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민간교류협력 허가 이후 활기를 띠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남북교류. 실제 접촉은 정부 차원의 제안에서보다는 전문학자들의 모임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
1990년 9월북경. 곧 11회 아시안게임이 열릴 이곳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도핑컨트롤센터의 책임자인 박종세박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손님'들을 맞대면하고 있었다.
88올림픽을 치러낸 도핑전문가로서 아시안게임진행의 조언자 격으로 중국에 체류하던 그가 만난 사람들은 다름아닌 북한체육계의 고위급 인사들. 김형진 북한체육부 차관(북한 NOC부위원장), 박창호 스포츠의학연구소장이 포함된 이들은 '남한도핑기술의 북한 이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박 박사를 찾았던 것이다.
다가오는 95년 백두산 삼지연에서 동계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되는 북한은 IOC에서 국제대회 개최국에 의무로 부과하는 도핑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기초의학과 약학, 분석화학이 결합된 도핑기술은 특수한 연구분야라 전 세계적으로 기술보유국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며 우리나라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84년 서둘러 도입한 바 있다.
당초 북한은 중국쪽에 기술이전을 요구했으나 남한에서 기술을 이어받은 중국이 남북한의 직접교류를 권해 북한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실무자급의 북경회동이 성사된 것. 이 실무자접촉에서 양측은 상호간 연구원 파견, 교육내용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논의를 진행시켰고 남북체육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뤄 매듭을 짓기로 했다.
"남북이 기술이전문제를 체제경쟁에서의 우열의 지표로 몰고가는 식의 생각만 버린다면 교류가능성은 매우 높다. 사실 도핑은 운동선수의 약물복용여부를 검사하는 것 뿐 아니라 환자와 투여약물의 관계를 밝혀 치료에 도움을 주는 등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응용가능성이 크다. 북한쪽 담당자들이 도핑기술을 모두 배우려면 최소한 4년의 훈련과정이 필요하므로 올해부터는 관계자들끼리 만나 구체적인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박 박사는 설명한다.
교류 희망자 늘어
지금까지 남한의 과학기술자가 북한측의 전문가를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북한인사들의 국제행사참여가 적었던 탓도 있지만 우리쪽도 교류에 소극적이었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89년 정부의 민간차원 남북교류협력 인정 이후 우리쪽 과학기술자들의 북한학자 접촉희망이 늘어나 그 중 드물게나마 성사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90년 1~11월 사이의 통일원 집계에 따르면 당국에 '북한주민접촉승인신청서'를 제출해 허가가 난 것은 모두 1백88건이며 기초과학 공학 의학 등 과학기술교류가 목적인 경우는 25건으로 전체의 1할을 좀 넘는 수준이다.
이중 목적했던 대로 북한측 인사를 만난 것은 겨우 5건. 그러나 분단이후 서로간의 정보교류가 전무하다시피했고 혹 국제회의에서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모른 척'으로 일관해야 했던 남북의 과학기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진일보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9년부터 북한학자들과 만나 남북공동의 해양개발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허형택 박사(한국해양연구소 연구위원·前 소장)는 지금까지의 추세로 미루어 적어도 해양분야에서는 남북의 교류가 낙관적이라고 보고 있다. 허박사가 북한과 접촉창구를 갖게된 것은 86년 한국해양연구소가 미국동서문화센터와 동북아 해양자원관리를 위해 이 지역 당사국간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서 비롯됐다.
동해와 황해개발을 목적으로 한 이 학술회의에 87년과 88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만이 참여했으나 89년 소련 나홋카시(市) 회의부터는 소련과 함께 북한대표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허박사는 "북한관계자들의 남한에 대한 태도변화는 87년부터 느끼고 있었다. 사실 북한 학자들은 UNESCO주최의 국제해양학술회의에서 83년부터 만날 수 있었으나 단 한번도 아는 척을 해온 일이 없는데 87년부터는 먼저 와서 인사를 할 정도로 우리에 대한 태도가 자연스러워졌다"고 전한다.
이해 당사자인 6개국의 공동참여(90년 몽고도 참여)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남한과 미국이 주도해나가는 이 회의에 북한이 참석할 수 있었던 이유를 허박사는 "해양 공동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해양공동개발 전망 밝아
"북한이나 남한 모두 현재 해양개발에서 1차적인 목표가 되는 것은 어획고를 높이는 일과 적정어획량을 산정하는 것이다. 즉 자원이 고갈되지 않을 만큼의 양을 값싼 비용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근해의 주요 어종인 오징어 꽁치 조기 등은 모두 계절에 따라 남북을 오가는 회유성 어류이며 명태는 북한지역에서 내려온다. 따라서 남북의 공동조사가 이뤄진다면 어족들의 생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해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게 된다."
90년 7월 중국 장춘에서 열린 중간회의에서는 '동해 해양자원의 공동조사 및 보존'이라는 대원칙에 참가국이 전원 합의했고 북한측도 나홋카 회의 때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여 2월로 예정된 중국 청도회의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남북협력은 남극개발에서도 모색되고 있다. '과학대륙'(continent of science)이라고 불리는 남극에는 당장의 경제적인 이해보다 장기적인 과학탐사를 위해 각국이 기지를 세우고 있다. 남한과 북한도 각각 86년과 87년에 남극조약에 가입했고 남한측은 킹 조지 섬에 세종기지를 세운 상태다. 북한 역시 시일은 걸리더라도 남극에 기지를 세울 계획이어서 90년 가을에는 관계자가 소련선박으로 남극을 일주한 바 있다.
우리측이 가지고 있는 교류안은 세종기지 소유의 땅 일부를 북한측에 기지 부지로 제공한다는 것. 이미 정부의 허가는 얻었고 비공식이긴하나 북측대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잘하면 91년에는 정부간에 이 문제가 공식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학자 호의적 반응
남한의 물리학자 20여명도 90년 여름 연변에서 북한학자들과 만났다. 미국 브라운대에 재직중인 강경식 박사 등 재미 물리학자와 연변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현대물리학 국제학술대회'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학자들이 대거 만날 수 있었던 기회. 남북한과 중국 미국의 한인물리학자 75명이 참석한 이 대회에 북한 측은 여철기 박사 등 과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 5명이 참석했다. 이중 여철기 박사는 작고한 북한물리학계의 대부 도상록박사의 대를 이어 북한 과학원의 차기 원사(우리의 학술원장급)로 꼽히는 거물급 인사로 남한 대표인 고윤석교수(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와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의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3일간에 걸쳐 현대물리학의 주요 연구과제를 다룬 논문 50여편이 발표된 이 대회에서 북한측 학자들은 여철기박사의 '비(非)평형계의 통계물리'등 5명 전원이 논문을 발표했고 우리측 젊은 학자들의 발표문에 관심을 보였다. 그간 북한물리학자들의 해외학술회의 참여는 동구권조차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져 연변대회참가는 '파격'으로 비치고 있다.
고윤석 교수는 "대회를 끝내면서 북한대표인 여철기 박사가 2년 후인 다음 대회에는 북한학자들을 1백명쯤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며 "의례적인 인사 이상의 만족감의 표시"라고 풀이했다.
한편 연변물리학대회는 남북교류의 방법에서 몇가지 유의할 점을 제시한다. 첫째 남북한의 학자가 모두 참석했지만 주최는 재미학자와 연변대여서 남한측이 행사진행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북한과 우호관계인 중국에서 대회가 치러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고윤석 교수는 "북한대표들이 차기대회도 주최와 장소를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이번 대회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크게 선전되지 않고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형태로 일이 진행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남북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한 과학계인사는 이와 관련해 "90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발족해 북측에 공동사업을 제안하고 판문점에서 성명서를 채택했지만 이런 대규모의 접근은 북측이 정치공세로 판단, 오히려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외에도 북한이 역점을 두고 있는 기술인 자동화공업분야에서는 지난 8월 소련에서 열린 자동제어총회에 남한의 고명삼교수(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일행이 참가해 북한대표와 만난 바 있다.
'서로의 자존심' 지켜줘야
남북의 과학기술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데는 북한의 태도변화라는 변수가 작용한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 이후 북한은 과학기술발전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87년부터 시작된 제3차 7개년경제계획(1987~93)에서는 "인민경제의 주체화 과학화,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최우선 과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임을 밝히고 전자·자동화공업, 유전공학 등 첨단기술을 집중육성하고 있다. 북한은 88년 과학기술발전3개년계획을 다시 발표해 목표달성을 독려하고 있는데, 대내적으로는 '과학기술축전' 등 전국규모의 기술경진대회를 86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소련 중국 동구 등과 데이터뱅크를 공유해 첨단과학기술정보를 신속히 교환하고 있다. 또 합영법 시행으로 해외 투자자본을 유치해 기술개발을 도모하는 형태도 모색하고 있다.
첨단기술발전과정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술선진국과의 교류. 그간 북한의 과학기술도입의 가장 주요한 창구는 소련과 중국으로, 소련에는 80년대 들어 매년 1천명 이상의 연수 유학생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는 북한이 시급히 요구하는 첨단기술이전에 어려운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소련만해도 남한과 수교하는 과정에서 북한쪽에 채 이전하지도 않은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분야와 2백80개의 개발가능한 기술 리스트를 제시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기술협조를 호혜적인 궤도에 올려야 한다"고 입장을 바꿔 기존의 구상무역 대신 현금수수를 요구하고 있다. 동구 역시 독일통일 등 사회상황이 급변해 유학생을 철수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북한당국은 과학기술지식과 투자원의 새로운 창구모색을 시급한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중평. 91년으로 매듭지어질 일본과의 수교를 이런 관점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아울러 남한과의 과학기술교류도 전반적인 화해무드에 편승해 보다 용이해지리라는 낙관론이 대두된다. 일례로 우리쪽 학자들과 접촉했던 북한학자들은 "89년 8월 김정일선생께서 남한과학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만나라고 하셨다"는 발언을 해, 남북과학기술교류에 대해 북한측이 보다 융통성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남북사이에 현실적으로 가로놓인 장벽은 결코 만만치 않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열성적으로 개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컴퓨터기술 등이 모두 COCOM(대 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규정의 금지품목임"을 상기시켰다. "COCOM의 규제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군수산업에 이용할만한 과학기술은 우리측에서 이전을 피할 것이고 북한 역시 정치적인 문제 우선해결을 들고 있어 현재의 협력무드가 어느 정도의 실효를 거두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동의학 수준 높아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대북교류를 신청했던 개인이나 단체를 보면 한반도의 평화공존이란 차원에서 과학기술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적지않다.
한국핵전쟁방지의사연합회(KPPNW)의 북한의사접촉신청도 그 한 예. 한반도의 핵문제는 핵무기설치논란 등으로 남북 양쪽이 모두 민감한 부분이라 현실적인 접촉가능성이 희박해보이지만 회원인 이명근씨(강화병원·예방의학)는 "위험이 있기에 더욱 만나서 공동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 IPPNW(세계핵전쟁방지의사연합회)를 창설한 주역은 적국으로 대치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의 두 의사 버나드 브러운과 게니 차조프였다. IPPNW는 미소간에 냉전기류가 흐를 때도 서로간에 스리마일아일랜드원전사고(미)나 체르노빌핵참사(소)가 있을 때 공동으로 반핵운동을 펴나갔다. 우리의 경우도 당장 해방이후 일본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피폭자(5백여명으로 추산) 문제부터 출발, 남북이 핵문제를 예방하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 노력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명근씨의 말이다.
북한의 한약자원 분포를 조사하기 위해 방북을 신청했던 경희대 안덕균교수(한의학)는 북한이 가진 우수한 자원을 우리가 역으로 받아들이는 교류형태를 제시했다.
"북한지역에는 남한에선 구할 수 없는 원지(遠志, 정신과질환치료에 사용) 등의 희귀약재가 많다. 현재는 이런 약재를 중국이나 홍콩을 우회해 구입하고 있으나 직접 교역이 이뤄진다면 서로간에 이익이 되리라고 본다. 학술적으로도 북한은 이미 순우리말로 된 한의학사전인 '동의학사전'을 편찬했고 '의방유취'나 '향약집성방' 등의 고서를 현대식으로 번역해, 아직까지 한문으로 된 책으로 수업을 하는 우리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가능한대로 약재(종자)교환과 백두산 관모봉 등의 분포지 조사를 함께해 한의학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협력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제 막 물꼬를 트기 시작한 남북의 과학기술교류. 어렵게 시작된 교류가 정치적 난기류속에서도 지속돼 결실을 맺으려면 남북 양측 학자들의 구체성을 담은 교류 노력과 만남이 계속돼야할 것이다. 또 한번의 공명(功名)보다는 실제적인 신뢰를 쌓는 자세로 이들의 만남을 지원할 정부의 '숨은 뒷받침'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