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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화는 때때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다윈의 진화론은 처음에는 몇가지 의문이 제기됐으나 그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문제점이 보강되면서 과학적 사실로 인정됐다. - 진화론의 입장

지구상에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 진화한다는 사상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비롯됐다. 예컨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6년)는 태양열에 의해 원시생물이 태어나고 이것이 진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상은 어디까지나 철학의 영역에 머물렀으며 과학으로서의 생물진화론을 최초로 주장한 학자는 라마르크(Lamark)였다. 그는 다윈 이전에 이미 생물진화에 관해 상당한 논리적 전개를 시도했던 사람이다. 라마르크 외에도 찰스 다윈의 조부 브래스머스 다윈(Brasmus Darwin)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진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내 1859년에 발표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은 과학계에서 오랫 동안 논의돼 오던 생물의 진화에 대한 개념을 풍부한 증거를 바탕으로 확립시키는 한편 성서적 창조론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당시의 서구사회에서 지배적이던 정적(靜的)인 우주관을 동적(動的)인 우주관으로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복잡」에서 「간단」으로 진행되는 진화도 있어

진화란 어떤 생물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의 유전적 조성이 일부 또는 전부 변형돼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일단 변형된 생물은 원상으로 되돌아 갈 수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 적응의 결과 일반적으로 생물체의 구조나 이들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 등이 보다 복잡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반드시 하등에서 고등으로 또는 단순한 체제에서 복잡한 체제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생충의 진화와 같이 복잡한 체제에서 간단한 체제로 진화하는 반대현상의 진화도 가능하다.

진화는 편의상 소진화와 대진화로 구분한다. 소진화는 어떤 종의 유전적 구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변해 새로운 종을 형성할 때까지의 진화과정을 의미하며 대진화는 종 이상의 진화, 즉 속(屬) 과(科) 목(目) 강(綱) 등의 진화과정을 뜻한다.

다윈은 1858년 월러스(Wallace)와 공동으로 자연선택설을 발표하고 1859년에는 '종의 기원'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초판 1천2백50부가 하루만에 매진되는 놀라운 선풍을 일으켰고(일설에 따르면 어떤 기독교인이 전부 매수해 불태워 버렸다 한다) 그후 3년 동안 제 6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개정 보완되고 새로운 자료가 추가됐다.

다윈의 진희론에 따르면 생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을 하는데 그 많은 개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때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는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적자생존 즉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의 결과로 살아 남은 개체들의 유리한 변이성은 다음 대(代)에 유전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여러 세대에 걸쳐 오랜 기간동안 거듭 반복하게 되면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생겨 결국 새로운 종(種, species)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다윈은 생물의 진화가 개체의 변이성과 이에 대한 자연선택의 반복에 의해 진행된다고 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생물은 동일조상에서 기원했다. 둘째 새로운 종의 형성은 개체변이와 이에 대한 자연선택에 따른다. 셋째 진화는 서서히 오랜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다윈의 이론에 대한 세가지 질문

다윈의 진화론은 그 당시의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심한 논쟁을 야기시켰다. 그때 논란이 된 몇가지 문제들을 살펴보자. 첫째로 개체변이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다윈에게는 없었다. 그 시대만 하더라도 유전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변이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획득형질과 유전적 변이를 구별짓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1900년 멘델(Mendel)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됨에 따라 유전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얼마 뒤 유전적 변이와 자연선택이 진화의 요인이라는 와이스만(Weismann)의 신다윈주의(Neo-Darwinism)가 수립됐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두번째 도전은 생물의 진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돌연변이에 의한다는 드브리스(deVries)의 돌연변이설(Mutation theory)이다. 이 설은 집단 유전학자들에 의해 부정됐다.

1908년 하디(Hardy)와 와인버그(Weinberg)의 하디-와인버그법칙이 발표된 후 근 20년에 걸친 피셔(Fisher) 할데인(Haldane) 라이트(Wright) 등의 노력으로 집단유전학의 기초가 확립됐다. 그중 피셔는 1930년에 '자연선택의 유전학적 이론'이란 책을 저술, 자연선택설에 대한 유전학적 기초를 수립했다. 또 할데인은 1924년 '자연선택 및 인위선택의 수학적 이론'이란 저서를 통해 여러 종류의 자연선택이 유전자 빈도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수리적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피셔와 할데인은 진화의 요인으로 자연선택에 큰 비중을 둔데 반해 라이트는 유전적 부동 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무튼 이들은 모두 집단내의 유전적 변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진적 진화가 일어남을 주장했으며 돌연변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세번째 반론은 네겔리와 에이머(Negeli-Eimer)가 주장한 정향진화설(Orthogenesis)이다. 이들은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고차적인 '섭리'에 의해 이미 결정된 일정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이 견해에 대해 심프슨(Simpson)을 비롯한 여러 고생물학자들은 곧 반론을 폈다. 화석의 진화경로를 연구한 결과 정향진화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따라서 정향진화설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이 박물학에서 실험과학으로 발전하면서 새로 얻어진 지식에 의해 많은 수정이 가해져서 1940년대 초에는 종합학설(Synthetic theory)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종합학설은 유전학 계통분류학 생태학 고생물학 등의 분야가 통합돼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1937년에 발표된 도브잔스키(Dobzhansky)의 '유전학과 종의 기원'과 마이어어(Mayr)의 '계통분류학과 종의 기원'(1942년) 그리고 고생물학자인 심프슨의 '진화의 속도와 양상'(1944년) 등의 저서로 뒷받침되고 있다.

오늘날 진화론은 확고부동한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모든 생물들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문도 갖지 않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러 종류의 유전적 변이 중에서 어떤 변이가 직접 진화에 관여하고, 어떤 변이는 관계가 없는가. 종의 형성과정에서 지리적 격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동일 지역내에서의 종의 형성도 가능한가. 모든 유전자는 동일한 비중으로 진화에 기여하는가. 염색체 변이(배수체 유전자재 배열 등)는 종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유전자 변이와 염색체 변이중 어떤 것이 진화에 더 중요한가.
 

공룡의 전성시대에 살았던 각종 생물들. 이들은 오래 전에 멸종하고 말았다.


종합학설로 발전하고

종합학설이 탄생한 후 근 40년 동안 이같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생물학의 여러 분야 특히 집단유전학과 생태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의 연구결과도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전기영동법이 개발되면서 유전자 변이에 대한 집단유전학적 연구가 급진전, 생물집단이 갖고 있는 유전적 변이의 정도를 알게 되었다. 아울러 유전적 변이가 환경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밝히려고 많은 학자들이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실례로 존슨(Johnson) 아얄라(Ayala) 등은 이들 유전자의 변이가 환경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적응현상이 달리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윌슨(Wilson) 사리치(Sarich) 등은 전기영동법으로 얻을 수 있는 유전자는 구조유전자 뿐인데 이들은 적응현상과 직접 관계가 없다는 반론을 펴기도 했다. 그들은 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조절유전자들이고 조절유전자의 변화만이 진화에 직접 연루된다고 주장했다.

윌슨은 생화학자로서 진화론에 크게 기여한 학자중 한사람이다. 그는 다년간에 걸쳐 사람과 침팬지의 진화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사람이 침팬치와 형태적으로 현저히 다르게 진화한 이유가 구조유전자의 차이 때문이 아님을 밝혔다. 다시 말해 염색체 변이 등에 따른 조절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사람과 침팬지가 형태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형태적 생리적 기능면에서의 진화는 구조유전자가 아니고 조절유전자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했다.

1980년 10월 미국의 시카고에서는 1946년도에 미국 프린스턴에서 열렸던 진화학회와 비슷한 성격의 국제 진화론학회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는 고생물학 지질학 생태학 발생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저명 과학자들이 다수 참석, 진화론에 대한 발표 및 토론회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는 1940년대 이후 30여년간 진화론의 본류를 이뤘던 종합학설에 입각한 연구결과가 중점적으로 검토됐다.
여기서 나온 한가지 주목할 학설은 생물의 진화가 점진적인 변이의 축적에 따르지 않고 급진적으로 신종(新種)이 형성되며 일단 새로 출현한 신종은 오랜 기간동안 형태의 변화없이 지속된다는 소위 굴드(Gould)와 엘드릿지(Eldridge)의 단속평형설 또는 구두점식 진화(Punctuated equilibria)였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질연대에 따라 새로운 종들이 발견되나 신종의 출현은 연속적인 변이의 결과가 아니고 돌발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에 이뤄진다. 따라서 유전자의 이질화(異質化)가 점진적으로 축적돼 소진화가 일어나는 과정과는 달리 대진화는 어떤 시기에 급속도로 이뤄지고 새로 형성된 종들은 오랜기간 동안 변화없이 존속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학설은 당시 학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근래에 이르러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 이 학설을 진화론자 스스로가 진화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왜곡 해석하고 있다. 마치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것인양 선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창조과학회가 펴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1981년)란 책자의 부록에 1980년 시카고이서 있었던 토론 때 발표된 레윈(Lewin)박사의 글을 원문 그대로 전재하고 있다. 마치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말해 단속평형설은 창조론과는 정반대 입장의 진화론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바위에서 발견된 박테리아의 화석. 약 35억년 전의 생물로 추정되고 있다.


진화는 「사실」이다

카슨(Carson)은 하와이의 특산종 초파리 5백여종을 대상으로 종(種) 분화를 연구한 뒤 이들 종은 점진적 진화에 따라 여러 종으로 진화된 것이 아니고 '유전적 혁명'에 의해 매우 짧은 기간 사이에 종 분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카슨의 설에 따르면 생물체는 두개의 유전체계를' 보유하는데 하나는 자연선택을 통한 대립인자의 점진적 대치로 적응이 이뤄지는 개방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이고 변이가 적은 폐쇄체계라고 한다. 그런데 이 폐쇄체계에 변이가 생기면 대변동을 수반하는 일련의 급진적 '도약'에 의 해 신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웰(Powell) 아얄라 등은 1978년과 1980년에 연구실 내에서 초파리를 실험적으로 변형시켜 비록 완벽한 신종은 아니였으나 거의 신종에 가까운 변종을 유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도약적 진화에 관한 또다른 연구가 화이트(White)와 부시(Bush)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들은 염색체 변이를 주연구대상으로 삼았는데 화이트는 날개없는 메뚜기 7종의 염색를 조사했다. 그는 이들 염색체의 재배열이 단시일내에 생식적 격리를 유발시켜 신종으로 분화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는 점진적 진화가 아니고 급격한 진화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또 부시는 군집생활을 하는 얼룩말을 대상으로 염색체의 변이와 종 형성 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얼룩말들은 염색체의 변이속도에 있어서 종마다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매우 짧은 기간동안에 여러 종으로 분화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설에 따르면 염색체 변이는 조절유전자의 기능을 나타내며 따라서 동일지역 내에서도 짧은 기간내에 새로운 종 형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화석을 관찰해 봐도 많은 생물군(群)에서 염색체 변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점은 윌슨이 주장한 내용, 즉 사람과 침팬지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대진화도 소진화의 진화과정과 동일시해 소진화의 연장 쯤으로 이해하려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대진화에서 문제되는 것은 종 이상의 생물군 사이에서 그 중간역할을 해주어야 할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 (missing link)다. 예컨대 척추동물의 경우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차례로 진화됐다면 이들의 중간형들이 발견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점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최근 오스터(Oster)와 앨버트(Albert)는 이분설(Bifurcation theory)을 제창했다. 이 설에 따르면 동물의 발생초기에 형성되는 초기 표피세포층은 발생조건에 따라 비늘(scale) 깃털(feather) 또는 털(hair)로 분화되는데 결코 이들의 중간형태로는 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단속평형설에서 주장하는 진화양상을 보인다고 가정하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소수의 개체가 짧은 기간 내에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현상이 화석을 통해 입증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론적으로 진화는 과학적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진화를 설명하는 학설은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증거나 정보가 얻어지면 진화의 학설은 계속 수정돼 갈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에 관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진화의 사실'이 아니고 '진화의 학설'에 있다.

199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양서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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