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의 발견'은 현대 과학기술문명을 가능케한 역사적 계기가 됐다. 전기가 발견돼 산업으로 응용되기까지에는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들의 시행착오와 업적을 2회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전기가 일상 생활과 산업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전기에 관한 간단한 이론(전기공학)이나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기현상은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위험해 관심을 갖기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상 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을 실험하고 연구한 학자들이 많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전기의 역사는 크게 마찰전기의 시대(고대~18세기)와 전기자기의 시대(19세기)그리고 전자공학의 시대(20세기 이후)로 나눈다. 마찰전기의 시대에는 자석이 물체를 끄는 힘과 마찰전기가 가벼운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800년 이탈리아인 볼타(Volta, 1745~1867)가 전지를 발명한 이후부터 전기분해, 전류의 자기작용, 전기통신, 전기조명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발전기와 전동기도 발명됐다. 20세기를 전후해 전자가 발견되고 진공관이 발명돼 바야흐로 전자공학의 시대에 들어섰고 많은 산업에 컴퓨터가 응용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이해하고 다루는 일이 현대인의 교양으로 되어, 컴퓨터를 모르면 '컴퓨터문맹'이란 소리도 듣게 됐다. 이 글은 전자공학이 탄생하기 전까지 특히 전기자기의 시대에 있었던 몇가지 실험을 중심으로 전기에 대한 발견과 산업에의 응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전기를 맛본 줄처
볼타가 전지를 만들어 논문으로 발표한 1800년보다 50년 전인 1750년에, 독일의 수학교수였던 줄처(Sulzer, 1720~1779)는 납과 은을 접촉시켜 간단한 실험을 했다. 그는 두개의 금속조각 사이에 혀를 갖다대고 금속조각의 양끝을 접촉시켜 찌르르 하는 녹반(황산철)의 맛을 느꼈다. 그런데 이들 두 금속 각각을 혀에 대어도 이상한 맛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 줄처는 두개의 금속이 결합하면 하나 또는 양쪽 금속에서 분해된 미립자가 진동하면서 혀의 신경을 흥분시킨다고 생각했다. 그후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주석(또는 아연)으로 만든 컵을 은쟁반에 놓고 컵에 물을 채운 다음, 젖은 손으로 은쟁반을 잡고 혀끝을 물에 대자 짜릿한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다른 사람을 크게 주목시키지 못했다. 볼타가 다시 실험하기까지 50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개구리실험으로 확인된 갈바니전기
금속끼리의 접촉이 아니라 개구리 신경과 금속의 접촉으로 개구리 다리가 수축한다는 사실이 학계에 발표되자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놀랐다. 이탈리아의 해부학 교수였던 갈바니(Galvani, 1737~1798)는 우연한 기회에 개구리에 메스를 가하자 다리가 수축함을 발견했다.
그의 발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갈바니가 병약한 부인을 위해 은쟁반위에서 개구리 요리를 하다가 잠깐 방을 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기전기 옆에 있던 메스를 집어 끝을 개구리 다리의 노출된 신경에 대자마자 불꽃이 튀면서 다리가 강하게 경련을 일으켰다고 한다. 부인에게 이 얘기를 들은 갈바니는 그것을 실험으로 확인하여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 마리의 개구리를 해부하여 그것을 기전기가 놓여 있는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런데 내 조수가 외과용 칼 끝을 개구리 다리의 신경에 대는 순간, 관절의 모든 근육이 마치 강렬한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수축했다. 이것은 기전기의 극에서 불꽃이 튀고 있는 동안에 일어났다.'
기전기와 실험용 개구리 사이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경련이 일어난 사실에 놀란 갈바니는 공중전기(벼락)에 의해 경련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개구리의 척수에 놋쇠로 만든 코바늘을 꽂고 발코니의 난간에 매달아 보았다. 여기서 또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놋쇠의 코바늘을 난간에 눌러붙이면서 개구리 다리를 난간에 접촉시키자 경련이 또 일어났다. 갈바니는 실험을 계속하여 두 종류의 금속을 활처럼 만들어 개구리의 신경과 근육 사이에 접촉했을 때 개구리의 수족에 경련이 있었으며, 하나의 금속으로도 약하지만 경련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는 근육에 전기를 담아두었다가 방전하면서 근육이 수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갈바니는 신경에서 금속으로 특수한 유체(전기)가 옮겨가기 때문에 경련이 일어난다고 하여, 이 유체를 '동물전기'라고 불렀다. 이를 다른 과학자는 '갈바니전기 '라고 불렀다. 갈바니가 개구리 실험을 발표하자 당시의 물리학자 생리학자 의사들도 앞다투어 갈바니가 한 실험을 반복하여 확인했다.
갈바니가 근육에 동물전기가 모인다고 발표하기 전에, 볼타는 이미 전기를 연구할 때 꼭 필요한 검전기를 개량했으며 전기쟁반(콘덴서)도 발명했다. 갈바니가 1791년 개구리의 경련 실험을 보고하자, 볼타는 갈바니의 주장이 옳다고 믿고 그의 실험을 반복하였으나 점차 그의 견해를 따를 수 없게 되었다.
볼타, 최초의 전지 발명
볼타는 오히려 1751년에 발표된 줄처의 미각실험에 관심을 가졌다. 줄처의 실험을 반복한 볼타는, 금속은 경련을 일으키는 단순한 도체가 아니고 전기를 일으키는 근원임을 밝혔다. 그는 접촉하는 금속으로부터 전기작용이 일어남을 1792년에 발표했고, 1794년에는 갈바니의 동물전기설을 부정하고 금속전기설을 주장했다. 그는 두가지 금속의 단순한 접촉에 의하여 서로 반대의 전기가 발생함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금속판을 서로 접촉시키고 나서, 매우 민감한 검전기에 가까이 가져가면 금박 조각이 얼마간 열려서 약간의 전기가 있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아연판과 동판을 접촉하면, 앞의 것은 유리(+)전기, 뒤의 것은 수지(-)전기를 나타낸다."
볼타는 이러한 방법으로 아연-주석-납-철-백금-금-은-흑연-숯이라는 전기열(電氣列)을 만들었다. 전기열에서 앞의 것을 나중 것과 접촉하면 유리전기(+전기)로 대전하고, 나중 것은 항상 수지전기(-전기)로 대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전기열에서 멀리 떨어진 것끼리 접촉하면 보다 큰 전기가 발생함도 밝혔다.
접촉전기에 대한 그의 실험은 결국 전지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볼타는 전지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우선 직경 1인치 정도의 은과 아연을 같은 크기의 원반으로 몇 장 만든다. 이 두 종류의 원반을 겹친다. 이것을 파일(file, 堆)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에 소금물 또는 알칼리물로 적신 면을 끼운다. 이것을 30,40개 쓰러지지 않도록 쌓아 올려 둥근 기둥 모양으로 세운다. 이러한 파일을 볼타는 빌라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볼타가 발명한 전지다. 전기의 역사상 능동적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최초의 전원장치, 인공의 전기장치였다.
자신이 발명한 전지로 볼타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금속판의 직경을 크게 하면 할수록 감전(전기)의 세기가 증가함을 알았다. 금속판의 면적과 쌓은 빌라의 수, 결국 빌라가 직렬로 접속된 수와는 같은 결과를 가져옴을 알아냈다. 그때까지 실험에 이용된 전기는 모두 마찰전기 또는 정전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라이든병이나 전기쟁반에 모아서 한순간에 불꽃방전으로 실험해왔다. 그러나 볼타가 발명한 전지는 세기는 약하더라도 계속 불꽃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갈바니의 개구리 실험에 자극을 받았던 볼타는 줄처의 미각실험에서 힌트를 얻어 전지를 발명했으나, 금속의 접촉으로부터 계속 전기유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자침이 움직인다.
볼타가 전지를 발명한 이후 전기현상에 대한 연구는 주로 전기화학분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전류의 자기현상에 대한 우연한 발견으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덴마크의 물리학 교수였던 에르스테드(Oerstead, 1777~1851)는 1820년 학생들 앞에서 강의와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갈바니전기가 흐르는 도체와 직각방향으로 자침이 흔들림을 발견했다.
그는 갈바니전기가 흐르는 직선의 철사를 보통의 자침 위에 수평이 되도록 받치고, 철사가 자침에 평행되도록 했다. 그러자 자침이 움직였다. 즉 자침의 북극이 갈바니전기의 음극 쪽을 가리키고 있다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에르스테드는 갈바니전기가 자침에 대해 끄는 힘을 발휘하고 그것은 철사를 중심으로 하는 원형으로 된다고 추론했다. 그런데 자침을 흔들리게 하는 힘은 철선이거나 동선이거나 전선의 재질과는 관계가 없으며, 유리나 자기 등의 절연물 속에서도 자침에 작용하는 힘은 변하지 않았다.
문학과 자연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에르스테드는 자신이 발견한 실험결과에 대해 전기의 상극(相剋)이 에테르처럼 전선의 주위를 둘러싸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곳을 자기력이 전한다고 이해했다.
전기역학 확립한 앙페르
1820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된 에르스테드의 논문에 자극되어 과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전기의 성질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에르스테드의 연구는 특히 독일의 제벡이 이어받았다. 그는 1821년에 '갈바니전기의 자기에 대하여'란 논문에서 도선 주위에 나타나는 자기 작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실험으로 전류가 흐르고 있는 도체 주위에 철분이 규칙적으로 배열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철분이 동심원들을 이룬다는것, 이 동심원들이 전압(전류의 세기)이 강하면 강할수록 직경이 커짐을 발견했다. 그는 또한 한 도선의 자력선이 옆에 있는 다른 도선에 의해 영향을 받음도 증명했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앙페르(Ampére, 1775~1836)는 에르스테드의 발표가 있은 지 거의 1주일 만에 전기역학의 기초가 된 '헤엄치는 사람(泳者)의 법칙'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사람이 물속에서 전류의 방향과 자기 몸을 일치시켰을 때 전류가 발에서 머리쪽을 향해 흐르고, 또한 관찰자가 얼굴을 자침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류는 항상 북을 가리키는 자침의 극을 왼쪽으로 치우치게 한다'라고 썼다. 이 글에서 앙페르는 '전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했다. 이를 기려서 전류의 단위를 암페어(A)라 정했다. 앙페르는 이것을 잘 다듬어서 '오른나사의 법칙'으로 발전시켰다.
앙페르는 전류에 미치는 자석과 다른 전류의 영향을 증명하기 위해 도선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 다음과 같이 실험했다. 우선 그는 (그림)처럼, 동선을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BCDE)으로 하여, 그것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A와 F는 수은을 조금 넣은 작은 그릇 속에 담근다. 전기의 양극은 A의 그릇에, 음극은 F의 그릇에 접속했기 때문에 전류는 ABCDEF의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나서, 수직으로 벌린 GH에 전류가 G에서 H를 향하도록 흘렸다. 그렇게 하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정사각형의 벼 BC가 GH에 될 수 있는한 접근하는 곳까지 회전한다. 2개의 철사 사이에 끄는 힘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정사각형의 틀을 1백80도 회전시키면 DE가 GH와 마주 대하려는 반발이 생긴다. 이 실험을 통해 앙페르는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전류끼리의 사이에는 끄는 힘(引力)이 생기고,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전류끼리의 사이에는 반발하는 힘(斤力)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서 앙페르는 힘과 전류의 양적인 관계를 수식으로 나타내어, 전류가 흐르고 있는 전선 사이에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을 찾아냈다. 전기의 세계에서도 뉴턴 역학이 작용하고 있음을 증명해 전기역학을 확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