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들을 훈련시키는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는 대형의 선박사고를 사전에 예방한다.
조타수가 되어
호주의 광산지대에 위치한 캠블라(Kembla)항에 선박을 입항시킨다. 실제상황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한 모의 실험(시뮬레이션)으로.
먼저 화면에서 선박의 종류를 선택한다. 컨테이너선 유조선 광물 운반선 로로선(자동차운반선) 등에서 광물운반선을 지정한다. 선박의 길이 폭 깊이 배수량(무게) 등 기초적인 자료도 임의로 입력한다.
다음에는 입항할 항구를 골라야 한다. 물론 목적지는 캠블라항이다. 캠블라항은 광산지대에 위치한 조그만 항이지만 선박들의 출입이 잦고 지형조건이 까다로워 항해사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어 선박의 초기위치와 선수각(船首角) 진입속도를 결정해준다. 그러면 이 항구의 수심분포도가 화면상에 나타난다. 수심에 따라 파란색의 농도가 차이나는 지도에 외곽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을 배가 침범하면 항구밑바닥에 닿거나 좌초한다.
선박과 항구가 정해지면 이번에는 자연조건을 지정한다. 바람 파도 조류 등을 정해주는데 이 자료는 주로 그 항구의 평균적인 측정 값을 이용한다. 다음에는 입항할 때 예인선(큰 배를 끌어주는 작은 선박)을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광물 운반선이 단독으로 입항할 것이므로 예인선이 필요없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시뮬레이션을 위한 준비 작업은 일단 완료된다.
선박을 조종하는 곳은 배에서 가장 높은 선교(船橋, bridge)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레이다가 설치 돼있고 선박의 각종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계기판들이 집중돼 있으므로 사람에 비유하면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시뮬레이션이 시작되면 화면에 항구의 지도와 선박의 위치, 그리고 속도 엔진회전수 (rpm, revolutions per minute) 타각(舵角) 바람 조류 파도 등 각종 상황이 표시된다. 이때 항해사가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엔진회전수와 타각 두가지다. 캠블라항은 입항시 배를 1백 30°까지 돌려야 하므로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항해사는 선박의 위치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원하는 목적지에 선박이 도착하거나 혹은 선박이 좌초하면 부저가 울리면서 시뮬레이션이 종료된다. 시뮬레이션을 통한 선박의 궤적과 각종 변수들의 변화상태는 화면이나 프린터로 출력이 가능하다.
선박사고는 선원의 실수 탓
조금 길지만 해사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소형 선박조종시뮬레이터를 이용해 항해사들이 선박조종훈련을 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선박은 대량의 화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반하는 운송수단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인 부산에 가보면 크고 작은 선박들이 수 없이 정박해 있고 이들 선박들은 선장과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비행기가 꼬리부분의 수직날개를 좌우로 움직여서 방향을 바꾸듯이 선박도 배의 뒷부분에 달린 타(舵)를 움직여 원하는 방향으로 항진(航進)한다. 선박조종의 핵심은 엔진제어장치와 조타(操舵)장치. 엔진제어장치는 자동차의 가속기(액셀러레이터) 및 변속기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들 선박조종 장치들은 선박의 사령탑인 선교에 위치한다.
선박은 얼핏 보기에 조종하기가 쉬운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망망대해를 항해하지만 항로가 따로 있고 파도와 조류 바람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한다. 또 덩치가 커서 매우 큰 관성을 갖고 있는 데다 지상에서와 달리 제동장치가 잘 듣지않으므로 멀리 떨어져있는 장애물이라도 미리 감속하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그냥 쳐다보면서 충돌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선박사고는 운송수단 가운데 가장 대형의 참사를 초래한다. 인명과 선박 자체의 손실도 크지만 예상치못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않다. 유조선이 침몰하여 심각한 해양오염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항구에 입항하던 선박이 좌초 해 그 잔해를 제거하는데 큰 비용이 들고 장기간 항구 자체가 폐쇄 된 사례도 있다. 몇년전 프랑스 근해에 침몰한 유조선에 대한 소송에서 요구된 배상액은 무려 수십억 달러에 달했으며, 지난해 미국 엑슨석유회사의 선박이 알래스카 부근에서 사고로 원유를 대량 유출해 한동안 미국 전체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선박사고는 대부분 선원의 실수에 의해 일어난다. 따라서 선원들의 훈련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선박에는 여러가지 첨단기술들이 적용됐는데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이를 분석해본 결과 각 시스템을 설계할 때 선원들의 이해능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실제 선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이 선박을 운행하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시뮬레이터는 역사적으로 선교 선원훈련을 위해 개발됐으며, 위험화물 하역작업의 연구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선박조종성능의 평가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의 이용이 대형 시뮬레이터의 가동을 앞당겼다. 해사(海事) 관련 시뮬레이터는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 그 종류를 열거하면 △대형 선박조종 시뮬레이터 △엔진 시뮬레이터(추진) △화물하역 시뮬레이터 △유정 작업 및 제어 시뮬레이터 △선박교통 시뮬레이터 △레이다 시뮬레이터 △어업 시뮬레이터 △항해장비 시뮬레이터 등이 있다.
이밖에 원격조종 수중작업로봇(ROV), 기중기선, 파이프 설치선과 같은 특수 목적의 시뮬레이터도 있다. 이중에서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는 엄청난 해상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많은 발전이 거듭된 시뮬레이터다.
시계재현 (視界再現)
최근 상선 선원 화물의 안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법률기관 해운회사 선원단체들도 이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해운생산성이 매년 증가하면서 운항의 어려움과 선원들의 능력, 사고에 따르는 손실 및 금액 등에 위험요소가 많이 증가하였다. 50년전 상선의 최대 무게는 6천t 이었으나 오늘날은 50만t을 넘는다. 배의 크기가 증가하고, 특히 대형선박에 싣는 위험화물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배를 조종하는데 있어서 허용되는 오차는 일반적으로 감소한다. 또한 매년 선박손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62년에 1백25척, 총톤수 52만5천t의 선박이 손실됐던 것이 1977년에는 2백척 이상, 총톤수 1백 20만t의 선박이 손실되었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엄청난 재산 및 인명손실, 환경에의 피해를 가져왔다. 해상사고에 대한 여러 조사결과에 의하면 80% 이상이 선원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는 최근 조타실 선원의 훈련에 사용되고 있는 고가의 장비다. 최초의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는 프랑스 그레노블 근처의 해사연구훈련센터에서 1967년에 제작되었다. 이것은 8에이커의 호수에 2명의 연수생이 앉을 수 있는 수척의 1 : 25 축척모형을 비치하고 호수 주위를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자식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는 1966년 일본 JRC사가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67년 스웨덴, 1968년 네덜란드에서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단순한 시뮬레이터로서는 1964년 스웨덴의 조감도(bird's eye view) 시뮬레이터가 있었다.
모든 시뮬레이터의 공통부분은 배의 특성에 대한 수학모형(배의 운동, 엔진작동, 타의 작동 등을 수학적으로 표시한 방정식), 여러 기기들을 장치한 조타실, 조타실 밖의 시계재현(視界再現, 배가 움직임에 따라 밖의 풍경이 변하는 것을 조타실 앞에 보여 주는 것) 스크린 등이다. 이러한 시뮬레이터에서는 수평방향으로 3백60°까지 볼 수 있는 커다란 시계재현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계를 재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이 사용되어 왔으며 각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67년 일본 JRC 시뮬레이터에 투사장치의 응용이 보고되었다. 이 시계재현은 조타실 앞창에 장치된 TV 모니터에 의해서 제공되었으며, 이를 위한 비디오 신호는 계산된 선체운동을 따라서 1/1000 축척의 항구모형 위를 움직이는 TV 카메라에 의해서 얻어졌다. 이 시뮬레이터의 특기할 만한 점은 파도가 있는 해상에서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조타실이 상하, 좌우로 움직이도록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1975년 미국 해사기술부(MARAD)가 CAORF(Computer Aided Operations Research Facility)를 가동시켰는데, 이것은 △컴퓨터영상생성(Computer Generated Image, CGI) △대형 스크린에 정확한 원근투사 △고선 명도 및 고심도 투사기법 등 현재 기술수준과 성능을 갖춘 선박조종 시뮬레이터였다.
이 시뮬레이터는 색깔을 갖는 시계재현장치, 6척의 타선, 밤과 낮 좌우 2백40°, 상하 24°, 실제크기의 선실, 선실에 실제기기 설치, 상업용 정밀도를 갖는 레이다를 갖추고 있다.
영상생성을 위해 컴퓨터 영상생성 기법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영상의 재현방법은 대형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또다른 중요한 기술적 결정은 일반 선박용 레이다의 모든 성능을 다 갖춘 정교한 디지털 레이다 스크린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실감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충돌방지 연구를 위해서 요구되는 정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CAORF의 레이다 재현은 원양선박과 같은 신호가 전달되는 선상레이다에 의해서 수행된다.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조건에 따라 눈의 위치로부터 30피트거리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좌우 2백40°, 상하 24°의 시야가 확보되고, 대형 선실과 실제운항기기 등이 설치되었다.
미국 스페리사가 제작한 CAORF 시뮬레이터는 현존하는 시뮬레이터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비싸고, 밤낮이 가능한 대형 시뮬레이터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가격은 약 1천6백만 달러. 컴퓨터영상생성기법을 채택한 많은 시뮬레이터들은 CAORF의 방법을 모방하였으나, 좀 더 싸고, 선명도가 떨어지고, 성능이 떨어지는 투사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가격을 줄이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훈련용의 시뮬레이터가 되었다.
훈련 및 연구용 시뮬레이터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실제상황을 잘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이러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검사를 실시한다. 특히 연습조건과 시뮬레이션이 실제 바다의 상황을 재현하지 못한다면 경험이 많은 선원에게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연구결과도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실제 선박에 승선하여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훈련방법이지만 연습용으로 대형 선박을 움직일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시뮬레이터는 훈련이나 연구목적에 따라서 가능한 한 가장 광범위하게, 자연환경 배기기특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소형 시뮬레이터개발
시계재현기술이 계속 발전하여 선박조종 시뮬레이터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으나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군용 비행기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러한 장애는 문제가 아니지만, 연구기관들의 연구 및 훈련 목적에 맞는 시뮬레이터의 확보에 역작용을 하고 있다.
전산영상생성기법을 사용하는 고가의 대형 시뮬레이터의 증가는 계속될 것이며, 최소한 각국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소나 학교에 하나 이상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저렴한 야간시스템은 부분 임무훈련을 위한 차선책이 된다. 이 두가지 기법의 향후 발전이 훈련 및 연구용 시스템의 발전으로 직결될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발전은 두개 이상의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를 연결하여 서로에 대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레이다 시뮬레이테 이용한 이러한 훈련은 오래전부터 수행되었다.
국내에서 선박조종 시뮬레이터의 연구는 주로 연구소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사기술연구소에서는 1984년 마이크로 컴퓨터를 이용해 소형선상조종 시뮬레이터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시스템은 항구 입출항 분석, 해난사고의 원인 규명 등에 이용됐다. 최근 한국해기연수원에서는 미국 SA사로부터 약 30억원을 들여 대형 선박조종 시뮬레이터를 구입하였다. 이 시뮬레이터는 컴퓨터 영상생성기법을 이용한 실제의 조타실 배치를 갖추었으며, 주로 선원의 훈련에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항만개발에도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