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지방분산을 재촉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보화의 지역격차로 인해 대도시로의 역류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데…
요즈음 '정보화''정보시대''정보사회' 등의 단어를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인 정보화는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 관련기술의 발달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이 우리의 가정 학교 회사 더 넓게는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정보 통신기술을 자연과학이나 공학적인 관점에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분석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다가올 정보사회는 흔히 자원고갈, 공해문제, 도시과밀문제 등 각종 산업사회의 폐해를 제거하고 인류에게 더 많은 복지를 가져다 줄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도시집중의 해소에 관해서 최근에는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정보화가 인구와 산업을 도시로 더욱 집중하게 할 수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도권의 과밀로 대표되는 도시집중문제를 심하게 겪고 있고 올해부터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될 예정이어서 정보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시점에서 정보화가 도시집중 혹은 분산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검토할 것이 요청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특성에 근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단적으로 말해서 정보를 수집 저장 처리 전달하는 과정에서 속도 용량 가격면의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와 주변기기의 급속한 발달로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통신위성 해저광케이블 등 통신기술의 발달로 동시에 많은 양의 정보를 눈깜박할 사이에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근래에는 컴퓨터와 통신이 하나로 결합되어 과거와는 달리 정보의 처리와 전달을 동시에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비용도 점점 저렴해져 많은 사람이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개인용컴퓨터 가격과 국제통신비용을 불과 몇년전과 비교해보면 그 추세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사회활동에서 거리 시간 및 양(혹은 무게)의 개념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거리 시간 및 양은 커질수록 다루기 힘든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인류역사는 어떤 면에서 이러한 시간과 거리 및 양(혹은 무게)이 제기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한 장소에서 모두 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끊임없이 사람과 물질 그리고 정보의 이동이 있어 왔으나 거리가 멀고 부피가 클수록 이들의 운반은 어렵기 때문에 인류는 끊임없이 이들을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여 왔던 것이다.
교통과 통신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물질과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산업사회에서는 이들의 운송을 위한 교통부문이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지만, 정보가 자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정보사회에는 정보의 전달을 의미하는 통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특히 최근의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은 정보의 처리 및 전달과정에서 시간과 거리 및 용량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 많은 양의 정보를 아무리 먼 곳이라도 거의 실(實)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교통의 필요를 감소시키게 된 것이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도 뉴욕 증권시장의 정보를 원하는 즉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정보화가 도시집중을 해소하고 지방분산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바로 이와 같은 정보통신기술의 속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 정보사회로 진입해 감에 따라 물질이나 에너지보다는 정보가 더욱 중요한 자원이 되고, 농어촌에서도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이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구태여 주택가격이나 물가도 비싸고 공기도 나쁜 도시에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농어촌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전화사용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이 발달된 통신수단은 사람이 직접 가거나 물건을 보내야하는 필요성을 감소시켜 많은 사람들을 공해가 심하고 살기 힘든 도시에서 거주할 필요를 줄여준다. 이러한 추세는 화상회의나 화상전화 등의 발달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은 과거산업사회의 대표적 산물인 중화학공업제품과 같이 부피가 크고 무게도 무거운 것이 아니라 서비스상품이나 반도체, 집적회로와 같이 무게가 가볍거나 전혀 무게가 없는 상품과 서비스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의 운송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아 이들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시장이 가까운 도시에 둘 필요가 없어진다. 더욱이 이러한 고부가가치상품의 생산 및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높은 기술을 소지한 고급인력들이므로 복잡하고 환경이 좋지 않은 도시보다는 자연환경이 좋은 전원에 근무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고 자연히 공장들은 도시를 피하여 농촌을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미래학자들은 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도시집중은 감소하고 인구와 산업은 농촌지역으로 분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보화의 지역격차
그러나 근래에는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정보화가 도시집중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 이러한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이들의 반론에 따르면 정보화는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모두 같을 수는 없으며, 오히려 정보화는 대도시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정보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하여 도시로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정보가 점점 상품화되고 정보활동이 점점 상업화됨에 따라 정보 및 정보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여건은 대도시에 국한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정보가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 판매되는 경향이 높고 정보를 수집 가공 처리 축적 전달하는 정보활동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다시 말하면 이러한 정보활동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정보를 획득하거나 정보활동을 의뢰할 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또한 정보화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위성수신기 각종 통신기기 등 정보통신기기와 네트워크(통신망) 같은 기반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정보 및 정보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업은 주로 대도시에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기반시설도 대도시에 우선적으로 설치될 것이며 이들을 제공하는 기업도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 주로 위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산업은 많은 기본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수요가 적은 농촌에서는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정보화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고 정보화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은 대도시로 더욱 몰려들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통신기술이 교통을 대체하는 속성과 함께 교통을 더욱 증가시키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은 사전에 정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곳에 물건을 사러가거나 물건을 보낼 때, 우리는 사전에 그곳에 물건이 있거나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러한 정보가 없이는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은 일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원활한 정보의 유통은 교통의 필요성을 일부 줄여 주지만 반대로 새로운 교통수요를 더욱 증가시키기도 한다. 대도시의 많은 정보가 발달된 정보통신기술로 말미암아 쉽게 지방으로 전달된다면 지방과 대도시간의 교통량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대도시로의 집중을 더욱 가속시킬수 있는 것이다.
도쿄 런던 뉴욕…
도시집중과 분산은 정보화만이 그 이유가 될 수는 없으나 정보통신기술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들어 많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본사는 그대로 둔채 그들의 공장을 뉴욕 시카고 등 미국동부와 북부의 대도시로부터 남부와 서부의 중소도시 및 농촌지역으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는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은 토지가격과 임금이 비싼 대도시를 피해 이들 남부와 서부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고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대도시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본사에서 경영관리 판매관리 등을 원활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으로 이들 공장은 본사의 데이터뱅크와 대형컴퓨터를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고 본사에서는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보내오는 자료를 분석하여 이들에게 경영전략을 적시에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진전되어 해외의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까지 공장을 옮기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런던 도쿄 등 대부분의 세계적인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대기업들도 정보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유사한 경향을 보여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 및 산업이 지방으로 상당히 분산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정보화가 더욱 진전됨에 따라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이 역전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의 도쿄는 전통적으로 인구와 산업의 집중이 심한 지역이다. 60년대 및 70년대에는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지방분산정책에 따라 도시집중은 상당히 완화되었으나 1980년대 특히 중반이후에는 도쿄로의 집중이 다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으나 정보통신의 역할도 지대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업도 정보화를 추진하게 되나 기업의 정보화를 지원하는 정보서비스업이 수요가 많은 도쿄에 집중함에 따라 새로운 집중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고도통신에 필수적인 통신망의 디지털화와 국제전용선서비스를 위한 전용국의 건설이 도쿄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원거리의 통신요금마저 매우 비싸 도쿄로 집중을 더욱 가속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정보화의 진전은 공장의 지방분산을 일으키는 힘과 함께 새로운 도시집중의 원인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유사한 예는 영국 런던의 경우에도 발견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전문적인 정보기술을 이용하는 직업이 새로이 창출되고 정보 통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대부분 기존의 대도시인 런던권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고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런던권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고소득을 보장하는 정보통신 관련직업에 대한 취업기회도 런던권을 중심으로 생기는 경향을 보여 기존의 발전지역인 런던권과 낙후지역과의 발전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런던으로의 인구와 산업, 특히 서비스산업의 집중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뉴욕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는 교통 및 통신의 발달로 생산공장이 뉴욕으로부터 여타 중소도시나 농촌으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여 인구집중도 상당히 완화되었으나 근래 정보화가 활발히 진전됨에 따라 정보통신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산업 등의 서비스산업은 뉴욕으로 재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금융산업의 개편에 따라 전국 및 해외로 분산된 지점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가 절실해지자 이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뉴욕의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금융산업의 뉴욕집중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금융산업 뿐 아니라 정보 통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여타 서비스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보화 후발국의 과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보화는 그 속성상 도시집중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해외의 사례에서도 두가지 가능성은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사례에서는 집중완화보다 집중이 더욱 심화되는 경우를 더 많이 소개하여 정보화에 따른 도시집중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화에 따라 도시집중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정보화가 진행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로부터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의도다. 도시집중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선진국의 정보화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우리는 적극적으로 정보화를 추진하되 정보화가 도시 집중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여 정보화후발국으로서 이점을 충분히 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서울을 포함하는 수도권과 지방간에 취업기회 소득 주거환경 교육환경 등에서 많은 격차를 보여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여기에 근래에는 정보격차까지 겹쳐 인구가 수도권으로 더욱 집중할 가능성마저 있다. 물론 올바른 정보화만으로 이러한 인구의 수도권집중경향을 완전히 되돌려 놓기는 어려울 것이나 정보화는 잘만 추진하면 이러한 경향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정보화를 촉진하여 정보사회를 조기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정보사회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정보문화확산, 국가기관전산망의 조기완성, 정보인력양성, 정보기반시설의 확충, 정보통신기술의 개발, 중소기업의 정보화, 산업의 정보화, 지역정보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중에서 특히 단말기를 포함한 정보 통신기기와 네트워크 등 정보기반시설의 전국적인 확충은 지역간 정보격차의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며, 지역별로 충분한 정보인력의 양성 및 지역정보화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수도권의 인구 및 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전망을 하기에는 이르나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사업은 지방이 중심이 되어 추진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곧 도입될 지방자치제는 그 성과를 더욱 높여주게 될 것이다. 각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합심하여 지역의 요구와 여건에 맞는 특성있는 지역정보화를 활발히 추진하여 수도권에로의 집중이 완화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