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육지에 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신생대 3 기층이 두껍게 발달한 대륙붕지역은 기대해 볼 만하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에서의 위기때문에 석유값이 폭등하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석유로 쏠리기 시작했다. 1, 2차 석유위기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치 군사적인 요인으로 석유값이 뛰고 공급불안이 야기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전세계의 석유매장량은 최소한 38년간은 쓸 수 있는 양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될 것이고, 석유 채굴기술의 진보에 따라 회수율(매장량에 대한 실제 채굴량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면, 앞으로 상당기간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 매장량의 3분의 2가 항상 정치적으로 불안한 중동지방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석유공급 불안과 가격급등 현상은 재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전세계 매장량의 74%를 점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생산량이 1일 2천2백만~2천5백만 배럴에 이를 1990년대 중반에는 시장 전환기를 맞게되어 가격상승에 의한 제3차 석유파동이 이미 예견되었다.
국내 에너지원의 50% 이상을 전량 수입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원유의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0년까지 국내 원유 수요량의 20%를 자주개발 원유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석유탐사와 개발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동안의 국내 석유탐사 활동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지질과 석유매장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실패로 끝난 포항지역 탐사
우리나라에서의 석유탐사는 해방전부터 시작된듯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당시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장 다테이와(立岩 巖)에 따르면 1941년 8월부터 10월까지 함경남도 함흥에서 천연가스 탐사를 목적으로 시추가 시행되었는데 이것이 아마도 해방이전 석유탐사에 관한 유일한 공식 기록이 아닌가 싶다.
해방후 남한에서 처음 석유탐사를 시작한 것은 1959년 12월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황리 해변에서였다.
민간인의 제보에 따라 당시 국립지질조사소(현 한국동력자원연구소)는 야외지질 조사를 한뒤 1961년에 3백40m 깊이의 시추를 했다. 그 결과 석유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14개 심도에서 석유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양이 적어 경제성이 없음이 드러났다.
1978~79년 사이 자원개발연구소(현 한국동력자원연구소)가 이 지역에 대해 다시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탐사와 3백50m 깊이의 시추를 했으나, 석유물질이 5km 정도 길이로 발달되어 있음을 확인했을 뿐 경제성 있는 석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1963년에 경상북도 포항시와 영일군 일대에 걸쳐 당시 국립지질조사소에 의한 지질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민간인에 의한 석유탐사 목적의 시추가 시작되었다. 67년에는 국립지질조사소와 대만 석유공사 사이에 포항지역 시추사업협정이 체결되어 대만 기술진이 시추장비와 함께 내한하여 3개공의 시추를 했다. 본격적인 시추장비가 동원된 이 시추에서도 석유발견에 성공을 못하자 이 지역의 탐사는 일단 중단되었다. 75년에 정부는 포항지역 석유탐사를 위한 특별사업단을 조직하여 중단되었던 시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특별사업단에 의한 시추작업은 77년까지 2년간 계속되었다. 이렇게 하여 65년부터 77년까지 포항지역에는 18개공의 시추가 실시되었으며, 시추 심도의 총연장은 2만6천4백19m에 달한다. 그 결과 포항지역의 지하지질은 상세하게 밝혀졌지만 석유발견에는 실패했고, 메탄을 주로한 소량의 천연가스만이 확인되었다.
76년부터 자원개발연구소는 경상남북도 일대와 전라남도 해안지방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 중생대 백악기에 해당하는 경상계(慶尙系) 지층에 대한 석유자원 탐사를 시작하여 81년까지 계속했다. 6년간에 걸쳐 지표지질조사 지구물리탐사 지구화학조사 등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한 결과, 경상계 지층은 퇴적후 지나치게 깊이 묻혔기 때문에 열과 압력을 너무 받아 석유가 보존되기에는 적당치 못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다만 천연가스의 매장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대륙붕으로 눈을 돌려
육상에서의 석유탐사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해저 석유탐사는 외국 기술진에 의해 시작되었다. 66년 UN 산하기관인 ECAFE(아시아극동 경제위원회, 현 ESCAP) 지원사업으로 캐나다 회사가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동해 근해에서 음파 탐사를 실시했다. 68년 미국해군 해양연구소는 황해와 동지나해에서 탄성파탐사(인공으로 지진파를 발생시켜 지하 지질구조를 밝히는 지구물리탐사 방법)와 자력탐사를 실시하여 이 지역에 신생대 제3기 퇴적층이 발달되어 있음을 밝히는 한편, 이 해역에는 석유보존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어 69년에도 동해남부 동지나해 황해 동부에서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이상의 예비탐사 결과 우리나라 대륙붕(수심 2백m 까지의 얕은 바다밑)에 석유를 매장할 수 있는 제3기 퇴적암층이 발달되어 석유자원의 부존가능성이 인정되자, 정부는 69~70년 사이 4개의 외국석유회사들과 한국 대륙붕에서의 석유탐사와 채굴에 관한 협약을 맺게 되었다. 이리하여 미국계의 걸프 텍사코 코암사와 영국-네덜란드계의 셸사는 우리나라 대륙붕에서의 석유자원 탐사에 착수하여 75년까지 6개공을 시추했으나 석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후 정부가 70년에 설정한 해저 석유광구 중에서 7광구와 인접광구 일부에 대하여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 한동안 탐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양국공동개발에 합의하여 80년부터 탐사가 재개되었다. 85년까지 이 지역에서 7개공의 시추가 실시되었으나 석유발견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종래 외국회사들에게 의존했던 대륙붕 석유자원 탐사를 우리가 직접 수행하기 위하여 대륙붕 석유개발 장기계획을 마련하여 87년부터 실행해오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동해 제6광구에서 6개공의 시추가 시공되었으며, 현재 일곱번째의 시추가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3개 구조에서 가스가 발견되어 경제성을 평가하기 위한 시추가 계속되고 있다.
석유가 묻혀 있을 조건
석유는 지질시대동안의 생물, 특히 물속에 살던 식물성 플랑크톤과 육상의 고등식물에서 기원된 유기물이 진흙 뻘 등과 함께 물밑에 퇴적된 후,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땅속의 열에 의해 분해되어 만들어 진다. 만들어진 석유가 열을 더 받게되면 열분해 되어 가스로 변하게 된다.
이와같이 석유와 가스는 같은 기원을 갖고 있으며, 화학조성도 거의 같고 대부분 같은 지역에서 산출된다. 석유와 가스는 퇴적물내의 유기물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물밑에서 퇴적된 퇴적암내에서만 발견된다. 생성된 석유는 퇴적암내에 포화되어 있는 물과의 비중차에 따른 부력의 힘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이동을 하게된다. 석유와 가스의 이동은 이들의 이동을 차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날때까지 계속되며, 이러한 구조내에 석유와 가스가 모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위쪽으로 이동하는 석유와 가스의 이동을 가로 막기에 적당한, 즉 위쪽이 막힌 모양에다 이들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덮개 모양의 암석으로 덮여있어야 한다.
석유와 가스의 탐사는 이러한 구조를 찾아내는 일로 부터 시작된다. 보통 땅속 2천~4천m 깊이에 있는 이러한 구조를 찾아내기도 힘들거니와 이러한 구조가 발견된다 해도 이들이 석유나 가스를 포함하고 있는 확률이 낮기 때문에 석유탐사 시추의 성공률은 전세계 평균이 10%에 못미친다.
유기물이 진흙 뻘 등의 퇴적물과 함께 땅속에 묻힌뒤 분해되어 석유로 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화학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최저한의 온도와 시간이 필요하다. 즉 적어도 50℃의 온도와 5백만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석유가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온도와 시간은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열기간이 짧고 나이가 젊은 지층은 최저온도 보다 훨씬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지층, 예를 들면 고생대 지층은 가열기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50℃ 정도의 낮은 온도에 의해서도 석유가 생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들어진 석유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오일풀(oil pool, 지층내의 석유가 모여있는 장소)을 이루기 위해서는 석유가 들어 있을 수 있는 암석내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은 퇴적암중 사암이나 석회암과 같이 모래 알갱이로 이루어진 암석의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에 존재한다.
석유가 들어있는 암석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시멘트 벽돌이나 블럭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들 암석으로 지은 집에 방수처리를 하지 않으면 비가 올때 벽을 따라 물기가 스며들게 되는데, 이는 이들에 물을 통과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퇴적암의 경우 이러한 공간은 보통 5~25%에 이른다.
석유와 가스를 매장할 수 있는 지질학적 조건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선 물속에서 퇴적된 암석이 있어야 하고, 이들 퇴적암이 퇴적후 최소한 5백만년은 지났어야 하며, 상당량의 유기물(보통 1% 이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이들 유기물이 열에 의해 석유로 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열을 받았어야 한다. 만들어진 석유가 저장될 수 있는 공간, 즉 틈이 많은 암석과 이를 덮고 있는 치밀한 암석이 발달되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암석들이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위쪽이 막힌 구조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층들은 석유나 가스가 파괴되거나 지표로 유출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도록 심한 지각변동이나 지나친 열과 압력을 받지 않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지역은 지구상에 그리 흔하지가 않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유는 지구상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고 몇몇 지역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87년부터 독자개발 선언
석유의 매장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에 한정된다. 우리나라 육지의 지질은 퇴적암의 분포가 좁은 것이 특징이다. 그나마 중생대 쥐라기 이전의 지층은 여러차례에 걸친 심한 지각변동 기간에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았기 때문에 석유나 가스의 보존에 부적당하다. 한편 중생대의 백악기에 해당하는 경상계 지층은 경상남북도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데, 석유를 보존하기에는 알맞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열과 압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가스보존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층에 대해서는 현재 가스탐사 목적의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들 외에 신생대의 제3기 층이 포항을 중심으로한 동해안에 소규모로 발달되어 있으나, 이들은 전자와는 반대로 열을 너무 적게 받아 아직 석유가 생성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나라 육지에 발달되어 있는 지층들은 석유를 매장하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나, 한반도 주변의 바다밑에는 이들보다 석유매장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대규모 퇴적분지(퇴적암이 쌓여있는 우묵한 장소)가 발달되어 있다.
동해에는 육지 가까이 까지 울릉분지라고 불리는 퇴적분지가 분포되어 있어, 이곳에 신생대 제3기와 제4기에 4천m 이상의 두께를 갖는 퇴적층이 쌓였다. 이곳에서 87년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가스가 발견되어 현재까지 경제성 평가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 남쪽의 동지나해에는 울릉분지보다 규모가 더 큰 퇴적분지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제까지 우리나라가 설정한 광구내에서만 12개공의 시추가 행해졌다. 아직 석유나 가스가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주변해역에서 석유나 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유나 가스를 매장할 수 있는 퇴적암이 광범위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같은 분지에 속하는 중국측 지역에서 이미 석유와 가스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황해에서는 군산 서쪽과 소흑산도 서쪽에 퇴적분지가 발달되어 있어 탐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이 지역에서 석유나 가스가 발견된 바는 없다.
해저 신생대 3기층에 기대
한때 전라남도 해남일대의 해변과 경상북도 포항시 일원의 석유매장 가능성에 대해 관계자들 사이에 심한 의견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해남지역은 시추 1개공으로 결론이 쉽게 났지만, 포항의 경우는 장장 12년에 걸쳐 18개공의 시추가 이루어진 뒤에야 겨우 결론이 나게 되었다.
우리나라 육지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는 근거는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그러나 당시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외국의 예를 무턱대고 우리나라의 지질에 맞추어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하였으며 , 여기에 정부당국자들의 막연한 기대감이 상승작용을 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탐사가 계속되었다고 본다. 또한 당시에는 이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적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석유나 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은 제주도 남쪽의 동지나해와 울산-부산 동쪽의 동해지역으로 세계적으로 석유매장이 많은 신생대 제3기층이 두껍게 발달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서 탐사가 시작된 것은 69년이지만 초기에 탐사를 담당했던 외국회사들은 의무 작업량만 채우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87년부터 우리 힘으로 탐사가 진행되고 있어 수년내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대륙붕은 그 면적이 남한 전체면적의 3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탐사량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