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빙하가 흘러내리는 빙식지형이 잘 발달된 비글해협. 남극연구의 기초자료로서 이 지역의 지질학적 가치가 커지리라 예상된다.
흔히 남아메리카의 끝으로 알려진 마젤란해협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비글해협은 마젤란해협의 남쪽 육지를 이른 '불의 땅'이라는 의미의 '띠에라 델 푸에고'섬과 그 남쪽의 섬들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비글해협은 1826~30년에 걸쳐 일대를 조사한 영국인 선상 피츠 로이가 발견했으며, 당시 영국 해군측량선 비글(Beagle)호에서 그 이름을 땄다.
'종의 기원'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박물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찰스다윈은 1831년 12월 17일부터 1836년 11월 2일까지 동식물과 화석의 관찰 및 수집을 목적으로 비글호에 승선했다. 이 때 이 배는 남아메리카 해안을 조사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남태평양 인도양 남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며 연구자료를 모았고 그는 이 때의 견문과 관찰현상을 1839년 출발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비글호 항해기'(The Voyage of the Beagle)다. 이때부터 비글해협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제3차 남극과학연구단 하계조사팀의 일원으로 비글해협을 지나갈 기회를 가졌다. 88년에 이어 두번째로 비글해협을 항해하면서 남극연구의 기초 지식을 얻기 위해서 비글해협의 지질과 지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빙식지형
비글해협의 대서양쪽 입구는 남위 55°04′, 서경 66°32′의 까보 싼 삐오와 거기에서 19해리(약 37km)서남쪽으로 떨어진 나바리노섬의 동쪽해안 사이다. 까보싼 삐오의 서쪽에서 띠에라 델 푸에고섬의 남쪽해안을 따라 비글해협 오브리엔수로 발레네로수로 브렉녹크해협을 지난 콕번해협의 남서쪽을 지나서 태평양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글해협은 대서양쪽에서는 남위 55°정도로 위도에 비교적 평행하며, 태평양쪽으로는 서경 69°에서 복서수로와 남서수로로 나뉘어진다. 길이는 비글해협 자체만은 약 1백20해리(2백20km)정도이나 수로 포함 약 2백해리(3백70km) 정도이며, 폭은 비글해협 자체만은 평균 3km 정도이며 좁은 경우에는 불과 2백~3백m이나 수로에서는 상당히 넓어진다. 비글해협은 지질학적으로는 단층을 따라 발달한 빙식곡(Fjord)이다. 칠레해군 수로연구소 발행의 해도에 따르면 최대수심은 발레네로 수로에서 6백57km다. 전반적으로 서쪽이 깊으며 동쪽으로 갈수록 얕아져서 지각운동과 관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3차 남극과학연구단은 영국에서 임대한 길이 64m, 1천 t급 조사선 '이스텔라'호를 타고 1989년 12월 21일 목요일 밤11시 30분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항을 떠났다. 마젤란해협을 남하해서 마그달레나해협과 콕번해협을 지나 22일 아침 8시 경에 태평양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후 들어서는 북서수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노르웨이 그린랜드 해안과 캐나다 북동부를 포함한 북미의 상반부 지역, 칠레중부이남 해안 및 남극반도의 서해안은 플라이스토세 말기인, 지금으로부터 9천~l만2천년 전에는 빙하로 덮여 있었던 지역으로, 그 이후 얼음이 녹으면서 노출된 지역이다. 따라서 이 곳의 지형들은 빙하로 침식된 전형적인 지형을 보여주고 있다. 빙식곡이 발달한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호수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콕번해협에서 여기까지는 지질이 중생대 상부 쥬라기~신생대 제3기 하부의 관입암(貫入岩)인 화강암인데 암상(岩相)이 균질한 화강암 특유의 둥글둥글한 형태로, 얼음에 의해 비교적 평탄하게 침식, 노출돼 있다. 얼음이 녹고 난후에 유수의 작용으로 아직도 침식되고 있으나 옛날 빙하가 발달되었을 때, 흘러내려가는 얼음으로 깎인 빙식지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은 곳에서는 깊고 둥근 급경사의 지형인 서크가 발달되어 있다.
콕번해협에서 북서수로에 이르는 지형은 화강암이라는 치밀하고 균질하며 결정질적인 암상에 절리가 발달되어 있으며, 얼음의 침식을 장기간 받다가 비교적 최근에 얼음이 녹으면서 여름에는 유수의 침식작용을 받기는 하지만 빙식작용의 흔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멀리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 가보면 얼음이 뜯어낸 흔적이나 얼음에 끼인 암편 때문에 기반암에 생긴 매끈한 선인 빙하조선(氷河條線)등 얼음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2일 오후, 북서수로를 벗어나 비글해협 자체에 들어서면서 지질과 지형이 바뀌어졌다. 지금까지는 화강암 위주의 둥글둥글하고 평탄한 지형이었으나, 이제부터는 후기 쥬라기-전기 백악기 화산암과 후기 백악기의 해성퇴적암이 분포하면서 지형의 기복이 심해지고 산세가 험해졌다. 평균고도는 9백~l천2백m 또는 그 이상이며 지형이 높고 험해졌다. 그렇더라도 빙식지형이어서 빙식지형 특유의 서크는 높은 곳에 잘 발달되어 있었으며 1천~1천2백m 이상되는 곳은 항상 눈으로 덮여있었다.
기반암이 잘 노출되기 때문에 상하층간의 관계나 암석의 상관관계를 뚜렷이 알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에서 관찰되었다. 층리(層理)가 발달된, 화산폭발시 만들어진 암편으로 된 열파쇄성 퇴적암(熱波碎性 堆積岩)으로 생각되는 지층이, 그 아래에는 절리가 크게 발달된 화성암을 부정합(不整合)으로 피복한 곳이 관찰되었다. 주변암석을 뚫고 관입한 암석의 암상이나 조직은 관입 당한 암석의 암상이나 조직과 달라서 식생의 차이로 관입 여부를 쉽사리 알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기반암의 색깔이 주황색이나 갈색으로 변질된 곳도 있었으며 이러한 곳에서는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칠레는 세계 제1의 구리 생산국으로 수도 산티아고 북쪽 1천2백km에 위치한 '추키까마따' 동광산은 세계 제1의 노천(露天) 동광산이다. 서울운동장의 몇 배가 되는 넓은 지역을 원형으로 위에서 차례대로 대규모 발파, 구리광석을 채광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안데스산맥을 따라서 납 아연 금 은 철 니켈 코발트 크롬 등 지하자원이 많이 부존(賦存)되어 있다.
남극반도의 지질연구에는 칠레, 특히 칠레남부의 지질연구가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실제 약 2억년 전에는 이들이 '곤드와나' 대륙으로 결합되어 있었고, 드레이크 해협이 생긴 것도 지질학적으로는 신생대 제3기로 생각된다. 드레이크해협이 분리되기 전까지 남극반도와 남미 끝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접근이 용이한 남미 남단의 연구는, 남극반도의 지질 이해에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얼음으로 덮여 있는 가혹한 자연환경 아래서의 엄청난 경비가 드는 남극반도의 연구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비글해협에는 장소에 따라 해안의 기반암이 파도에 침식된 것 갈지 않은, 거의 직각의 절벽으로 된 부분이 있었다. 이는 구조 암상 지각변동 풍화 침식 등의 결과인 것으로 생각된다.
온실효과의 척도
비글해협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사실의 하나는 쌓인 눈이 얼음으로 흘러내리는 빙하와 관련된 현상이다. 빙하는 비글해협의 북쪽에 많이 발달하는데 고도 지형 기후와 관계 있으리라 생각된다.
빙하는 얼음만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고 주위 기반암을 깎으면서 흘러내리므로 빙하가 녹는 말단부에는 운반된 물질이 쌓여서 빙퇴석(氷堆石)을 이룬다. 이 빙퇴석을 이루는 입자의 크기는 큰 바위에서 자갈 모래 점토까지 크기가 다른 입자와 뒤섞여 결과적으로는 분급(分級)이 대단히 불량하다. 함수율이 높고 따라서 나무나 풀 등의 식물생장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관찰된 빙하들의 말단에는 해면과 평행하게 수백m길이로 나무들이 비교적 무성하게 발달해서 빙퇴석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얼음이 녹아서 흐르는 물이 폭포를 이루는 곳이 많았으며, 이런 곳은 푸른 빛을 띠는 얼음, 회색 내지 갈색의 암반과 흙, 연두색 초록 색의 나무와 풀 등이 어우려져 경치가 특히 좋았다. 폭포는 한 줄기로 흘러 내리는 곳도 있고, 적당히 갈라져 흘러내리기도 해서 그 변화는 다양했다.
대부분의 얼음과 범하는 육상에 발달되었으나 빙하에 따라서는 해면까지 도달되기도 한다. 해협에 드물게나마 떠 있는 얼음조각은 해면에 닿은 빙하나 아니면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들어서 화석연료의 사용증가와 이에 따른 대기중에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온실효과가 커지면서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이로 인해 서남극, 그 중에서도 남극반도의 얼음이 불안정해져서 먼저 녹겠지만 이런 점에서 비글해협의 주변을 포함한 파타고니아 지방의 빙설의 분포지나 강설 정도, 빙하의 흐름 등 얼음과 관계된 연구는 기후변화의 일차적인 척도로써 가치가 크다고 생각된다. 앞서의 지질연구와 마찬가지로 남극빙하의 연구도 의의가 있겠으나, 접근이 용이하고 빙하의 변화가 뚜렷한 곳에서의 연구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1985년 11월 중순 푼타 아레나스에 오던 기내에서 만난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는 파타고니아 빙하연구가 주 연구분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비글해협 주변경관의 특색 가운데 하나가 식물의 생장과 분포다.
기반암이 노출된 곳에는 토양이 없어서 눈에 띠는 식물의 발달이 없다. 그러나 해안 가까운 낮은 곳과 절리가 발달되어 유수로 암석이 풍화된 곳은 토양이 있어서 식물이 생장한다. 수분이 비교적 많고 바람이 좀 약한 아래 쪽에는 나무가 있으나 올라가면서는 토양도 얇아질 것이고 따라서 수분함유량도 적어지기에 나무보다는 풀이나 이끼가 많아진다. 나무도 커봐야 높이 4~5m에 작은 잎으로 된 나무다. 식생은 지질 토양 기후 수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며, 이들 모두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은 상식이다.
비글해협 주변에서 흥미로운 것의 하나는 소위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이다. 해발 3백~3백50m의 지점까지 나무와 풀이 생장하나 그 이상 고도에서는 생장하지 못하며 이 선은 평행하게 발달되어 있다. 이 선이상에서는 겨울에 눈이 쌓여서 나무와 풀의 생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멀리서 볼 때는 식물보다는 기반암이 기계적으로 풍화된 자갈만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멀리에서 볼 때 비교적 부드럽고 균질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이끼류 등이 발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다윈도 수목한계선 위에 작은 고산식물이 발달함을 관찰했다.
칠레 같이 남북으로 긴 나라에서 위도에 따른 식물생장한계선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식물생장한계는 위도에 크게 영향받지만 위도만의 함수는 아니어서 기후 고도 토양 일조기간 등 여러 인자와 관계가 있다. 비글해협 주변에서 처럼 해발 3백m로 낮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도에 따르는 한계선의 저하와 분포하는 식물종의 다양한 변화는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줄 것이다. 실제 화강암 우세지역의 나무는 전술한대로 키 4~5m에 나무몸통이 꾸불꾸불한 수종이었으나 비글해협의 대서양 출구쪽으로는 상당히 크고 굵은 나무와 벌채 전문가옥이 있음을 보아 목재로서의 가치도 있다고 느껴졌다.
비글해협에서는 갈매기 오리 가마우지 도적갈매기 바다제비 마젤란펭귄 등 해조류(海鳥類)가 있으며 킬러고래와 물개도 관찰되었다.
항해를 하는 동안의 기온은 한 낮이 12~13℃ 였으며, 바람은 아침에는 북풍이 상당히 세었으나 바다의 영향인지 비교적 변화가 심했으며 날씨는 흐렸다.
다윈산맥 다윈수로 다윈봉…
띠에라 델 푸에고 섬 남안, 즉 해협 북안에 정박한 흰 요트 한척이 비글해협 항해 도중에 만난 유일한 선박이었다.
비글해협의 동쪽 대부분은 칠레-아르헨티나의 국경으로 저녁 6시 경에는 이 국경을 따라 향해하게 되었다. 비글해협에는 두개의 큰 도시가 있다. 그중 하나인 칠레의 푸에르토 월리암스는 비글해협 남쪽 나바리노섬의 북안에 있으며, 다른 하나인 아르헨티나의 우슈아이아는 해협의 북쪽 띠에라델 푸에고섬 남안에 발달한 도시다. 서쪽에 있는 우슈아이아는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을 많이 건축하고 있었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도시였다. 푸에르토 월리암스는 멀리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 있고, 가까이에는 둥근 형태의 산들이 있는 조용한 항구도시다. 두 도시 모두에 두나라의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비글해협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사람이 영국인이었으므로 주변 지형에는 다윈산맥 다윈봉 다윈수로 런던섬 톰슨섬 쿡섬 켈빈섬 머레이해협 콕번해협 등 영국식 이름이 많이 붙여져 있다.
비글해협에는 안전항해를 위해서 곳곳에 등대나 항로표지 내지는 푼타 야마나 등 수로통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글해협 동쪽 입구 부근의 섬 근처에서는 좌초해서 1년이상 버려져 있는 상당히 큰 선박 한 척을 볼 수 있었다.
위에 이야기한 두 도시와 수로통제소 및 해협을 거의 다 나가서 아르헨티나쪽으로 있는 벌채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비글해협 주변은 인적이 거의 없어 자연의 소박하고 투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찰스 다윈은 1백50여년 전에 지금보다 대자연에 더 가까운 이 곳을 몇 차례나 왕래했을 것이다. 그가 이 곳을 항해했을 때에는 옷을 거의 입지 않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사람을 잡아먹던 띠에라 델 푸에고 원주민이 있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