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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과학기술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미국, 핵심기술 개발 퇴조

1차대전 이후 과학기술 종주국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온 미국. 그러나 최근의 과학기술력 분석보고는 미국의 아성이 일본에 의해 급속도로 무너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과학기술의 판도를 밝히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도가 새로이 작성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도 속에서는 일본이 급속히 미국을 따라잡고 있으며 수많은 약소국가들이 세계시장에서 자기 입지를 확보해나가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반면 소련은 이 기술개발의 치열한 경쟁 대열에서 열외로 밀려난 모습이다.

미국 뉴저지주의 CHI연구소가 만든 이 지도는 새로운 통계자료에 기초해 작성됐다. 즉 중요한 특허서류철에서 각국의 특허권과 논문이 얼마나 자주 인용됐는지를 헤아려 통계로 처리한 것이다. 물론 인용빈도가 높은 특허는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특허권은 그 나라 경제발전전망의 잠재적인 지표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특허를 근거로 특허권자의 독점적인 통제를 받게되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치열한 경쟁하에서는 기술개발의 기초가 되는 우수한 논문들 역시 그 나라 경제의 저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과학논문이나 특허권 인용에 관한 분석에서는 그간 여러가지 한계나 때때로 실험적인 오류가 발견됐지만 최근들어 부쩍 그 방법이 정교해지고 신뢰도 또한 높아졌다. 미국정부는 기술동향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자주 이 인용분석법을 이용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전세계 1천1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그들의 기술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특허분석을 실시해 6월에 발표했는데 이로써 사업가나 경제학자, 주식시장 분석가들이 각 기업의 기술적인 안정도를 평가하는데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갖게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개발 거리 먼 분야 발전

이러한 분석결과가 몰고온 파장은 크다. 예를 들면 컴퓨터와 전자제품 분야의 대기업인 인터내셔널비즈니스 머신(IBM)은 기술 전분야에 걸쳐 지난 80년 이후 일본 히타치사(社)에 밀려왔는데 그 이래 양자간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CHI의 회장인 프랜시스 내린은 한 인터뷰에서 이 분석결과가 '공포스러울 지경'이라고 밝힌다.

"일본은 그들의 활동범위를 기술 전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성장이 자동차나 전자제품분야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을 완전히 잘못보고 있는 셈"이라고 그는 말한다.

비록 아직까지는 미국이 과학기술계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위치는 일본의 대기업들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다. 일본의 기술지배력은 지난 80년대를 통해 계속 성장해온 것이며 이제 그 결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히타치는 80년대 중반부터 IBM을 드러나게 앞지르고 있으며 후지(Fuji)포토는 같은 시기에 이스트만 코닥(Kodak)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반면 자동차업계는 80년대 초반내내 일본의 자동차회사 트로이카인 도요타 혼다 닛산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후반부터 조금씩 그 격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나마도 자동차 생산 그 자체보다는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사가 위성생산 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이 반등세(反騰勢)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추격자가 일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국에게 또 하나의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놀랍게도 수많은 소국(小國)들이 국제특허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덜란드와 스위스 대만 리히텐슈타인이 포함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대다수의 분석가들은 사태를 낙관하고 있었다. 연구개발의 기반이 되는 기초 과학연구에서 미국이 아직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확신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필라델피아 과학정보연구소의 새로운 보고서 발표이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매년 발간되는 3천2백개 과학잡지들의 1천만개에 해당하는 주석들을 세세히 조사한 기초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올해초 이 연구소는 인용된 횟수를 지표로 미국의 연구수준이 지난 십년간 꾸준히 높아졌다는 낙관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후속으로 나온 질적 분석결과에 의해 이 낙관론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연구상의 진보는 기술 개발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지구과학이나 환경분야에서 이뤄진 것이고 기술개발의 핵심분야인 컴퓨터과학 전기공학 통신공학 로보틱스 기계공학 등은 오히려 80년대 후반이후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의 데이비드 펜들베리 박사는 '놀라운 일'이라고 머리를 저으며 초기의 분석이 미국의 기술적 우위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확대해석됐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과학논문에서 미국의 영향력


인용빈도로 평가

특허나 과학논문 분석은 과학기술의 질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척도로 사용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육성해 왔다. 예전에는 수상경력 등이 판단기준이었으나 이것은 주관적이고 때때로 그릇된 판단을 낳기도 했다.

또 기초가 되는 숫자 자체의 신뢰도도 낮다. 예를 들어 그저 그런 논문이나 특허 수백편을 만들어낸 사람이나 회사가, 아인슈타인에 필적할 만한 논문 한편을 써낸 과학자나 로열티를 벌어들일 중요한 특허 하나를 내는 회사보다 더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인용분석법에 한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발명가나 과학 논문의 저자가 자신의 이전 성과를 쓸데없이 자주 인용한다거나 어떤 방법이나 이론이 과학사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된 것이 아님에도 단지 흔히 쓰이는 방법이라는 점 때문에 자주 인용한다든가 하는 것을 질적으로 쉽게 구별해내지 못한다. 또 몇몇 비평가들은 문화적 차이가 편견을 갖고 결과를 보게끔 한다고도 말한다.

현재까지 분석기술은 해를 거듭하면서 몇가지 새로운 요소들을 더 고려대상에 넣으며 정제돼왔다. 인용도분석은 195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엔 분석가들이 일일이 주어진 과학논문에서 직접 인용된 참고논문의 숫자를 헤아려서 쓰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해 방대한 규모의 자료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특허에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방대한 기초자료들 속에서 독창성이 풍부한 아이디어와 그렇지 않은 다수를 구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인용분석법은 신뢰도 높은 기술력 측정도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 지배 과학기술 전분야로

CHI의 최근 연구결과는 기업들이 '총체적 기술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측정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자료를 끌어모았다. 그 방법의 핵심을 설명하면 먼저 한 기업이나 산업체 해당국가에서 만들어 낸 특허의 수를 고려하고 여기에 그 작업의 기여도를 측정하기 위해 인용도를 곱한다.

'테크라인'으로 알려진 CHI의 새로운 데이터 베이스는 현재 83년부터 89년까지의 자료를 모두 정리했고 해마다 새로운 자료를 추가로 입력하고 있다. CHI의 나린 박사는 테크라인이 미국과 일본의 산업경쟁을 아주 불길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기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IBM은 겨우 현상유지를 하고 있을 뿐인데, 히타치는 계속 상승 일로에 있다. 주가를 보아도 마찬가지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린 박사는 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CHI의 비관적인 분석결과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분석가들은 문화적 차이가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역사학자인 얼 킨몬트는 일본의 특허가 기술적인 우위의 증명서이기보다는 과대광고에 가깝다고 비난한다. 그는 자신이 최근 쓴 글에서 결국 이런 태도가 일본을 실제이상으로 키우고 미국을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HI의 내린 박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일본의 기술진보는 스스로 증명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왼쪽에는 일본산 자동차가게, 오른쪽에는 일본산 전자제품가게가 늘어서있다. 우리의 연구결과는 그런 종류의 발명품들이 지금도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세계기술지배에 구멍이 났다는 증거는 필라델피아 연구소의 분석에서도 찾을 수 있다. 80년대 후반에 미국 논문의 인용도는 7%나 떨어졌다. 그나마 우위를 지킨 것은 물리학 농학 의학 생명과학 분야였다. 특히 기술분야는 명백히 퇴조하고 있다.

논문인용도의 하락경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명가들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초연구에의 의존도'를 과거에 비해 높였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의 이론이 실용가능한 기술적 성과로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과거에는 백년단위에서 수십년 단위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 그 간격이 1년 혹은 수개월에 불과하므로 '기초과학에서의 쇠퇴는 기술개발에 곧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미국과학 기술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특허권 신장세
 

199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윌리엄 브로드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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