧물 무리는 별다른 혼란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보호자인 개미도 격퇴할 수 없다고 느끼면 진딧물 집단은 급속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가지 끝으로 분산되는데 이 분산속도는 이때까지의 행동으로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신속하다.
기생봉의 묘기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격으로 이러한 방어망을 교묘히 이용하는 진딧물의 천적도 있다. 기생봉이 그 좋은 예다. 기생봉은 진딧물의 몸에 알을 산란하는데 그 유충은 진딧물 체내조직의 영양분을 활용해 성장한다. 그후 진딧물이 거의 죽을 무렵에 그 체벽을 물어뜯고 우화(羽化)해 나온다.
이때 생긴 진딧물의 사해(死骸)를 '미이라'라고 부르는데 몇년간 그 형태로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기생봉은 진딧물의 등에 앉아서 산란한다. 이때 진딧물은 뒷다리로 등을 쓸어내려고 한다. 진딧물도 크지 않지만 기생봉은 진딧물에 비하면 먼지처럼 작다. 따라서 정면으로 후려치면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기생봉은 뒷다리가 도달하지 않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진딧물의 뒷발질은 결국 허사다. 그들은 진딧물의 등에 재빨리 산란해 버린다. 개미가 낌새를 알아채리고 구원병으로 달려왔을 때는 기생봉이 이미 날아가 버린 후다. 이처럼 개미의 구원이 늦어진 까닭은 포식자인 무당벌레의 습격을 받았을 때와는 달리 진딧물 무리의 각 개체 들이 별로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기생봉의 알이 산란돼도 즉시 진딧물이 죽는 법은 없고, 진딧물 무리가 전멸할만한 피해를 받지도 않는다.
넓게 보아 공생이란 다른 종에 속하는 두 종 이상의 생물이 개체나 종의 존속과 관련, 서로 관계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관계는 개미와 진딧물처럼 쌍방이득을 얻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매우 귀찮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있다. 오히려 자연계에는 서로 귀찮아하는 공생관계가 더 많은 편이다.
기생과 공생의 차이
이해득실은 다양하지만 자연계의 생물들은 진딧물의 예에서처럼 다른 생물과 종을 뛰어 넘어,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온갖 형태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을 공생(symbiosis)이라 하는데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식물병리학자인 안톤 토 베이리였다(1879). 토 베이리는 보리 부패병균이나 지의류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데 그 연구를 하면서 공생현상에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가 내린 공생에 관한 정의가 가장 광범위하다. 그는 다른 생물과 함께 생활하는 현상 전부를 공생이라 불렀다. 물론 기생도 모두 여기에 포함됐고 겨우살이나 기생목이 보여주는 착생현상이나 충매화와 곤충의 관계 등도 공생의 예로 간주됐다.
공생을 좀더 좁게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이 협의의 정의에 따르면 공생(symbiosis)을 상리공생(相利, mutualism) 편리공생(片利, commensalism) 기생(parasite)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영어의 symbiosis는 상리공생과 같은 뜻이 된다.
우리 말로는 개미와 진딧물의 관계처럼 서로 이익을 확실히 볼 수 있는 상리공생만을 공생이라 부른다. 그러나 최근 '서로 다른 생물이 함께 생활하는' 현상의 본질이 명확해짐에 따라 토 베이리의 정의를 넘어서 포식(捕食) 피식(被食)의 관계까지도그 연장선에서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상리공생 편리공생 기생을 구별짓기 힘든 경우가 자연계에 허다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관계의 변화다. 비록 현재는 편리공생으로 보이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생관계 심지어는 포식 피식의 관계에 있었던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물이 우연히 함께 편성됐을 때 처음에는 대립관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에는 공리적으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가 되고 결국에는 상호의존의 관계에 이른다고 한다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연계다. 공생이라는 현상을 추구해 가면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이 낙관론이 자연계의 진리인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물은 고독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생물과 관계를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러한 관계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동종(同種)의 다른 개체와의 관계다. 부부 가족 사회 등의 그 예에 해당한다. 이들의 관계에 의해 생식이 이뤄지고 자손을 보호하고 양육하게 된다. 그리고 음식을 얻기가 보다 쉬워지기도 한다. 주로 이러한 동종 생물간의 결부요인과 그 부수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는 학문이 행동학과 사회생물학이다. 동물에 비하면 식물은 고독을 잘 감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식물도 동종의 개체가 곁에 있는 편이 살아가기에 유리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풍나무의 어떤 종은 해충으로부터 피해를 받으면 휘발성 화학물질을 공기중에 발산한다. 그러면 그것을 경보로 받아들인 주위의 단풍나무들이 곤충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물질을 합성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휘발성 물질은 앞의 진딧물의 예에서 설명한 경보페로몬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동종 생물간의 관계를 주시해 보면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을 갖도록 그 관계가 프로그램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상호관계에 의해 각 파트너가 어느 정도의 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사실은 동종간의 관계는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상리적 색채를 점차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전 구성원이 이익을 받는 관계를 형성해야 마땅하나 오히려 해를 입거나 희생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각종 사회문제는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두번째 유형은 이종(異種)간의 관계다. 넓게 보면 이것을 전부 공생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즉 생물은 제1유형의 관계와 제2유형의 관계 다시 말해 공생을 통해서 서로 관련돼 있는 것이다.
동종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생에는 다양한 편성(偏性)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인연의 강약과 결부형태도 편차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세포가 이종(異種)의 세포속에 들어가 마치 그 일부가 된 것처럼 보이는 공생으로부터 곤충과 충매화의 관계처럼 문자 그대로 꽤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공생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손자병법을 익힌 오도케우오
공생관계를 나타내는 두 짝은 원래 우연히 맺어진 사이다. 자연계를 들여다 보면 서로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고 작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무엇인가를 계기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악착스럽게 따라다니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윽고 그 상대쪽도 응전하는 수단을 진화시키면서 상호의존의 관계가 성립된다. 이것이 공존관계 형성의 대체적인 시나리오다.
사회적 공생의 대표적인 예로 꼽고 있는 말미잘과 오도케우오의 관계를 살펴보자. 남태평양의 산호초 군락에는 거대한 말미잘이 살고 있는데 이것과 공생하고 있는 것이 오도케우오다. 이 말미잘은 촉수에 있는 자포로 고기를 찔러 먹이로 삼는데 오도케우오만은 자포에 찔리지 않는다. 그 덕택에 오도케우오는 숲속의 나무처럼 쭉 늘어선 말미잘의 촉수 사이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포식자에게 공격당할 것 같으면 오도케우오는 재빨리 말미잘의 촉수숲 속으로 도망쳐 안전을 도모한다. 또 먹이를 나눠 먹기도 한다.
그 대신 오도케우오는 말미잘의 먹이가 되는 고기를 유인해 준다. 멋진 색채와 모양으로 치장한 오도케우오는 일부러 포식자의 눈에 잘 띄도록 행동한다. 포식자를 말미잘의 촉수가 닿는 곳까지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 유인하는 방법은 아슬아슬하기조차 하다. 거의 상대에게 잡힐 정도로 거리를 좁힌 후 촉수의 숲사이로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다. 포식자인 물고기도 말미잘의 독가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오도케우오의 유인작전에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포식자의 머리에 '이젠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와 버린 후다.
이런 포식자의 심리를 간파하고 있는 오도케우오의 연기는 확실히 한수 위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손자병법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한 항상 위험과 직면하게 된다. 때로는 잽싸게 도망치지 못해 포식자에게 먹혀버리기도 하므로 오도케우오가 공생에 거는 비용(cost)은 매우 큰 셈이다.
오도케우오의 예는 공생의 진화를 추측하는 의미에서도 대단히 흥미롭다. 공생의 초기에는 오도케우오가 굳이 위험에 몸을 내던질 정도로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말미잘의 촉수의 숲속으로 도망쳐 몸을 지키고 기끔씩 말미잘의 먹이를 나눠 먹는 정도, 즉 편리공생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오도케우오도 좀 더 수수한 색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공생은 점차 긴밀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생에 거는 비용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진화의 표식으로 오도케우오는 점차 화려한 색채를 갖게 되었고 포식자로 하여금 도발을 유도하도록 체색을 변화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진화를 통해 오도케우오는 말미잘과의 유대를 강화하게 됐을 것이다. 또 먹이를 달라고 일방적으로 보채는 입장에서 동반자로 대접받는 수준으로 개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미잘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자포에 포함된 독성분을 강력하게 하는 쪽으로 진화가 진행됐을지 모른다. 오도케우오가 위기일발의 위험을 무롭 쓰고 고기를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그것과 비례해서 상대를 죽이는 독도 충분한 즉효성을 갖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또 말미잘의 식성이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오도케우오가 적극적으로 다른 고기를 유인하는 전력을 개발하기 전에는 지금과는 다른 것을 먹이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순화행동을 나타내기도
오도케우오 그 자체도 먼 옛날에는 말미잘의 일상먹이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만약 그렇다면 포식 피식관계도 공생관계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말미잘과 공생하고 있는 현재의 오도케우오도 태어나면서부터 말미잘의 독에 대한 면역을 가졌을 리 없다. 공생을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오도케우오도 말미잘에 접근하다가 촉수에 말려 잡혀 버렸을 것이다.
오도케우오는 동반자인 말미잘을 발견하면 신중하게 접근, 그 주위에서 순화행동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행동을 함으로써 면역을 획득한다. 처음에는 촉수와의 접촉을 피하면서 빈번히 촉수 주위를 헤엄치다가 꼬리와 지느러미로 촉수를 슬쩍 건드려 본다. 촉수에 휘말릴 것 같으면 황급히 도망쳐 나온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점차 몸전체로 시험해 본다. 이윽고 전신이 촉수의 숲속으로 들어가도 휘말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순화 행동은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행동을 통해 오도케우오는 특수한 피막으로 몸을 싸게 된다. 그러면 말미잘은 이것을 먹이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종래에는 이 피막을 구성하는 점액질은 오도케우오 자신이 분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것이 말미잘의 분비물이라는 증거가 포착됐다. 또한 이 분비물을 통해 이 공생의 상호의존도가 무척 강함을 엿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공생관계는 때때로 계약갱신을 해야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예컨대 오도케우오를 말미잘로부터 강제로 한시간 이상 격리시켜 놓은 경우에는 순화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면역성을 상실, 말미잘의 먹이가 되고 만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면역에는 개체식별의 메커니즘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말미잘에는 순화돼 있을지라도 그 면역성이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