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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Ⅱ 국내 인공지능연구 누가 어떻게 하나?

"인공지능은 전산학의 모든 분야를 포괄"

85년 4~5명이 퍼뜨린 '인공지능'이란 메시지는 현재 컴퓨터과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복음'이 됐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말이 국내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85년경부터 주로 미국에서 이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이 하나 둘씩 귀국하고 과학기술원 서울대 등에서도 박사급 인력을 배출하면서 인공지능은 컴퓨터과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문으로 급부상했다.

85년 가을 과학기술원 김진형 교수를 중심으로 임영환 최기선 박창우 권혁철 한상기씨 등이 '인공지능연구회'를 창립하고 첫 학술대회를 과학기술원에서 열었을 때 무려 4백여명이 이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들 중에는 전산학을 전공하는 교수 학생들도 있었지만 인공지능을 자신의 학문이나 사업에 이용하려는 의사 경영학자 엔지니어 언어학자 심리학자들이 더 많았다. 이들은 '생각하는 컴퓨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초창기의 인공지능 학자들은 연구보다 이들에게 인공지능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 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김진형 교수는 "현재 인공지능의 성과는 아무 것도 없지만 미래의 컴퓨터는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후 신동필 유석인 이일병 권영빈씨 등이 잇따라 외국에서 학위를 얻고 귀국함으로써 전문가가 손꼽을 정도이던 인공지능학계는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공지능으로 국내외에서 학위를 딴 박사인력만도 50~60명 정도. 해외 인력들이 대거 유치된 것은 미국에서도 전산학 하면 거의 인공지능에 치우칠 정도로 유행하기도 했지만, 국내 대학들이 최근 이 분야의 강좌를 앞을 다투어 개설했기 때문. 어쨌든 인공지능은 국내에서도 전산학을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인공지능이 인기 있는 학문이 되고 전공자도 부쩍 늘어났지만 초창기처럼 일반인들의 큰 관심은 끌지 못하고 있다. 막연히 인공지능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사람들은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자신의 학문이나 산업분야에 인공지능이 이용되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기존의 상품화된 전문가시스템을 응용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반면 인공지능 학자들은 각자의 세분된 전공에 따라 보다 학문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5월 11~12일 전자통신연구소에서 열린 '인공지능 학술대회'에는 1백여명의 전산학자들이 참여, 각자의 연구결과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타분야의 전공자들은 거의 참가하지도 않았고 참가했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 대회를 주관한 임영환박사(전자통신연구소)는 "5년 전과 비교하면 북적대던 분위기는 사라졌으나 학문적 논의 수준은 깊어졌다"고 술회했다.

인공지능의 세부적인 연구분야는 전문가시스템 컴퓨터비전 음성인식 자연어처리 로봇공학 프로그래밍자동화 등 응용분야와 탐색 지식표현 학습 등 기초분야 및 인공지능언어 인공지능머신 등이 있다. 이처럼 폭이 넓어진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누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과학기술원 은종관 교수팀이 개발한 음성인식시스템


KAIST, 인공지능연구의 산실

과학기술원 전산학과는 지난 5월 10일 '인공지능연구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한국과학재단이 기초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선정한 13개 우수연구센터 중의 하나로 전산학분야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이 센터는 앞으로 과학기술원 교수 20명을 포함, 80여명의 국내 대학교수들이 참여해 인공지능에 대한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조정완교수는 "인공지능은 이미 전산학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학문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언어 컴퓨터구조 등의 분야도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 센터는 △데이터베이스 및 지식공학연구실(실장 황규영교수) △컴퓨터시스템연구실(맹승렬) △언어공학연구실(권용래) △시각정보처리연구실(양현승) △음성정보처리연구실(오영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연구실(전길남) 등 6개의 연구실로 구성돼 있다.

과학기술원 전산학과는 국내 인공지능연구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미국 UCLA대학에서 인공지능으로 학위를 딴 김진형 교수가 85년 귀국해 인공지능연구회의 설립을 주도했고, '국내 인공지능 박사 1호'로 기록된 최기선교수가 85년 과학기술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80년대초만 해도 작은 과에 속했던 전산학과는 현재 교수 20명, 석·박사과정 1백20명이 소속된 과학기술원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과로 부상했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교수로는 김진형(전문가시스템) 최기선(자연어처리) 양현승(비전) 이광형(퍼지이론) 교수 등이 있다.

과학기술원에는 전산학과 외에도 경영과학과 이재규(전문가시스템), 전기전자과 은종관(음성인식) 박규호(비전)교수 등이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TV에서 수신한 영상정보를 곧바로 컴퓨터에 기억시킨다.


신흥명문 포항공대

국내 대학의 인공지능 연구수준은 서울대 포항공대 경북대 등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스탠포드, MIT, 카네기멜론 등 3개 대학이 '인공지능 연구의 메카'로 불리는 것과는 달리, 국내 대학들은 인기학문에 대한 구색갖추기 정도로 1~2명의 교수진을 보유하고 있다.

인공지능분야에 관한 한 포항공대는 국내 대학들 가운데 가장 많은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 전산학과의 방승양(신경회로망) 이전영(전문가시스템) 한준희(비전) 박찬모(영상처리), 전자과의 오세영(로봇), 수학과의 이정림(신경회로망) 김광익(비전) 등 5개 학과에 걸친 20여명의 교수가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개교 4년만에 이공계의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포항공대는 학과별 공동연구 뿐아니라 포철과 연관된 실용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는 전산학과 김영택 교수팀의 기계번역 연구, 계산통계학과 유석인 교수팀의 전문가시스템개발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영택 교수는 한국 IBM의 지원을 받아 영어-한국어 번역시스템을 개발중이며, 유석인교수팀은 독자적인 전문가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그 잠재력에 비해 이 분야를 전공한 교수 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전자공학과를 갖고 있는 경북대는 올해초 '신경컴퓨터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하드웨어 중심의 인공지능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축은 정호선(VLSI) 김황수(비전) 하영호(비전) 진성일(신경회로망) 교수 등.
 

로봇의 눈(비전). 과학기술원 변증남교수팀이 개발했다.


신촌학파(?)

인공지능분야 가운데서도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신경회로망(뉴럴컴퓨터) 분야의 권위자는 연대 이일병교수(전산학과). 이교수는 현재 인공지능연구회의 3대회장이기도 하다. 연대는 이일병교수외에 전자과의 김재희교수가 지식베이스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강대는 오경환 교수(전산학)가 국내에서는 드물게 퍼지이론을 이용한 전문가시스템을 연구중이고 박래홍교수(전자공학)가 비전을 통한 문자인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립대학의 연구시설은 매우 빈약하다. 재단의 지원이나 기업체의 프로젝트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각 대학마다 1~2명에 불과한 연구인력으로 기초연구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일병교수는 이에 대해 연대 서강대 이대 홍익대 등 신촌일대에 소재한 대학교수들은 소위 '신촌학파'를 결성, 최소한의 정보교환을 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들 외에 국내대학의 인공지능 전문가로는 중앙대 김기태(전문가시스템) 권영빈(비전) 최종수(비전), 한양대 김한우(기계번역), 인하대 이주근(패턴인식) 이균하(문자인식), 세종대 국형준(전문가시스템), 충북대 이성환(문자인식), 부산대 권혁철(자연어처리) 차의영(패턴인식), 충남대 김태균(한글인식) 이원돈(신경회로망), 숭실대 최형일(비전) 교수 등이 있다.

ETRI의 지능형 컴퓨터계획

정부출연연구소 가운데는 전자통신연구소가 최근 '지능형 컴퓨터개발 계획'을 세우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96년까지 7년간 총 9백억원을 투입해 우리말을 알아듣는 컴퓨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은 컴퓨터연구부장 박치항박사는 "지능형컴퓨터는 엄밀히 말해 인공지능컴퓨터는 아니다. 현재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래형 컴퓨터를 순수하게 우리 기술로 구현해 보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지능형 컴퓨터에는 문자뿐 아니라 음성영상 그래픽 등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미디어(multimedia)의 개념이 추구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능형 컴퓨터 프로젝트는 그 영역이 인공지능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젝트의 규모나 내용으로 보아 인공지능연구에 큰 활력소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전자통신연구소의 인공지능 연구인력은 인공지능연구실(16명으로 구성)을 중심으로 기초기술연구부 소프트웨어공학연구실 등에 분산돼 있다. 박사급 인력으로는 임영환(인공지능연구실장, 전문가시스템) 박세영(기계번역) 나동열(자연어처리) 양재우(뉴럴컴퓨터) 김경태(음성인식) 김명원(추론)박사 등이 있고 최근 생산기술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정희성박사(자연어처리)도 이 그룹에 속한다.

83년에 시작한 「일·한 번역시스템」

과학기술연구원(KIST) 시스템공학센터는 83년부터 국내에선 처음으로 일본어-한국어 기계번역시스템개발을 시작했다. 일본 후지쓰(富士通)와 공동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이 시스템은 88년에 완성됐으나 로열티 문제로 금년초에야 상품화 됐다. 번역률은 90% 정도. 초기 개발책임자였던 이기식박사(현재 대우증권 상무)와 인공지능연구회 초창기 멤버 박창우씨는 떠났지만 박동인 황도삼 박사 등이 남아 일·한번역시스템을 완성했다.

시스템공학센터에는 이외에도 신동필(전문가시스템) 소영성(비전) 최종욱(전문가시스템) 박사 등이 소속된 인공지능연구부가 있다. 이 연구부는 지난 1월 차량번호 자동인식시스템과 자동차보험 손해배상판정전문가시스템 등을 발표, 주목을 모으기도 했다.

KIST에는 이외에도 시스템공학센터 강남분소의 오원근박사(비전, 지문인식), CAD·CAM 연구부의 고희동박사(학습이론) 등이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국내기업들의 인공지능 연구현황은 아직 인력도 많지 않고 수준도 보잘 것 없다는 지적이다. 대개 외국의 인공지능 툴(언어)을 수입해 판매하거나 간단한 전문가시스템을 개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삼성 현대 금성 쌍용 등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력을 집중 양성하고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소프트웨어산업협회 산하에 '인공지능개발연구조합'(이사장 정몽헌 현대전자 사장)을 결성하고 치열한 기술개발경쟁에 업계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업계의 인공지능 연구인력으로는 삼성이 한상기(전문가시스템) 이강석(뉴럴컴퓨터) 이홍렬(비전) 박사 등 50여명의 인력을 확보해 가장 앞서 있고, 금성소프트웨어의 최상현 소장, 현대전자의 백용준 이사 등이 업계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뉴럴컴퓨터와 인지과학

인공지능연구의 또 하나의 갈래로 최근 뉴럴컴퓨터(신경회로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뉴럴컴퓨터는 기존 인공지능 이론이 '지식의 상징화'(symbolic)에 집착하고 있는데 비해, 인간의 두뇌구조를 연구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인공지능학자들과 분리해 연결주의자(connectionist)라고 부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2~3년전부터 뉴럴컴퓨터에 대한 붐이 일고 있고, 5월 19일에는 연대에서 '신경회로망연구회' (회장 신상영 과학기술원교수)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 연구회에는 통신학회 정보과학회 인지과학회 등 3개 학회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수영(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과) 오세영(포항공대 전자과) 임지순(서울대 물리학과) 이춘길(서울대 심리학과) 이일병(연대 전산과) 교수 등이 중심 인물들이다.

신경회로망과 연결된 학회로 86년에 결성된 '인지과학회'도 인공지능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인지과학이란 인간의 두뇌인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 전산학자들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등이 공동으로 이 학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타분야의 연구성과를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성과에 비추어 비판하기도 한다. 가령 철학에서 이원론과 일원론의 갈등은 인공지능의 성립여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 신경과학자들의 뇌세포에 대한 연구는 인공지능의 구조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재 인지과학회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2백여명. 회장은 이기용(고대 언어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인공지능연구의 비판론

인공지능의 원산지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전산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가 되고 많은 인력과 투자가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무엇이냐'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5월 12일 한양대에서 열린 '지능형컴퓨터의 전망'이란 주제의 패널토의에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됐다.

전자통신연구소 박승규 박사는 "현재의 지능형 컴퓨터 논쟁은 일정한 '파이'를 놓고 누가 더많이 차지하느냐 하는 예산따먹기 싸움"이라며 "가령 지능현 OS(운영체계)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내 현실에서 실제 쓰일지는 요원하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원 경종민교수(전자전자과)는 "세운상가에 나가보면 그래픽보드나 마더보드는 모두 대만산인 것이 우리 컴퓨터산업의 현실"이라며 "교수 학생들이 PC의 구조조차 모르는 현실에서 너무 유행학문만을 쫓아가는 학문풍토가 문제"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전자통신연구소 오길록 박사는 "외국에서 20년전에 끝낸 슈퍼미니급 같은 기술들을 우리가 따라가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그들도 연구중인 인공지능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할 때 21세기에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는 산업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박했다.

학자들의 논쟁과는 상관없이 인공지능은 90년대 컴퓨터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인력들의 숫자가 적지않고, 많은 학생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외국의 이론을 모방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초기술을 축적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는 지적을 학자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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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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