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의 최대고민인 변비를 이루는 데는 두가지 요소가 있다. 배변회수와 대변의 상태다. 이 두요소중 하나 또는 두가지 모두가 일정기간 비정상이라면 변비에 걸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상인의 배변회수는 1주일에 3~21번. 배변 회수가 1주일에 두번 이하고, 대변이 '계속적으로' 단단하고 건조하며 소량일 때는 변비를 의심해야 한다. 또 배변이 어렵고 배변 후에도 계속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느껴지면 거의 확실한 변비다. 여기서 '계속적으로'라는 표현을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시적으로 그런 증상이 나타나거나 빈번히 재발하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의 최대고민
'만병의 근원'으로 알려진 변비는 왜 생기는 것일까.
서울중앙병원 이영상박사(내과)는 "변비는 오래도록 체질 때문에 발병된다고 생각해 왔으나 최근들어 장의 운동능력 상실에 기인한다는 학설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변비의 원인은 식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식사량이나 수분섭취가 적거나 불규칙하게 식사를 하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 특히 섬유질이 적은 육류위주의 식사를 하면 변비가 바짝 다가선다.
잘못된 생활습관도 변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대개 아침식사를 마치면 강한 변의(便意)를 느끼게 되는데 이때는 바쁜 등교 또는 출근시간이다. 그래서 꾹 참고 집을 나서는 경우 변속의 수분이 장에 흡수돼 변비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운전기사에게 변비가 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참다가 배변을 하면 변이 굵어지고 건조해져 화장실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게된다. 실제로 그때의 변은 아주 부피가 커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스트레스도 변비를 일으킬 수 있다. 소화기관의 움직임은 자율신경에 의해 조절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자율신경이 혼란상태에 빠져 변비를 일으키는 것. 여행 이사 시험 때의 일시적인 변비가 이 부류에 속한다.
계속해서 누워만 지내는 사람에게도 변비가 생기기 십상이다. 자연히 식욕이 떨어지고 음식물 섭취가 감소함에 따라 장의 연동운동도 줄어들고 아울러 항문과 결장근육의 자율조정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대장근육운동에 영향을 주는 일부 약물복용도 변비를 부른다. 이들중 잘 알려진 것은 코데인 모르핀 그리고 이들로부터 유도된 지사제 등이다. 이 약들은 소장 아래 부위에서의 염류와 수분흡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변을 두껍고 건조하게 한다. 또 알루미늄 칼슘 철분(제산제와 비타민 복합제에 포함돼 있다)을 함유한 약들은 대장운동을 감소시켜 변비를 초래할 수 있다. 이밖에 심장병 고혈압치료제 안정제 항(抗)우울제 항히스타민제 근육이완제 등도 변비와 막바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약제들. 자극성 하제(下劑)를 남용할 경우에도 배변 반사신경이 손상돼 변비를 부른다.
드물지만 결장의 신경세포가 선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비환자가 될 수밖에 없는 딱한 사람도 있다. 환자의 대부분이 젊은 사람인 이 희귀병은 최초로 발견한 독일 소아과의사의 이름을 따 허시스프렁씨병이라고 부르는데, 계속적인 항문주위의 경련이 주증상이다.
양변기와 치질
서울대 의대 송인성교수(소화기내과)는 "고기나 계란 등 잔류물을 거의 남기지 않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변의를 참는 습관이 있는 사람, 식사시간이 불규칙한 사람, 육식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좋아하는 사람, 운동부족인 사람, 국문이나 물을 적게 먹는 사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변비에 걸리기 쉽다"고 들려준다.
직업별로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사무직 종사자, 운전기사가 변비에 잘 걸리고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잘 찾아든다.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10%, 여성의 37.4%가 변비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실로 뚜렷한 성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이어트에 열중인 20대 여성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자궁에 의한 장관압박을 받고있는 임산부의 경우도 마찬가지.
변비가 있으면 장내 노폐물이 쌓여 정신이 명쾌할 수 없다. 또 소장의 기능장애를 일으켜 소화불량이나 위산식도염 등을 부르기도 한다. 몸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노폐물이 신체내로 들어오면 피부가 손상되기 쉽다. 그래서 '변비는 미용의 적', '미인이 되려면 변비부터 고치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변비는 여드름이나 피부발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변비의 일반적인 증상은 늘 아랫배가 묵직하고 식욕이 없다는 것이다. 또 두통을 호소하고 하품을 연신 해대기도.
변비의 '악취미'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냥 방치하면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개 항문이나 직장 부위의 장애를 유발시키는데, 치질 항문열창 항문주위 농양, 분변매복(埋伏) 직장탈(脫) 대장의 다발성 게실증(憩室症)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괴로운' 치질은 항문관에 있는 정맥이 부푼 상태인데, 수치질은 피부로 덮여 있고, 암치질은 항문점막으로 덮여 있다. 이병은 오랫동안 배변에 힘을 들인 결과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구식 좌변기의 사용은 치질환자의 증가를 부채질했다. 실제로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쭈그려 앉는 변기에 비해 서구식 좌변기는 배변중 더 많은 힘을 쓸 것을 요구한다. 치질은 남자보다 여자가 잘 걸리고, 한번도 임신하지 않은 여성보다는 출산경험이 있는 여성에게 더 잘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항문주변 피부에 돌기들이 생기면 수치질이기 쉽다. 이때 분비물이 흐르게 되는데 그 분비물로 인해 심한 가려움증이 생긴다. 그러면 환자는 그 부위를 긁어서 출혈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경우의 가장 좋은 처치는 긁지 않는 것과 전분 등을 발라 가능한한 피부를 건조하게 하는 것이다.
암치질은 거의 고통을 동반하지 않고 증상 또한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가지 가능한 증상은 출혈인데, 보통 출혈은 배변중에 일어난다. 변을 보려고 애쓰다가 변기안에서 선홍색 혈액을 발견하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장암이라는 '망령'이 머리에 스치기 때문이다.
출혈성 암치질의 대처방안은 매우 간단하다. 대변유화제 등을 사용, 일단 변비를 완화시키는 것이 그 첫 단계다. 그리고 매일 치핵좌제를 바르고 2주일 가량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는 것이 좋다.
내치질의 합병증으로 발생가능한 치탈도 또 하나의 고민거리다. 상대적으로 커진 치핵정맥이 항문근을 밀치고 나와 마치 돌기처럼 엉덩이 사이에 나타나는 것이 치탈이다. 치탈은 배변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치질환자가 걷거나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릴 때도 발생할 수 있다. 이 병의 대처방법은 출혈성 치질의 치료법과 같다.
항문열창이란 말그대로 항문관의 점막에 생긴 길쭉한 상처를 뜻한다. 이 질환은 변비에다 치질까지 갖고 있는 환자에게서 잘 발견되지만 변비만 있고 치질은 없는 사람에게도 종종 나타난다. 열창은 대개 세균감염에 의해 촉발된다. 따라서 감염으로 인한 염증이 생기기 쉽다. 염증이 있으면 항문주변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그 세기가 경련을 일으킬 정도다. 그 고통은 배변시 최대치가 되기 때문에 기존의 변비증세가 항문열창으로 더욱 악화되는 것이 상례다. 때때로 선홍색 출혈을 동반하기도 한다.
항문열창을 잘 다스리려면 좌제를 투여하거나 항(抗)염증제를 포함한 크림을 발라 상처를 되도록 빨리 아물게 해야 한다. 동시에 변을 유화시키는 물질도 투여돼야 할 것이다.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는 것 또한 치료의 첩경이다. 그러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거나 쉽사리 낫지 않는 열창이라면 절제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질경이씨가 특효
항문주위 농양은 항문주위의 조직이 세균에 심하게 감염됐을 때 생긴다.
항문주위에 농양이 있는 사람들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데 때로는 열이 나기도 한다. 처치는 농양부위의 절개와 농양의 배출로 완료된다.
분변매복(fecal impaction)은 직장내에 많은 양의 단단한 변이 있어 의사의 도움없이는 변을 볼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보통 하루 이틀간 완전한 변비증세가 있은 후 수일동안 장운동이 점점 저하되는 것이 이 병의 시나리오. 장운동은 그야말로 완전히 마비돼 변비약이나 글리세린좌약을 투여해도 변의 '매복상태'는 풀리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극히 제한된 곳에서 신체활동을 하거나 장거리 자동차여행을 하거나 바륨을 이용해 소화관에 대한 X선 촬영을 했을 때 나타나기 쉽다.
직장탈(直腸脫)은 항문륜(anal ring)을 통해 직장(대장의 가장 밑에 있는 부위로 항문과 연결돼 있다)이 신체 밖으로 나온 상태다. 이 어처구니 없는 경우는 만성변비에 걸린 사람이 용변중에 너무 힘을 쓸때 발생할 수 있다. 그 압력이 직장을 몸밖까지 내몰은 것이다. 특히 직장을 지지해 주는 신체구조가 허술하고 배변의 보조근육이 약한 젊은 층에서 잘 발견된다. 결국 치료는 직장을 제자리에 옮겨놓고 외과적으로 고정시켜주는 방법 뿐이다.
대장의 다발성 게실증은 대개 만성변비에 기인한다. 실제로 변비가 드문 지역에서는 이 증상 또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장의 일부가 주머니처럼 튀어나오는 게실증은 2차적인 합병증이 문제다. 합병증은 염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게실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염증은 지속적인 통증을 수반하는데 때때로 열 설사 경련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끔 게실염 부위에 구멍이 뚫려 복막염이라는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게실염은 생각보다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항생제를 복용하고 염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죽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섭취하면 된다. 그 후에는 섬유소가 풍부한 식단을 짜고 변비치료에 관심을 기울이면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게실에 구멍이 뚫렸거나 게실염이 수시로 재발하면 수술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변비를 발단으로 해서 생긴 여러 합병증들을 알아 보았다. 그렇다면 그 중앙에 있는 변비는 어떻게 퇴치해야 하나.
웬만한 변비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다.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즐겨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변비에 섬유소가 '약'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섬유소가 소화관 운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대변의 양을 늘려줄 뿐 아니라 소화관 통과시간을 단축시켜 주기 때문이다.
섬유소가 풍부히 함유된 식품으로는 야채 과일 현미 통밀 밀기울 등이 꼽히고 있다. 이둘중 가장 좋은 섬유소원은 밀기울(하루에 22~23g 섭취하면 좋다)이다. 또 완두콩 감자 딸기 옥수수 쌀겨 질경이씨(車前子)도 섬유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각종 섬유소음료가 시판되고 있으므로 섬유소를 섭취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 소화기전문 의사들은 당근즙이나 사과즙을 하루 한컵씩 마실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렇게 식물섬유를 마시면 변비는 물론이고 비만 당뇨 담석 등의 예방효과도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식물성 섬유소가 많이 함유된 질경이씨 쌀겨 장군풀 이질풀 나팔꽃씨 등을 이용, 변비약을 추출해내기도 한다. 변비환자가 많은 미국에서도 쌀겨나 질경이로 만든 변비약은 이미 약효를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식물성 변비약은 그 속에 함유된 셀룰로오스 성분이 장관내의 수분을 흡수, 변의 양을 늘려주는 게 약효의 비결이다. 그러면 장관벽에 자극이 전해져 연동운동이 촉진되고, 식물성 점액이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변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촉진되는 것.
변비약은 주의해서 사용해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변을 보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기상 후 바로 물이나 우유를 한컵 마시면 위를 자극, 결장(結腸, 대장의 맹장과 직장을 제외한 가운데 부분)의 운동을 촉진시켜 배변이 훨씬 용이해 진다.
변비는 걷기 복근운동 계단오르기 등 가벼운 운동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복근(服筋)은 변을 내 보내는데 직접 관계하고 있으므로 복근운동을 매일 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윗몸일으키기는 불필요한 허리살을 빼줄 뿐 아니라 변비예방과 치료에 적격이다. 자동차를 장시간 운전하는 사람에게 변비가 잘 나타나는 것과는 반대로 잘 걷는 사람에게는 변비가 피해 간다. 그러나 심한 운동은 오히려 변비를 악화시킨다.
변비가 있는 여학생은 지나친 다이어트를 삼가해야 한다. 동시에 과식도 삼가야 한다.
그러나 일단 변비증세가 확고해지면 자가요법만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의사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변비가 단순히 대장기능의 장애이상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암이나 게실염의 '신호탄'증세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변비때문에 내과병원을 찾으면 제일 먼저 진단을 받게 된다. 의사는 틀림없이 병력(病歷)과 식습관 등을 물어올 것이다. 또 직장검사 대장검사 등이 이뤄지는데 이때 내시경이나 X레이 등이 활용된다.
변비로 확진되면 변비약을 복용하게 되는데, 반드시 전문의사와 상담을 거친 뒤에 먹어야 한다. 실제로 변비약으로 팔리고 있는 것들은 한두차례의 변비를 해결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계속적인 사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장운동의 약물의존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과량 복용했을 때는 장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다.
보다 '적극적인' 변비치료법으로 6년전부터 국내에 도입된 것이 장세척치료. 장내에 쌓인 각종 독소를 세척을 통해 제거한다는 이 요법은 현재 치열한 찬반양론에 휩싸여 있다. 찬성측의 주장은 세척에 사용하는 물질이 정제된 순수한 물이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고 장에 쌓인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해 주면 변비는 물론이고 다른 질병까지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다. 고려대 의대 박영대교수(내과)의 얘기를 들어보자.
"장세척은 그동안 대장의 내시경검사나 X선검사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를 변비를 비롯한 소화기병 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얘깁니다. 뿐만 아니라 효과도 의심스럽습니다. 장세척을 받은 뒤 변비가 완쾌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더 두려운 것은 대장암이나 장협착 등을 변비로 오진, 장세척을 실시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심각한 위험이 따르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