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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유·학·현·장·에·서·는 응용천재 일본, 기초연구에 눈돌려

일본의 이공계 대학 연구의 특징은 실험중시와 조수제도 피라미드구조의 연구실로 압축할 수 있다.

올해로 나의 일본유학생활도 6년째에 접어든다. 돌이켜보면 85년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대부분의 이공계생들이 선택하는 미국 대신 일본을 유학지로 결정한 데는 나름대로 몇가지 판단기준이 있었다.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내가 연구하고자 했던 주제다. 나는 박사과정에서 석사논문주제로 다뤘던 '초전도공학'을 계속 공부할 작정이었는데 당시 세계적인 조류를 보면 미국보다 일본이 이 분야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정부가 초전도공학연구 지원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있던 반면 일본은 그들의 특성대로 초전도응용공학이라는 방향에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도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84년쯤이었던가, 우연한 기회에 나는 '일본이 이미 70년에 로켓을 자체발사했다'는 내용의 TV방송물을 접하게 됐다. 그 보도는 내게 일본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공학분야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강한 기억을 남겼다. 게다가 인력이나 자원이 모두 풍부한 미국과는 달리 특별한 천연자원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공학에 대한 접근방법이 미국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곧 그들의 경험이 조건이 비슷한 우리에게도 참고될 만하리라는 것으로 이어졌다.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선택한 학교는 도쿄대학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4년간 고온초전도체의 응용과 초소형기기(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 MEMS)분야를 연구하게 됐다.
 

1877년에 개교한 일본국립 도쿄대


피라미드형 연구실

일본이공계 대학 연구의 특징은 실험을 중시하는 풍토와 조수(助手)제도, 피라미드구조의 연구실로 압축할 수 있다.

학부생은 3,4학년의 오후시간을 거의 실험실에서 보내며 4학년 2학기에는 각각 대학원 연구실에 배정돼 본격적인 졸업논문의 연구를 시작한다. 물론 졸업논문발표회가 있어서 소정의 기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졸업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졸업논문연구생은 대학원생의 연구 일부를 맡아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실험방법, 보고서의 작성법, 발표방법, 연구에 임하는 자세들을 배우게 된다.

대학원의 연구실은 교수를 필두로 조교수 조수 석박사과정대학원생 졸업논문연구생으로 이어지는 종적 구성인데 모두 합하면 한 연구실의 식구는 10명정도다. 연구실의 수장(首長)은 교수지만 실험이나 학생의 연구지도 등 실제활동은 상대적으로 젊고 활동적인 조교수와 조수가 맡는다. 얼핏 생각하기엔 이런 수직구조가 경직된 연구분위기를 낳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연구를 충실히 하는데 도움되는 부분이 크다. 우리나라 대학원 연구실의 경우 대개 한 사람의 지도교수 밑에 석박사과정생 10여명이 소속되는데 비록 석사위에 박사과정생이 있다고는 해도 지도에 책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대학원생은 졸업논문연구생의 도움도 받으며 교수 조교수 조수의 지도를 받게 된다.

내가 일본대학의 연구체계에서 특히 인상깊게 느낀 것은 조수제도다. 조수는 교육공무원으로서 대부분 학사 석사학위 혹은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연구실의 실험, 사무 등을 도맡아 꾸려 나간다. 조수는 연구실의 실험을 수년 혹은 수십년간에 걸쳐 해왔으므로, 대학원생의 실험에 대한 지도와 상담을 해준다.

박사과정을 마친후 나는 일본의 대기업인 히타치사(社) 중앙연구소에 입사했다. 사실 일본유학을 준비할 때부터 기회가 닿는다면 기업연구소에 입사해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대학연구소와 기업연구소의 역할이 사뭇 다르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업연구소의 연구는 공장으로부터의 의뢰연구, 연구소에서 자발적으로 기획한 자발연구, 그리고 국가주도의 프로젝트 연구로 나뉘어지는데 최근에는 자발연구를 늘리는 경향이다. 연구비투자는 업종별로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최상위급의 제약회사가 매출액의 30%, 전기 기계회사가 10%를 연구비로 투자하고 있다.

여기서 직접 생활하며 다시 느끼는 바이지만 일본의 산업기술 분야 연구에서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태도는 각각 기초와 응용으로 서로 역할이 분담돼 있는 것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들이 응용뿐만 아니라 기초연구에도 투자를 확대하는 경향이다.

물론 일본의 성장이나 그 동력이 됐던 기업연구소에 대해서는 과장된 신화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일본의 기업연구소는 자기네 목표를 분명히 정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탁월하다. 이들은 자기네 연구결과물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응용될 것인지를 철저히 타산한다. 그만큼 연구에 들어가기 전의 시장성 조사나 구미의 앞선 사례연구 등이 철저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으로 이런 태도는 기초과학분야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응용성이 강한 일본의 초소형기기

초소형기기(MEMS)는 1980년대 전반기부터 연구가 시작된 분야로서, 반도체 집적기술을 이용해 크기가 수십㎛밖에 안되는 센서 또는 모터 액추에이터(actuator) 등의 구동(驅動)기기를 제작하는 분야다. 레이저 등을 응용한 광학(光學), 세포를 다루는 의공학 등이 발전함에 따라서 극히 미량의 물리량을 측정하거나 수㎛의 대상물을 조작하고자 하는 요구가 증가했다. 이런 요구와 더불어 최근의 가전제품을 위시한 기기의 소형화 즉 경박단소(輕薄短小)추세가 초소형기기분야의 연구 배경이다.

초소형기기분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센서 논리회로 구동기기를 하나의 소자에 집적해서 감지 사고 행동이 일체화된 시스템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능이 우수한 센서와 구동기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센서에 관한 연구로는 압력센서 가속도센서 가스센서 광센서 자기센서 등이 있으며 이 중 압력, 가속도센서는 제품화 연구가 이미 시작됐다.

구동기기에 관한 연구는 5년전부터 시작돼 모터 선형운동기기 펌프 등이 연구됐다. 대표적인 연구사례로는 먼저 회전자 직경이 120㎛이며 회전속도가 1만5천r.p.m.인 정전형(靜電型)모터와 절연체인 필름에 줄무늬형태로 전기를 띠게 해 선형운동을 시키는 정전형선형운동기기를 들 수 있다. 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유체에 전기장을 가해 분극(分極)시킴으로써 유체를 이동시키는 무 (無) 밸브의 EHD(Electro Hydro Dynamics)형 펌프도 있다.

이 분야에 응용되는 힘으로는 정전력 전자력 열응력(熱應力) 등이 있으며 재료로는 실리콘 등의 반도체재료뿐만 아니라 압전소자(壓電素子) 형상기억소자(形狀記憶素子) 고온초전도체(高溫超電導體) 등 여러종류가 검토되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를 세분해 보면 재료(신재료 제작) 제작방법(박막형 에칭 조립) 기기의 설계와 수치계산법에 의한 성능확인, 기기의 실험적인 평가와 응용에의 검토 등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초소형기기분야는 물리 화학 재료 기계 전기 전자 및 의공학 등 다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위에 적은 분야를 총망라하여 연구팀을 구성하는 예가 많다.

일본의 초소형기기연구 특징은 재료로서 실리콘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를 검토하고 있으며, 기기의 크기가 수십㎛부터 수㎜정도로 곧 응용될 수 있는 기기에 대한 연구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분야가 통산성(한국의 상공부에 해당)의 연구 프로젝트로 정해져서 더 많은 대학과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미국의 미소기기 연구 특징은 재료면에서 실리콘이 중심이며 대학중심이라는 점이다. 국립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으로 여러 대학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연구로는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 네덜란드의 트웬테 대학을 들 수 있는데 이 중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금속 혹은 고분자재료를 사용한 초소형 기기를 제작했다.

그동안 일본생활에서 주의깊게 본 것은 과학분야에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자기계발하는 저변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과학지식을 알기쉽게 가공하고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과학관련 대중매체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공부하는 태도를 가진 일본인들과 이들에게 주어지는 양질의 정보, 이 둘의 상호작용이 '과학일본'의 기초는 아닐까.
 

일본인들은 전문과 비전문을 막론하고 과학기술에 관심이 크다. 사진은 87년 '신소재'전에 선보인 초전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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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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