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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과서는 재미없다」는 통념 불변

5차 개정에도 불구

올해부터 고교1년생이 배우는 개정과학교과서는 몇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늘은 왜 파랄까.' '전기는 어떻게 해서 발명됐을까.' '지구는 왜 삐딱하게 돌까.' '왜 하늘에선 식초같은 비가 내리지.' 누구든지 한번쯤은 가져봄직한 의문들이다.

고등학교 과학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았다해도 이러한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다만 대학입시를 위해 열심히 암기했던 세포의 구조나 복잡한 화학식 계수 맞추기, 경사진 면에서 내려오는 물체가 받는 수평력과 수직력 계산하기 정도가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과학교과서가 형편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권 당 2백~4백페이지나 되는 8권의 교과서에는 수많은 내용들이 빽빽하게 담겨져 있다. 고등학교 과학교사들은 이 엄청난 개념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대부분의 현장교사들은 과학교과내용이 가르치기 벅차다고 한다. 단순히 교과서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여기에 담겨져 있는 학문적 개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8과목에서 6과목으로

90년 3월부터 고등학교 교과서가 개편됐다.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바뀌어 92년에는 고등학교 전학년이 새로운 교과서를 배우게 된다. 과학교과서 개편내용을 살펴보면 종래 문·이과 공통으로 배웠던 물리Ⅰ 화학Ⅰ 생물Ⅰ 지구과학Ⅰ이 과학Ⅰ과 과학Ⅱ로 바뀌었고, 이과생들이 배웠던 물리Ⅱ 화학Ⅱ 생물Ⅱ 지구과학Ⅱ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바뀌었다.

과학Ⅰ은 상·하권으로 나뉘어 상권에는 생물교과, 하권에는 지구과학교과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문과 이과 할 것 없이 공통으로 배워야 한다. 과학Ⅱ도 상권에는 물리교과가 하권에는 화학교과의 내용이 들어있으나 문과생들만 배우는 것이 특징. 자연계를 지망하는 이과생들은 물리 화학은 필수이고 생물이나 지구과학 중 하나만 선택해서 배우면 된다.

조금은 복잡하게 된 이번 과학교과의 개편은 형식만 봐서는 78년에 개정된 일본의 과학교과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과학Ⅰ 과학Ⅱ라는 표현 대신에 이과(理科)Ⅰ 이과Ⅱ라고 부른다. 또 우리나라 과학Ⅰ은 생물교과와 지구과학교과 내용이 들어 있는 반면에 일본은 물리교과와 지구과학교과 내용이 들어있고, 이과Ⅱ에는 화학교과와 생물교과 내용이 들어 있을뿐이다.

이번 교과과정 개편은 해방 이후 다섯번째. 1946년~1954년까지의 교수요목(敎授要目)기 이후, 54~55년(1차) 63년(2차) 73~74년(3차) 81년(4차)에 네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이 있었다. 1차개정을 제외하고는 2차(3공화국) 3차(10월유신) 4차(5공화국)개정 모두가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상황이 크게 변하면서 교육과정 개편이 이루어졌던 것. 이번 5차개정도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개정작업이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과학교과서만을 놓고 볼 때 내용의 변화가 켰던 것은 2차와 3차라고 할 수 있다. 2차개정의 주제는 존듀이의 '생활중심과학' 내지 '경험중심과학'이었고 3차개정은 생활중심과학이 학문중심과학으로 바뀌었으며 탐구학습이 강조됐다. 3차개정은 과학과목의 개편이 가장 두드러졌던 때였다. 현과학교과서에 들어있는 수많은 학문중심의 개념들은 3차개정 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4차개정은 '인간중심의 과학'이라는 타이틀로 포장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

이번 5차에서 내세운 개정동기는 △경제적인 발전 △민주화의 정착 △정보화사회의 도래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교과의 개정동기가 과학교과에 직접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 이보다는 과학교과목의 구체적인 개정원척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에 개정된 '과학과 교육과정 해설'의 총론을 집필한 서울교육대학 권치순교수는 "교육과정의 적정화와 내실화가 구체적인 개정원칙이다. 내용이 너무 많아도 좋지않고 너무 어려워도 안된다. 또 현실적으로 학교 교육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예를들면 기자재와 자료가 따르지 못하는 실험 등을 제외시키려고 했다"며 "과학교육의 원칙이 과학적 사고능력을 배양하고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라면 어려운 수식이 나열된 교과서보다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문과생들이 배우는 과학Ⅰ는 정량적이고 수식적인 서술형태를 배제하고 정성적(定性的)인 측면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체로 쉬워지긴 했으나

과학교육과정해설을 살펴보면 '과학-기술-사회'의 상호작용이라든가 과학사적(史的) 접근이 필요하다는 선언적 항목이 곳곳에 눈이 띈다. 실례로 지구과학에는 '환경과 자원'이라는 새로운 단원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각 과목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물리분야의 경우 전반적으로 내용이 쉬워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인문계 학생들만 배우는 과학Ⅱ(상)은 개정전 물리Ⅰ과 비교해 역학과 전기부문은 별차이 없으나, '파동과 빛' '현대물리' 단원이 한단원으로 묶여져 학생들에게 자연관을 심어주는 체계면에서 합리적으로 순서가 조정됐다.

신림고 이응신교사는 "구교과서에서는 파동의 개념을 연역적으로 던져주고 빛을 설명했으나 새교과서에서는 '빛이란 무엇인가'를 직진이나 반사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고전적 입자설로부터 시작해 간섭과 회절현상의 발견에 따른 빛의 파동설, 그 이후 파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광전효과를 비롯한 여러 현상이 발견되면서(현대물리) 다시 입자설이 등장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순서를 거쳐 마지막으로 빛과 물질의 이중성으로 결론진 것은 매우 합리적인 조정"이라고 말했다.

이과 지망생들이 배우는 물리과목에서는 첫단원으로 새로 들어온 '물리학의 세계'가 이채롭다. 여기에는 물리학의 전반적인 특성, 물리학이 기술혁신에 미친 영향, 과학기술과 사회변화와의 관계, 미래사회에서 해결해야될 과제 등이 간략하게 수록돼 있다. 이른바 앞서 서술했던 '과학과 사회' 또는 '과학사적 접근'이라는 선언적 표현을 물리교과목에서 구체화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검인정 교과서(8종)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10여페이지 내외로 소화시켰다.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사들도 있는 반면에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즉 교과서에서 과학사적 서술을 해야한다는 의미는, 예를들어 전기나 열(熱)의 소단원에서 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발명됐는가를 설명하고, 또한 열역학이 성립하기까지의 배경과 우리 주변의 열현상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라는 것이지, 소단원내에서는 복잡한 수식으로 치장한 보일-샤를의 법칙이나 열역학 1, 2법칙만을 나열하고, 10여페이지밖에 안되는 서론으로 이를 대신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 전기가 어떻게해서 발명됐는지도 모르면서 저항은 얼마고 몇 암페어의 전류가 흐르는지를 계산해봐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수박겉핥기식 포장은 입시에서도 천대를 받아 교사들에게나 학생들에게 의붓자식 취급받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물리교과의 경우 전반적으로 내용은 약간 쉬워졌으나 학생들이 이해해야 할 개념들은 줄지 않았다는 것. 결국 하나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다기 보다는 여러 개념들을 나열해놓은 구교과서의 병폐는 시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개정 검인정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 서울기계공고 박봉상교사는 "이번 교과서 개정을 보면 인문계 지망생의 경우 물리의 지식이나 개념을 많이 다루어야 하는 부담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같다. 하지만 이공계를 지망해 물리 관련 학과를 계속 공부하려면 현행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정도의 내용은 알아야 하므로 어려운 것은 피하고 쉽고 간단한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수긍할 수 없다. 다만 교과서분량이 조금 많아지더라도 학생들이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설명을 추가해야 한다"고 조금은 색다른 주장을 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씩이라도 설명과 예를 덧붙이거나 연관성 등을 강조한 부분이 들어가면 책이 두꺼워져 검인정에서 탈락하고만다.

개정된 과학Ⅱ(하)를 살펴보면 과거에 화학Ⅰ에 들어있던 원자 분자를 다루는 '물질의 과학'이 이과생들이 배우는 화학으로 빠졌고 나머지는 대동소이.

그동안 화학교과에 대해서는 주어진 시간에 비해 너무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화학Ⅰ에서 공유결합분자 화학평형 원자구조, 화학Ⅱ에서는 원자구조 전기화학 전이원소 등의 단원이 매우 어려워한다는 것. 다른 과목과는 달리 실험이 주가돼야할 화학과목이 학문중심으로 돼있어서 학생들이 흥미를 쉽게 잃어버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개정교과서에서는 과학Ⅱ(하)와 화학으로 구분 정리해 문과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는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Ⅱ(하)의 화학반응에서 반응속도는 정성적으로만 다루는 등 부분적인 시도가 가끔 눈에 띄나 전체적으로는 학생들이 소화해야할 개념이 줄어든 게 없다는 것 오히려 분량이 조금 준데 비해 학문적 개념은 그대로 남아있어 살이 없는 개념을 나열한 '사전식' 교과서가 돼 버렸다는 지적이다 예를들어 과학Ⅱ(하)의 첫 내용인 '원소의 주기율'에서 '물질'은 구교과서에 비해 반정도로 분량이 줄었으나 그 부분에서 소화할 학문적 개념들은 모두 실려 있다.

실험위주로 재미있게 구성돼야 할 화학교과서 제목이 소재주의로 나열돼 있는데다 저자들이 욕심을 부려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다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도입부로 들어간 화학의 역사, 화학산업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대기오염 수질 오염 문제를 제기한 화학윤리, 생활에 활용되는 화학 등은 10여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이지만 그런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교양과 전문적인 내용을 구분


화학수업은 실험 위주로 진행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개념만을 사전식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지적
 

생물교과는 몇가지 특징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생물Ⅱ에 있었던 '생물의 항상성'(자극과 감각, 신경계, 호르몬 등)이 깊은 화학지식이 없어도 배울만큼 감량돼 과학Ⅰ(상)으로 들어왔으며, 그대신 '분류' '유전' '진화'부분이 생물로 넘어갔다.

구로고등학교 신영준교사는 "이번 개편에서 교양과 전문적인 내용을 구분하려고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으나 인문계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꼭 배워야 할 '진화'가 생물로 넘어간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과학Ⅰ(상)의 '생물과 환경'에서 환경오염문제가 과거와 전혀 달라진 내용없이 형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생물교사들의 반응. 4차개정이 이루어진 시기(81년)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환경오염의 진척도나 이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은 천양지차. 이를 반영한다면 교과개정의 자세가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예민한 문제인 핵오염에 대한 언급은 한군데도 없다.

이과생들의 선택과목인 생물도 학문을 위한 예비과정을 너무 강조해 분자수준까지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흥미있는 생명현상을 공부하면서 쓸데없는 분자 구조식이나 암기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구과학 과목도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내용의 난이도에 따라 쉬운 것은 과학Ⅰ(하)로, 조금 어려운 단원은 지구과학으로 이동시켰다. 대표적인 예로는 4차교과개정에서 지구과학Ⅰ에 있던 '대기의 운동'과 '해수의 운동'이 지구과학으로 넘어가고 지구과학Ⅱ에 있던 생활과 밀접한 '기후'에 대한 내용을 과학Ⅰ(하)로 조정했다.

지구과학교과는 다른 과학과목과는 달리 종합학문적 성격이 강하다. 지구를 비롯해 태양해, 더 나아가 우주 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교과서를 만들기에 따라서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가 너무 많다. 그러나 현실은 천문학 기상학 해양학 지질학 등 각 분야의 학문적 내용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들어와 가장 어려운 과목처럼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지구과학 교과개정에서 선언적으로 내세운 몇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자연관과 우주관의 확립 △지구의 역사를 통한 과학사적 접근 △환경과학 △자원개발과 이에 따른 부작용 등이다.

환경과학적 측면 및 자원개발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지구과학교과서에서는 처음으로 '환경과 자원'이라는 단원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경동고등학교 이면우교사는 "이번에 '환경과 자원'이라는 단원도 생기고 보이저 2호 영향으로 태양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수록되는 등 몇가지 긍정적인 면이 보이긴 하나 인문계 지망학생들이 처음 대하는 과학Ⅰ(하)의 첫단원인 '우리의 지구'가 너무 어려워 걱정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생활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이야기, 즉 '지각의 물질과 변화'나 아니면 '지구의 역사'가 앞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의 지구' 단원은 제목에서 풍기는 친근함과는 달리 지오이드나 좌표계산 등 복잡한 개념들과 수식으로 꽉차있다. 이런 단원이 맨처음에 나오기때문에 지구과학교과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

이번에 새로 마련된 '환경과 자원' 단원도 인문사회성이 강하므로 과학Ⅱ(하)로 옮겨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번 교과개정에서 두드러진 변화중의 하나는 이공계 지망생들이 생물이나 지구과학과목중 하나를 택일해야 된다는 것이다. 여의도고등학교 박병훈교사는 "생물이나 지구과학중 하나를 선택하게 됐는데,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게되면 반평성에 큰 혼란이 온다. 제2외국어 선택과 더불어 수업시 대이동을 해야하므로,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학교 차원에서 선택해버릴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대학에 진학해서 생물학을 전공할 학생이 타의로 생물을 배우지 않고 진학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포명했다.

집필기간 6개월

이번 5차 과학교과개정을 보는 교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부분적인 면에서 몇가지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현장 과학교육에 변화를 줄만큼 큰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는 평이다. 수많은 개념들이 사전식으로 나열돼 있는 우리의 교과서를 갖고서는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이해 시키고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능력을 배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느냐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좋은 교과서, 참신한 교과서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제기되는 것이 교과서개정전문위원회의 구성이다. 이 위원회에는 교수는 물론 현장교사들이 다수 참여해 오랜 기간 연구를 해야 한다. 미국이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새로운 과학교과서, 이른바 PSSC물리 BSCS생물 CHEM화학 ESCP지구과학을 만들 때 10년 동안, 교수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와 교사는 물론 학생들까지도 참여했던 것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미국의 교과서가 같은 학문중심이라도 우리의 교과서처럼 개념만이 나열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차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현실은 문교부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개정안이 나오면 1년 이내에, 새교과서를 집필해 인쇄까지 마친 다음 검인정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실제로 저자들이 모여 집필하는 기간은 불과 6개월 내외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교과서, 새로운 교과서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번 개정에도 8종의 검인정교과서 집필자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문교부 이규석편수관은 "아무리 개정시안에서 새로운 원칙들을 제시하더라도 집필자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배부되는 교과서에는 구태의연한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다"며 "현재 문교부에서도 현행 교과개정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전문위원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제도를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현행 검인정 체제를 유지한다면, 검인정교과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학사 편집실의 과학담당 오승만차장은 "지금처럼 소제목까지 세세하게 지정해주지 말고 큰단원과 원칙만 제시해준다면 오히려 저자들이 소신을 갖고 집필해 특색있는 교과서가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행 체제에서는 검인정통과를 위해서 혹시 빠진 내용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면피주의'가 만연돼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교과서 집필진에 현장교사가 대거 참여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현재는 일부에서 구색맞추기로 한두명의 고교교사가 집필에 참여하고 있으나 대부분 교수들로 집필진을 구성하고 있다. 교수들은 특성상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공부한 학문내용을 교과서에 많이 쏟아부으려는 성향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집필이 되려면 교수와 교사비율이 50대 50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컬러」교과서가 필요


과학교과서의 컬러화는 매우 필요한 작업. 그러나 우리 교과서는 단원이 시작되기 전 몇 페이지 정도만 컬러화보를 게재하고 있다.
 

새과학교과서에는 재미있는 삽화가 전보다는 많이 실려 '교과서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은 해소하고 있으나 사진은 모두 흑백으로 사진효과가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경우 과학 사진 하나가 특정분야에 관심을 갖게하고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함을 감안한다면 전교과서가 흑백인 우리의 현실에 서클픔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진으로 보는 실험결과가 분명히 모두 검은색인데도 밑에 써있는 '붉은색' '파란색' 글자를 보고 구분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기초과학을 진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으면서 기초과학의 초석이 되는 과학교육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일 수밖에 없다.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기초과학 진흥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수식이 많이 나온 책을 보면 '교과서 같다'고 말한다. 이야기책과 교과서는 정반대의 뜻이다. 교과서는 수식이 많이 나와야할까. 이야기책 읽듯이 과학교과서를 보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참다운 과학교육의 최대의 걸림돌은 대학입시라는데 교사들은 동의한다. 대학입시가 과학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어, 암기를 강요하고 수리계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교과서도 여기에 맞춰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교과서가 학문위주의 개념을 단순 주입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에 입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역의 논리도 성립한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지구는 둥글며, 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느냐 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보존하는 방법 정도만 배우면 되지 그 이상의 내용이 뭐 필요있겠느냐"는 어느 지구과학교사의 푸념어린 독백과 "대학1학년 때 배우는 교양과정보다 고등학교 교과서가 더 어려운 것 같다"는 대학1학년생의 볼멘소리는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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