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현대판 「지킬박사와 하이드」이야기

중성미자는 영원한 수수께끼인가?

난파직전의 에너지보존법칙을 구한 상상속의 소립자. 비록 그 존재는 확인됐지만···

벌써 61년 전인 1930년 12월 어느 날 방사성동위원소의 전문가들이 독일의 튀빙겐 시내에서 작은 학회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 알려진 β붕괴(고등학교 물리시간 때 지겹도록 들은 알파 베타 감마선중 베타선을 말한다)가 물리학의 대원칙인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현상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젊은 천재 이론물리학자 파울리(Wolfgang Pauli)교수는 동료들의 이러한 고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취리히시의 어느 무도회에서 춤을 추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물리학의 대부로 알려진 보어(Niels Bohr)교수마저도 원자핵의 세계에서는 물리학법칙이 변형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대원칙조차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타붕괴^베타붕괴가 일어나면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동시에 전자의 중성미자도 생긴다.


작은 중성입자란 뜻으로

그러나 당시 30세였던 파울리교수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깨어진 것이 아니라 β붕괴를 할 때 전자와 함께(β선은 전자가 동위원소로부터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직껏 인류가 모르고 있는 입자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 미지의 입자가 갖고 나가는 에너지를 검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에너지 보존의 대원칙은 원자핵의 세계이든 지구상 이든 넓디 넓은 대우주에서든 무관하게 항상 성립하는 대원칙이라고 확신했다.

또 그는 이 검출되지 않은 입자는 전기도 띠지 않고 있으며 다른 입자들과는 전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는 묘한 입자라고 주장했다. 어떤 실험장치에 의해서도 검출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질량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있더라도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고 본 것이다.

뒤에 물리학에서는 이 입자를 '중성미자'(neutrino, 작은 중성입자라는 뜻)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성미자는 발견되기 전에 먼저 그 존재가 예언된, 즉 이론이 잉태한 첫 소립자가 된다.

이 중성미자는 그 존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미미하다.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이 어찌나 작은지 지구를 꿰뚫고 지나가면서도 그 존재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그 만큼 약한 작용을 한다는 얘기다.

1989년에는 두 종류 이상의 중성미자가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레더만교수(Leon Lederman)가 그 사람이다. 그는 중성미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 것과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소립자는 절대로 검출하지 못한다. 이러한 소립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일 수 없다. 따라서 이는 공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중성미자는 겨우 존재하는 실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힘겨운 탄생을 한 중성미자는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물리학자들의 힘겨운 대상으로 남아 있다. 아직 질량이 얼마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성미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은 수소핵융합반응에 의해 열을 발생시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햇빛을 내고 있다. 이 반응에서 중성미자는 산파역할을 한다는 게 밝혀졌다. 사실상 태양은 우리에게 1초에 1백억개의 중성미자를 공급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나 읽는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약 1백억개의 중성미자가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인체를 뚫고 지나가고 있지만 워낙 미미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약하고 미미하기 때문에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질량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1초동안에 1㎠당 1백억개가 쏟아져

파울리교수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예언한 뒤 26년이 지난 1956년의 일이다. 이때 미국의 코완교수와 라이너스교수에 의해 중성미자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그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사반나 리버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사상 처음으로 발견했다. 4천2백ℓ나 되는 발광액체를 사용해 위업을 이룬 것이다.

중성미자가 발견된지도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중성미자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 있다. 설상가상으로 데이비스 교수(R.Davis)에 의해 또 다른 수수께끼가 제기됐다.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의 문제(solar neutrino problem)로 알려진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태양은 현재 수소를 태우면서 빛을 내고 있는 별로 그 표면온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바콜(John Bahcall)은 10년이란 세월동안 태양의 핵반응을 연구했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 어떤 식의 핵반응이 태양속에서 일어나고 있는가를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었다. 그의 계산은 널리 알려져 있는 태양의 표면온도를 정확히 재현하고 있으므로 일단 신뢰할 수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는 1초동안 약 1백억개(1㎠당)가 지구에 도달하고 있다. 이 중성미자는 태양의 핵융합반응에 의해 생산된다. 따라서 태양중성미자의 방출량은 태양표면온도에 의해 결정되므로 바콜의 계산은 거의 틀림없다고 믿어도 좋다.

한편 데이비스박사는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포착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에 있는 홈스티크(Homesteak)광산 땅속 깊은 곳에 염소(화학기호로 cl)를 가득 채운 탱크를 설치했다. 중성미자가 이 염소와 반응을 일으켜서 아르곤(Ar)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바콜 박사가 계산했듯이 1초동안에 1백억개의 중성미자가 태양으로부터 지구(1㎠당)에 도달 한다면 하루에 염소원자 하나가 아르곤 원자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박사는 이렇게 아르곤으로 변하는 원자핵반응을 2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서 연구했다. 그러나 예상밖의 결과가 얻어졌다. 태양에서 지구를 향해 오는 중성미자의 3분의 2는 오는 도중에 없어진다는 결과였다. 데이비스박사는 자기자신의 실험과정에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가능한 모든 검증을 해 보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바콜박사의 계산이 틀렸다는 얘기인가. 태양이 방출하는 중성미자의 수가 정말로 이론치보다 3분의 2정도 적다는 것인가. 이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정도로 중성미자의 방출량이 줄어들려면 태양은 더 막대한 금속성분(천체물리학자들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를 금속이라고 한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태양 하나만이면 또 모르지만 태양과 같은 수많은 별들 역시 그렇게 많은 금속함유량을 가질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모든 주계열(主系列)의 별들 역시 금속성분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실제 관측결과와 어긋난다.

따라서 태양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수도 맞고 데이비스박사의 실험 역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양시론적으로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다.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3분의 2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태양이 방출하는 중성미자의 수수께끼'(solar neutrino puzzle)다. 수수께끼란 항상 해답이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 해답은 대충 아래와 같다. 중성미자는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 이상이라는 가정이 이 난제를 풀어 주었다. 전자와 반응을 일으키는 중성미자가 있고 그렇지 않는 중성미자가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의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로 당시 컬럼비아대학 교수였던 레더만 슈발츠 스타인버거 박사 등 3인은 1989년도에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 한 바 있다.
 

돌아가는 팽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는 당대의 대물리학자 파울리(왼쪽)와 닐스 보어


지구로 오는 동안「하이드」로 변해

전자와 반응을 일으키는 중성미자를 | 지킬>;, 그렇지 않는 중성미자를 |하이드>;라고 하자.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한 학생이면 알겠지만 |>;의 기호는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데 대개 Ket라고 불리어진다. 이 하이드와 지킬은 영국소설가 스티븐슨이 쓴 탐정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따 왔다.

낮에는 더없는 인격자인 지킬박사가 밤이 되면 추악하고 포악한 하이드로 변해 닥치는대로 살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기 바란다.

태양속에서 중성미자가 발생될 때는 전자와 더불어 나온다. 따라서 이때는 |지킬>;이다. |하이드>;는 뮤입자라는 전자와 비슷한 입자와 더불어 생성돼야 하는데 태양이나 지구에는 뮤입자가 없으므로 |하이드>;일 수는 없다. |하이드>;는 뮤입자와 작용할 때만 검출이 가능하므로 전자만이 존재하는 지구상에서는 -뮤입자가 없기 때문에-검출되지 않는다. 모든 원자속에는 전자가 있으므로 모든 물질에는 전자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물질속에는 뮤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이드>;는 마치 밤에만 나타나는 소설속의 하이드처럼 좀처럼 볼 수가 없는 존재다. 중성미자 역시 탐정소설에서처럼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변신하는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듯-것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이 소련 물리학자 폰테콜브박사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소위 '중성미자의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라는 모형을 제시하게 되었다. 폰테콜브박사에 따르면 중성미자 |지킬>;은 |선>;과 |악>;이란 두 상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람은 선과 악의 양면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지킬박사같은 인격인은 악보다 선을 훨씬 더 많이 지니고 있고 하이드 같이 포악한 사람은 악을 훨씬 더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성미자 |지킬>;은 거의 선의 상태로 구성돼 있지만 |하이드>;는 거의 |악>;의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에서 출발할 때 압도적으로 |선>;이 많은 |지킬>;은 지구로 오는 동안 |악>;의 성분이 더 많아져서 |하이드>;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이드>;로 변하면 우리가 관찰할 수 없게 되므로 마치 중성미자가 중간에서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고 있다.

폰테콜브박사는 |지킬>;이나 |하이드>;는 |선>;과 |악>;의 복합체고 역으로 |선>;과 |악>;은 |지킬>;과 |하이드>;의 복합체라고 생각했다. 이는 진리를 원용하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실험적으로도 확고부동하게 입증된 개념이다. 정규대학 물리학과 4학년을 마친 학생이라면 양자역학이란 과목에서 신물이 나도록 반복해서 들었을 중복원리(super position principle)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지킬>;은 |선>;과 |악>;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을까. 여기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섞임 각도'(mixing angle)로 불려지는 이 양을 알기 위해 이론적인 연구와 실험적인 노력이 미국 유럽 및 일본에서 지금 한참 이뤄지고 있다.

중성미자는 이렇게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신비의 소립자이기도 하다. 유명한 라이너스교수(중성미자를 실험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는 수년 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중성미자 진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양쪽이 모두 높은 담인 좁은 골목길에 한 마리의 개가 걸어오고 있다. 나는 그 개를 한참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더니 가까워지면서 그 형체가 다시 뚜렷해졌다. 그런데 그 개는 고양이로 변해 걸어오고 있었다."

우주의 과거를 밝혀내고

소설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하나의 공상에 불과하지만 중성미자 |지킬>;과 |하이드>;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온 세계의 물리학계는 중성미자의 정체를 알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미시건 호수밑에, 일본의 가메오카광산 속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몽블랑 터널 속에, 소련의 바이칼 호수 밑에 검출장치를 설치하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거대한 규소결정체를 이용해 중성미자를 찾고자 하는 시도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하다. 하나의 실험을 하는데도 수십명의 박사급 인력이 수년동안 동원되며 비용도 2백억원이 넘는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과 돈과 시간을 들여 굳이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는 것일까. 그 첫째 이유는 중성미자가 이 우주가 갖고 있는 먼 옛날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뜨거운 별의 내부사정을 직접 전달해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파울리교수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예언한지도 벌써 61년이 지났다. 그동안 미국의 부룩해븐연구소 페르미연구소 그리고 유럽의 CERN에서 많은 중성미자를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특히 기여를 한 장비는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였다. 또 이 연구소들은 자체내에서 얻은 중성미자를 사용, 물질의 구조를 연구해 왔고 심지어는 중성미자천문학(neutrino astronomy)도 이제 논의되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성미자의 질량이 어느 정도인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포착하기 위해 하와이섬의 깊숙한 곳에 검출기를 설치, 지구를 뚫고 지나가는 '우주의 미아(迷兒)' 중성미자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 일은 현재 라이너스박사의 주도로 진행중이다. 한편 모스크바의 핵물리연구소팀은 북극의 얼음속을 지나가는 중성미자를 포착하기 위해 검출 장치를 설치해 놓고 있다.

그러나 하임 할라리교수가 말했듯이 중성미자물리학은 아무 것도 관측하지 못하면서 계속 발달하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우리는 중성미자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았다. 예컨대 어떻게 물질과 부딪쳐서 생성되고 없어지는가를. 또 중성미자는 좌회전(운동방향에 대해서)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나 질량을 비롯해 더 근본적인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새삼 파울리박사의 탄식이 생각난다. "질문은 많으나 대답은 없다." (Viele Fragen ! Keine Antworten !).
 

페르미연구소의 충돌과정 검출기


에너지보존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energy)

에너지가 그 형태를 바꾸거나 물체에서 물체로 옮기거나 해도 그 전체 양은 변함이 없다는 법칙.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물리법칙인데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도 한다. 이 법칙은 19세기 중엽 독일의 헬름홀츠 마이어, 영국의 줄 등에 의해 확립됐는데 한때 베타파의 등장으로 심각한 붕괴국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중성미자의 개념이 파울리에 의해 제기됨으로써 다시 물리학의 기본원리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게 되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제완 교수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