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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산업 내일 여는 젊은 프로그래머들

컴퓨터 대중화시대의 개막과 함께 '한국적 체취가 물씬 풍기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기치로 내걸고 나선 이들은 누구인가?

국산 소프트웨어 가운데 가장 인기있고 널리 쓰이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89년초 당시 서울대 컴퓨터연구회 회원이던 이찬진(24, 기계공학과 졸업) 김택진(23, 대학원 전자공학과) 김형집(22, 전자공학과 4년) 우원식(21, 제어계측공학과 3년) 등 네명의 대학생에 의해 개발됐다. "당시 많이 쓰이던 '보석글' 등 워드프로세서들이 매우 불편해 차라리 워드프로세서를 하나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88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작업에 들어갔다"고 이찬진씨는 개발동기를 설명한다.

전체 기획은 이찬진이 맡고 프로그램 작성은 네명이 나눠 맡았으며 1주일에 한번씩 만나 각기 작성한 프로그램을 합치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석달만에 완성된 한글은 시중에 나오자마자 대학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다. 다른 워드프로세서와는 달리 컴퓨터기종에 상관없이 돌아가는데다, 한글 한자 영어 일어 등 9개국어와 수학문자 고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모니터상에서 글자 및 도형의 확대 변형이 편리해 순식간에 국내 워드프로세서시장을 석권했다.

정식 판매는 1만카피 남짓

그렇지만 한글팀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올라앉은 것은 아니다. PC를 구입한 사람이면 한글을 한번 써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보급됐지만 정작 돈을 받고 판매 한 것은 1만카피 남짓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무단복제된 것이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한 사람보다 이 프로그램의 매뉴얼을 책으로 만든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만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후배들이 대학원 공부에 전념하는 동안 방위 복무를 마친 이찬진씨는 지난해 12월 자본금 5천만원을 모아 공병우 박사의 한글문화원 3층에 '한글과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는 한글팀의 김형집 우원식 외에 박흥호(29) 정래권(25) 두사람이 새로이 참여했다. '한글과 컴퓨터 '는 한글사용자에 대한 애프터서비스와 한글의 버전업,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발생하는 모든 한글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글은 그동안 다섯차례 업그레이드(upgrade)과정을 거쳐 지난 1월 '한글 1.5 버전'이 발표됐는데 현재 2.0버전을 준비중에 있다. 이 버전업 작업에는 두사람의 새얼굴이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박흥호씨는 부산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한때 교사로 근무했으나 공병우박사에 이끌려 한글문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래권씨는 광주에서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힌 특이한 인물인데 8비트 MSX기종에 깊은 조예가 있어 한동안 컴퓨터잡지에 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두사람은 케텔(KETEL)을 통해 대화를 나누다가 의기투합해 지난해 3월 정씨가 상경한 이후 박씨의 국어지식과 정씨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합쳐 한글철자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영문 워드프로세서에서 볼 수 있는 스펠링체크기능과 비슷한 성격인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한글날 불완전한 채로 일반에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현재 한글 2.0버전에 철자검색기능을 포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글팀의 일원이었던 김택진씨는 89년 8월 김성수 하한수 등과 함께 '한메소프트'란 회사를 설립, 한글팀에서 이탈했다. 한메소프트는 한글타자연습소프트웨어 ' 한메타자교사', 한글통신프로그램 '따르릉', 한글카드 '한메한글' 등 한글처리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잇따라 내놓아 주목을 끌고 있다.

캐나다에서 개발된「한글 2000」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개발자로는 '한글 2000'에 이어 '쪽박사' '사임당' 등 그래픽 기능이 뛰어난 패키지를 연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한컴퓨터연구소의 강태진씨(32)를 빼놓을 수 없다. 인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후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간 그는 토론토대학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다. 학부전공은 컴퓨터와 심리학, 대학원에서는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4학년때인 82년 여름 잠시 고국을 방문한 그는 국내에 이렇다할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이를 개발해보기로 결심한다. 캐나다에 돌아간 그는 대학 동창인 정재열 한석수와 뜻을 모아 83년 여름 애플용 '한글워드프로세서 III'를 개발 했다. 셋이서 일주일에 20시간씩 투자해 꼬박 5개월이 걸렸다. 이 프로그램은 워싱턴 재미과학자협회에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83년 가을 그의 인생에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워싱턴의 국방관계 컨설팅회사로부터 "한미군간 전산망프로젝트(일명 태킴스프로젝트)의 한글지원 부분을 맡을 의향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오랜 고민끝에 대학교수의 꿈을 포기한 그는 한컴퓨터연구소를 세우고 본격 프로그래머의 길로 나선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국방관계 비리문제에 걸려 도중하차하고 만다. 그후 한국인으로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황규빈 테레비디오회장과 손잡고 IBM PC용 '한글DBMS' '한글워드' 등을 개발하지만 87년 테레비디오사의 사업부진으로 여기서도 손을 떼야만 했다.

그러나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한글처리에 자신을 얻은 그는 귀국을 결심하고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88년 여름 '한글2000'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풀다운 메뉴방식과 대화박스를 채택한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한글이 이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한동안 제기됐다. 그는 89년초 귀국해 한글문화원 건물에 터를 잡았다.

90년 8월 이번에는 글과 그림을 한꺼번에 편집하는 '쪽박사'를 내놓아 5천카피 이상 팔리는 보기드문 히트를 했다. 한컴퓨터연구소는 지난해말 본격적인 그래픽패키지 '사임당'을 발표해 패키지 전문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강태진씨는 지난해 한글날 한글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글도깨비의 최철룡

전문지 기자에서 어느날 갑자기 프로그래머로 사업가로 변신한 도깨비 같은 사나이 최철룡(29). 한글카드가 턱없이 비싸던 시절 '한글도깨비'란 편리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곧이어 이를 상품화해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4년전만 하더라도 그는 컴퓨터에 문외한이었다.

동아대 기계과 4학년이던 87년 봄 전공필수과목으로 포트란(컴퓨터언어의 일종)을 들은 이후 그는 컴퓨터의 마력에 흠뻑 빠지고 만다. 학교 실습실에서 IBM PC를 벗삼아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몰랐던 그는 컴퓨터 책이나 잡지라면 가리지 않고 독파 했다. 어느 정도 PC에 자신이 붙은 그는 다른 컴퓨터광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짠 프로그램을 컴퓨터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브레인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프로그램인 '닥터'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 88년 7월호에 실리면서 그는 일약 중앙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이 잡지의 편집장으로 있던 정병태씨(현재 도서출판 '달리만듦'대표)로부터 "잡지기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 "기자가 되면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한껏 넓힐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승낙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기자로서도 그는 꽤 능력을 발휘한다. 행정전산망용 한글코드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획기사로 89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이 선정 한 '올해의 기자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프로그래머로서의 욕구가 꿈틀대고 있었다.

당시 PC사용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글처리문제였다. 잡지에서도 외국 소프트웨어에 한글을 구현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자주 게재됐다. 사실 한글카드만 있으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만 한글카드의 가격이 10~25만원선이어서 가난한 사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는 잡지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이 문제에 매달렸다. 마침내 89년 4월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처리하는 '한글도깨비'를 개발하고 프로그램 소스를 세상에 공개했다.

1년후 그는 이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어떤 PC에나 장착할 수 있게 한 '한글도깨비Ⅳ' 라는 한글카드를 개발한다. 그리고 잡지사를 그만두고 한글카드를 전문으로 하는 '엔터컴퓨터'를 설립한다. "처음에는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업체에 넘기려고 했는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기업인지라 도깨비카드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질까봐 직접 사업을 벌이게 됐다"고 설립동기를 밝힌다. 도깨비 카드의 소비자가격은 3만5천원. 도깨비카드는 나오자마자 세운상가와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모아 현재까지 5만개 정도가 팔렸다. PC마다 한글카드가 하나 필요 한데 대기업제품의 절반 이하 가격이니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른 소프트웨어제품과 달리 하드웨어를 함께 상품화 해 복제품으로 인한 피해도 덜했다. 남의 사무실 한모퉁이에서 전화를 빌어 시작한 그는 현재 오피스텔 두채를 사용할만큼 자그맣게 성공했다.

요즘 그는 랩톱이나 노트북컴퓨터에 쓸 수 있는 손톱만한 크기의 '한글도깨비'를 개발하는데 정력을 쏟고 있다. 이 작업에는 잘 알려진 한글코드변환프로그램 '카멜레온'의 개발자 김재원씨(35), 도깨비카드의 하드웨어 부분을 만들었던 건국대 전자공학과 대학원생 김원준씨(24)가 같이 참여하고 있다. 최철룡씨는 최근 도깨비카드의 복제품이 지방에서 나돌아 상호를 '한도컴퓨터'로 바꾸는 등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신선한 충격「하늘소」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소프트웨어도 철저하게 서울중심이다. 서울에서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지난해 초 대구에서 개발된 '이야기'란 통신프로그램이 전국을 석권, 한바탕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주인공은 경북대 컴퓨터서클 '하늘소' 회원인 정재흠(23) 황태욱(23) 이종우(23) 이영상(22) 등 네명의 전자공학도.

몇년전부터 컴퓨터통신이 활성화되고, 케텔 PC서브 등 PC통신망들이 본격 가동하자 컴퓨터통신에 필수적인 통신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서 개발됐다. 88년 서울대생 윤재수가 '한토크'를 개발한 것을 필두로 서강대생 오범석의 '인토크', 한메팀의 '따르릉' 등이 잇따라 선보였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전화가 가끔 끊기거나 통신속도가 느리다는 사용자들의 불평을 받아왔다. 이야기가 발표되자 이런 불만은 싹 가셨다. 네사람은 89년 겨울방학때 합숙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후 최근 '버전 3.1'을 내놓기까지 많은 기능을 추가시켰다.

하늘소는 '컴퓨터상에서 완벽한 한글구현과 한국적 체취가 물씬 풍기는 프로그램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늘소란 명칭은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 일을 열심히 하는 한국의 소'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현재 회원은 50여명. 하늘소는 이야기 외에도 한글 에디터 '바다', 수학계산용 프로그램 '아로미' 등을 공동작품으로 개발했다.

하늘소는 철저히 공개소프트웨어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개발한 프로그램은 소스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통신망에 올려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컴퓨터나 통신에 관한 용어를 가능한한 우리말로 풀어쓰고 있다. 프로그램 이름을 '이야기' '바다' '아로미' '조가비' 등 우리말로 짓고, 프로그램 컴퓨터 화면캡처기능 등의 용어를 풀그림 셈틀 갈무리 등 한글로 바꿔 쓰고 있다.
 

「하늘소」팀이 개발한 통신프로그램「이야기」의 초기화면
 

컴퓨터의사 안철수

컴퓨터의사 안철수씨(30). 컴퓨터로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프로그램에 감염된 컴퓨터를 복구하는 백신프로그램의 개발자로 그는 유명하다. 실제 그는 생리학을 전공해 서울의대 박사과정을 마친 의사이기도 하다.

88년 국내에서 브레인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이래 그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때마다 이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최신판 '백신 III'는 무려 12종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 그가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은 바이러스에 고민하는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안철수씨는 88년 자신이 직접 바이러스의 피해를 당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본과 1학년이던 82년 컴퓨터를 처음 접한 이래 의대생으로는 드물게 컴퓨터지식을 갖고 있던 그는, 생물체가 아닌 기계에 침투한 이색 바이러스에 호기심을 느끼고 감염된 프로그램을 분석한다. 몇달후 같은과 후배가 바이러스 피해를 호소하자 그는 초보자도 손쉽게 이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백신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주중에는 전공공부에 전념하고 주말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원서를 많이 읽는 의대 공부방식이 외국 컴퓨터서적을 참고하는데 도움이 됐다. 때로는 자료를 찾기 위해 미국의 컴퓨터통신망 '컴퓨서브'에 자주 들어갔다가 전화요금이 수십만원씩 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결국 프로그램에 불과하므로 소프트웨어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실제 그가 개발한 백신 III를 이용하면 국내에서 발견된 거의 모든 바이러스가 손쉽게 퇴치된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 분야에서 아마추어로 남기를 고집한다. 이미 백신프로그램개발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전공을 바꾼다든가 이를 상품화해 사업을 시작한다든가 하는 구상이 전혀 없다. 그는 올해초 박사과정을 마치고 3년간의 군복무에 들어갔다. 컴퓨터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구현자가 되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프로그램에 관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1인자 안철수(30)
 

1백번 시도한다

지난 6월 정보처리전문가협회가 주관한 '한국소프트웨어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 금성소프트웨어의 '하나그림' 그래픽패키지는 이 회사에 입사한지 2년된 김종윤씨(28)의 작품. 중앙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들어온 그는 입사 첫해 어느날 과장이 미국 출장가면서 "그래픽 패키지를 한번 구상 해보라"고 지시한 것을 계기로 프로그램개발에 손대기 시작한다. 그래픽 패키지로 가장 유명한 외국 제품은 '닥터할로'. 이 프로그램을 모방해 작업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점 하나 찍게 하는데도 며칠씩 걸렸다고 한다.

두달후 출장에서 돌아온 과장이 그가 만든 초기버전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이 때부터 본격적인 개발작업에 착수한다. 그를 중심으로 같은 과직원 서너명이 팀을 이뤄 지난해 8월 첫제품을 완성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컴퓨터연구소의 쪽박사와 함께 최초의 국산 그래픽 패키지라는데 의미가 있었다. 금년초 기능이 향상된 '하나그림 2.0'이 발표됐고 지난 4월에는 행정전산망용 표준 소프트웨어로 선정돼 학교나 관공서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름난 소프트웨어는 대개 기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독창성이 강한 프로그래머에 의해 개발된다. 오히려 기발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이 이를 발판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프로그래머들은 꽉짜여진 틀을 싫어하고 또 그러한 분위기속에서는 우수한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어렵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김종윤씨는 "프로그래머들이 대기업 체질에 적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소프트웨어업체들도 요즘 이러한 점을 많이 배려해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일단 가능성이 보이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대기업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프로그램이 잘 안될 때 '1백번은 시도하고 포기한다'는 좌우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주변에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쓰다가 "괜찮군!"하는 한마디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국소프트웨어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하나그림」의 김종윤(28, 가운데)
 

컴퓨터 바둑 2연패한 지원호

한국기원과 (주)상운이 주최한 '컴퓨터바둑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바둑프로그램'맥'을 개발한 지원호씨(31). 그는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에 근무하다 현재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컴퓨터바둑이란 컴퓨터에 바둑수를 입력시켜 컴퓨터끼리 또는 컴퓨터와 인간이 바둑 시합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바둑이 원래 치밀한 사고력을 요하는 게임이므로 컴퓨터가 이러한 지능을 갖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지난해 국내에서 첫대회가 열렸을 때 30여개 팀이 참가신청을 하고서도 프로그램개발에 성공한 팀은 지원호씨 혼자 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과학기술원에서 리포트를 주로 PC로 쓰고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하다보니 그래픽에도 익숙하게 됐다는 그는 어느날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바둑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 인간의 생각을 기계가 표현한다는 데 매료돼 두달동안 밤잠을 설치며 프로그램을 짰다고 한다. 바둑프로그램은 중반전이 어렵다. 포석이나 사활은 책에 나와있는대로 기억시키면 되지만 중반전투는 종합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므로 컴퓨터가 인간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년에는 그래도 네 팀이 출전해 토너먼트로 겨룬 결과 10급 정도 실력의 맥이 두번 이겨 우승했다. 맥은 지난해 보다 2급 정도 기력이 향상됐다.

"10년 이내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는 그는 앞으로도 전공공부를 하는 틈틈이 바둑프로그램의 성능을 향상시 킬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바둑의 세계수준은 지난해 우승자 '골리앗'(네덜란드인 마크 분 개발)이 8급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응창기배 세계바둑대회'로 유명한 응창기씨는 이미 오래전에 바둑프로그램이 프로기사를 이긴다면 엄청난 상금을 내놓겠노라고 공언했다.

일본과 소프트웨어 위기

일본은 21세기가 오기 전에 '세계 제일의 과학기술대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과학기술전분야에서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전자 반도체 로봇 자동차 신소재 등에서는 이미 미국을 능가했다고 자신만만해 하며, 기초과학과 컴퓨터 쪽에서도 손에 잡힐 만큼 따라 갔다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그런 일본이 유독 한 분야에서만은 미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고 탄식한다. 소프트웨어가 그것이다.

일본전기(NEC) 후지쓰 히타치 삼총사가 크레이기종 못지않는 빠른 슈퍼컴퓨터를 개발했지만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에는 훨씬 뒤진다. 슈퍼컴퓨터를 돌리는 소프트웨어의 양과 질에서 게임이 안되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PC) 생산기술에서 미국에 꿀릴 것이 하나 없는 일본 기업들이지만, PC의 기본 운영체제인 도스(MS-DOS)를 사용하는 대가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꼬박꼬박 로열티를 바쳐야 한다. '제5세대 컴퓨터개발계획'이나 '시그마(∑)프로젝트' 같은 범국가적인 소프트웨어기술 향상책을 마련했지만 성과는 별무신통이었다. 일본인들은 소프트웨어부진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차이에서 찾는다. 수직구조적인 일본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독창성이 강한 유능한 프로그래머가 배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소프트웨어의 위기'라는 말이 일본인들의 입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미국 일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프트웨어개발의 역사가 일천하지만, 고급인력이 남아돌고 있고 최근 정보산업 분야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잠재적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상은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물적 인적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하드웨어만 사면 소프트웨어는 무조건 공짜'라는 인식이 불식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83년 8비트 교육용컴퓨터가 각급 학교에 보급돼 한바탕 컴퓨터바람이 불었다. 당시 목표로 했던 컴퓨터대중화에는 실패했지만 그 싹은 죽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익힌 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또 젊은 프로그래머가 되어 오늘의 한국 소프트웨어 기술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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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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