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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검사로 능력 평가해야

색각이상 판정 허점 많다

한국남자 1백명 중 6명꼴로 나타나는 색각이상. 그러나 이들의 색분별 능력이 정상인과 얼마나 차이나며 그 신체적성의 한계가 어느정도인지에 대해 아직 객관적인 기준이 설정되지 않고 있다.

올해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는 김모군(24)은 취직시험준비에 바쁜 요즘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 색맹검사표를 눈에 익히고 있다. 고교시절 신체검사에서 적록색약(亦綠色弱) 판정을 받은 김군에겐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색각이상자의 입학을 제한하는 이공(理工)계열에 진학하기 위해 이미 대학입시때 한 번의 실전(?)을 경험했기 때문.

이공계학생들에겐 그리 생소한 얘기가 아닌 김군의 예는 정상인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색맹·색약의 입학, 취직제한 규정이 우리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색각이상자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추체 결험이 원인

최근 대한안과학회에서 남녀중학생 9천4백38명(남4천6백78, 여4천7백60)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3.15%가 색각이상이며 성별(性別)로는 남자의 5.9% 여자의 0.4%가 색분별에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색각이상이 이처럼 남성에 두드러지는 이유는 색각이상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있고 건강한 염색체에 대해 열성(劣性)이기 때문이다. 즉 두 개의 X염색체중 하나라도 정상이면 색각 이상이 드러나지 않는 여성에 비해 하나의 X염색체만을 갖는 남성은 색각이상 발생빈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모든 색깔은 빛의 3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이 적당히 혼합돼 감지되는 것으로 이러한 색각(色覺. 색의 구별)을 3원색시(三原色視, trichromatic vision)라 한다. 색각은 망막의 시세포에 있는 약 7백만개의 추체(錐體, cone pigments)가 담당하는데 색의 종류에 따라 반응하는 추체도 다르다. 물체를 반사한 빛이 우리 눈을 통해 들어오면 파장의 차이에 따라 그 각각에 반응하는 추체가 흥분해 색을 분별하게 된다. 이 때 유전이나 후천적인 원인으로 추체에 손상을 입은 색각이상자는 3색혼합으로 색감을 얻는 정상인과는 달리 하나 또는 두 종류의 원색혼합만으로 색을 느낀다.

안과학회의 이번 조사결과 한국인 중 색각이상자는 모두 적록색각이상인 것으로 나타 났다(적색각이상27.9% 녹색각이상 53.2% 분류불가능 18.9%). 백인종에 드물게 나타난다고 보고된 청색각이상은 없으며 색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물체의 명암만을 구분하는 전색맹(全色盲)도 없다.

한편 색각이상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가를 양적으로 비교, 분류하기도 한다. 색맹과 색약(色弱)의 구분이 바로 그것. 정도를 어떻게 판정받는가에 따라 진학 취업 등에 주어지는 기회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색각이상자들이 이 분류에 관심을 갖지만 실제로는 명확한 구분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안과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애매함은 색각이상을 검사하는 기구에 따라 동일인물의 측정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색각이상의 정도판정 애매해

현재 색맹검사기구로 일반인들에 가장 익숙한 것은 그림책 모양의 가성동색표(pseudoisochromatic plate). 정상인에게는 분명히 다른 색으로 보이나 색각이상자에게는 같은 색으로 혼동돼 보이는 가성동색(假性同色) 계열의 점으로 문자나 숫자모양을 만들어 이것의 식별가능여부로 색각이상을 판정해내는 것이 원리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표로는 독일의 스틸링(Stilling), 일본의 이시하라(石原), 미국의 HRR 테스트, 한국의 한천석(韓天錫)식 등이 있으며, 이 중 국내 학교나 기업체 신체검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이시하라표는 제시된 숫자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색맹과 색약의 두 종류로만 정도 구분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1950년대 미국에서 하디(Hardy) 등이 만든 HRR 테스트는 정도를 강(strong) 중(medium) 약(mild)의 3단계로 구분했으며 국내유일의 검사표인 한천석 식 역시 3등급으로 이상(異常)정도를 구분한다. 우리나라에 색맹-색약 구분을 보편화한 이시하라표(1918년 제작)는 색각 이상의 유무(有無)를 판정하는 데는 적절하지만 그 종류와 정도를 알아내는 데는 미흡해 색약을 정상으로 분류하기나 적색각이상과 녹색각이상을 혼동해서 판정하는 단점이 자주 보고됐다. 이를 보완한 HRR 테스트도 이시하라표보다는 정밀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정밀검진을 시행하는 종합병원등에서는 가성동색표 외에 비슷한 색상을 차례대로 배열해 색각이상의 종류와 정도를 파악하는 판스워드-밀러(Farnsworth- Miller)의 100휴(hue)테스트나 스펙트럼의 혼색을 이용한 아노말로스코프(Anomaloscope)등의 기구를 함께 사용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강남성모병원 안과의 김재호과장은 "색맹 검사의 정확도가 떨어져 오진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병역기피 등에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지적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색각이상의 종류를 3등급으로 분류한 HRR테스트. 이시하라 색맹검사표에는 없는 청황(靑黃) 색각이상 분류도 있다. 두 개의 표 중 왼쪽은 강도(强度) 오른쪽은 중등도의 적녹색각이상자를 각각 판변해낸다.


학교따라 입학규정 차이나

그러나 정도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색각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몇 개의 색구별에 취약할 뿐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색일지라도 경험을 통해 다른 색과 구별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색각이상자들이 정밀한 색분별을 요구하는 작업을 하게될 때다. 염색공이나 식품첨가색소관리자 등 색분별이 작업의 핵심이 되는 직종은 물론 이공계열의 작업과정이 대부분 색을 사물성상(性狀)의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에 색각이상자에 대한 규제영역도 자연히 광범위해진다.

색각이상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벽은 진학문제.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실험 실습 학습환경의 위험도 등을 고려해 각 학교별로 구성된 심의기구에서 신체장애자에 대한 입학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색각이상자의 입학기준에 대해서도 전국적인 통일안이 없으며, 학교에 따라 편차가 있어 심한 경우 동일한 과(科)라도 학교에 따라 진학여부가 달라진다. 한 예로 공과대학의 경우 서울대 한양대 인하대 등에서는 전 학과가 색각이상자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으나 아직 대다수의 공과대에서 과별로 규제조항을 남겨두고 있다. 의대의 경우에도 고려대 부산대 이화여대 등에서는 색약자에 한해 입학을 허용하나 나머지 다수 학교가 색약을 포함해 색각이상자의 입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행정당국의 입장에선 모든 신체장애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켜나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를 각 학교에 강제할 수는 없는 형편"이 라고 말한다. 역설적인 것은 소아마비자·맹인 등 가시적인 장애자에 대한 규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만 색각이상자의 경우 일반적 인식으로는 장애로 인정되지 않아 실제적인 규제가 있어도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히 이공계열에 진학해 졸업을 한다해도 이번엔 취직관문이라는 또 다른 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공계열의 전문기술직은 물론 일부 은행에서도 색각이상자의 입사를 제한하고 있으나 업무의 성격상 색각이상이 어떻게 부적합한가에 대한 구체적 검증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운전면허교부에는 비교적 융통성이 있다. 현행 신체적성검사에서는 2종의 경우 색각이상자도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으면 면허획득이 가능하고 버스 택시 대형차운전자인 1종의 경우는 색각이상이 안전운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종합병원의 검진결과가 있으면 면허를 발급한다.

제도 이식한 일본도 규제 완화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영국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필요에 따라 색각이상을 검진하기는 하나 이로 인한 규제는 전혀 없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규정이 다르나 색각이상의 직업적성을 비교적 정밀하게 규정해 진학이나 취업선택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

심지어 식민통치 시절 우리나라에 색각이상자 규제조항을 이식한 일본도 최근에는 조건을 완화하는 추세다. 85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의과대학 중 색맹을 포함해 색각이상자의 입학을 제한하는 학교는 전체의 16%에 불과하며 강중약 등 정도에 따라 수학(修學)이 가능한 학과를 구분해 약대 수의대 등에는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직업적성도 갑을병정의 4종으로 구분, 색각이상자의 능력과 한계를 밝혀놓고 있어 개인이나 기업이 참고로 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색각이상자의 사회적 규제 철폐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오랫동안 색각이상자 입학제한철폐를 주장해 온 한천석박사(전 서울대의대교수)는 "근대 영국 과학자 달톤(Dalton)은 색각이상자였음에도 위대한 물리학자로 이름을 남겨 오늘날 색맹이 달톤이즘으로 불리는 계기가 됐다"며 "이공 계열에는 무조건 안된다는 식의 관행을 버리고 색채식별이 업무의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경우에만 신중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색각이상의 정도차이가 애매해 객관적인 구분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의사나 열차기관사 등 타인의 생명에 책임을 지는 경우 색각이상으로 인한 위험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신중론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양측 모두 현재의 색각이상검사가 보다 정밀화해야한다는 점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적어도 가성동색표 하나만으로 색각이상의 정도까지 판별하는 관행은 지양 하자는 것. 또한 강제조항으로 시행할 수는 없다해도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현대의학 및 기술수준에 걸맞는 색각이상판별기준을 세워 색각이상자의 구체적인 직업적성을 제시한다면 차별철폐의 근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시된다.

그러나 색각이상자에 대한 현행의 규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제도개정 만으로는 그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색 분별에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임을 자각하는 사회의 포용성이 과학적인 근거들을 뒷받침할 때만 불공정한 규제조항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해 보이는 색상환을 차례대로 배열케 해 색각이상의 정도와 종류를 판정하는 100 휴 테스트. 정밀검사에 적당하나 많은 시간과 전문지식을 요구한다는 난점이 있다.
 

199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정은령 기자
  • 사진

    이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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