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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사고(史庫), 자연사박물관

국립 건립 추진 중

과거와 현재에 존재한 인간과 인간이외의 모든 생물은 물론 이웃 행성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자연사박물관의 관심영역은 방대하다.

얼마전에 정부는 국립자연사(自然史) 박물관 건립계획을 밝혔다. 또 최근엔 서울시가 역시 현재의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그곳에 자연사박물관을 세운다고 발표했다.

이에따라 학계에서는 지난 9월15일 한국동물분류학회 등 5개 학회가 공동으로 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 그 결과물로 정부측에 건의문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국립 중앙박물관이 있고 부여 경주 등지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박물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대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박물관'하면 자칫 낡은 골동품이나 진열하고 먼지가 쌓여있는 곳으로 아는 경향이 있으므로 국제박물관위원회가 내리고 있는 박물관의 정의(定義)를 들어 박물관의 제 뜻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즉 '박물관이란 문화적 또는 과학적 의의를 지닌 물건들을 연구와 교육, 그리고 즐거운 감상을 목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영구상설기관'이다. 또한 박물관은 외국인이 그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고 아울러 그 나라 국민이 외국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그러면 자연사박물관은 보통의 박물관과는 어떻게 다른가. 세계에는 많은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우선 미국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필드자연사박물관에서 내건 존립목적을 보면 '자연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보존 증대 보급하며 국민개개인이 자연의 역사가 주는 지식과 기쁨을 보다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자연사박물관의 주요 관심은 과거와 현재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이외의 모든 생물과 그들의 진화에 있으며 아울러 지구와 이웃 행성들의 구성과 진화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 활용하기 위해 첫째, 관심분야의 표본을 수집 보관하고 둘째, 연구원들이 주로 이 표본들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도우며 셋째, 일반인과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모든 학생들에게 전시 강의와 기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는 곳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자연사박물관의 기능을 볼 때 멀지않아 세계 10위권의 기술선진국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국립자연사박물관이나 시립자연사박물관이 하나도 없고 특히 우리나라의 고유한 생물자원과 생태계, 그리고 지질과 지사(地史)적 변천을 집중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곳이 없다고 하는 점은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뒤늦게나마 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인 잇따라 발표되는 이즈음에 외국에는 어떠한 자연사박물관이 있고 또 어떤 일들을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뜻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필자가 최근에 다녀온 영국 미국 프랑스 헝가리 및 일본의 주요 자연사박물관의 규모와 연구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의 교육사업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 영국의 자연사박물관(The Natural History Museum, 런던)

동물 식물 곤충 지질부 등 6개연구부와 4개 지원분야에 8백60명이 연간 약 1천3백만 파운드(약 1백40억원)의 예산으로 연구 전시 교육활동을 하며 6천6백만점의 표본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관람자수는 연 평균 3백30만명으로 그 가운데 외국관광객이 약 1/4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은 1753년 종합박물관으로 창립되었으나, 1882년 대영자연사박물관(British Museum-Natural History)이 분리됐다. 그러나 작년 11월에 종전의 명칭을 자연사박물관(The Natural History Museum)으로 개칭하고 고전분류학 뿐 아니라 생활사연구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분지계통학 등을 도입하여 자연사연구에 최신 기술과 방법론을 적용, 발전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보건과 농업상 응용에 관한 전시로서 대증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The Smithsonian Institute, 워싱턴 D.C)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종합박물관인 스미소니언 연구소는 자연사박물관 공예·산업 박물관 미국역사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 군사박물관 그리고 5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구기관으로서 방사선생물연구소 해양학연구소 천체물리학연구소 등이 있다. 이 종합박물관은 미국의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사이에 있는 몰공원에 자리 잡아 미국의 위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그 속의 한 박물관으로서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는 동물 식물 곤충 지질부 등 7개 과학부에 1백20여명의 과학자와 기타 다수의 보조인력이 종사하고 약 8천만점의 표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의 수집과 연구활동으로 매년 1백여만점의 표본이 증가하고 있다.

방문자 수는 1년(87년 경우)에 8백만명을 넘고 있다. 남미의 생물멸종방지 대책수립을 위한 연구인 '생물의 다양성 조사사업'(Bio-Diversity Program) 등 대형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역시 생물학의 모든 분과와 새로운 기술 및 방법론은 적용해 분류 계통 진화학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약 5천여개 이상의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자연사박물관을 포함한 과학박물관 방문자수가 한때 연 1억 7백만명으로 전체 박물관 관람자의 약 40%를 차지했다는 보고가 있다.
 

광물도 연구분야의 하나. 에메랄드의 기원을 밝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 필드자연사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시카고)

1993년으로 창립 1백주년을 맞는 이 박물관에서는 동물 식물 지질 인류의 4개 연구부를 중심으로 1천6백만점의 표본을 관리 운영하고 여러가지 상설 및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연 입장자가 약 1백30만명에 이른다.

■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Museum Natural d'Histoire Naturelle, 파리)

프랑스 7개 지역에 걸쳐 26개 연구소를 거느리고 있는 이 박물관엔 2천여명의 직원이 연구 행정 전시기능 등에 종사하고 있다.

세계 73개국에 연구진을 파견하여 표본을 수집함으로써 매년 약 2백만점의 표본이 증가하고 있으며, 1993년에 창립 2백주년을 맞아 이 박물관의 재건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생물의 진화' 전시 준비가 정부의 특별예산 4억프랑(약 4백억원)으로 현재 제작 진행중에 있다.

이 박물관의 방문자수는 매년 약 2백50만명에 이른다.

■ 헝가리 국립자연사박물관(Hungari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부다페스트)

1백50여년의 역사를 가진 헝가리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동·식물 및 인류 광물 고생물 등 5개 연구부가 있고, 2백여명의 과학자와 기능인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헝가리정부의 문화부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박물관에는 동물학연구부에 절지동물만도 6백50만여점이 소장돼 있고 표본수는 박물관 전체로 매년 20만여점이 늘고 있다. 이러한 자연사박물관은 수도인 부다페스트 외에도 전국의 6개 주요도시에서 각각 설치, 운영되고 있다.

■ 국립과학박물관(도쿄)

이 박물관은 국립과학박물관, 부속 자연교육원 그리고 실험식물원으로 이루어지는데 과학박물관에는 동물 식물 지학 인류의 4개 연구부가 운영되고 있다. 1백50여명의 직원 가운데 50여명의 연구원이 1백70만여점의 각종 표본을 관리하면서 국내외에서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문부성의 예산지원으로 운영되며 전체건물은 4만5천8백㎡이고 이 가운데 전시용면적은 약 1만6천㎡를 차지한다. 최근 1년간 입장자수는 약 85만명으로 기록됐다.

워크숍 등으로 관람객 교육도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의 전시와 교육활동을 살펴보면 우선 어느 박물관이나 상설전시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에는 현재 10개 주제 전시가 운영되고 있고 특히 그 가운데 5개 전시 즉, '인간의 생물학' '공룡과 그 이웃들' '인간의 진화', '지구의 이야기' 그리고 '종(種)의 기원'이 매우 인기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어느 박물관에서나 일정기간만 운영되는 특별전시가 있어 그때 그때의 토픽이나 문제점 또는 흥미나 교양 위주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활화산의 내부' '큐 식물원의 꽃들' '공룡 전시' 등이다.

기타 청소년을 상대로 연령 구분에 따라 반을 편성하여 시간제로 운영하는 워크숍이 있다. 예를 들면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에서는 '너는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는가?' '나의 조상은 어떤 사람인가?' '공룡은 무엇인가?'의 주제로 워크숍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연구원들의 지도하에 박물관의 실물표본을 직접 관찰하고 만지고 실험하면서 학습하는 과정도 있다. 한편 과학자들의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는 순서도 있으며 실제로 자연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야외 현장으로 인솔하여 새의 행동따위를 관찰하고 토론하는 행사도 있다. 이 밖에 대개의 자연사박물관이 소형전시상자 책 영화필름 등을 대여하고 있으며 자연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과 성인들의 모임을 클럽으로 운영하여 박물관시설과 자료를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이용케 한다.
 

농업연구의 일환으로 진딧물의 생태가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 자연사박물관은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과 생물 멸종문제를 연구, 전시하거나 교육의 주제로 다뤄 자연보존과 환경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강조해야겠다.

이상에서 세계의 주요 자연사박물관과 그들의 교육활동을 살펴 보았다. 결국 자연사박물관은 인류가 태어나고 생존해온 바탕으로서의 자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술센터인 동시에 대중교육기관이며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과학문화와 환경속에서 인간이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인구밀도가 특히 높고, 급속한 공업발전, 그리고 이에 따르는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극심한 한국의 상황에서 자연사박물관은 하루바삐 건설, 운영되어 학교 교육지원과 대중의 여가선용 및 평생교육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생물들을 수집, 보존함으로써 우리의 후대들이 한국의 자연의 개성과 특징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 정립을 통해 주체적 문화의식과 자긍심을 고양하는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1600년대에 만들어진 나비표본은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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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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