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상인식소자가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자유자재로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는 인간 눈의 망막구조를 모방한 소자개발이 주목 받고 있다.
인간의 눈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까. 사물을 보자마자(아주 짧은 시간에) 사물의 형체는 물론 명암 색깔도 정확히 파악해 뇌의 중추신경계로 전달한다. 만약에 인간 눈의 신경구조를 모방한 칩을 만들 수만 있다면 영상정보를 인식하고 전달하는데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눈의 망막구조를 닮은 이른바 '망막소자'를 연구한 사람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호 '사이언티픽 아메리컨'지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M.A.마호왈드와 C.미드씨가 신경회로망을 응용한 시각시스템을 설계하면서 '망막소자' 개념을 진척시킨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마호왈드는 학부때 생물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에서 아날로그 VLSI(초대규모 집적회로)를 연구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며, 미드는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30년 이상 디지털 VLSI연구에 종사해온 베테랑이다.
지난 40년간 전자혁명은 반도체의 집적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면서 '쾌속항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0과 1을 통해 정보를 인식하는 실리콘반도체는 최근들어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숫자나 문자정보는 어느 정도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하나 영상정보, 그것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영상정보를 적절하게 소화해내기는 힘이 부친다는 것이 점차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돌파구는 '인간의 모방'에서 찾아지고 있다. 과학이 조물주가 만들어낸 가장 우수한 예술품 '인간'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망막소자'도 이러한 시도의 일종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외부세계를 감지한다. 눈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망막은 자연의 빛을 뇌가 그림으로써 이해가능하게끔 신경신호로 변환시켜준다.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으려면 망막이 슈퍼컴퓨터보다도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망막의 신경세포는 전자디바이스(electronic device)와 비교해 동작속도가 1백만분의 1정도로 늦고 소비에너지도 적지않다는 점이다. 또한 처리의 정확도도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와같이 더딘 '지진아'가 어떻게 사물을 빠르고 정확히 이해 할 수 있는지는 수수께끼다.
생물학적인 연산이 디지털 연산과 크게 다르다는 점은 대부분 알고 있다. 이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연구자들의 목표다.
전자식 영상처리 시스템은 인간의 망막구조와 기본적으로 다르다. 전자식 영상처리는 광검출소자의 일종인 어레0|(array)를 이용해 각각의 화소의 조도를 검출 해 그 값에 대응한 신호를 출력하는 방식을 택한다. 따라서 강력한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한장면의 그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망막은 5층구조의 세포군으로 구성돼 있어 정보가 세포군의 가운데서 수직방향(1층에서 2층)과 수평방향(같은 층 내의 인접세포)으로 흐르면서 전체적인 영상을 쉽게(?)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층구조를 가진 '실리콘망막'을 만들면 인간의 시각인식에 버금가는 새로운 소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망막의 5층구조는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1층의 시세포는 간상체와 추상체로 입사된 빛을 전기신호로 변환하며, 2층의 수평세포는 1층의 시세포와 3층의 쌍극세포 양쪽을 결부시켜준다. 3층의 쌍극세포는 시세포와 수평세포로 부터 신호를 받아 각각 신호의 차에 비례한 만큼을 출력하고….
인공 망막소자가 개발된다면 신경회로의 아날로그 계산양식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전자계를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방식은 순차적이고 논리정연 하지만 유연성이 전혀없어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반면에 신경회로의 아날로그 방식은 제멋대로 변화하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