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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대덕연구단지 92년 완성 앞둔 과학문화도시

대덕연구단지는 '과학기술입국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불협화음, 극심한 주택난과 문화공간부족, 고급인력의 유출, 자율기능저하 등 숱한 문제점도 안고 있다.
 

92년 완공될 대덕과학문화센터의 조감도


대덕연구단지는 과연 성공하고 있는가.

지난 73년 12월 '대덕연구학원 도시 기본 계획'이 만들어진 이후 15년 남짓 건설의 해머를 울려 온 한국판 실리콘밸리는 줄곧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혹자는 대덕연구단지를 정부가 주도한 공공건설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는다. 연구단지가 지역사회와 산업의 전후방에 끼친 효과가 전혀 없으며 그동안 쏟아부은 물적 인적 자원을 다른데 돌렸더라면 훨씬 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다른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릴 것없이 서울집중적인 한국사회에서 대덕이 어렵게나마 연구학원도시로 자리잡은 것은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한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민간연구기관이 더 들어서고 93년 대전무역박람회를 계기로 이곳에 과학공원이 조성되면, 우리도 실리콘밸리나 쓰쿠바(일본) 안티폴리스(프랑스) 노보시비르스크(소련) 같은 명실상부한 과학도시를 하나 갖게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같은 반응속에 지난 7월 10일 대전과학재단에서 열린 제1회 과학기술진흥회의를 계기로 대덕이 또다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노대통령이 회의 서두에 "고는 92년까지 3년동안 정부 1천8백억원 민간 6천2백억원 등 모두 8천억원을 투입, 대덕연구단지를 조기에 과학기술문화도시로 완공하라"호 지시한 것이다.

대덕은 이제 별로 내세울 치적이 없는 6공화국 정권의 후반기 '승부수'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

이에따라 요즘 과기처에서는 경인지역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을 있는대로 대덕에 내려 보내고 있고 민간기업연구소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바야흐로 대덕에 '제2의 삽질'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5공 들어 본격 개발

대덕연구단지는 서울에서 1백70㎞, 부산에서 2백90km, 광주에서 2백20km 떨어진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있다. 본래는 충남 대덕군이었으나 지금은 대전시에 편입되어 대전시 유성구로 되어 있다.

대덕연구단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종단도로를 기준으로 보통 왼쪽을 서부, 오른쪽을 동부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소가 들어선 서부는 상당히 개발됐으나 주로 기업연구소가 들어설 동부는 부지조성과 기초공사 작업이 한창이다.

'대덕연구학원도시 기본계획'이 확정 공포된 것은 유신체제가 맹위를 떨치던 73년 12월.

67년 과학기술처를 발족하고 '과학기술발전 20년계획'을 세운 박정희정권은 과학기술연구소와 산업연구원 국방과학연구원이 있던 서울 홍릉연구단지만으로는 늘어나는 기술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통령비서실을 중심으로 첨단과학 연구단지의 부지를 물색한 끝에 교통과 산업의 요충지인 대덕을 최적지로 선택했다. 연구소 건설이 시작된 것은 74년 3월이며, 77년 12월 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고시됐다. 그후 이 계획은 지지부진하다가 84년8월 '대덕연구단지 건설촉진 방안'이 확정된 뒤 토지개발공사와 산업기지개발공사가 직접 나서서 기반시설의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조성이 가속되었다. 이 단지에는 87년까지 2천3백억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으며 89년 1월 대전시에 편입됐다.
 

대덕연구단지 기본계획도


한국의 「싱크탱크」(Think Tank)

78년 3월 한국표준연구소가 처음 입주한 이후 13개의 정부출연기관과 3개의 민간연구기관, 3개의 교등교육기관, 2개의 국가기관, 2개의 정부투자기관이 들어서 있다.

이들 23개기관이 차지하고 있는 총부지는 2백26만3천평이며 1만4백5명이 이들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미 입주한 정부출연기관을 분야별로 보면 정보산업분야에 전자통신연구소와 시스템공학센터, 생명과학에 유전공학센터와 인삼연초연구소, 정밀화학에 화학연구소가 있다. 또 에너지자원분야로는 원자력연구소와 원지력안전기술원 동력자원연구소, 항공우주해양은 천문우주과학연구소 해사기술연구소 항공우주연구소가 있고 그밖에 표준연구소와 과학재단이 자리잡고 있다.

민간연구소는 79년에 들어선 쌍용 럭키 한양화학중앙연구소 셋뿐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충남대학교와 과학기술원 충남전문대학이 있으며, 국가기관은 국립중앙과학관과 대전지방환경청 투 군데다. 정부투자기관으로는 한국핵연료주식회사와 한국조폐공사의 기술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이들 가운데 시스템공학센터와 유전공학센터 과학기술원 국립중앙과학관 대전지방환경청 네곳은 올 3월과 6월 사이에 새로 입주한 새 식구다.

연구단지 안에는 또 최근 일류대학에 합격자를 많이 내고 있는 대덕고등학교를 비롯해 국민학교 4개, 중학교 2개 등 7개의 초·중등교육시설이 있으며 1천6백동의 연구원 주택이 아담하게 들어서 있다.

또한 우체국과 식당 은행 등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종합복지관과 하루에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수영장과 대중골프장이 있다.
또 사방으로 뚫린 총길이 33㎞의 도로와 3천회선의 전화선이 있고 하루에 2만t의 물이 연구단지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깜깜한 연구단지

대덕연구단지의 성과는 역시 연구결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연구성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82년도부터로 78년 이후 잇따라 들어선 표준연구소 해사기술연구소 화학연구소 동력자원연구소 원자력연구소 등이 3~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때부터 성과물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82년부터 시작된 과기처의 특정연구사업은 연구성과를 양산하는데 한몫 거들었다.

물론 1만여명의 연구원을 거느린 연구단지가 그 정도의 결과밖에 내지 못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또 저녁 8시만 되면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불이 꺼져 '깜깜한 연구단지'라는 힐난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연구원과 시설을 한곳에 모아 활발한 정보교환과 인적교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괄목할만한 업적도 거뒀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원자력연구소의 핵연료국산화 기술을 우선 꼽을 수있다. 고(故) 서경수 박사를 중심으로한 이 연구소의 연구팀은 연간 5백60만달러(중수로핵연료), 4천2백만달러(경수로핵연료)씩 수입하던 원자력발전소용 핵연료를 82년부터 6년간 독자적인 성형가공 기술로 자체 개발했다.

표준연구소 이인원박사팀은 85년 11월부터 2년동안 염색 페인트 플라스틱공장에서 필요한 컴퓨터 배색장치를 국산화했다.

전자통신연구소 이진효박사팀은 정부출연금과 대우통신 등의 기업연구비를 지원받아 VTR용 집적회로(IC)인 바이폴라IC를 82년 7월부터 84년 3월까지 개발, VTR 기술자립에 기여했다. 16비트 및 32비트 유닉스 컴퓨터와 교육용 소형컴퓨터도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화학연구소 백행남박사팀은 82년 5월부터 1년간 곡식을 오랫동안 저장해도 해충이 생기지 않는 인화알루미늄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페니실린보다 효과가 1백배이상 나은 퀴놀론계 항생제(화학연구소)와 순도 99.999%의 텅스턴(동력자원연구소)도 연구단지의 산물이다. 그밖에도 내세울만한 연구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덕연구단지는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같은 평을 받는데는 연구단지를 지을 때 산업배후지와 학(學)·연(硏)·산(産)공동연구체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데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연구소를 관리하는 과기처와 연구소의 행정책임자들이 지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데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전과 충남 일원에서 무수한 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대덕연구단지에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숫자는 극히 적다. 또 연구소 건물을 증축하고 신축하는 공사가 잦지만 예외없이 경인지역의 건설업체들이 도맡는다.

요컨대 대전사회에 개방된 곳은 연구단지안의 실내수영장 한군데 뿐이다. 그러나 이곳도 대전과 유성온천의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들락거려 연구원 남편들을 뺏길까봐 부인네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출입금지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대전사람들 가운데는 연구단지가 물리적으로만 대전에 있지 서울에 있는 것과 다를게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같은 불협화음 탓으로 대덕연구단지 기관장협의회가 있어 회장인 채영복 화학연구소장이 대전시장과 대전경찰서장 등 대전 유지들과 대전 발전을 논의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것조차 뜸한 실정이다.

또하나의 문제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학교난이다. 연구단지안에 7개의 초·중·고교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늘어나는 연구원들의 자녀를 충분히 교육시킬 수 없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대덕고등학교가 한 반에 20여명씩 서울의 세칭 일류대학에 합격시키는 바람에 대전 시내 학생들까지 몰려들어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아울러 대덕 본토박이 아이들과 외국에서 들어온 박사급 연구원 아이들간에 빈부와 습관의 차이로 마찰이 자주 있어 학부모들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심각한 주택난도 두통거리다. 현재 중부지역에 1천2백60가구, 남부에 2백8세대 등 1천6백여가구가 들어서 있지만 이것으로 7천5백여 가구를 감당하기에는 집이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대전으로 내려갈 사람이 없어 2천만~3천만원씩 그저 보태주기도 했지만 요즘 연구단지로 이주하는 연구원들은 하숙과 자취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고급인력 대거 빠져나가기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한꺼번에 몰려있는 탓에 연구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연구원들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나빠졌으며 연구소 운영이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흐르는 데 있다.

80년까지 연구소에 간섭을 않던 정부는 81년 이후 각 연구기관의 운영에 상당한 제한을 가하면서 자율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기획원과 과기처가 예산통제권을 쥐고 연구소 운영을 일일이 간섭하고, 과학기술 지식이 없는 경제각료들이 연구를 좌우하고 있다고 연구원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이때문에 연구기관들이 본래의 독자적인 연구기능을 잃고 정부의 지시만 받는 관변 어용기관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80년이후 86년까지 임금을 동결했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처우 또한 나쁘다. 이 때문에 고급인력들이 기업연구소 등으로 빠져나가 연구프로젝트가 도중에 중단되기도 한다.

연구소가 정부의 일괄 통제밑에 들어가 연구주제의 선정에서부터 연구사업의 발표에 이르기까지 상급자의 폐쇄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우세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더러 노출되고 있다.

아울러 충남대와 연구단지 기관장협의회 사이에 연구협력협정이 맺어져있긴 하지만 지역사회와 산·학·연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과학문화도시를 지향

어쨌든 이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덕연구단지는 과기처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관계부처와 경제단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덕연구단지조성위원회를 통해 92년말까지 8천억원이 투입되고, 93년 대전박람회가 끝나 과학관과 과학공원이 고스란히 남게되면 그 내실이야 어떻든 국내유일의 과학문화도시가 될 것이 자명하다.

이 신도시에는 50여개의 연구기관과 2만여명의 연구인력이 결집된다.

조기 입주를 위해 현재 연구단지 서북부지역의 일부와 동부지역에서 부지조성 및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민간연구기관은 럭키금성그룹종합연구소를 비롯해 한국화약 삼성 선경 동부 동양 대림에틸렌 한국타이어연구소 등 24군데.

국가기관은 국제특허연수원과 대전지방기상대 두 곳이며, 수자원연구소와 정보통신연구소 한전기술연구원 통신공사선로기술연구소 등 정부투자기관도 네군데 있다.

학교도 국민학교 넷, 중학교 넷, 고등학교 둘 등 10개가 서고 의학연구와 진료를 위한 메디컬센터와 대덕과학문화센터도 건립된다.

연구원들이 살 주택도 1만7백26가구가 더 건설돼 전원도시로 바뀐다.

92년 완공될 대덕단지의 전체 면적은 8백34만평(27.6㎢). 연구 및 교육시설이 4백만평으로 48%를 차지하고 자연녹지가 3백74만평(45%), 주거지가 60만평(7%)을 이루게 된다.

20년을 끈 과학도시의 역사가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표) 대덕연구단지 입주기관 및 입주예정기관


광주첨단연구단지와 테크노벨트

대덕연구단지의 조기 완공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 광주첨단산업연구단지 조성계획과 전 국토의 기술지대망(技術地帶網, 테크노벨트)계획이다.

광주테크노폴리스 조성계획은 대덕연구단지를 핵으로 한 전국토의 첨단기술단지화 계획의 일환으로, 광주 하남공단 동북쪽의 삼소 본촌 비아 일원의 약 5백70만평을 대상으로 한다.

2001년까지 7천억원을 들여 정밀기계와 정보산업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을 유치시켜 서남권의 중핵도시 기능과 산업 연구 교육 문화 주거기능을 합친 '첨단과학산업연구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이 야심찬 계획의 목표다.

이 사업은 88년 2월부터 넉달간 전남대 지역개발연구소가 타당성조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건설부 농수산부 내무부등 12개 관련부처와의 입지선정협의와 사업설명회 등을 거쳐 (주)동명기술공단이 지난 해말 기본계획과 기본설계를 마쳤다.

올해에는 실시설계와 부지매입, 진입로 개설 작업이 이뤄지며 95년경부터 입주가 시작될 전망이다.
 


정치적 동기에서 입안

한편 기술지대망계획이란 첨단기술과 지식집약 산업이 주도할 21세기의 정보사회에 대응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한다는 의도아래 대덕 광주와 함께 기존의 공업단지를 첨단과학산업단지로 바꾸겠다는 프로젝트다.

이 계획은 수도권과 동남권에 대규모 공업기지를 개발하는 종전의 거점개발 방식이 지역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호남권과 중부권의 지역경제와 생활환경을 상대적으로 낙후시켰다는 국민적인 비판에 따라 입안됐다.

대부분 전임 이상희 과기처장관의 아이디어인 테크노벨트계획은 수도권의 홍릉연구단지와 대덕, 광주, 수원·안성(유전공학 반도체기계), 포항·울산(자동차 소재 금속), 대구(섬유 전자 의류), 부산(섬유 기계 신소재) 전주(식품가공 전자), 강릉(생명공학 정보기술 해양)을 연결해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테크노폴리스 조성계획과 전국의 기술지대망화계획은 그동안 푸대접해온 호남과 여타 지방을 무마하기 위한 선심용의 정치적인 동기로 입안된 경향이 강한데다 막대한 정부예산이 드는 사업의 시행을 재정이 약한 해당시에 일임, 자칫 부동산 투기만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땅값이 종전의 2~10배로 뛰어오른 곳도 있다.

또 이미 자생적으로 생긴 공업단지를 선만 그어 '벨트'로 규정짓는 관념성이 엿보이고, 유치하겠다는 산업이 대부분 첨단업종에 한정되어있어 계획이 착착 실효있게 진행될 지는 불투명한 구석이 있다.

게다가 장관이 바뀌면 정책이 실종되는 우리 과학기술 행정의 전례로 볼때 전임 이상희 과기처장관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업들이 '대'를 이어 계속 될는지에 대해서도 다소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림1)테크노벨트 계획

199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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