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보급된 PC의 절반 이상이 XT기종, AT보다 처리속도가 늦고 기억용량도 작은 이 컴퓨터를 내부 부품만 교체해 AT급으로 성능을 올릴 수 있다.
컴퓨터만큼 수명이 짧은 제품도 드물다. 부품이 잘 망가지거나 유행에 따라 제품의 외관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런것은 아니다. 그만큼 성능의 향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얘기다.
가령 80년대초 교육용 컴퓨터의 대명사로 불리던 8비트 PC는 요즘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가장 많이 팔리는 컴퓨터였지만 요즘은 이아들 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창고에 처박혀 있거나 골방에서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에 비해 비슷한 시기에 보급되기 시작했던 컬러TV는 그후 새로운 기능을 가진 신제품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건만, 10년이 지난 구식 모델도 여전히 안방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브라운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거나 우연히 새 TV수상기를 장만할 기회를 얻지 않는 한 구식이라고 해서 구박당하는 일은 없다.
8비트 다음으로 각광받은 컴퓨터는 16비트 XT기종. 지난 81년 IBM이 PC시장에 뛰어들면서 XT('특별히 좋다'는 뜻의 extra에서 따옴)라는 닉네임을 붙인 이 컴퓨터는 8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기종이었다. 국내에서는 85년경부터 이 제품이 생산됐는데 당시에는 전량 미국으로 수출됐다. 그후 국내에서도 XT시장이 꾸준히 성장했는데 아무래도 폭발적인 수요증가를 보인 것은 89년 6월 문교부가 교육용 컴퓨터로 XT를 선택하면서 부터다. 마침 전사회적으로 불어 닥친 컴퓨터붐과 맞물려 XT기종은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 보급돼 1백20만대 PC 가운데 절반 이상이 XT기종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인기절정에 있던 XT도 지난해를 고비로 급격한 퇴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84년에 등장한 AT(Advanced Technology의 약자)기종이 80년대 후반 미국에서 XT 시장을 휩쓸어 버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AT기종은 빠른 속도로 XT시장을 잠식해갔다. 최근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를 찾는 고객들 가운데 XT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메인보드를 교체
컴퓨터시장이 XT에서 AT로 옮겨가자 XT기종을 이미 구입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컴퓨터를 AT급 성능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구입한 곳에 연락해 사용하던 컴퓨터를 갖다주고 새로 AT기종을 구입하면 가장 손쉽다. 그러나 이 경우는 AT를 애초부터 사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든다. 가끔씩 메이커들이 보상교환을 실시하지만 XT를 AT와 바꾸는데 60만원 정도를 소비자들에게 요구한다. 메이커 쪽에서도 XT를 가져가 봤자 처치곤란이어서 탐탁치않게 여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컴퓨터의 내부를 뜯어 필요한 몇가지 부품만 교체해 AT급 성능을 내게 하는 소위 'PC개조사업'.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부터 세운상가와 용산전자상가 내 몇몇업체들이 부분적으로 이 사업에 손을 대다가 최근에는 아예 PC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용산전자상가 내에 있는 하버드 컴퓨터도 이러한 업체중의 하나. "처음에는 우리 제품을 사간 고객들에게 애프터서비스차원에서 업그레이드(up-grade)를 시켜줬는데 다른 회사제품을 들고오는 사람도 가끔 있어 하는 수없이 손봐 줬습니다. 그랬더니 소문을 듣고 요즘에는 하루 10여건씩 PC개조를 원하는 주문이 들어옵니다." 조남인사장의 말이다.
PC개조작업은 컴퓨터내부를 열어 일부 부품을 교체하는 과정으로 크게 네부분으로 나눠진다. 바꿔 말하면 이 부품들의 차이가 XT와 AT가 성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첫째 XT가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인텔의 8086이나 8088칩을 사용하는데 비해 AT는 80286칩을 채용한다. 80286은 8086이나 8088보다 4배 정도 처리속도가 빠르다, 프로그램을 돌릴 때 AT가 XT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차이에 연유한다.
둘째 데이터를 입출력하는 통로(슬롯)가 XT는 8비트 방식인데 비해 AT는 16비트 방식을 취한다. 이 때문에 XT는 오랫동안 '과도기적인 16비트 컴퓨터'로 불려졌다.
셋째 주기억장치와 보조기억장치에서 XT와 AT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주기억장치에서 XT는 램(RAM)이 기본 2백56KB에서 최대 6백40KB까지 확장가능한 반면 AT는 기본 1MB에 최대 8MB까지 늘릴 수 있다. 이때 AT용 램칩은 XT용과 용량이 달라 전원 교체해야 한다. 롬(ROM)은 XT가 2백56KB, AT가 1MB 이지만 메인보드상에 고정돼 있으므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같이 메인 보드를 교체해주면 된다.
보조기억장치는 하드디스크가 없는 경우 이를 추가한다거나 콘트롤러방식이 다른 경우 이를 교체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AT와 XT는 인터페이스방식이 다르므로 16비트 전송방식에 따른 콘트롤러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대기업제품일수록 교체작업이 복잡하고 비용도 더 듭니다. 왜냐하면 대기업들은 원기절감을 이유로 메이커마다 독자적인 설계방식을 따르고 있어 메인보드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컴퓨터의 고병수 기술이사는 대기업제품을 AT로 개조할 경우 케이스까지 바꿔야할 정도로 많은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50만원 절감 효과
XT를 AT로 개조하는데 드는 비용은 메인보드 램칩 플로피디스크콘트롤러 등 기본경비가 18만원 정도. 대기업제품은 7만원 정도가 더 추가된다. 그래도 시중에 AT 가격이 대기업 제품일 경우 1백만원 이상 중소기업제품이 70만~85만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50만원 이상 절감된다. 물론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콘트롤러방식이 다르다거나 램을 추가한다거나 다른 옵션(option)을 단다면 비용은 훨씬 올라간다.
AT를 386SX기종(16비트에서 32비트 컴퓨터로 가는 중간단계)으로 개조하는데 드는 비용은 40 만원선. 아직 이 수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현재 PC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하버드컴퓨터외에 다름컴퓨터(마포구 아현동) 모아시스템(용산전자상가) 화신전자(종로2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