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대나 물가에서 홀로 고고하게 노니는 이 텃새는 조용하고 경계심이 강한 새다.
옛말에 슬기로운 백성들이 사는 곳에는 금수 또한 아름답다고 했다. 자연보호의 필요성이 드높게 외쳐 지고 있는 요즘 이 옛말이 지닌 뜻의 오묘함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필자가 동물원에서 동물 가족과 더불어 살아왔던 세월이 20여년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동물가족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오면서 그들로부터 인간사회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인간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걷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동물의 일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는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한때는 우리나라 중부 지방의 텃새로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던 황새가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과부황새와의 뿌리깊은 인연
동물가족과 생활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의 나날을 보냈지만 필자의 마음 한구석을 항상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현재 서울대공원 작은 물새장 내실에서 얼마 남지않은 여생을 보내고 있는 과부황새의 사연이다. 지금은 과부 신세는 벗어났으니 워낙 노쇠한 황새라 보는 이를 인타깝게 한다.
이 나이 많은 황새와 필자와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필자가 창경원 동물원에서 근무한지 만 1년이 되는 71년에 그녀와 나의 첫 대면이 이뤄졌다. 그해 4월 1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 무수동에서 황새 한쌍이 알을 품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알려졌다. 그런데 이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3일 후인 4월 4일에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이 아무개라는 사냥꾼이 수컷을 사살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분노했고 슬퍼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원래 이 황새부부는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남편 황새가 숨을 거둘 때까지 큰 뉴스거리는 되지 않았으나 황새는 사건 발생 4년 전인 1968년 5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돼 있었다.
남편을 졸지에 잃은 과부황새는 동네주변을 날아다니며 밤낮없이 슬피 울곤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곳을 차마 떠날 수 없었던지 그후 12년동안 외토리생활을 해왔다. 그녀는 해마다 무정란을 낳아 품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애처롭게 했다. 과부황새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이 뿌려 놓은 농약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결국 여름 장마비에 지쳐 아사직전의 상태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장대비가 줄기차게 퍼붓던 지난 83년 7월 16일 죽음일보직전의 과부황새는 다행히 동네 청년 윤홍구씨에게 발견됐다.
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우리 진료팀은 환자가 이송될 때를 대비, 진료실 안팎을 다시 소독하고 입원실도 2층 특실을 마련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날 오후 6시경 과부황새는 고향인 음성에서 서울 창경원 동물원으로 후송되었다. 진료진은 우선 영양제 해독제 항생제 등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체온을 재본 결과 보통 조류의 정상체온인 40℃ 보다 6℃나 떨어진 34℃였다. 과부황새는 몽롱한 상태에서 신음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듯 안간힘을 썼다.
정성을 다해 간호한 덕인지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긴 과부황새는 다음날 아침 의식을 점차 회복했다.
용기를 얻은 의료진은 황새가 좋아하는 미꾸라지는 물론이고 민물고기와 새우 등을 먹이고 영양제주사와 치료제를 투약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한달쯤 뒤에 황새의 원기는 완전히 회복됐고 식욕도 왕성해졌다. 우리들은 황새에게 우렁이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창경원 수정궁의 물속에 잠수해 들어가 우렁이를 잡기도 했다.
1983년 11월 21일 과천의 서울 대공원으로 동물원이 이전하면서 과부황새도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지아비를 여윈 쇼크때문인지 아니면 20여살이 넘는 나이때문인지 무정란도 단산을 하고 말았다.
이 황새는 앓을 때부터 정성껏 보살펴온 우리 진료팀을 무척 따른다. 황새는 경계심이 강해 다른 사람이 접근해 오면 얼른 자리를 피하지만 우리 의료진이 찾아가면 오히려 다가와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하얀 몸과 꼬리, 굵고 길며 검붉은 부리, 붉고 늘씬한 다리, 그리고 초록빛 날개는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과부 황새는 가끔 옛날이 그리운지 긴 목을 하늘을 향해뻗어보기도 하고 등에 닿을 정도로 목을 뒤로 젖히기도 한다. 때로는 옛날 야경꾼이 딱딱이를 차듯이 아래 위 부리를 부딪쳐 사랑노래를 부른다.
과부황새는 재혼을 원하는 듯 했다. 그러던 차에 88년 부산동물원에서 병에서 금방 회복한 수컷 한 마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래서 늙은 이 과부황새에 짝을 맺어 주었으나, 너무나 기력이 쇠퇴한 탓인지 신랑에게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구애의 표시도 전혀없다. 그녀의 속사정을 모르는 필자는 늘 안타깝기만하다.
월동을 하기도
황새는 황새과(科) 황새속에 속하는 대형조류로서 암컷과 수컷의 머리, 몸의 윗면과 아랫면은 흰색이고 눈꺼풀은 붉은색이다. 날개 깃은 검은색, 꼬리는 흰색, 부리는 검은 갈색이며, 다리는 검붉은 색이다.
황새는 기본적으로 한 지역에서 사는 텃새이지만 한국의 중부 이북에서 번식한 대륙의 황새는 중국본토와 한국의 중부이남을 오간다. 간혹 일본까지 건너가 월동하기도 한다.
황새의 학명은 Ciconia ciconia boyciana이다. 황새는 호반 하구 논 밭 등 습지대나 물가에서 흔히 단독으로 생활하지만 때로는 두마리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조용하고 경계심이 강한 새이다.
황새는 간혹 두루미와 혼동되기도 한다. 실제로 날개깃과 몸의 색깔은 거의 같다. 하지만 두루미는 몸집이 황새보다 크다. 또 목이 검고 정수리에 빨간 살갖이 드러나 있는 점도 다르다. 그리고 두루미는 겨울새이면서 동시에 지상성(地上性) 조류다. 반면 황새는 나무위에 앉고 둥우리도 지상에서 5~20m 의 높은 나무 위에 트는 것이 커다란 차이점이다.
얕은 물에 서서 물고기나 개구리를 엿보다가 용수철처럼 목을 뻗어 억센 부리로 물어 올리는 동작은 매우 민첩하다. 곤충이나 메뚜기가 좋아하는 먹이며 때로는 뱀 들쥐 두더지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먹이를 먹고 소화를 시키다가 소화가 안된 뼈나 털 따위는 똘똘 뭉치게 한 뒤 토해내는 편리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황새부부는 금슬이 유달리 좋아 언제나 서로 떨어지는 일이 없이 지낸다. 30여일간 알품기를 할 때도 부부가 서로 돕는다. 낮에는 주로 암컷이 알을 품고 밤에는 수컷이 품는 것이다. 부화를 한 후에도 부부가 번갈아가며 먹이를 물어다 준다. 부모가 먹이를 일단 삼켜 반쯤 소화가 되면 다시 토해내 아기 황새에게 먹인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보노라면 그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인간못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