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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브 좁스」 꿈꾸는 젊은 프로그래머들

이찬진(한글) 안철수(바이러스백신프로그램) 윤재수(한토크) 최철룡(한글도깨비) 등 무섭게 성장하는 젊은 컴퓨터매니어들, 그들은 누구인가?

컴퓨터가 젊어지고 있다. 1945년 에니악(ENIAC)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처음 컴퓨터가 발명됐을 때 이것의 크기는 무게가 30t, 면적은 50평이나 됐다. 그러나 그 성능은 오늘날 8비트 컴퓨터보다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30년도 채 못걸렸다.

컴퓨터가 젊어지고 있다는 의미는 그것이 인간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면서 성능은 오히려 무한대로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또 웬만한 사무실 하나를 온통 채워야 했던 최초의 컴퓨터를 마침내 조그마한 책상위로까지 올려 놓기까지 발명광들의 세대도 처음 50대에서 종국엔 10대들이 그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사실도 거기에 포함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무실 책상위에 올라갔던 8비트 애플 컴퓨터. 이 전설적인 작품을 만든 이는 바로 10대 후반의 스티븐 위트니액과 스티브 좁스였고, 이 컴퓨터의 언어인 베이직(BASIC)을 설계한 사람은 빌게이츠였다. 신화를 만들면서 억만장자가 된 이들의 출세는 이후 전세계 젊은 컴퓨터매니어(compuermania, 컴퓨터광이란뜻)들의 목표가 돼 왔다.
 

「애플」사의 공동차시자 스티브좁스.그는 최근「넥스트」란 컴퓨터를 개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
 

초창기 프로그래머들

80년대초 비로소 컴퓨터산업에 눈뜨기 시작한 이들을 꿈꾸는 젊은 매니어들이 등장했다. 독자적으로 8비트컴퓨터를 개발한 이들은 바로 7년후 국내 최고의 컴퓨터기업으로 변신한 삼보컴퓨터의 창업주들인 김종길 이윤기 김영식씨 등 5명. 이후 대학 3학년때 국내 최초의 병원관리소프트웨어를 개발, 천재칭호를 얻었던 비트컴퓨터 창업주 조현정씨가 한때 이름을 날렸고 퍼스널컴퓨터의 일반보급이 본격화된 80년대말에 들어 20대 초반의 내로라 하는 천재 매니어들이 군웅할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빛나는 이름뒤에는 항상 남보다 앞서 컴퓨터를 대함으로써 감수해야 했던 피눈물나는 노력과 남에게 뒤질 수 없다는 자존심, 그리고 컴퓨터가 외국에서 먼저 발명되었다는 상대적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세번 감탄하는 「한글」

최근 국내에서 컴퓨터매니어들에 의해 개발된 천재적인 소프트웨어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한글' 워드프로세서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세번 이상 감탄을 하게 된다.

그 첫번째 탄성은 한글의 자유자재한 모니터상의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기능에서 비롯된다. WYSIWYG이란 모니터 화면상에 글자 및 각종문자 도형의 확대, 변형이 실물 그대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국가가 정한 한글 표현방식인 완성형코드의 채택으로 퍼스널컴퓨터상에서 제약을 받던 문자출력 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 것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한글 한자 영어 일어를 포함 9개국어와 수학문자 훈민정음 고어(·△ㆆ등)의 표현은 현재 국내에 나와 있는 20여종의 워드프로세서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불가능했던 것.

세번째 탄성은 값이 싸고 출력상태 및 글자모양 속도가 매우 열악한 9핀 프린터로도 24핀 프린터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때문. 이밖에 초보자도 금방 익숙해줄 수 있는 풀다운메뉴방식(사용자가 원하는 문서편집 및 출력표시 등에 관한 지시사항을 미리 알려줌)의 채택 등 기존 워드프로세서에 비해 20여가지 이상 새로운 기능이 추가돼 있다. 한글은 전세계적인 워드프로세서의 대명사인 미국의 '워드스타'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사용해본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한글의 개발자는 89년 개발 당시 서울대 기계공학과 3학년이었던 컴퓨터 이찬진군. 당시 나이는 22세였고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지는 2년이 채 안된 비전공 대학생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IBM XT 컴퓨터를 구입, 처음엔 취미정도로 다루기 시작하다가 대학 컴퓨터 서클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그는 1년이 지나면서부터 컴퓨터전문지에 각종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들을 분석한 글들을 게재, 국내 매니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진심으로 깨달은 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중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것이 워드프로세서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사용자들이 쓰기 쉽고 간편한, 더욱이 완전히 한글화된 소프트웨어가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외국의 유명프로그램들은 값이 비싸 사용자들이 대부분 불법복제해 쓰는 형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컴퓨터에 진짜 눈을 떴던 대학 2학년때 당시 국내에 가장 널리 보급된 워드프로세서였던 '보석글'마저도 영문판 미국제품의 한글번역수준에 불과, 사용상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또 "한글의 개발을 값이 싸면서 쓰기 편한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필요성에서 결심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결심속에서 그는 서울공대 소속의 같은 또래인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군 등과 의기투합, 마침내 89년 4월10일 '한글1.0'을 발표하게 된다.

이군은 이후 '한글1.10', '한글1.20'등 개정판을 연이어 내놓았고 최근 필자와 만나 "멀지 않은 장래에 마이크로소프트나 로터스 애시톤테이트 워드퍼펙 볼랜드의 소프트웨어를 보고 국내 사용자들이 더이상 탄식하고 부러워하며 이를 불법 복제해 쓰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제품들을 계속해서 개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찬진군은 현재 복무중이며 '한글'의 판권을 가진 러브리소프트웨어는 발매 1년만에 국내최다인 1만본에 가까운 판매기록을 세워 그에게 수억원의 판권료를 안겨줬다.

이찬진군이 개발한 한글의 사용자는 국내 퍼스널컴퓨터 보유 개인의 40%선인 약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 가운데, 약 4만명정도가 불법복제해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컴퓨터 의사들

88년 5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C)브레인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그 개발자가 우리나라 컴퓨터 기술수준보다 한수아래인 파키스탄의 젊은 20대 형제들이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그들의 '속사정'을 알고보면 더욱 놀랍다.

(C)브레인의 개발자로 알려진(프로그램상에 이 개발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음) 앰자드 알비(Amjard F Alvi, 당시 28세)와 배시트 알비(Basit Alvi, 20세) 두 형제는 파키스탄의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한 형 앰자드가 독학으로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 작성법을 배워 컴퓨터 수리와 '로터스 123'과 같은 유명 외국프로그램들을 유료 복제해주는 조그만 컴퓨터 가게를 고향에서 경영했다.

알비형제는 특히 프로그램 한건당 1달러50센트씩 받고 고객들에게 복제해주면서 내국인(파키스탄인)에게는 원본 그대로, 외국인들에게는 자신들이 개발한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함께 넣어 복사해주었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시(1986년) 파키스탄에는 프로그램보호법이 제정되지 않아 내국인들에게는 복제행위가 법적으로 불법이 아니었지만 이미 관련법이 제정된 외국인(특히 미국인)들은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점포를 찾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이런 배경속에서 (C)브레인이 기생된 불법프로그램들이 해외로 유출되기 시작, 마침내 88년 5월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체가 발견되어 전국 수십만의 컴퓨터사용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컴퓨터바이러스는 프로그램속에 기생해 있다가 일정한 신호가 주어지면 기록해 놓은 귀중한 데이터들을 삽시간에 지워버리거나 전체를 판독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해독성 프로그램이다.

이 해독성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퇴치해보겠다는 국내의 젊은 컴퓨터의사들이 88년 하반기부터 등장했다.

20대의 대학생, 대학원생들인 이들은 안철수씨(서울대대학원) 김한수군(한양대) 박승제군(서울대) 등 4~5명.

김한수군은 (C)브레인에 이어 나타난 LBC바이러스(김한수군이 독자적으로 명명, 국내에서만 발견됨)를 최초로 발견하고 이에 감염된 하드디스크상의 데이터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예방법' 제시 차원의 소스코드(source code)를 발표, 화제를 모았다.

또 박승제군은 LBC바이러스에 대한 생물학적 개념의 백신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 감염되지 않는 하드디스크를 가려내는 방법과 다시 이를 감염되지 않도록하는 예방조치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데 있어 의학개념의 백신을 주사, 하드디스크와 플로피디스크 등 감염된 컴퓨터 보조기억장치를 구제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은 안철수씨에 의해서다.

더욱이 의미심장한 일은 이를 개발한 안철수씨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도였을 뿐 아니라 당시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점.

안철수씨는 자신의 퇴치프로그램인 '백신II'를 설계하기전 의학상의 항원(抗原)과 항체(抗體)관계, 즉 숙주를 주사함으로써 면역과 함께 생물 바이러스균을 무력화시키는 백신요법에서 프로그램기획의 힌트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88년 7월에 모 컴퓨터전문지에 '(C)브레인의 증상과 원리'에 관한 글을 국내 처음으로 개재하면서 이와 함께 프로그램 분석소스코드를 공개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C)브레인의 변형판(LBC바이러스)을 낳게 해 결국 (C)브레인에 한해서 만큼은 완벽한 복구책과 예방법이 제시된 '백신II'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백신II프로그램의 원리는 앞서 말한 백신요법을 그대로 원용, 플로피디스크의 경우에는 바이러스가 감염된 섹터부분에 특정의 복구명령을 주입 (키보드입력)시키는 매우 간단한 원리를 원용하고 있다.

이제 국내 컴퓨터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개발의 제1인자 자리를 굳힌 안철수씨는 자신의 개발 성과에 대해 "시스템구조와 프로그램 작성법을 정확히 익힌 컴퓨터 사용자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고 겸손해 하고 있다.

단국대 생리학 강사로 현재 출강중인 안철수씨는 올해 30세로 대학시절 8비트 애플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안철수씨의 성과가 크게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의 창시자라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전국의 수십만 컴퓨터사용자들을 위해 무료 공개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글통신의 개척자, 윤재수

1975년 18세의 스티븐 위즈니액과 19세의 빌 게이츠는 거대한 '괴물' 컴퓨터를 조그만 사무용책상위로 올려 놓는 역사적 쾌거를 이루었다. 위즈니액은 8비트 애플컴퓨터의 설계와 제작을, 빌 게이츠는 8비트용 베이직 언어를 개발한 것이다.

이때 위즈니액은 애플사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좁스와 1천3백달러짜리 폭스바겐 자동차를 팔아 '애플I'개발비를 충당할 정도의 가난뱅이였고 빌 게이츠는 당시 풋내기 대학 1년생이었다.

위즈니액은 현재 세계 개인용 컴퓨터시장의 20%를 장악하고 있는 애플사의 사장이며, 빌 게이츠는 IBM XT와 AT및 그 호환기 메이커들이 운영체계로 사용하고 있는 MS-DOS를 공급해주는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이 두 회사는 모두 세계 50대 전자회사에 랭크되어 있으며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99%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 그러나 이들의 진가는 현재 이들이 억만장자가 돼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다름아닌 당시 10대였던 그들의 천재성이 세계컴퓨터역사를 단숨에 바꿔버렀다는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88년말 서울대전기공학과 2학년이던 윤재수군이 최초의 BBS(전자게시판)용 한글통신프로그램인 '한토크'(Han Talk)를 개발한 것은 비록 위즈니액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업적에 견줄 바는 못되지만 당시 20여개의 BBS통신이용자들이 이전에 한글전용소프트웨어가 전무해 낯선 영문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아야 했던 불편을 완전 해결, 국내 BBS통신의 새로운 도약을 마련해준 획기적 사건이었다.

특히 한토크가 발표되면서 일반컴퓨터사용자들의 BBS통신 가입이 크게 늘었고 관련 사설단체만도 1백여개에 이르렀다. 한토크의 탁월성은 또한 관련업체들로 하여금 컴퓨터 접속 핵심통신장비인 모뎀(modem)가격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게 해준 계기가 돼, 88년까지만 해도 20만~30만원으로 고가였던 제품이 일반인들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지난해부터 10만원대 이하로 떨어져, 통신붐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토크가 나오기 전까지 BBS의 통신용프로그램은 대부분 영문으로 된 '크로스토크'나 '프로콤'이라는 외국의 복제소프트웨어들이었기 때문에 BBS 게시판에서 주고받는 데이터의 대부분이 판독이 어려운 영문으로 표기되어 가입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윤재수군이 개발한 한토크는 당시 고가였던 한글카드 없이도 컴퓨터통신시 한글데이터를 완벽하게 송수신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윤군은 한토크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한글카드를 소유한 사용자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이를 갖추지 않은 경우 한글데이터교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든지 이같은 불편을 해결해야 된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자신이 프로그램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은 "아무도 그 역할을 떠맡지 않아서였다"고 그 개발동기를 밝히고 있다. 윤군은 '한토크'개발에 앞서 공개된 외국통신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입수,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동작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봄으로써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말하고 있다.
 

삼보컴퓨터 창립멤버 5명이 국내 처음으로 생산했던 8비트 퍼스널 컴퓨터
 

엘리트들의 자극

최근 정부의 한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대 세계 10대 컴퓨터소프트웨어 기술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 계획은 단순한 자본투자나 기술인력 투입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찬진과 같은 젊디젊은 천재들의 역할이 촉매로 작용한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신제품개발에 인색한 국내 컴퓨터기업들의 생리상 부단한 소수 엘리트들의 자극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 소개한 사람들 외에도 새로운 한글코드체체인 '한글도깨비'를 개발, 컴퓨터 한글표현의 제약을 크게 완화시켰다는 평을 얻고 있는 최철룡씨와 '한글인토크'를 개발한 오범석군 등도 국내 컴퓨터기술 발전에 적지않은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서현진 유통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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