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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긴 비암호화 RNA

KISTI 글로벌R&D분석센터 X 과학동아

 

이번에 주목할 연구분야는 ‘긴 비암호화(long noncoding) RNA’입니다. 긴 비암호화 RNA는 단백질을 암호화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자 발현이 너무 많거나, 적어서 나타납니다. 


긴 비암호화 RNA는 유전자의 발현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제 시장에서 이 물질이 가진 의미는 무척 큽니다. 최근 연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과학동아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5년 뒤를 이끌어갈 연구분야를 찾기 위해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최신 데이터 세트(라이덴 클러스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전 세계 논문 중 최근 5년의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를 소개합니다. 그만큼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1등은 4159개의 라이덴 클러스터(연구분야 키워드 묶음) 중 최근 5년 간 발표된 논문이 97.81%를 차지하는 2070번 클러스터입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글로벌R&D분석센터가 분석한 결과 이 분야는 긴 비암호화 RNA였습니다.

 

급성장하는 유전자치료 시장, 덩달아 커진 RNA 연구


RNA는 DNA와 함께 대표적인 유전물질입니다. DNA가 설계도 원본이라면 RNA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복사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NA를 그대로 복사한 RNA에는 단백질의 정보가 암호처럼 저장돼 있습니다. 이를 ‘암호화’라고 합니다. 이 암호를 풀어 단백질을 만듭니다.


비암호화 RNA는 암호화되지 않은 RNA입니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대신 세포 안에서 조절 역할을 담당합니다. 대부분 길이가 짧지요. 그중에서도 ‘긴 비암호화 RNA’는 상대적으로 긴 염기서열(200개 이상)을 갖습니다. 이 물질은 염색질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합니다. 남진우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긴 비암호화 RNA는) 주로 세포의 분화를 결정한다”며 “이외에도 유전자의 전사와 번역 후 변형 등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이 물질을 둘러싼 연구가 크게 증가한 이유는 뭘까요. 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 등 유전자를 활용한 치료분야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포, 유전자치료제 시장은 2021년 약 75억 달러(한화 약 9조 6000억 원)에서 2026년 약 556억 달러(한화 약 72조 4000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자 발현이 너무 많거나, 적어서 나타납니다. 치료제 시장에서 긴 비암호화 RNA가 갖는 의미는 큽니다. 현재 연구되는 유전자치료제는 대부분 마이크로RNA(miRNA)나 짧은간섭 RNA(siRNA)를 사용합니다. 이 두 RNA는 모두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기능만 있습니다. 남 교수는 “이런 방식은 유전자가 많이 발현돼 문제가 되는 질병에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긴 비암호화 RNA는 유전자의 발현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유전자치료제가 접근할 수 없었던 영역, 즉 유전자 발현이 적어서 문제가 되는 질병의 치료법이 긴 비암호화 RNA에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가 활성화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남 교수는 “2008년부터 연구 현장에서 활발히 쓰이기 시작한 RNA 염기서열분석(RNA-seq)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기본적으로 생명체에서 긴 비암호화 RNA가 발현되는 비율은 다른 RNA에 비해서 매우 낮습니다. 특정 시기, 특정 세포에서만 제한적으로 발현됩니다. RNA 염기서열분석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검출해내기 어려웠다는 의미입니다.


RNA 염기서열분석으로 긴 비암호화 RNA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많은 연구자가 뛰어들었습니다. 라이덴 클러스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70번과 192번 클러스터의 논문 발행 추이는 201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2번 클러스터 역시 긴 비암호화 RNA 관련 클러스터입니다.


라이덴 클러스터에 따르면 긴 비암호화 RNA 연구는 최근 가장 크게 증가했습니다. 앞으로 활용 분야도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연구들이 모두 의미있고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박진서 KISTI 글로벌 R&D분석센터장은 “라이덴 클러스터를 추가 분석한 결과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이 압도적”이라고 말합니다. 약 2만 2000건의 논문 중 중국이 1만 8000여 건으로 80%가 넘는 점유율을 나타냅니다. 2위인 미국은 2600건 가량으로 중국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선두 그룹과 2위 그룹의 연구가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중국과 미국에서 진행하는 연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 교수는 “중국 연구팀에서는 주로 새로운 긴 비암호화 RNA를 찾는 수준의 연구를, 미국 연구팀에서는 그중 중요한 긴 비암호화 RNA의 기능과 활용법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중국 연구팀의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더라도, 미국 연구팀의 논문들이 더욱 가치가 높다”고 설명합니다. 또 일부 연구팀에서 찾았다고 주장한 새로운 긴 비암호화 RNA의 일부는 단백질을 만드는 RNA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긴 비암호화 RNA를 찾은 연구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증이 더 필요합니다.


긴 비암호화 RNA를 연구하는 팀 중 어디를 주목해야 할까요. 남 교수는 “미국의 선도적인 연구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워드 장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그의 제자인 존 린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교수는 이 분야에서 선두그룹으로 꼽힙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긴 비암호화 RNA를 연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그 기능을 밝히는 것입니다. 조나단 와이즈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원도 긴 비암호화 RNA의 구조와 생리학적 특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긴 비암호화 RNA 연구의 전망은 어떨까요. 아직 밝혀야 할 것은 많지만, 활용 범위가 넓은 만큼 잠재적인 중요성은 높습니다. 남 교수는 “긴 비암호화 RNA의 기능은 전체 염기서열 중에서도 일부가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들을 모두 밝히고, 응용할 수 있다면 유전자치료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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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아니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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