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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담배잎에서 인슐린 뽑아낸 홍주봉박사

"수율(收率)을 경쟁력 있는 5%선까지 높이는 작업을 계속할 거예요"
 

홍주봉박사


인간의 섬이 식물의 섬으로 이사갔다. 사람의 췌장에서 만들어져야 정상인 섬이라는 어원을 가진 호르몬, 즉 인슐린이 엉뚱하게도 담배의 잎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런 '자리바꿈'은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데 우리의 한 식물분자생물학자가 이 일을 해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전공학센터의 선임연구원 홍주봉(洪周奉, 37)박사가 바로 그 작업의 주역이다. 그는 2년 반에 걸친 연구끝에 자신의 표현대로 '조그마한 성과'를 얻어냈다.

"전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의 수는 1억3천만명에 이릅니다. 국내에서만도 한해에 2천6백여명이 이 병으로 숨지지요. 가까이는 저의 부친도 당뇨로 고생하시고 계십니다."

인슐린은 간장병 비만증 정신병의 치료제로도 쓰이고 있지만 특히 당뇨병 환자에게는 최상의 묘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워낙 체내에서 미량이 생산되는 호르몬이므로 자연 생산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돼지의 췌장에서 유전공학적으로 처리한 대장균으로부터 인슐린을 뽑아 쓰는 실정이다.

"하지만 돼지의 췌장은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사람의 인슐린이 아니므로 곧잘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또 대장균에서 추출한 인슐린은 만들기가 까다롭고 효율도 떨어지지요."

실제로 돼지의 인슐린은 유전자의 조성부터가 다르다. 따라서 사람이 복용했을 때, 면역학적인 이상을 일으키기 일쑤다.
그에 반해 대장균에서 뽑아낸 인슐린은 틀림없이 사람의 인슐린을 대장균에 접종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대장균(E.coli)에서 추출한 인슐린은 활성화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장균에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만 주입하면 곧 분해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인슐린 유전자를 보호해주는 다른 유전자를 같이 넣어줍니다. 그러면 이 보호유전자와 결합된 상태의 인슐린을 얻을 수 밖에 없지요. 결국 이 보호유전자 성분을 다시 잘라내주어야 순수한 인슐린을 생산하게 되는 데 이 과정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또 이 제거작업 중에 인슐린의 수율과 효율이 모두 떨어지지요"

●-이제는 약리학에 기대할 때

만약 홍박사가 만든 인슐린이 앞으로 진행될 여러 관문을 모두 통과한다면 그는 떼돈을 벌 수도 있다. 어립잡아도 전세계의 인슐린시장이 5조원은 거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낙관할 단계가 아니다.

"이제 이 연구는 내 손에서 거의 떠났다고 봐야 할 겁니다. 과연 약으로 가능하냐는 약리학자들의 몫이지요. 특히 주사약이나 내복약으로 활용되려면 먼저 약물운반체제(DDS, Drug Delivery System)가 확립돼야 합니다. 그러나 수율(收率)을 높이는 작업만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담배잎 하나가 갖고 있는 총단백질에서 0.5~1%의 인슐린을 추출했는 데 이 정도의 수율로는 경제성이 없어요. 적어도 대장균의 인슐린 생산수율인 5% 정도까지 끌어올릴 작정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현재의 수율은 담배잎 1백g에서 25mg의 인슐린을 뽑을 수 있는 정도다. 한해에 3회 윤작할 수 있는 담배초 한 그루에서는 1년에 5g쯤의 인슐린 생산이 가능하다. 당뇨병환자가 한번 주사맞을 때 1~2mg의 인슐린을 주입한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라.

그의 수율높이기 작전은 이미 구체적인 계획서까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직 '일급비밀'이라면서 빙긋이 웃은 그는 "엽록체 내로 인슐린유전자를 밀어서 집어 넣거나, 감자의 괴경에 집적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한다.

'인슐린식물'을 시작하면서 홍씨는 주변으로부터 '황당무계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고 '인슐린담배' '인슐린토마토' '인슐린감자'를 동시에 추진했다. 이를테면 셋중에 하나를 노린 것이다. 예상대로 한 가지가 들어맞았지만 그는 '인슐린토마토'에 끝내 미련을 버지지 못하고 있다. 토마토에서 만들어진 인슐린이라면 주사약이나 내복약으로 전화시키는 일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번 성공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토양미생물인 아그로박테리아(Agrobacterium tumefaciens)에 먼저 이식한 뒤 이 미생물을 일부러 상처를 낸 담배의 잎에 옮긴다. 그러면 미생물의 유전자 일부가 담배의 엽록체로 '이사가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담배는 빨리 자라고 분화가 잘 돼 이런유의 실험재료로 매우 유리합니다. 하지만 식용으로는 조금 불리한 면이 있지요. 대개 시금치 토마토 감자 등이 동물성 식용단백질의 제조에 쓰일 수 있는데, 어느 것을 막론하고 분리·제조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그는 현재 항(抗)바이러스성식물 내병(耐病)성식물 내염성식물에도 도전하고 있다.
"특히 간척지의 개발로 인해 토양에 소금기가 많아짐에 따라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내염성식물의 개발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연구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연구비 조달문제였다.

●-유전공학의 새 물결을 타고

"유전공학 제1세대, 즉 바이러스 등 미생물을 활용하던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흔히 유전공학 제2의 물결이라고 합니다. 이 새롭고 경이로운 학문은 82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제프 셀'(Jeff Schell)박사와 미국 록펠러연구소의 '남'(Nam Hai Chau)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지요."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이 신생학문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포스트닥(post doc)과정중에 공부한 분자생물학과 자신의 특기인 식물학을 접목시킨 것이다.

"입문하고 나니 엄청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실제로 고등식물의 몸을 빌려 생산할 수 있는 의약품은 2백50여개나 되지요. 하지만 현재 개발된 것은 4종에 불과해요. 그나마 실용화된 예는 하나도 없는 상태예요."

식물분자생물학이 서독과 미국에서 태동했음을 반영하듯 그 '선물'도 주로 두 나라가 나누고 있다.

"벨기에와 서독이 공동으로 연구해 엔케팔린(leuenkephalin)이라는 단백질을 평지씨(rape seed, 참깨의 일종)로부터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단백질은 신경전달 물질의 일종인데 앞으로 마취제로 쓰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 서독의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영양주사액으로 사용되는 알부민(albumin)을 감자에서 추출했어요. 이 알부민은 그동안 주로 사람의 혈액에서 뽑아 써 왔던 단백질이죠.

그리고 미국의 스크립스클리닉연구소는 담배에서 항체인 이뮤노글로블린(immunoglobulin)을 추출했어요."

정치에 염증을 느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식물학을 하게 되었다는 홍박사는 전형적인 KS다. 더 정확히 말하면 K(경기고) 시절은 3분의 1밖에 보내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검정고시를 거쳐 곧바로 서울대 식물학과에 입학했던 것이다.

평범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난 그는 졸업후 ROTC장교로 복무했다. 제대 후 서울대 권영명교수(식물생리) 밑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학에서 대망의 박사학위를 받는다. 졸업논문은 식물과 온도 빛과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였다.

"집사람과 같이 학위를 했어요. 제 처는 음악평론 전공으로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그 후 그는 텍사스공과대학 화학연구원으로,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분교 생물학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먼저 한국에 와있던 처가 보고 싶어" 귀국한다.

홍씨의 부인은 현재 KBS FM '명곡의 전당'을 진행하고 있는 김춘미씨(35). 김씨는 서울대 음대에도 출강하고 있고, 홍씨는 서울대 연대 고대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므로, 말하자면 캠퍼스커플이면서 동시에 부부강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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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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