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환경원년 돌아보는 공해추방운동연합 최열 공동의장

"내년부터는 민간환경연구센터를 세우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1990년은 정부가 제정한 환경원년(元年). 그간 경제성장이나 정치적 현안에 밀려 정책순위에서도 늘 뒷전이던 환경문제가 정부차원의 주요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그 자체로 일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변화는 작년 여름의 수돗물 파동 등으로 전 국민이 환경오염의 공포에 시달린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기도 하다.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은 그저 상태의 악화만으로 간단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공기가 나빠 숨을 못 쉬겠다'' 믿고 마실 물이 없다' 등등 개인적인 불안차원에 그치던 문제의식이 다수의 힘있는 여론으로 바뀌기까지는 환경오염 현장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온 민간환경운동단체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누구도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던 80년대 초반부터 직접 발로 뛰며 우리사회의 환경오염실태를 고발해온 공해추방운동연합 최열(崔洌) 의장(42)은 이제 반(反)공해 환경보호운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최 열 공동의장
 

올해 신설골프장 1백16개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는 그에게 공추련의 의장으로서 환경원년인 올해를 어떻게 평가 하느냐는 첫 질문을 던졌다.

"한마디로 정부의 환경문제 해결의지를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조목조목 손가락을 꼽아가며 그 이유를 들었다.


"골프장 건설과 거기서 사용하는 맹독성 농약이 주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데도 올해 무려 1백16개의 골프장이 이미 완공됐거나 건설 중에 있습니다. 그린벨트 규제완화도 어이없는 일이구요. 또 올해부터는 국민에게 공해실태나 환경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밀실행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의장과의 인터뷰가 있던 날은 충남 안면도에 주민들도 모르게 핵폐기물 저장소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기사가 일제히 각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의장은 정부와의 대립과 반목이 불가피하다고만 생각지는 않는다.

"환경문제를 풀어가려면 정부와 민간환경운동단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정부는 민간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직 환경담당부처에서조차 민간단체를 괜히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들 정도로 백안시하는 경향입니다."


문제가 정말로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기보다는 민간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을 반박하는데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최의장은 당국의 태도를 꼬집는다.

옥살이 중 환경운동 결심

최열씨가 반공해 환경보호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옥살이를 할 때인 76년경이다. 75년 강원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76년 3월 1일 윤보선 김대중씨 등이 명동성당에서 박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구국선언문을 낭독한 소위 '명동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당시 제가 갇혔던 안양교도소에는 유신철폐운동을 하다 잡혀온 학생이 40명 정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형이 만료돼 사회로 나간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서로 진지하게 논의했었죠. 이때 저는 이공계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 그 특성을 살려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한 끝에 환경운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노동현장에 뛰어들거나 농촌으로 가는게 당시의 불문율이라 그의 결심에는 교도소내의 동료들조차 의아해 하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그는 4년여의 수감기간동안 환경관계의 책을 읽고, 기초지식을 쌓는데 전념했다.

환경운동가로서 최열씨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85년 '온산공단지역 집단괴질사건'을 규명하면서 부터다. 그는 83년부터 2년간 온산지역의 대기·수질오염도를 측정, 주민들이 앓고 있는 괴질이 공단에서 배출하는 중금속 때문에 발생함을 밝혀내고 이 사실을 언론기관을 통해 발표했다. 당국은 최열씨의 주장을 즉각 부정했고 그를 법으로 묶어 잡아들이려 했지만 마땅한 혐의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담당수사관이 풀려 나가는 최열씨에게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며 환경문제 특강을 부탁하는 정도였다.

비록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몇년사이에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나 대응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는 점은 최의장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최의장은 공해문제에 대한 관심이 자칫 '일회적인 폭발 뒤의 무관심과 타성'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한다.

"상수도원의 오염을 아무리 지적해도 건설회사의 배만 채우는 팔당 골재채취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또 다른 나라에선 공해산업이라고 추방당하는 석유화학계열 기업들이 산업낙후지 개발이란 명목 아래 속속 수입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국민생존에 반(反)하는 정책이 계속되면 결국 의식을 가졌던 사람조차도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식의 불감증에 빠지기 십상이지요."

또 그는 '전지구적 문제'니 '전국민의 책임'이니 하는 식으로 환경 오염의 책임소재를 흐리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수돗물 오염문제를 거론할 때 합성세제 쓰는 주부가 범인이라는 식으로 몰아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하지만 환경오염의 위험을 알면서도 합성세제만을 만들어 파는 기업에는 왜 책임을 묻지 않습니까."

환경연구센터 만들 계획

환경운동가로 이미 10년 세월을 넘긴 최의장은 요즘 '운동의 새로운 요구'를 어떻게 수용해 낼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올해 공추련의 사업목표였던 '대중성과 전문성의 결합'으로도 요약될 수 있는 문제다.

"공추련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기동네의 수돗물을 분석해 달라는 등의 구체적인 요구를 갖고 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역량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죠."

역량을 높이기 위해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은 민간환경연구센터를 개설하는 것이다. 실험·분석의 최소장비를 갖추는데만 약 5억원의 경비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 연구센터를 국민모금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 그는 언론계 등 각계의 인사들과 분주히 접촉하고 있다.

특히 그는 환경공학 등 전문과학기술에 능통한 사람은 많아도 정작 자신의 지식을 실제문제 해결에 유용하게 쓴 예는 적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최의장은 전문가들이 "우선 공해현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문제의 심각성을 체득한 뒤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환경보호운동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핵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는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모르는 소리'라며 잘라 말한다.

"핵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도 수십년내에 고갈될 유한자원이란 사실을 왜 무시합니까. 또 핵발전이 경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화력발전소보다 훨씬 비싼 핵발전소 건립 비용이나 핵폐기물 처리비용을 제외하고 계산했을 때나 가능한 얘기고 실제로는 화력발전보다 3배 정도 비싸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용한 시한폭탄'인 핵의 안전성 문제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원자력발전을 홍보, 연구하는 만큼의 막대한 비용으로 화력에너지의 탈황(脫黃)시설을 개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대체에너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정은령 기자
  • 사진

    이종승 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