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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까지만 해도 문자발생기로 간다한 영상처리를 하던 컴퓨터그래픽분야는 현재 3차원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1983년 가을,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에미상 수상식 결과를 세계 곳곳으로 타전하는 외신들은 한가지 이례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수상작품과 수상자 대열속에 '기계' 하나가 당당하게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해 전에 우리는 '타임지'의 커버스터리로 컴퓨터가 실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보다 몇 배 더 흥미로운 사건이 올해의 에미상 시상식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충 이렇게 요약되는 이 날자 외신의 스폿라이트는 미국 오로라사가 개발한 '오로라-100'이라는 기계였다. '과학과 예술의 멋진 랑데부'라는 극찬을 받으며 등장한 이 기계는 미지의 새로운 분야 컴퓨터그래픽이 세계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컴퓨터(Computer)와 그래픽(Graphic)의 약자를 따서 일명 CG로도 불리는 이 컴퓨터그래픽의 등장은 텔레비전 영상문화에 굵은 획 하나를 뚜렷하게 그었다. 1차원의 점과 2차원의 선에서 공간개념이 도입된 3차원은 물론, 거기에 몇 천년씩을 넘나드는 시간개념이 도입된 4차원까지 텔레비전 화면에 풀어놓을 수 있는 이러한 영상의 변화는 흑백텔레비젼에서 컬러텔레비전으로 옮겨간 영상기술혁명 이상의 충격이었다.

이 기계의 등장은 곧바로 우리방송에도 큰 영향을 주어 우선 손으로 그려가면서 설명하던 일기예보 방송을 새로운 포맷(format)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손으로 종이를 움직여 사용하던 MBC'장학퀴즈'같은 프로그램의 점수판도 산뜻한 컴퓨터 디자인으로 자동화했다. 이밖에도 각종 브리지 타이틀이나 프로그램 타이틀, 그리고 뉴스시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앵커 오른쪽 상단의 어깨걸이 그림이나 다양한 도표, 프로야구 선수들의 개인 성적표, 증권시세표, 상업광고 제작에서의 다양한 이용 등등 지난 80년대의 우리 영상문화는 이 컴퓨터그래픽이란 뉴미디어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3차원 그래픽을 이용, 글씨화면이 회전한다.
 

텔레마티크

영국인 J.L.바이르드에 의해 1925년 처음 발명된 텔레비전의 역사는 20년 뒤인 1945년 미국 CBS에 의해 컬러 색상으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고,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방송의 4세대, 또는 영상의 3세대 혁명으로 불리는 HDTV(고화질TV)의 실용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동안 이러한 영상문화의 꾸준한 변화는 무엇보다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 기술의 빠른 발달과 그 흐름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방송기술인들은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컴퓨터의 결합'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텔레마티크'란 신조어(新造語)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방송과 컴퓨터의 결합은 전문가들조차도 그 끝이 어디가 될지를 궁금하게 여길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우리에게 안겨다 주고 있습니다. 컴퓨터만으로 방송과 랑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있는 다양한 다른 분야에 힘을 합쳐서 방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미술 장르의 고유 영역이었던 그래픽과 만나 컴퓨터그래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형성함과 동시에 곧바로 방송으로 응용된 CG의 경우가 좋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방송기술인'지(誌) 주정한 편집실장이 풀어놓는 이러한 말처럼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방송은 각기 다른 영역속에서 독특한 특성을 갖고 발달해온 '개별적인 분야들의 총체적인 합(合)의 장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마치 지금처럼 영상예술로 훌륭하게 자리매김되기 이전의 컴퓨터그래픽이 처음에는 전자공학과 미술의 단순한 만남에 불과했던 것처럼.

컴퓨터그래픽의 출발은 1962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이반 서덜랜드 교수가 '스케치 패드 시스템'(Sketch Pad System) 이란 제목의 논물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스케치 패드'란 붓으로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순수회화의 '캔버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덜랜드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이것의 응용개념을 자세하게 정리했다.

컴퓨터가 탄생하던 50년대 초반부터 일부 관심있는 사람들에 의해 연구됐던 컴퓨터그래픽의 실체는 이로써 종합적으로 정리된 셈이고, 그로부터 미국을 비롯한 컴퓨터 선진국에서 각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개발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연구소들의 개발작업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하나는 컴퓨터의 자료를 입력하여 그림을 만들어내는 단순 '그래픽'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식별할 수 없는 부분을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본래의 형사을 찾아내는 '이미지 프로세싱'(Image Processing) 역할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래픽 역할의 반대 개념으로서 영상을 자료로 만들어 산업에 이용하는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이다.

이같은 연구에 의해 개발된 컴퓨터그래픽은 작게는 전자오락으로부터 크게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인체내의 암세포 분포도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의학 건축 우주비행 광물탐사 등 많은 분야에서 그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이용하는 비행모의실험(Flight Simulator, 모의조정석에 앉아서 컴퓨터의 화면에 나타난 영상을 보면서 훈련연습을 하는 장비)이나 건축설계 시뮬레이션, 그리고 심지어는 인공위성의 궤도를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을 응용하여 아폴로 우주개발에도 크게 활용됐다.
그러나 아무래도 컴퓨터그래픽은 방송에서 꽃을 피웠다는 게 전자공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앞에서 설명한 영예의 수상자(?) '오로라-100'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의도하는 그래픽을 그리기 위해 필요로 하는 크기의 붓을 컴퓨터에서 골라 1천6백만가지라는 무한대 색으로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기계는 '더욱 정교한 색상'으로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한 '스리 모어'(Three More)를 존재이유로 탄생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약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 MC 주병진의 외곽을 그래픽으로 살려준다.
 

컴퓨터그래픽이란 장르가 우리 방송에 처음 응용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였다. CG를 같은 약자로 쓰고 있는 '문자발생기'(Character Generator)의 이용이 그것인데, 화면을 설명하는 자막이나 야구중계 등에서 간단한 스코어 기록을 위해 처리하던 이 문자발생기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컴퓨터그래픽의 개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자발생기를 지금의 컴퓨터그래픽 수준과 비교해 본다면 우선 그 둘이 시간과 공간개념을 달리 한다는 점에서 같은 틀로 생각하기가 망설여진다.

삼성전자가 제작한 '휴먼테크' 광고에서 거대한 브론즈 손이 도시의 마천루를 밑으로 깐 채 굳게 악수하는 장면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3차원의 좋은 본보기이며 그래픽과 컴퓨터의 하모니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한 사례다. 즉 만화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물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일일이 그려내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그래픽 디자이너가 우선 어떤 물체의 형상을 컴퓨터 언어로 정확하게 바꾸어 입력시키기만 하면 기계가 알아서 움직임이 자유로운 그래픽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81년 KBS가 이전의 광학(光學)방식과는 다른, 컴퓨터를 이용한 문자발생기를 들여와 컬러방송에 처음 이용함으로써 '컴퓨터그래픽의 원년'을 기록했다. 물론 외국 방송사에 비교한다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는 수준이었지만 그 뒤 양 방송사는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하루가 다르게 영상변화를 이루어냈다.

쇼프로그램이나 쇼비디오자키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면이 말리는 듯한' 느낌의 화면구성이나 비디오 뮤직쇼 등에서 보여지는 환상적인 화면구성, 그리고 대학입시나 선거 개표 등에서 보여지는 신속하고도 정확한 특집방송 등은 모두 이 컴퓨터그래픽 기술발전의 결실인데, 양 방송사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여섯가지 정도의 기종을 우리 방송현실에 맞게 개발했다.

MBC는 84년 '오로라-100'을 만들어냈던 오로라사와 계약, 한글터미널을 만든 것을 비롯해, 85년에는 '솔거-2000'이란 컴퓨터그래픽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그라폰드'와 '파라곤'이라는 이름의 새 기종을 개발해냈다. 아울러 KBS 또한 85년도를 컴퓨터그래픽의 1차 연도로 지정하고, 86년에는 '비디마스터'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개발했고 88년에는 그보다 더 발전한 '프리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스템을 잇따라 개발했다.

'솔거-2000'이나 '비디마스터'등의 CG장비는 오로라-100이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 방송기술진들이 개발해낸 것이다. 그밖의 장비들은 모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방송을 위해 개발된 세계적 수준의 기기들이라는 게 방송인들의 자랑이다.

인력양성이 과제
 

예술? 기술?^컴퓨터그래픽에는 미적감각과 재치,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컴퓨터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90년대와 21세기의 영상예술은 컴퓨터그래픽의 진보와 함수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방송관계자들의 얘기처럼, 지금 세계는 과학과 예술의 끝없는 만남을 이러한 장비개발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발 경쟁은 늘 언어나 기타 문화 등을 고려한 해당 국가의 현실속에서 찾아야 된다는 점이 기술 후진국들로선 무척 큰 고민이라는게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KBS 기술국의 김종철씨는 이 분야에 대한 마땅한 전공학과 조차 없는 게 무엇보다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비개발이 하드웨어적인 고민이라면 그 기계를 통해서 예술을 화면으로 옮길만한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이 분야는 명확히 규정 짓기가 애매합니다. 기계를 이해할 줄 아는 전자공학도의 영역인듯 하면서도 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미학도의 영역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대로 된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관련 학과가 대학에 생겨나야 할 것입니다."

금성컴퓨터에서 컴퓨터그래픽 분야를 연구하는 조신희씨는 고급인력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CG를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면 실제 카메라로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카메라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장면이나 은하계의 우주에서 지구의 표면까지 클로즈업하는 장면 등도 가능하다는 얘기죠. 아울러 기존의 애니메이션은 매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은 과거에 모델링을 한 자료가 있으며 그 자료를 재활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확대나 축소, 변형 등도 컴퓨터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고요." 그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컴퓨터그래픽 분야가 발전한다면 앞으로 4~5년안에는 일반적인 영화 한 편의 모두를 컴퓨터그래픽만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영방송의 개국과 CATV(유선방송) 시험방송 실시, 그리고 종일방송의 시작 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의 방송환경 변화와 직접방송위성 HDTV 등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기술환경 변화에 맞물려 한 쪽에서는 지금 이렇듯 영상환경의 변화가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자계산기의 역할 정도로만 생각했던 컴퓨터가 우주시대를 주도하는 뉴미디어로 급성장한 현재, 이것은 텔레비전 문화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거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지난 84년초 백남준씨가 보여준 '비디오아트쇼'의 충격이 지금은 이미 별것이 아닌 것처럼, 이 장르의 변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이루어질지가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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