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하필이면!”
화성에서 생활할 때에는 지구와 다르게 자원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는다. 화성에서 물은 매우 귀한 자원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배정되는 양이 극히 작다. 정조 과학기지에서는 샤워할 때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대원 한 명당 5L다. 지구에서 샤워할 때 쓰는 물의 10분의 1이라, 특수 제작된 화성용 샤워기를 사용하더라도 5분이면 물이 끊긴다. 샤워 도중 상념에 잠깐 잠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단이 난다.
화성에 도착한지 46일째 되던 날이 딱 그랬다. 케일 재배를 시작하는 날이라 그랬는지, 케일과 브로콜리를 구분하지 못해 당황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다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샴푸를 씻어내지 못하고 물을 다 써버렸다. 미생물 분해가 가능한 샴푸라 지구에서 쓰던 것에 비해 미끈거림은 덜했다. 하지만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도 머리는 엉망이었고, 이대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산뜻한 하루의 시작은 아니었다.
물이 부족한 화성에선 소변도 약에 쓴다
오래 전 한국에선 ‘우리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물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캠페인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한반도는 연간 강수량이 장마철에 집중되는 특징 때문에 봄과 가을에 가뭄으로 농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를 곧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나 또한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펑펑 나오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생활했다. 물 부족 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사람들은 비를 기다리는 농민이거나, 산업 폐수로 상수원이 오염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처럼 당장 물이 부족한 사람들 밖에 없었다. 화성에 오고 나서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화성은 정말로 물이 부족하고, 배정되는 물이 날마다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이번에 기르는 식물은 어떤 건가요? 케일이라면 꽃말이”
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A씨는 내 업무에 관심이 많았다. 의사인 그는 나보다도 더 많은 식물 종류를 알고 있었고, 꽃말을 줄줄 외우는 사람이었다. 지구에선 직접 식물을 기르고, 산책을 하며 식물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했다. 나는 전문가지만, 꽃말 같은 것에는 아무래도 관심이 없었다. 작물을 재배하는 데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날은 진득하게 달라붙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A씨에게 “바쁘니까 나중에 말씀하시라”며 나도 모르게 말을 끊어버렸다.
A씨는 당황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는 온 신경을 머리에 쏟은 채 케일을 수경재배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날 내가 날카로웠던 이유는 덜 감은 머리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편인 케일은, 재배할 때 충분한 수분 공급이 중요하다. 화성에서 ‘충분한 수분’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화성에선 땅에서 얼음을 캐 물을 얻는다. 화성 지표 아래 약 60cm를 파고 들어가면 얼음층이 나온다. 정조 과학기지 옆에는 이런 화성 지층의 얼음을 캐는 장치가 있지만, 공급량이 일정하지 않고 항상 부족했다. 결국 ‘재활용’ 밖에는 답이 없었다.
성인 한 명은 하루 동안 소변 1.5L를 배출하고, 호흡과 땀으로 약 1L의 물을 배출한다. 이렇게 배출한 액체를 증류 장치에 넣으면 불순물이 제거된 깨끗한 물이 돼 나온다. 식물을 키워야 하는 내겐 거르지 않은 소변조차도 귀했다. 소변에는 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생장에 꼭 필요한 질소가 요산과 요소 등의 형태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 고농도의 소변은 식물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어 적당한 농도로 희석해서 써야 한다.) 내가 화장실의 소변통을 들고 나와 이리 저리 돌아다니자 다른 대원들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소변을 케일에 줄 거라고는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케일을 먹을 때 찝찝할테니까.
케일의 숨결 속 수분마저도 놓치지 않는다
소변으로 키운 케일은 양분과 수분이 충분했는지 쑥쑥 자랐다. 잎은 사람 얼굴만큼 커졌다. 대원들은 내가 케일을 가지고 무엇을 할 생각인지 궁금해했지만, 내 걱정은 다른 데에 있었다. 식물은 과장해서 말하면 뿌리에서 물을 퍼 올려 허공에 뿌리는 펌프 같은 존재다. 매분 매초 물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있었다.
식물의 잎에는 작은 세포 두 개가 입술 모양으로 붙어 만들어진 구멍이 있다. ‘기공’이라고 부르는 이 구멍은 케일 같은 쌍떡잎식물의 경우 보통 잎의 뒷면에 있다. 기공은 사람으로 따지면 호흡기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식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돼 준다. 식물의 체내에 있는 수분은 수증기가 돼 기공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이런 현상을 증산작용이라고 부른다.
잎이 커질수록 기공의 갯수가 많아진다. 쑥쑥 자라는 케일은 점차 허공으로 수증기를 뿜어대는 가습기 같은 존재가 돼 갔다. 대원들의 소변과 생활 용수를 끌어다 써도 케일이 필요로 하는 물을 전부 공급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을 확보할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 하나를 짜냈다. 대원들이 배출한 물을 재활용하는 것처럼, 케일도 자기가 뱉은 물을 다시 마시게 하면 어떨까! 엔지니어인 B씨에게 공기 중 수증기를 물로 응축시키는 제습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B는 “화성에서도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데, 금방 만들어 드려야죠”라며 뚝딱거리더니 금세 제습기를 만들어왔다. 그걸 식물 재배실 안에 설치했다. 제습기는 케일이 허공에 뿜어낸 수증기를 다시 물로 만들었고, 식물 재배실 안에서 많은 양의 물을 재사용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케일의 잎을 따서 결구 상추와 함께 썰어 샐러드로 준비했다. 대원들은 케일이 신선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케일에는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루테인이 많이 들어있다. 지구보다 태양 빛이 어두운 화성에서 대원들의 식사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샐러드를 만들고 남은 케일 잎은 잘게 갈아 녹즙으로 만들었다.
케일은 배추과에 속하는 채소들 중에서도 항산화 기능이 가장 뛰어나다. 배추과 식물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라는 물질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런 물질은 사람의 몸에서 항암 작용을 하는 등 건강에 이롭다. 설명을 들은 대원들은 열심히 먹어보려고 했지만 특유의 쓴맛 때문인지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떤 대원들은 케일 녹즙을 한 번 입에 대고 다시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곳이 지구였다면 사과와 함께 갈아 녹즙을 만들었을 텐데 아쉽다.
케일과 브로콜리를 구분하지 못한 ‘무관심’
케일의 글루코시놀레이트 함량은 케일이 자랄수록 높아지니, 남은 케일을 계속해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케일에서 꽃이 생기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몇몇 개체에서 꽃봉오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꽃봉오리는 내 예상보다 너무 빠르고 크게 자랐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으로 변한 꽃봉오리를 보니 샤워 중에 떠올랐던 케일에 얽힌 추억이 다시 머리를 스쳤다.
케일이라는 생소한 채소를 연구하게 된 젊은 나는 케일과 브로콜리를 구분하는 걸 어려워했었다. 콜라비와 케일, 브로콜리, 양배추, 콜리플라워는 모두 배추과 식물이다. 한 조상에서 나온 채소들이기 때문에 잎과 씨앗이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다. 결국 케일 대신 브로콜리를 키웠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설마, 내가 그런 황당한 실수를 화성에 와서까지 반복한 건 아니겠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브로콜리를 닮은 꽃봉오리를 내려다보던 내게 A씨가 지나가며 한 마디를 던졌다.
“케일이 속한 배추과 식물, 그러니까 십자가 모양으로 꽃이 피는 십자화과 식물의 꽃말은 무관심일세.”
나는 그제서야 A씨에게 짜증을 냈던 것을 후회했다. 식물은 관심을 가져 줄 때 비로소 우리에게 행복을 일깨워 준다. 케일과 브로콜리도 마찬가지다. 언뜻 똑같이 생겼지만,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면 두 식물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A가 되새겨준 것이다.
상추와 케일, 그리고 본의 아니게 브로콜리까지 성공적으로 재배한 나는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화성 표면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케일처럼 잎이 크고 증산작용이 활발한 작물은 확실히 무리였다. 나는 잎이 작고 과일이 달리는 채소를 찾기 시작했다.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로 서울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식물 광합성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jdhenv@yonam.ac.kr
용어 설명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 : 분자 내에 황을 포함하는 천연 물질로, 배추과 식물에서 매운 맛과 향기를 나타낸다. 식물은 해충과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생성하는 물질이지만, 인체에서는 종류에 따라 항산화와 항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