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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Ⅲ 지능형컴퓨터

우리 말로 컴퓨터와 대화한다

인공지능연구는 '주(主)영어 종(從)한글'의 서글픈 현실을 극복하고 한글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게 한다. 또 컴퓨터가 강단에 서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도 있게한다. 컴퓨터에 귀를 달고 입을 달아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준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포트란이니 코볼이니 하는 어려운 컴퓨터언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고 키보드를 두드릴 줄 모르는 농부가 복잡한 자판의 배열을 익히지 않아도 된다. 우리말(한글)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고 원하는 내용을 입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꿈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계산능력을 대신한데 이어 지능을 갖고 판단하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꿈같은 얘기다.

그러나 꿈같은 이 컴퓨터가 우리나라에서 개발된다. 그것도 먼훗날이 아니라 바로 올해부터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힘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엄청난 연구개발프로젝트는 '지능형 컴퓨터 개발사업'으로 불리고 있다.

과기처는 지난 연말 몇몇 컴퓨터 과학기술자들이 제출한 지능형컴퓨터 개발사업신청을 국가의 장기적 전략적 필요에 따라 수행하는 국책연구개발과제로 최종 승인했다. 그 내용은 오는 96년까지 7년간 2단계(90~93년, 94~96년)로 나눠 각각 4백40억원, 4백60억원씩 총 9백억원을 투입하고 1천6백여명의 연구인력을 동원해 지능형컴퓨터(Intelligent Computer)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자통신연구소(ETRI)의 오길록박사(응용기술개발단장)를 총괄책임자로 ETRI가 주축이 되며 여기에 과학기술원(KIST) 과학기술원(KAIST) 등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의 전산학 전자공학 국어학 심리학 등 여러분야의 관련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또 지능형컴퓨터는 궁극적으로 실용화를 목적으로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과정부터 기업들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현재 이에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대단해 이미 40여 기업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비전(vision)은 인공지능연구의 중요분야
 

삼단논법을 구사하고

지능형컴퓨터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위해선 이 프로젝트 아래 수행되는 세부과제가 무엇이며 각각 개발목표를 어디에 두고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기능면에서 지능형컴퓨터는 우리글과 우리말로 사용자와 컴퓨터간의 대화를 가능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컴퓨터가 음성 화상 글씨 등 다양한 정보표현방식을 인식하고 표현(출력)할 수 있어야한다. 연속음성 동(動)화상 필기체 글씨까지.

또 지능형컴퓨터는 종래의 컴퓨터가 단순히 명령을 처리하고마는 것과는 달리 지식을 1차적인 처리대상으로 하고있다. 여기에 '지식처리'라 함은 사람이 연상작용에 의해 지각하고 인식하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컴퓨터가 자체에 기억된 데이터들을 상호연관시켜 그 관계에 의해 추론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게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능형컴퓨터는 연역추론 귀납추론 삼단논법을 구사할 수 있게된다.

손쉬운 예로 '생물은 죽는다'와 '인간은 생물이다'라는 전제로 '인간은 죽는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지능형컴퓨터가 이같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연구팀은 추론속도 초당 1백억회(10GLIPS), 중앙처리장치(CPU)의 칩(Chip)화, 1천24개의 프로세서 연결, 대규모 병렬처리시스템, 1백억바이트급의 주기억장치, 5천억바이트급의 보조기억장치 등 하드웨어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이같은 하드웨어의 운용을 지원하기 위한 신경회로전용의 운영체제를 비롯, 대규모 병렬처리기능을 위한 소프트웨어, 자연어처리용 소프트웨어, 지식베이스관리시스템 등 소프트웨어부문의 기술도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물론 이같은 기술들이 말처럼 손쉬운 것은 아니다. 관련기술 모두가 미국 일본 등 컴퓨터선진국에서도 아직 개발초기단계에 있는 첨단중의 최첨단기술이다.

기술의 난이도와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음성인식기술. 사람마다 음색이 다르고 성대진동수, 음의 고저, 음의 장단이 천차만별이어서 음성인식의 기본모델을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까지 개발된 인식능력은 한글자씩 끊어서 발음하는 비연속단어로 3천단어정도에 불과하다. 이른 연속단어로 수만개를 인식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한다.

시각인식기술의 경우도 흘려쓴 필기체 글씨는 물론이고 움직이는 3차원 물체의 크기 명암 색상 등을 인식, 그 물체가 무엇인가하는 동일성(identity) 판별능력을 갖추도록 해야한다.

또 외부에서 들어오는 각종 정보매체를 컴퓨터가 처리하기 위해선 수천개의 프로세서를 병렬처리개념으로 배열하는 아키텍처를 채택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수백개의 구슬을 상자안에 넣고 흔들어도 하나도 부딪치지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지능형컴퓨터용 병렬처리 아키텍처가 슈퍼컴퓨터용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로 보고있다.
 

지능형컴퓨터가 가능하려면 중앙처리장치의 칩화와 각 프로세서의 연결이 필요하다.
 

「승산」이 있다

이같은 기술적 난점은 우리 연구팀에게는 역설적으로 '승산'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능형컴퓨터가 가진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우리보다 6~7년전부터 개발을 추진해온 선진국들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뚜렷한 연구성과를 산출하지 못하고 단지 목표의 당위성과 가능성만 내다보고 연구를 계속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들의 시행착오를 한푼의 투자없이(?) 경험한 우리나라가 이제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길록박사의 대답은 '확신'에 차있다. "10년도 채 안된 우리의 컴퓨터역사와 비교하면 현재 우리가 축적한 기술은 의외로 다양하고 깊이있는 편이다. 이미 슈퍼미니컴퓨터까지 자체설계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대학교수들 사이에 한글공학 병렬처리기술 등의 연구는 열기를 뿜을 정도이고 연구수준도 매우 높다. 심지어 경북대의 경우 뉴럴(neural)칩전문가만 11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어 고난도의 프로세서 개발에 자신감을 얻기도했다. 문제는 짧은 시간에 정예연구인력을 효과적으로 조직해 연구의 응집도를 높이는 것이다. 개발완료 시점면에서 선진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않을 것으로 본다."

즉 지능형컴퓨터에 관한 한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동시참여요, 동시경쟁이라는 것이다.

과기처의 장경철 전자연구조정관도 이와 관련 "지능형컴퓨터는 지금까지의 퍼스널 컴퓨터 생산기술이나 소프트웨어기술이 거의 참고가 되지않을만큼 종래의 컴퓨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우리의 도전은 모방 복제가 아니라 선진국과 똑같은 대열에서 원천기술을 하나씩 창조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글위주의 컴퓨터

지능형컴퓨터가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활용분야는 매우 넓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음성으로 자동타자가 가능하며 공장자동화용 로봇의 두뇌로 사용할 수 있다. 각종 외국어문서와 책을 자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지능형컴퓨터를 내장한 자동통역기를 휴대하면 강원도산골의 할머니가 소련에 여행가서 크레믈린궁전이 어디냐고 소련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다. 이밖에 기업의 경영전략 수립, 컴퓨터의 직접 교육, 행정안내, 전화설문조사, 컴퓨터 진료 등 응용분야는 무한하다.

또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히 크며 컴퓨터 사용문화를 바꿔놓을 것이다. 컴퓨터공포증에 걸리지않고 컴퓨터와 쉽게 친해질 수 있어 컴퓨터문맹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으며 전화를 사용하듯 컴퓨터를 이용하게 되므로 컴퓨터에 관한 한 소외계층은 사라지게된다. 또 한글을 컴퓨터사용언어로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컴퓨터를 배우는 어린이가 영어를 배우고 영어식으로 판단해야하는 '주(主)영어 종(從)한글'의 서글픈 현실도 사라지게된다. 한글이 자존심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

또 지능형컴퓨터는 오는 90년대 말에 구축될 종합정보통신망(ISDN)에 접속, 각 가정에 보급되는 표준형 컴퓨터의 역할을 맡을 가장 적합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있다. 시장전망도 오는 2천년경 세계컴퓨터시장의 25%인 7백70억달러에 이를만큼 매우 밝다(데이타퀘스트 조사).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가 뒤늦게 지능형컴퓨터개발에 착수하지만 선진국들도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지난 82년부터 10년간의 사업으로 1천억엔을 투입해 차세대컴퓨터 개발사업(ICOT)을 진행중이며 미국도 83년부터 92년까지 새로운 컴퓨터 개발사업(SCI)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지난 5년간 6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유럽(EC)역시 시장통합에 기초한 유럽기술공동체(ETC)를 모체로 회원국들의 특화된 기술을 총동원해가며 지능형컴퓨터분야에서 일본과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폰노이만식의 계산위주의 컴퓨터시대가 마감되고 지능형컴퓨터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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