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과학동아와 첫 만남
2002년 창원중앙고 입학
2006년 고려대 생명과학부 입학
2013년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시설원예 및 식물공장학 연구실 석사 입학
2015년 스페이스젤리 창업
2016년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시설원예 및 식물공장학 연구실 박사 입학
2017년 제4회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
2019년 CJ Blossom IDEA Lab 1기 선정 : 수경재배 전용 미생물 제재 개발
현재 과학자 진로 멘토 활동
“야 반갑다! 이게 몇 년만이야, 무슨 일하고 있어?”
“그러게, 오랜만이다. 나 농업 연구하고 있어.”
“아 그래?”
대화가 끊겼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들에게 재미없는 직업처럼 보였다. 농업과학자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직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파란만장했던 진로 찾기의 시간들
아파트의 작은 놀이터가 세상 전부였던 초등학생 시절, 과학동아는 내가 과학의 세계를 접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과학동아를 읽을 때마다 다양한 과학 분야를 한 곳 한 곳 여행하고 돌아온 것처럼 황홀했다. 그 덕분에 거의 매일 과학동아를 놓지 않았다. 세상은 내가 보고 듣는 것보다 훨씬 넓고, 미지의 영역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정적인 계기였다.
과학동아를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내겐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사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강한 동기가 생겼다. 그러던 차에 고등학생이 되고 진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던 중, ‘줄기세포’라는 아주 낯선 단어를 접했다. 이 단어는 당시 생명과학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며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한 과학자와 함께 매일 뉴스에 나왔다. 그는 과학자라기보단 스타처럼 보였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되겠다는 당시의 내 희망에 더없이 잘 맞았다. 그래서 이 세계적 과학자처럼 되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았다.
2순위는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희망학과는 1지망부터 3지망까지 모두 생명과학부였다.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간절히 꿈꾼 생명과학부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생각지 못한 뉴스가 쏟아졌다. 연구 윤리 위반, 논문 데이터 조작, 한때 대중의 우상이었던 과학자의 교수직 파면까지. 내가 꿈꾼 나 자신과 미래까지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의 모든 수업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다시 꿈을 찾기 위해 다른 이공계 학과 수업을 계속 검색했고, 생명환경과학대학에서 ‘식물공장’이라는 흥미로운 강의를 찾았다. 일면식도 없었던 박권우 교수님께 대뜸 메일을 보내 다른 과 학생이지만 수강할 기회를 주십사 정중히 말씀드렸다(당시 교칙엔 자신이 소속된 학과 수업만 수강신청이 가능했다). 너그럽게 승낙해주셔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기술이라면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노동력을 흙에 투입해야하는 기존 농업 재배 방식에서 벗어난,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 이거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식물공장을 연구하는 손정익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신기술이 혁신하는 미래의 농업
식물공장은 발광다이오드(LED) 인공광과 수경재배 기술을 접목한 환경 제어로, 햇빛이 들지 않는 건물 내부, 지하 등 외부와 격리된 공간에서 사계절 내내 안정적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기술이다. LED는 640nm(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 파장대의 적색 LED와 460nm 파장대의 청색 LED를 주로 사용한다. 식물의 광합성에 가장 필요한 빛의 파장대여서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에서 종종 비치는 보라색 조명은 식물 재배를 위해 적색 LED와 청색 LED를 조합한 특수 조명이다.
식물 재배에 인공광이 필요하고 이것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탓에 사업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주, 사막, 남극, 도심 내 지하 유휴 공간 등 식물이 살기 어려운 공간에서도 식량을 재배할 수 있다는 식물공장의 장점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여러 연구자가 적은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재배하는 환경 제어 기술과 노동력을 줄이는 자동화 기술 등에 초점을 맞춰 식물공장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식물 연구는 생명공학에 국한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수학적인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살아있는 생명인 식물 속에 매우 다양한 수학적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구생 시절 식물공장에서 키운 식물의 데이터를 수집하던 중에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샘플 수백 개의 데이터를 분석하니 각 개체의 잎과 뿌리 간 무게의 비율이 특정 숫자로 수렴하고 있었다. 검증을 위해 다른 실험을 하는 동료의 데이터도 받아 분석했는데 놀랍게도 똑같이 특정 숫자에 수렴했다.
내가 실험한 샘플은 엽채류였지만 감자, 당근 등의 구근식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면 이 결과를 확장할 수 있다. 지상부에서 잎의 성장 수치를 측정하면 땅속 뿌리의 중량까지 예측할 수 있다. 수만 평의 농지로 규모를 넓혀보자. 드론으로 찍은 이미지를 자동 분석해 농작물의 잎이 차지한 전체 면적 데이터를 얻으면 농장 전체 구근식물의 총 생산량도 실시간으로 예측될 것이다. 이처럼 식물의 수많은 샘플에서 여러 정보를 도출해 수학적 규칙을 찾는 것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한다.
실제 식물 개체를 3D 그래픽으로 정확히 표현하고 위치별로 개체가 빛을 받는 양(수광량)과 이 빛으로 광합성하는 양을 모델링한다(식물의 광합성 양은 식물의 엽록소와 잎 내부의 질소 함량에 비례한다. 같은 광량이라도 식물의 광합성 능력에 따라 총 광합성량이 달라진다). 이 모델링을 바탕으로 식물 개체 전체의 총 광합성량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잎의 수광량이 클수록 식물 내 질소 분포를 높여서, 식물이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식물 개체의 총 광합성량은 이산화탄소의 식물 유입량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이것으로 식물의 성장 속도와 수확량을 예측할 수 있다. 미래의 성장 속도와 수확량이 예측되면 새로운 식물을 재배할 시점과 그 재배량, 수확 시기와 수확량까지 식물공장의 시스템을 미리 설계, 운영할 수 있다.
더 많은 학생들에게 더 재밌는 과학 전하기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가르쳐준 멘토가 없었고, 진로와 미래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환경도 아니었다. 현실과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에게 ‘진로 선택’이란 수능점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공부를 아주 잘한 친구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의대, 약대를 희망했고 다른 대부분도 꿈 대신 점수를 좇았다. 이때의 막막함이 학창 시절의 가장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공부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훈련 과정이란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깨달았다. 학생 시절엔 내 꿈과 상관없는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분은 이런 아쉬움과 후회를 절대 겪지 않길 바란다.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내 꿈을 위한 여행을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이런 과거의 아쉬움에서 출발해 스마트팜 관련 과학교육 서비스를 창업했고, 현재는 대표로서 강연과 교육콘텐츠 사업을 열심히 이끌고 있다. 어릴 적의 나처럼 진로 선택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 교육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연구자의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진지한 학문의 영역을 문화, 교육 콘텐츠와 결합해서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현재의 일에서 더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특히 식용곤충 자동화 시스템, 푸드 3D프린터, 인공육 배양 기술 등 식물공장 외에도 가장 핫한 과학 기술을 참신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선 농업을 전통적인 1차 산업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강하다. 이에 식물공장 및 농업 기술의 고도화를 영화, 공연, 방 탈출, 증강현실 등과 결합해 쉽고 재밌게 보여주는 과학 콘텐츠를 제안하고 있다.
더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과학 기술 콘텐츠를 체험해서, 과학자로서 미래를 바꾸겠다는 희망을 키우며 그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앞으로도 청소년들을 첨단 과학 기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친절한 선배 과학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과학 교육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과학동아를 읽으며 과학의 놀라운 세계로 들어섰던 예전의 나처럼, 지금 과학동아를 읽으며 과학자의 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과학 교육자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