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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늘 독일의 오욕과 영광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베를린과의 첫 만남은 필자가 베를린대학에 유학했을 때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서베를린이었다.
베를린(Berlin)은 1871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활약으로 독일이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되던 때부터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다.

2차대전 후 베를린은 전승국인 미 영 불 소에 의해 4분할되었다. 소련 점령지역인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지만 미 영 불에 의해 분할된 지역은 여전히 이들 국가의 관할하에 있었다. 통일전 서베를린 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일개 주로 소속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중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베를린은 현재 다시 통일독일의 수도가 되었으며 앞으로 통독이 수행하게 될 역할에 비례해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베를린은 영광과 비극이 교차하면서 그때마다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도시를 동서로 가르고 있던 장벽의 철거는 곧 독일통일의 시작이었다.
 

구멍난 베를린장벽을 바라보고 있는 동독경찰관. 통일전의 사진이다.


동서유럽의 가교로

베를린은 흔히 세계의 도시, 학문 예술의 도시, 유행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동서로 분할돼 있을 때에도 유럽의 가교로 동서유럽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특히 통일 전에는 동독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어느 지역보다도 강했다. 그곳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계의 도시(Weltstadt)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베를린에는 독일 어느 도시에서 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70년대 중반에 이미 주민의 10%를 차지했던 외국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데 비해 순수 독일인의 수는 별로 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인지 외국인에 대해 특히 관대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인종과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혼합돼 있기 때문에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독일인들이 오히려 낮설게 느낄 정도다.

이곳에서는 매년 가을에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기간에는 외국문화와 문학축제가 함께 개최된다.

독일대학의 전통을 간직한 훔볼트대학

베를린대학과 베를린종합공과대학 예술대학 등에는 수많은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상당수 학생들이 독일정부와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 동베를린에 위치하고 있는 훔볼트대학은 독일대학의 전통과 이상을 상징하는 대학으로 독일대학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사실 19세기의 베를린은 동유럽지식인의 학문적 메카였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은 유행의 도시이기도 하다. 수많은 예술학교들은 이러한 도시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이 따로 없다는 점도 이 시의 특징이다. 지역마다 주요건물들을 중심으로 상가가 발달돼 있다.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돼 있기 때문에 처음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길을 찾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또 지하철과 지상철이 도시의 곳곳에 뻗쳐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이 도시의 공기는 '베를리너루프트'(Berliner Luft)라고 알려질 만큼 깨끗하기로 유명했지만 오늘날에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겨울철에는 스모그현상 때문에 자동차운행이 통제되고 있을 정도다.

수많은 숲과 수로, 호수와 강도 유명하다. 그루네발트 숲에는 야생사슴들이 뛰어 놀고 있으며 엘베강으로 통하는 반제호수는 여름철에 수영과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 호수 주변의 넓은 백사장은 베를린사람들에게 해변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보리수 아래」를 거닐며

날씨는 연중 구름이 많이 끼어 있다. 여름에 어쩌다 날씨가 쾌창할 때면 도시 주변의 수많은 초원은 일광욕을 즐기는 반라의 여인들로 가득하다.

시의 중심을 통과하고 동서로 뻗어 있는 '6월17일거리'는 1953년 스탈린 사후 동베를린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되었다. 이 거리의 동베를린 쪽 이름은 낭만이 물씬한 '보리수 아래'(Unter den Linden)다.

바로 이 도로가 베를린에서 가장 길고 폭이 넓은데 시를 동서로 나누는 상징적 건물이었던 브란덴부르거토어(Brandenburger Tor)를 관통하고 있다.

고대 아테네의 성문을 모델로 1791년에 건립한 이 문의 위에는 4두마차를 끌고 있는 평화의 여신상이 있다. 이 4두마차는 1807년 이 도시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에 의해 파리로 옮겨졌다가 나폴레옹 몰락 이후 다시 베를린으로 되돌아오는 등 수난을 겪었다. 2차대전 중에 많은 부분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1958년 서베를린시가 원상복구한 뒤 동베를린에 양도해 더욱 유명해졌다.

「승리의 기둥」앞에서

브란덴부르거토어에서 서베를린 쪽으로 내려오면 '승리의 기둥'이 있다. 전장 67m인 이 기념물은 1871년 보불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기둥모양의 이 탑위에는 관망대가 있는데 여기 서면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시 브란덴부르거토어를 기점으로 5분쯤 북쪽으로 장벽 (지금은 철거됐지만)을 따라가면 독일제국 국회의사당(Reichstag)이 나온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돼 있는 이 건물은 독일근세사의 중요한 사건현장이다. 1933년에는 의사당 방화사건을 겪었고 소위 수권법이 통과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에게 독재권을 부여한 역사적인 장소인 것이다.

2차대전 중에는 연합군 폭탄의 목표물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원상태로 복구돼 있다. 국회의사당 정면 위에 써 있는 '독일민족에게'(Dem deutschen Volke)라는 글은 독일인에게 애국심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의사당 앞은 '공화국의 광장'이다. 이곳은 넓은 초원인데 주변에는 자동차경주가 열릴 만큼 폭이 넓은 차도가 있다. 이 의사당 뒤쪽으로는 엘베강으로 연결되는 스프레(Spree)강이 흐른다.

동물원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승리의 기둥'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면 에른스트-로이터광장이 있다. 주말마다 이 광장 주변에서 중고품시장이 열리는 데 그야말로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중고품들이 진열돼 있다. 광장 양옆에는 베를린종합공과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모스크바-파리간 기차가 통과하고

여기서 남동쪽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젊은이들의 광장인 베를린중앙역(Bahnhof am Zoo)이 나온다. 매일 두차례씩 모스크바-파리간을 왕래하는 열차가 이 역을 통과한다. 역에서 다시 남쪽으로 2분 정도 걸으면 매년 2월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키노 팔라스트(Kino Palast)가 보인다.

극장 앞길 바로 건너편에 관광명소인 오이로파센터(Europa Center)가 있다. 이 건물 맨 위층에 있는 카페에 앉으면 서베를린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오이로파센터 옆에는 2차대전 중에 폭격으로 파괴된 '기념교회'가 마치 부질없는 전쟁을 경고하듯이 묵묵히 서 있다.

이곳이 바로 가장 번화하고 우아한 거리인 쿠담의 시발점이다. 쿠담의 양옆에는 호텔 백화점 극장 상점들이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저녁시간이면 이곳은 현지인들과 베를린 여행자들의 한가로운 산책로로 변한다. 인도를 거의 메우고 있는 노변가페가 여름거리를 온통 축제분위기로 이끈다.

이 도시에는 수많은 도서관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국립도서관이다. 3백30만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이 도서관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서관중 하나로 꼽힌다.

2차대전의 흔적이 곳곳에
 

도서관 맞은 편에 보이는 건물이 유명한 베를린필하모니다. 2천2백명을 수용하는 연주홀을 갖고 있는 베를린필하모니는 연주회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시의 남서쪽으로 높이 1백20m에 달하는 산이 있다. 이곳은 스키 썰매 등 겨울스포츠의 명소가 된다. 이 산에는 2차대전중 파괴된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 있지만 우거진 숲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외관상 평화로워 보인다.

도시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2차대전의 흔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히틀러 독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와 기념물들은 나치체제와 같은 악몽이 다시는 반복돼는 안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베를린은 45년 동안 동서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됐던 곳이고 따라서 이데올로기로 인한 온갖 갈등을 겪었던 도시다. 이제 역사의 오류를 청산하고 염원하던 통일독일의 수도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 있는 베를린. 그곳 시민들은 히틀러에 의해 한때 망상되었던 세계의 수도(Hauptstadt der Welt)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세계의 도시(Weltstadt)로 발전하게 되리라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브란덴부르거 토어^고대 아테네의 성문을 본따 건립한 이 문위에는 4두마차를 끌고 있는 평화의 여신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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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병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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