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주식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다면 투자에 돈을 아낄 사람은 없다. 경제분야에서 단기예측에 탁월한 위력을 발휘하는 카오스모형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 재무성에서 발행하는 장기채권의 선물 동향을 살펴보면 시시각각으로 오르내리는 가격 변동폭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물거래란 물건과 대금을 나중에 줄 약속으로 현재 거래를 하는 것인데, 3개월 내지 6개월 후에 물건의 실제 가격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선물의 가격은 많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주식거래도 선물거래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을 보면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한두달사이에 수십%의 손실이나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변동성이 강한 주식가격(주가)을 잘 예측할 수만 있다면 주식투자는 재산증식에 더없이 매력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투자자라고 해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카오스 이론이 확산되면서 주식이나 외환등의 자산가격을 예측하는 모형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또 외국 증권거래인 중에서 카오스이론을 적용해 장기간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는 말도 전해온다.
확률적 예측기법 무너져
카오스모형은 엄청난 부를 보장해 주는 도깨비 방망이일까. 답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산가격을 예측할 때 카오스모형이 기존의 예측모형에 비해 항상 우위에 있는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 것은 카오스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졌다고 볼 수 있다.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이 심한 변동성을 보이면 흔히 "카오스 장세(場勢)를 연출한다."고 말한다. 이런 장에서는 1분후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변동성의 원인을 내부와 외부로 구분할 때 카오스는 내부요인에 의한 변동만을 의미한다. 석유파동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충격에 의해 유발되는 변동은 카오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카오스 이론이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초. 당시만 해도 가장 애용되는 예측기법은 박스와 젠킨스가 만든 ARIMA(Auto Regressive Integrated Moving Average)모형이었다. 박스-젠킨스 모형 (ARIMA)은 데이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확률적'(stochastic)으로 변동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과거의 누적된 데이터로부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동력학(dynamics)을 도출 해 냈다. 이때 모형화할 수 없는 부분은 모두 오차로 간주했다. 모두 선형구조로 이루어진 이 모형은 추정과 예측이 간편해 오랜기간 예측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경제학자들은 주가를 비롯한 각종 데이터가 확률적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카오스이론이 도입되자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육안으로 볼 때 확률적으로 보이는 데이터들이 실제로는 '확정적'(deterministic)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아주 단순한 저차원의 확정적 모형으로 확률적 데이터와 거의 식별이 되지 않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예측에 사용했던 박스-젠킨스모형은 믿을 것이 못된다. 주가는 외양상 확률적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확정적이다. 따라서 박스-젠킨스 모형보다 새로운 다른 모형을 사용해야 바른 예측을 할 수 있다.
단기 예측력 탁월해
그렇다면 카오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카오스가 비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카오스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가나 환율과 같이 변동성이 심한 자산가격을 카오스 모형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가격의 변동성이 외부충격보다 가격 내부의 동태적 구조에 기인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만일 실제로 자산가격의 변동이 내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단기에 있어 카오스모형은 기존의 선형모형보다 탁월한 예측력을 가질 수 있다.
또 하나의 카오스 특성은 동태적 불안정성이다. 기존의 경제학은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균형으로 수렴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만약 경제가 균형에서 벗어난다면 적절한 경제정책을 구사함으로써 경제를 균형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한나라의 경제가 카오스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자생력에 의한 균형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설령 경제정책에 의해 균형에 접근했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균형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
카오스의 특성들은 주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카오스가 불안정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모형을 만들어도 초기치에 대한 조그만 오차가 시간의 흐름에따라 큰폭의 예측오차로 변한다. 이러한 면에서 카오스계는 장기적으로 '예측불가능'하다. 따라서 카오스모형에 의한 예측은 단기에 한해 그 의의가 있다.
피터스는 허스트(Hurst)계수를 추정함으로써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카오스를 발견했다. 허스트계수는 흔히 사용하는 카오스 검증방법 중의 하나로 관측치의 상관관계를 계산한다. 허스트계수 H가 0.5이면 확률보행의 증거로 다음 기의 주가를 예측할 수 없다. 허스트계수가 0〈H≤0.5이면 시간이 갈수록 주가는 평균치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허스트계수가 0.5〈H〈1이면 주가는 카오스구조를 가지므로 주식시장은 빈번한 반동으로 확률보행보다 더욱 변동성이 커진다. 최근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는 허스트계수 H가 0.66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가 카오스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밖에도 경제예측에서 성공적인 카오스연구 사례들이 있다. 세인크만과 르바롱은 종합주가지수로부터 카오스적인 동태구조를 확인했고, 윌리엄스는 프랙탈 차원을 측정함으로써 주식거래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나 경제학 및 경영과학에서 카오스이론을 적용한 연구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한 것은 그중의 일부다.
분석대상 자료로부터 카오스적인 증거를 찾으면 그 다음 과정은 예측 모형을 작성하는 것이다. 현재는 국지적 가중회귀 모형과 신경망모형등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예측하는 일은 어쩌면 신의 영역일지 모른다. 아직 초창기여서 카오스이론에 기초한 예측모형의 성패를 논하는 것은 때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의 발달과 카오스이론의 도입으로 10여년 전에 비해서 모형의 예측력은 현저하게 향상됐다. 이와 같은 추세는 카오스모형과 같은 비선형모형의 개발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