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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진현상소를 사라지게 할까?

필름 대신 디스크를 사용하는 전자스틸 카메라

한마디로 VTR과 텔레비전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자스틸카메라는 점차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필름이 필요없는 새로운 세대의 카메라가 처음 개발된지 벌써 10년을 맞이했다. 당초 이 카메라가 선을 보였을 때는 종래의 이른바 은염(銀鹽)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에 비하면 값이 너무 비싸 일반소비자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값이 싼 대중용의 기종이 개발되면서 90년대에는 빠른 속도로 일반 소비층으로 번져 나갈 전망이다. 1839년 프랑스의 타게르가 사진을 발명한 이래 은염사진은 기나 긴 세월을 군림해 왔으나 '전자스틸카메라'의 등장으로 1백50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마비카 쇼크

지금부터 50여년 전 오스트리아 특허청에 자기(磁氣)로 화상을 기록 보존하는 방법이 특허출원되었다. 그 뒤부터 자기기록은 음성이나 영상(무비)이라는 연속되는 시간을 기록하는데 쓰이게 되었다. 1960년대로 들어서면서 고체 촬상소자 발명을 포함한 반도체의 발달과 이런 반도체를 이용하는 전자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미국의 대메이커들은 전자스틸카메라를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연구개발성과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기업들이었다.

1981년 8월 일본의 소니사는 도쿄 도라노몽호텔에서 은염필름이 필요없는 전자스틸 카메라의 시작기(機) '마비카'를 처음으로 발표함으로써 세계의 카메라업계는 물론 현상업계와 DPE업계에 심각한 충격을 던졌다. 당시의 카메라업계는 조작하기 쉬운 상품을 만드는데만 주력해 왔을 뿐, 현상이라는 공정은 간단히 생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이른바 '마비카 쇼크'는 캐논을 비롯한 여러 카메라메이커들로 하여금 전자스틸카메라개발에 뛰어 들게 했다. 미국 이스트만 코닥이나 일본의 후지필름 등 필름업계도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은염필름기술과 현상소가 이 새로운 카메라의 등장으로 하루 아침에 붕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전자스틸카메라는 이를테면 비디오테이프레코더(VTR)와 텔레비전의 조합과 같은 것이다. 렌즈가 잡은 영상은 '전자 디스크'라고 불리는 전하결합소자(電荷結合素子, CCD)라는 빛에 민감한 반도체에 모아진 뒤 이 영상은 전자신호로 바뀐다. 이 신호는 다시 필름통처럼 카메라속에 삽입된 소형 플로피디스크에 자기(磁氣)형태로 기록된다.

그런데 CCD는 대규모집적회로(LSI)의 사촌쯤 되는 일종의 반도체다. 겉보기에도 일반 집적회로(IC)나 LSI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CCD는 길이가 10여㎛(μ은 1백만분의 1)밖에 안되는 미소한 감광소자(화소라고도 함)로 되어 있다. 새끼 손톱크기의 실리콘 칩위에는 이런 소자가 몇천에서 몇십만개까지 집적돼 있다.

한개의 감광소자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전자를 한개 가진 n형 반도체와 전자가 한개 모자라는 p형 반도체로 된 pn접합 다이오드로 구성돼 있다. 이런 소자는 빛이 도달할 경우, 그 빛의 양에 비례하는 전하가 축적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감광소자를 배열한 곳에 빛이 닿으면 강력한 빛이 닿은 곳에는 큰 전하가, 약한 빛이 닿은 곳에는 작은 전하가 축적돼 결국 하나하나의 감광소자에는 화상정보가 전하의 모양으로 쌓이게 된다.

이런 전하를 덩어리째 고스란히 외부로 들어낼 수 있다면 화상정보를 훼손없이 옮길 수 있는 것이다. CCD를 전하결합소자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하나하나의 감광소자는 이를테면 눈의 시세포이며 CCD는 시신경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신호인 이 화상정보는 화상재생회로를 통하면 본래 물체의 정지화상으로 재현된다. 또 빛과 전기신호를 되풀이해서 변환하면 움직이는 화상도 얻을 수 있다. 이런 CCD를 촬상관대신 렌즈 뒷쪽에 설치하면 로봇의 눈으로 사용되는 카메라를 만들 수 있다.
 

소니사의 마비카^기록용 카메라(6만9천8백엔)와 재생용 어댑터(3만엔)가 분리돼 있다.


L. A. 올림픽 때 첫 선

당초 소니는 마비카의 시작기를 발표할 때 1983년에는 이 카메라를 시판할 계획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막상 생산개발에 들어서면서 영상의 해상도가 떨어지고 판매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두가지 장벽에 부딪쳐 약속시간을 어기게 되었다. 이렇게 소니가 주춤하고 있는 동안 캐논을 비롯한 경쟁사들이 맹렬한 속도로 추격해 왔다.

마침내 1984년 미국 L. A. 올림픽에서는 캐논이 소니를 물리치고 선두에 나섰다. 캐논의 전자카메라는 컬러와 흑백을 모두 촬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소니는 겨우 흑백영상을 찍는데 그쳤던 것이다. 더욱이 약 40만개의 화소를 가진 고(高)집적 CCD는 소니의 시작기보다 훨씬 선명한 영상해상도를 제공했다.

L. A. 올림픽은 전자카메라의 장점을 과시하는데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스피드였다. 예컨대 사진기자들은 영상을 담은 플로피디스크를 스캐너에 넣음과 동시에 그들이 찍은 사진을 텔레비전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올림픽에 파견된 요미우리신문 사진기자들은 캐논 전자카메라로, 아사히신문 사진기자들은 소니의 전자카메라로 경기장면을 찍은 뒤 플로피디스크에 담긴 사진, 즉 데이터를 전화선을 이용해 도쿄 본사로 전송했다. 이렇게 전송된 사진은 막바로 자동동판제작장비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전자스틸카메라 앞에는 일반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걸림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카메라 값만 해도 2천6백달러나 되었고 찍은 영상을 보는데도 2천7백달러나 하는 플레이백장치를 필요로 했다. 이 밖에도 인화된 사진을 보려면 7천달러나 하는 컬러프린터가 있어야 했다. 우리 돈으로 거의 9백만원이나 되는 돈을 내고 이런 카메라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미국이나 일본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일반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가격이 5백달러 정도로 떨어져야 했다.

대신 사진기자들이 뉴스현장에서 필름을 현상하는데 시간을 뺏길 필요없이 비디오 플로피에 담은 사진을 전화선을 통해 본사로 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스틸비디오컬러사진을 송수신하는 이른바 트랜시버(무전 송수신기)는 값이 대당 2만달러나 되었다.

1986년 6월 캐논사가 최초의 전자스틸카메라 RC-701을 상품으로 내놓았을 때 미국과 일본에서는 사진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없다면 전자스틸카메라는 결코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평도 나왔다. 사실 당시의 사진의 질은 싸구려 디스크필름 카메라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 겨우 36만개의 화소를 가진 CCD의 영상은 1천8백만개 이상의 화소를 가진 코닥크롬 슬라이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촬상소자의 사양은 회사마다 달랐다. 캐논과 후지필름이 38만화소를 가진 3분의 2인치 CCD, 일본광학과 마쓰시타가 30만 화소를 가진 3분의 2인치 CCD를 사용하는 한편 카시오는 28만화소를 가진 2인치 금속 산화막반도체(MOS)형 촬상소자를 채용했다. 카시오사는 전자스틸카메라란 결국 텔레비전화면에서 사진을 보는 것이므로 28만 이상으로 화소수를 늘린다고 해도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포화상태가 되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라로이드사는 화소를 1백만개는 가져야 스냅쇼트 품질정도의 영상을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1천만개의 화소를 가진 영상칩이 개발된다면 종래의 은염카메라는 설 땅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캐논사의 스틸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사진. 영상칩(CCD)은 넥타이핀보다 크지 않으나 그 표면에는 780×488 격자속에 약 38만개의 화소가 있다.


텔레비전형 인간

한편 전자스틸카메라의 밝은 앞날을 장담하는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의 일반소비자들은 텔레비전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근거로 일반인은 사진전문가가 원하는 정도의 영상의 질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텔레비전 화상을 기준삼아 사진의 질을 가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메라의 값이 적당하고 어떤 특징을 제공한다면 소비자들은 전문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화질도 받아 들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새로운 사진술은 독특한 특징을 몇가지 갖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면 사진에 '무지한' 사람들도 '전자 암실'을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찍은 사진을 확대하거나 시각적으로 질을 높이고자 시도할 것이고 컬러복사기처럼 작동하는 프린터로 자기 작품을 인쇄하고자 할 것이다. 게다가 전자사진은 일반 소비자에게 잘 찍힌 사진만 골라서 인쇄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장점을 높이 사서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기도 하는데 그들은 나중에 필름처리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요즘 마구 찍은 필름을 맡긴 뒤 1만원이나 2만원을 지불하고 한뭉치씩 사진을 찾아 오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오래 보관할 만 큼 잘 찍힌 사진은 불과 몇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전자사진술은 'TV 프로젝터'라는 탈을 쓰고 슬그머니 소비자들의 뒷문으로 걸어 들어 올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터는 슬라이드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설치하는 수고를 덜어 준다. 일본의 후지필름은 사진을 표준형 비디오플로피에 옮긴 뒤 텔레비전 화면에서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값싼 기계를 내놓았다.

전자스틸카메라의 선발메이커인 캐논은 이 카메라의 고객을 주로 업계에서 찾고 있다. 그중에는 퍼스널컴퓨터와 레이저프린터를 이용해 뉴스레터 안내책자 등을 제작하는 업계 그리고 데스크톱출판 업계가 있다. 예컨대 패션업계의 4색도 계간지인 '패션 비디오'잡지는 전자카메라용 프린터로 컬러사진을찍어내고 있다.

한편 이 카메리는 미국의 부동산업계에서도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의 사진을 금방 전산화된 목록에 첨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민간항공사와 여행사들은 인기있는 휴양지의 모습을 전자 사진으로 수록한 뒤 이것을 플로피디스크에 복사, 지사에 보내고 있다. 지사에서는 텔레비전을 이용, 이 생생할 사진들을 방영해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카메라는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한단계 한단계씩 기록하거나 고층빌딩의 건설현황을 기록해 두는데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고차업계에서도 이용하기 시작했다.

캐논의 업무용시스템은 컬러화상을 전기적으로 자기디스크에 기록하는 스틸비디오 카메라, 레코더, 전송기 트랜시버, 프린트 재생기 등 네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심장부인 스틸비디오카메라는 수평방향 7백80화소의 고해상도 CCD를 이용, 화상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플로피에 기록한다. 이 플로피는 한장에 50화면을 기록하고 최고 1초에 10개의 화면을 촬영할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녹화 및 재생일체형의 전자스틸카메라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본체에 녹화 재생기능을 주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나 어댑터(adapter)없이도 직접 가정의 텔레비전에서 컬러사진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값도 10만엔 안팎으로 떨어뜨려 일반소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자스틸카메라가 과연 얼마나 일반에게 보급될 것인지 그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종전보다 뛰어난 기능과 가치를 창출한다면 일반소비자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전자카메라는 VTR와 마찬가지로 대형화면으로 치닫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자기가 촬영한 것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자사진의 참여로 사진문화에도 다양화와 개성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
 

카메라의 뚜껑을 열면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사각형)가 금방 눈에 띈다. 또 파인더와 변환기도 장착돼 있다.
 

199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현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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