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 일본 소련 중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1만여명의 한인과학자들, 그들은 국내과학자들보다 노벨상에 한걸음 더 다가서 있는 것일까?
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과학자 가운데 세계속에 이름이 빛나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들은 어떠한 삶의 통로를 지나 무슨 분야에서 조국과 자신과 가문의 영예에 광택을 더 하고 있는 것일까.
이같은 물음을 던지기 전에 우선 한국인 과학자들이 어느 나라에 얼마만큼 퍼져 있는지부터 짚어보기로 하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7월15일 현재 미국 유럽 캐나다 일본 등 서방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과학자들은 대략 1만1천2백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으뜸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 각지에 50개의 지부를 갖고있는 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회장 서재진)에는 약 8천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해마다 1천명 가량씩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멀지않아 1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다소 얘기가 빗나가지만 한미간의 정치군사적인 '특별한' 관계가 하부토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 대목에서 확연히 엿볼 수있다.
유럽의 재구(在歐)한국과학기술자연합회(회장 박춘식)에는 1천2백명이 가입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독일이 7백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3백명, 2백명이다. 물론 회원수가 가장 많은 독일이 이 단체의 중심이고, 재독한국과학기술자협회가 연합회 전체 일을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캐나다에는 8백여명의 한국과학자가 살고 있다. 재캐나다한국과학기술자협회(회장 강칠용)는 4년전에 재미과협에서 떨어져 나왔다. 일본의 재일과협(회장 김재하)은 지난 83년 만들어져 1천2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과 소련에도 동포과학자들이 있다. 지난해 7월 만들어진 중국조선족과학자협회(회장 강귀길)에는 현재 6백20명의 과학기술자가 회원으로 들어있다.
덴비안드레비치 모스크바 항공기술대학 교수를 핵으로 하는 소련의 동포 과학자 12명도 지난 5월 창립된 전소(全蘇)고려인협회안에 재소조선기술인협회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곳곳의 과학과 기술현장에 흩어져 '복무'하는 중국과 소련의 동포과학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과 과학자들의 개별적인 성향 때문에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과학자는 대부분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들이거나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수받으러 간 '포스트 닥'(post doc.) 또는 유학을 마치고 그 나라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빛나는 얼굴들이 있다.
실험도구 없는 화학자, 하태규
맨먼저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의 하태규박사(56)를 꼽지않을 수 없다.
그는 유럽 제1의 이론화학자다. 59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하박사는 63년 서독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65년부터 2년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과 버클리대학에서 연구원과 강사 노릇을 잠깐 한다.
그의 진가는 69년 취리히대 강사가 되어 유럽으로 돌아오면서부터 빛을 낸다.
그는 화학자지만 실험 도구가 없다. 모든 화학물질의 구조와 반응을 수학과 물리로 설명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의 출발점이자 목표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과 현상은 그것이 분자로 이뤄져있는한 양자역학의 같은 원리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그의 연구실에는 종이와 계산용 컴퓨터밖에 없다. 그만이 복잡한 화학반응을 실험도구 없이 컴퓨터로 그 비밀을 풀어 도표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연구결과는 전세계 화학도들의 연구기초 자료로 쓰인다. 그가 세계 최초로 '찾아낸 테록사이드메틸렌' 전자구조는 그로부터 1년뒤에야 미국표준국 실험실에서 사실로 입증됐으며, 역시 그가 창안한 '시약없이 하는 화학론'은 취리히공대의 화학연구 방법을 바꿔 현대 화학의 방향을 틀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국적이 신통치않아(?) 노벨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는 10명의 노벨상수상자를 낸 취리히공대에서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를 평가해주는 '판정사'와 연구자문관으로 우뚝 솟아있다.
컴퓨터분야의 샛별, 김용민
또하나의 '별'로는 미국 워싱턴 주립대 김용민교수(38)를 들 수 있다. 그는 젊지만 지난 2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값이 싼 컴퓨터 영상처리시스템을 개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백과사전 크기에 10kg 안팎의 이 기기는 뇌수술을 하지않고도 뇌암의 발현상태를 컬러 TV의 5배 이상의 밝기로 또렷이 알 수 있게 해준다.
7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김박사는 지난 88년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박사학위 취득후 10년이 못된 과학자를 대상으로 주는 '조기 업적상'을 받았으며 미국육군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김성호교수(53)도 하태규 김용민박사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과학자다. 피츠버그대학 출신으로 평생을 DNA와 RNA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데 바치고 있는 김박사는 이미 음전자에 대한 분자생물학적인 연구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강력한 노벨화학상 후보자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 세 사람말고도 자랑스런 한국인 과학자는 더 있다. 그들은 어려운 연구환경과 언어장벽 그리고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않는 주위의 견제와 질시를 뚫고 오늘도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먼저 미국으로 가보자.
다우케미컬의 소문난 한국과학자들
미국의 한인과학자로는 우선 서재진박사(62)를 들 수 있다. 서박사는 미시건대학을 나와 지금은 길버트 키몬웰스사의 기술자문을 맡고 있다. 핵발전장치와 열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펜실베이니어 대학교수인 함인영박사(65)는 소문난 산업공학자로 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생산공정과 절단도구 부문의 대가다.
수력동력학과 해양공학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김정훈박사(63)는 텍사스 A&M대학 교수로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초대규모 집적회로의 디자인과 비선형 반도체회로 분야의 떠오르는 샛별인 강성모박사(45)는 버클리를 나와 일리노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강경식박사(54)는 중간소립자의 작용현상과 고에너지 활란작용론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학자로 브라운대학에 재직중이다.
김정욱교수(56·존스홉킨스대)와 이원용교수(60·컬럼비아대)는 각각 원자핵의 약작용과 소립자 실험물리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밖에 신경전달 물질과 효소 연구로 유명한 조동협박사(59·코벨대 )가 있고, 강심재의 메커니즘을 규명해 심장생리 부문에서 최고의 권위에 빛나는 이진옥교수(50·인디애나대)가 있다.
시카고의대 김윤범교수(59)는 면역학의 제1인자로, 펜실베이니어 대학 한경택교수(60)는 대수학의 체계적인 연구를, 위스콘신대 유혁교수(57)는 고분자화학으로 미국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변종화박사(59)는 통계역학과 고분자 이론가로 로웰대 화학과 교수로 있다.
폴리테크대학 한창대교수(54)는 MIT 출신으로 고분자화학의 세계적인 명망가다. 다우케미컬사의 학건섭박사(53)도 고분자처리에 관해 1백50편 이상의 기술보고서와 20종의 학술집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다우케미컬에는 소문난 한국인 화학엔지니어가 또 있다. 바로 이도익박사(59)로 그는 20여편의 내국특허를 받은 공로를 인정받아 86년 미국제지협회로부터 '코팅 및 그래픽기술변환상'과 '찰스엥겔하드훈장'을 받았는가 하면 미국화학회 중부지구가 주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이우영박사(52)는 정유공정과 촉매, 고분자연구개발관리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자로 모빌계미컬사로부터 스카웃당해 연구이사로 일한다.
MIT 서남표교수(53)와 펜실베이니어 주립대 한용택박사(47)는 각기 제조공정과 복합재료 부문에서 미국 최고의 실력자로 꼽힌다.
메릴랜드대 이승원교수(46)는 정밀부품 분야의 항공우주기술 전문가로 MIT를 나왔다. 로봇과 자동화기술 권위자인 신강근교수(44)는 미시건대학에 있다. MIT를 나와 MIT정교수로 있는 임재수교수(44)는 신호처리, 록웰인터내셔널사의 심상근박사(46)는 광통신, 휴스턴대 이광윤교수(48)는 제어기술, 플로리다대 김광해교수(43)는 무결점 컴퓨터과학 부문에서 미국의 40대를 이끌고 있다.
이밖에 섬유기계 설계자로 대단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권기중박사(50·록웰인터내셔널사)가 돋보이고 있다.
석유탐사 끝에 회사 차리기도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과학자 가운데는 캘거리의대 병독학주임 교수이며 이 대학 당뇨병연구소 부소장인 윤지원박사(50)가 단연 이름을 날리고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 출신인 그는 세계에서 맨처음 당뇨병환자의 췌장에서 당뇨병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당뇨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백신을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하는데 성공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뒤 고성능의 인슐린 생산균주를 개발하고 인슐린을 생산하는 인체세포를 분리 배양해 내는가 하면 잇따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자기면역의 기작과 당뇨병 기작을 밝혀 바이러스연구와 면역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캐나다에서 평판이 난 또 한명의 한국인은 스스로 자원탐사회사인 'CHI 리소스즈'사를 차려 회장이 된 지병일박사(51)를 들 수 있다. 캘거리대학에서 74년 지질학박사 학위를 딴 그는 캐나다 북극지방에서 최초로 석유를 탐색해 낸 것은 물론 25년간 북미지역의 석유발전에 몸을 바쳤다. 그의 학위논문은 캐나다 지질학 논문 심사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 미국 워싱턴대학을 나와 캐나다 캘거리대학의 우주선핵물리학 교수로 있는 김창영교수(63)가 유명하다. 그는 태양 중성자 측정이라는 독특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캐나다에는 뜻밖에도 세명의 한국인 과학자가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공무원으로 있어 이채를 띠고 있다.
MIT출신으로 캐나다 연방정부 건설국에 근무하는 오병호박사(40·도시계획)와 엘버타주 환경청과장인 고종안박사(52·수질학) 그리고 같은 엘버타주 표준연구관 소병채박사(52·디지털통신)가 그들로 뛰어난 식견과 지식을 바탕으로 직업관료로서 확고한 발판을 굳히고 있다.
캐나다에는 이밖에도 강칠용(50·오타와의대 생명과학연구소장) 김승업(54·브리티시콜럼비아대 신경내과교수) 신용무(59·사스카체안대 핵물리학교수) 양옹진(59·토론토대 기생충연구소장) 유봉열(55·뉴브룬스윅대 식물유전학교수) 이영(58·카레톤연구소·유체역학) 이병훈(48·맥길대 유전공학교수) 정영섭(53·몬트리올대·미생물유전학) 등이 쟁쟁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운동복차림으로 망명한 북한과학자들
이제 유럽으로 건너가 보자.
유럽대륙선 우선 독일 뮌헨공대 교수로있는 김재일박사(54)를 꼽을 수 있다. 핵폐기물 처리 전문가인 김박사는 서울사대 화학과 출신으로 공부는 벨기에브뤼셀대학에서 했다. 그는 독일을 대표해 유럽공동체(EC)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심심찮게 중국과 소련을 드나들기도 한다.
또 전중환박사(52)가 있다. 전박사는 아헨공대를 나온 항공유체역학 분야의 유럽 제1급 과학자로 독일항공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우주의 무중력상태에서 물질이 어떤 성질을 보이는가가 그의 끊임없는 연구대상이다. 그는 전두환씨와 이름이 닮아 한때 전씨의 친척이라는 오해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외에도 이론물리학의 권위자로 프랑스에서 이름높은 민선식박사(70·낭트대 물리학 부장)가 있으며, 이경종교수(54·서독 브라운 슈바이크대)가 재료공학 가운데 피로현상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소설가인 정비석씨의 사위인 신구철박사(60·슈투트가르트대)가 쓰레기전문가로 위생공학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있고, 김병로박사(56)가 아헨공대에서 실험물리학을 이끌고 있다.
특히 김박사는 북한에서 동독으로 유학왔다가 운동복 차림으로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독으로 망명한 인물로, 역시 같은 북한출신의 윤몽련박사(59·바스프화학회사 부장)와 재독북한과학자모임인 애향회를 조직, 망향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일본에서 이름난 재일동포 과학자는 16명 가량된다. 이 가운데는 표면물리학자인 김현우박사(64·장기종합과학대 교수)가 가장 어른이며, 김철우(60·홋카이도대 지질광물) 장갑순(57·도카이대·표면전자공학) 진경주(55·오사카대 진공기술학) 현광남(45·아시카가공업대 경영공학) 홍정국(42·도호쿠대 화상처리학)씨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밖에 김무완(38·오사카대 통신공학교수)씨를 비롯해 김철(35·조지대 집적회로공학) 이우민(34·도쿄대 천문학) 박사 등 젊은 과학자들이 촉망받고 있다.
파악 어려운 중국·소련 거주 과학자들
중국과 소련의 알려진 동포과학자는 각각 18명, 12명이다.
먼저 중국을 살펴보면 재중(在中) 조선족과학자협회 회장을 맡고있는 강귀길교수(연변대 화학과)가 있고 최주범(하얼삔 전기연구소·응용계산기·고급공정사) 김동희(중국북방조선족과학자협회비서회·방직·고급공정사) 반봉선(연길시원림처·농학·공급공정사) 강의석(연변주과학기술연구소·물리) 최영진(연변주과학기술정보연구소·정보) 김한민(길림대학 교수)씨 등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하얼삔의과대학 교수인 황용학, 장춘광학기계연구소 김진유 부연구원, 요령성대학 체육연구회 전만송교수, 연변 진균연구소 이호철소장, 하얼삔공업대학 자동비행실 김영덕교수 등이 한인사회의 자랑이다.
소련의 동포 과학 기술자로는 김드미트리 페트로비치(모스크바 라디오 전자및 자동연구소 교수) 칸야체슬라프 막시모비치(카자흐스탄 과학아카데미 농학박사) 남루드밀라 세매노브나(무기재료연구소 화학박사) 텐 보지소비치(모스코바철강연구소)씨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구한말 만주나 연해주로 이주한 선조들의 후예인 중국이나 소련의 한인과학자들은 다소 예외지만, 서방에서 성공한 한국인 과학자들한테는 남다른 비결이 있다.
개인의 출세와 조국의 영광
그들은 남들이 흔히 하는 연구를 쫓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대부분 선택했다. 하태규박사도 기회가 닿을때마다 이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또 이질적인 연구환경과 언어장해 등 개인적인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해 하루 14~16시간씩을 연구에 쏟았다. 김용민박사는 "75년 처음 미국땅에 발을 디딘후 6년간 14시간 공부하지 않은 날이 없다"며 "천재적인 두뇌는 외국땅에서 큰 소용이 없으며 오직 근면과 성실만이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속의 한국인과학자들을 얘기할때 그들이 이룬 성과와 성공비결에 덧붙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그들의 개인적인 출세와 영광이 이 땅의 구체적인 현실과 어떻게 접목되고 있고 또 접목되어야하는 점인가 이다.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6천만 한민족 밖의 존재일 수는 없다. 그들이 인류사회에서 이루었거나 이루고 있는 위업은 그들의 어머니와 형제와 이웃의 일정한 희생위에 피는 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이 땅에서 배출된 한국 과학자들이 조국의 현실을 사람사는 세상에 맞게 얼마만큼 고치고 조국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출세주의와 이기주의는 통일의 시대에 접어든 90년대에 있어 더 이상 과학자들이 갖출 '덕목'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